00294 2017 =========================================================================
#294
[어? 일찍 일어났네요. 아직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미 시상식이 끝난 뒤, 지인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아무래도 내 집이 Staples Center와 가까운 LA라는 점도 있거니와 동양인인 내가 주요 4개 부문 가운데 3개 부문을 싹쓸이했다는 점도 있어서 일종의 뒤풀이 겸 축하파티를 하게 되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정도 되는 주당 아니, 애주가한테 어제쯤이야 가뿐하지 않겠나? 하하!]
그래서 꽤나 많은 술을 마셨는데, 의외로 일찍 눈이 떠졌는지라 해장이라도 할 겸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선객이 먼저 와 있었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많이 마신 코난이.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 창포주, 감홍로, 이화주 등 파티를 위해 내놓았던 귀한 술들을 목구멍에 들이붓다시피 했던 코난이었으니까.
[자네야 말로 꽤나 의외군. 아니, 그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건가?]
[뭐, 눈이 떠지더라고요. 아직 젊어서 그런가 봐요. 코난 말처럼.]
[하긴 젊으니까, 그렇게 밤새 테일러를 괴롭힌 거겠지.]
[콜록 콜록]
이내 꿀물을 타 건네려하는 순간 들려오는 코난의 말에 당황한 나머지 그 놀람이라는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지만.
[그게...]
[하하!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나? 역시 이런 점에서는 지혁도 아시안인가? 하하!]
물론 코난이 나와 테일러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저번 코난의 생일 때 느꼈다시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이렇게 대놓고 이를 언급할 줄은 몰랐는지라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참 좋을 때야. 좋을 때. 하긴 나도 지혁 나이 때에는 시도 때도 없었지. 하하하!]
이런 나의 당황한 모습에 코난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꿀물을 먹고 있었지만.
이거 도대체 공사를 어떻게 한 거야? 아무리 옆방이라고 하지만, 방음에 신경써달라고 했는데, 그게 들린 다고? 나 원 참.
*
여유로웠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일진데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여기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딸기로요.]
그래서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오후를 보내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 미국에 온 지 어느새 한 달, 아직 3월 초봄인지라 꽤나 쌀쌀할만한 때임에도 해가 떠있을 때면 훈훈해지는 날씨 덕에 말이다.
물론 유료비치 시설이 잘 갖추어져있는 산타모니카 해변이기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컸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나머지는 팁이에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간혹 나를 알아보는 동양인들의 사진, 사인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과 파파라치 몇몇의 예고 없는 사진 촬영을 제외하면 그 외적인 면에서는 모든 게 완벽했으니까, 뭐, 파파라치들도 처음 며칠만 내게 사진기를 들이댔지 지루할 정도로 똑같이 반복되는 나의 지루한 일상에 아무래도 제풀에 지친 듯 그 후부터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말이다.
“네, 네. 저 때문에 관리사님만 바빠지셨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마냥 기쁘고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갖가지 일들을 벌여놓은 주제에 미국으로 와버린 나의 행동 때문에 조 관리사님이 꽤나 고생을 하고 계신 것 같았으니까.
“아! 그래요? 음... 충분히 투자할 만한 곳이면... 그럼 그냥 진행해주세요. 그 대신 가격은 조금 낮춰서요. 네, 네. 어차피 이젠 한국에 별로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관리사님 말처럼 그냥 수익용으로 사용하려했을 때 손해 안 볼 정도로만 입찰해주세요. 네, 네.”
그래도 한남동 외인 아파트 경매 입찰과 아레나 사업, 자산관리현황에 대해서 관리사님의 말을 듣다보니 꽤나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이젠 한국에 갈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경매 입찰을 포기하려했던 한남동 외인 아파트 부지에 대한 생각을 관리사님의 조언에 따라 고쳐먹은 것만 제외하면 다른 사안들은 당초 예상했던 계획대로 무난히 흘러가는 듯 했으니까.
