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90화 (290/502)

00290  2017  =========================================================================

#290

[그동안 강지혁의 이미지는 그저 연출된 것일 뿐? 고아들을 위한 기부, 연기자, 가수로서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강지혁이 사진과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을 향해 욕설과 함께 윽박을 지르며...... 강지혁의 소속사인 포이보스 뮤직 측 曰 “본사 소속 아티스트를 향한 유언비어가 도를 넘길 시, 강력히 법적대응을 할 것. 본사 소속 아티스트의 말을 들어본 바, 잘못은 해당 팬에게 있었을 뿐......” ...... 이런 발표가 온, 오프라인 상에서 수많은 논란을 자아내고 있는 가운데 강지혁은 오늘 오후 6시에 예정된 골든 디스크 참가를 끝으로 미국 출국......]

-역시 이미지 메이킹 이었다니까. 이제 껍질이 벗겨지네.

-솔직히 너무 티났음. 그동안 벌여놓은 게.

-뭔 소리야. 이미지 메이킹이라니? 이번에 윽박이니 뭐니 그런 것도 아직 사실인지 아닌지 안 나온 상태인데 또 몰이하네. 이러다가 사실 아니면 어떡할꺼?

-ㄴㄴ거기있는 사람들 증언 졸라 많음. 강지혁이 사인이랑 사진 요청하는 팬 두 명한테 윽박지름.

수많은 기사들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상관이 있는 것은 그 기사들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 뿐.

그렇게 기사들과 댓글들을 살펴보다보니 내가 그동안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신뢰나 믿음 따위의 가벼움에 허탈하기도 하고 너무 예상대로 여론이 흘러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미친. 걔들 자체가 무슨 요구를 했는지 어케함? 보니까, 강지혁이 소리친 거 이전에 무슨 일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 없더구만.

-아무튼 강지혁 별로임. 배가 불렀음. 돈 좀 벌었다고 거만해져서는.

물론 저들이 쉽게 이해해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 스스로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평범함에 대한 갈구를 이해하지 못했듯 저들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대중들은 내 스스로가 거만하게 비춰질만한 행동을 한 이유 따위는 생각해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으니까.

“지혁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어? 아! 형 왔구나.”

그렇게 나도 모르게 기사들을 살펴보다보니,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나보다. 30분 뒤쯤에 집에 도착하기로 했던 석현 형이 어느새 내 눈앞에 와 있었으니까.

“기사보고 있었어? 그거 신경 쓰지 마. 좆도 모르는 새끼들이 입만 살아서는.”

“형?”

그런데 형의 입에서 좀처럼 들어본 적 없는 거친 말이 흘러나왔는지라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김석현이라는 사람은 군 시절 선임들에게 구박을 받고 모두가 뒷 담화를 할 때조차 욕을 쓰지 않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실감하게 됐다. 어제 내가 했던 행동이 굉장히 큰일이긴 하구나라는 것을.

“협찬사에서 오늘 시상식에서 입어 달라고 갖가지 것들 엄청 보내왔어. 얼른 가자. 코디 누나들이 너 얼른 데려오래.”

“어, 형.”

어쨌든 나를 걱정하는 듯 표정이 굳어져있는 석현 형에게 더한 걱정을 안겨다주기 싫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들어보니까, 너 그래미랑 피플스? 거기 시상식 갈 때마다 이번처럼 콘셉트 미리 알려달라고 하는 것 같더라. 그때마다 전부 보내준다고.”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파장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

확실히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이야, 지혁이 핏이 아주 어? 아주 장난 아니야?”

“됐다. 진짜 멋있네. 역시 옷걸이가 좋으니까! 그럼 수트는 조르쟌 아르마로 하고 타이는 시넬이나 구째꺼로 하고 구두는 돌체바나앤으로......”

모두들 내 의상 코디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은 지금까지와의 시상식 준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그들의 입은 주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층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러다보니 기분이 좋질 않았다. 이미 체념한 탓에 정작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진데 아까 석현 형부터 시작해서 코디 누나들까지,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이 도리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직설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렇게 안 해줘도 돼. 난 진짜 아무렇지 않으니까.”

그냥 평소처럼 나를 대해도 된다고, 나는 어제 일로 아무렇지 않다고, 오히려 마음이 정리된 까닭에 일말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게 되어 후련하니까,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위해 애쓸 필요가 애당초 없다고 말이다.

“어, 어?”

“우, 우리가 뭘?”