“어차피 이번해가 6년차라서 마지막이나 다름없어요. 예비군. 그거 갈 일 빼곤 한국 갈일이 없을 것 같아요. 네, 네. 365일로 바뀌었더라고요. 전에는 6개월만 외국에 있어도 상관없었는데요. 어쨌든 관리사님만 믿어요.”
그런데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들려온 뜻밖의 소식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삼촌이 비행기 표 알아봐 달라 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일주일 뒤쯤 LA행 비행기로 예매해 달라 하셨습니다. 가족 분들 것까지 전부 준비해 달라 하셔서 아무래도 지혁 군에게는 알리지 않은 듯하여...]
그도 그럴 것이, 삼촌이 내가 아닌 관리사님에게 비행기 표를 예매해 달라했다는 소식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위였으니까.
“알겠어요. 예매하지 마시고 그때 맞춰서 비행기 보내드릴게요. 삼촌한테는 제가 따로 연락할게요.”
LA에, 그것도 가족들 모두가 함께 올 생각이면 당연히 내게 연락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비싼 돈 들여, 그렇다고 해서 전용기 움직이는 게 싸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편한 길 내버려두고 그것도 최종 목적지가 조카 집일 게 뻔한 여정에 정작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건 꽤나 의아한 행동이었으니까.
뭐, 깜짝 등장 같은 이벤트를 할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
[그리고 지혁 군...]
“네?”
관리사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원치 않은 얘기로 화제가 옮겨져 버렸다. 아니, 관리사님은 애당초 이 얘기를 내게 건네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일의 공과 사의 기준에 따라 우선순위에서 이 얘기가 밀려날 수밖에 없었을 뿐.
[한국에서의 일은... 지금 한국에서 여론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진짜 이제 상관없어요. 한국 언론이나 대중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어쨌든 관리사님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지 너무나도 훤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관리사님의 마음이 수화기를 통해 진하게 밀려들어왔는지라, 꽤나 익숙한 멘트로 관리사님에게 나의 속내를 간략하게 털어놓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 한국에서 지금 지혁 군에 대한 과도한 비난 여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관리사님.”
관리사님의 말마따나, 한국에서 나와 관련된 기사들이, 한국을 떠난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내용자체가 일주일 전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해변에 왔음에도 서핑을 하기보다 선 베드에 누워 시원한 음료수와 과일을 먹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으니까. 뭐,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지만.
“항상 그랬으니까,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아요. 예전 별자리, 탄생석 때도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게 돼서 이제는 정말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얘기는 그만해요.”
[죄송합니다. 지혁 군. 제가 괜히...]
어쨌든 이런 경우엔 확실히 내 의사를 표현해주어야 상대방의 호의가 나를 귀찮게 하거나, 내 의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라 꽤나 단호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걱정해주셔서 그런 거라는 거 모르지 않아요. 그럼 일주일에 한 번씩은 보고 받는 걸로 하고 오늘은 이만 끊을게요. 슬슬 배고파져서 뭐라도 먹어야 될 것 같아서요. 아! 물론 급한 일 있으면 바로 연락주시고요. 그럼 이만.”
어차피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이 오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지난 경험을 통해 모르지 않았고 내가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꽤나 역겨워했다는 것을 관리사님 또한 모르지 않을 터라 짤막한 몇 마디 말일지라도 관리사님은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
“한남동 부지에 대한 밑바탕 작업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한강이 훤히 보이는 창문가를 내려다보는 중년 사내가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앞 의자에 착석했다.
“보고해봐.”
그동안의 고생 아닌 고생을 모두 보상 받게 된 그였지만, 그는 전과 다름없이 아니, 오히려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관련 건축 조례가 개정되어 용지 목적과 용적률, 건폐율, 연면적 그리고 고도제한 문제까지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다만 그로인해 예상외의 손실이...”
지금과 같이 자신에게 보고를 하러 오는 이가 하루에도 네다섯 명씩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의 노고를 모조리 보답받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데 모든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됐어. 어차피 그 놈 구워삶는데 그 정도까지는 예상했었으니까.”
“경매 입찰자 명단은?”
“죄송합니다.”
“흠...”
하지만 이렇게 ‘보답’을 얻고자하는 행위 자체가 항상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의 노하우가 밑바탕 된 것인지, 권한과 힘을 얻자마자 신들린 솜씨로 보답들을 쟁취하던 그일지라도 방금 전 보고자의 말마따나,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 때문에 좀처럼 진행시키지 못한 일들이 상당수 존재했으니까.
“일단 입찰하겠다고 밝힌 대기업들 위주로 작업은 이미 완료해놨습니다. 대놓고 꺼리는 기색을 보이는 곳이 몇 군데 있었으나, 본가의 지시라 계획에 어깃장을 놓지는 못할 듯합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쪽에만 신경 써. 어차피 거기 빼면 죄다 피라미들이니까. 뭐, 인력 필요하면 평창 쪽이 이미 마무리 됐으니까, 그쪽 데려다 쓰고.”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사내의 얼굴에는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은 계획에 대한 짜증과 분노보다는 일말의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그 보답이라는 것들 가운데 매우 큰 파이에 속하는 평창 쪽 일이 생각대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계획의 삼분지 일은 이미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내의 생각은 오래가질 않았다.
“한류월드 쪽은?”
“그게... 아무래도 생각보다 여론이 갑작스럽게 바뀌어버렸는지라... 그래미 시상식 여파와 KTBS 쪽에서 대대적으로 이와 관련된 보도를 하는 바람에...”
“제길...”
보답을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자금을 쏟아 부었던 계획이 고작해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무산되어버렸다는 보고에 사내는 쓰디쓴 속내를 차마 숨길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공략해야 하는 단순 목표물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제법 큰 장애물로 발돋움하더니, 어느새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허공에다 털어버리게 만든, 적대감의 대상까지 된 이에 대한 강렬한 분노가 그의 속을 뒤집어 높았으니까.
그렇게 한참동안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굴이 붉어진 사내를 바라보는 보고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만 갔다.
“관련 작업했던 놈들 전부 꼬리 잘라. 나중에 혹시라도 꼬리 밟히면 귀찮아지니까. 그리고 일단은 지속적으로 지분 있는 놈들이랑 접촉 시도해. 그쪽 투자자들이 한군데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다행히 보고자의 얼굴은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평소 두꺼운 가면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는 사내이지만, 그런 사내의 진정한 모습은 그 누구보다 잔인하고 냉정하다는 것을, 그래서 분노에 한번 휩쓸릴 때면 그 누구도 화를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고자는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자신에게 추가 지시를 건네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방금 전의 분노는 사내의 허용한도를 가까스로 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프리패스는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오늘 스케줄이... 오전 11시에 경제인들과의 오찬행사가 잡혀있고 오후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녁 즈음에 찾아가겠다고 연락해둬. 안 그래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손톱이나 물어뜯고 있을 테니까.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아까 한남동 외인 부지에서 우리 쪽에 대놓고 반감 드러냈다는 놈들 명단 본가로 먼저 보내놔. 오찬 행사 때 그놈들한테 한 소리 해두라 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물론 긴장한 나머지, 온 몸이 땀으로 젖어버린 보고자와는 상관없이,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평소 습관대로 그날의 계획진행 상태를 기록해두기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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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회님 후원쿠폰 18 장 감사합니다.
라이몬드님 후원쿠폰 50 장 감사합니다.
라호르님 후원쿠폰 10 장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코멘트퀴즈]
강지혁의 정규 1집 앨범 제목과 4집 앨범 제목을 써주세요.
[코멘트퀴즈 선착순 정답자] - 이번 문제는 조금... 애매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1등 : vcnpav님 3점 /// 2등 : silbia실비아님 2.5점 /// 3등 : 사랑그사람님 2점 /// 4등 : 오리리님 1.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