그런 내 말에 코디 누나들이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이미 이에 대해 신경을 꺼버렸다는 듯 방금 전 입었던 옷들을 하나, 하나 벗기 시작했다.

“이거 지금 안 입어도 되는 거지? 어차피 헤어 하고나서 다시 한 번 볼 거니까?”

“어? 어, 그렇긴 한데...”

“그래...”

오늘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 앞서 내가 해야 될 준비를 마무리하자면 더 이상 별 일 아닌 걸로 시간을 소모하면 안 되었으니까.

*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들 쯤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헤어숍에서 또다시 의상 숍에서 했던 말들을 되풀이한 뒤 레드카펫에 도착한 내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느끼자마자 이것이 오해임을 깨달았지만.

“잘 갔다 와라. 지혁아.”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선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상식과 같은 공개적인 장소에 나갈 때마다 말이다.

“어, 형.”

하지만 지금 골든디스크 시상식 레드카펫에 발을 내딛는 순간 느껴지는 시선들은 그동안 느꼈던 시선들과는 차원이 다른 시선들이었다.

[와와아! 강지혁! 강지혁!]

[갓지혁! 갓지혁!]

[오빠 사랑해요! 강지혁! 강지혁!]

물론 익숙한 눈빛, 익숙한 환호성으로 나를 보며 열광해주는 이들 또한 있었다.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다만, 이보다 부정적인 반응들이 더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나를 물고 뜯을 생각에 입을 오물쪼물하고 있는 기자들과 지금껏 느낀 적 없는 시선들을 느끼게 해준 구경꾼들이 아니었다.

[우우우우]

[뻔뻔하다!]

내 자신의 발걸음이 너무나도 당당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던 건 사실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야유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은 그저 웃는 얼굴로 레드카펫을 걸어갔다.

그래서 생각했다. 체념이라는 게 이다지도 무서운 힘을 낸다는 것을.

“며칠 전 있었던 팬들을 향한......”

“팬들을 향해 욕설과 폭행까지...”

그렇게 내가 지금 시상식 참가를 위해 이 레드카펫을 밟았고 포토 존에 섰는지 아니면 기자들의 특종을 위해 이곳에 온 건지 모르겠는 상종 못 할 질문들을 무시한 채 그저 웃는 얼굴로 좌, 우, 정면 순서대로 포즈를 취한 뒤 시상식 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의 행동에 또다시 강한 반감이 등 뒤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그저 당당했다. 어차피 기자들의 반응은 그다지 신경 쓸 바가 아니었고 대중들의 반응 또한 이제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으니까.

*

음반부문, 음원부문으로 나눠진행되는 골든 디스크 시상식은 1986년에 제1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온,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고 전통 있는 시상식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참가하고 싶었다. 지난 정규 1집, 2집, 3집 때 직접 참석하지 못했음에도 매번 다관왕의 영광을 준 안겨다준 골든 디스크 측의 배려 아닌 배려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보답이라는 것이 오히려 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글로벌 케이 팝 아티스트상, 베스트 OST상, 베스트 R&B상, 아시아 인기상, 제작자상에 이어 음반 본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팬 여러 분들께,”

[우우우우]

[가식!]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에서 이 방송을 보고 계실 가족 분들 그리고 포이보스 식구들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우우우우]

가수 인생에서 처음으로 참가한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할 때마다 축하의 환호성이 아닌 야유를 받게 되었고 이는 골든 디스크 시상식의 분위기를 제대로 흐려놓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표정은 굳어지지 않았다. 간혹 가다 악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야유소리에 순간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되도록 웃는 얼굴을 하려 했다. 저들이 나를 평가했듯 나 또한 저들을 평가했고 그 평가라는 것을 더 이상 할 필요 없겠구나 싶을 순간이 점점 다가왔으니까.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나와 다른, 너무나도 큰 축하의 환호성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가수들의 모습에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기도 하고 쉬는 시간마다 내 옆으로 다가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이식스 멤버들과 TRENDY 멤버들을 애써 자리로 돌려보내다 보니 어느새 오늘 기획된 음반 부문 시상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음반 대상 시상만이 식순에 남아있었으니까.

“골든 디스크 음반 부문 수상자는! 축하드립니다. 강지혁 씨.”

[우우우]

[우우우]

이내 이변이라 할 것 없이 내 이름 세 글자가 장내에 울려 퍼진 순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당당히 일어나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찰떡같이 뒤따라오는 야유에도 나는 지금까지처럼 그저 웃는 얼굴로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달리 수상소감을 짧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내 나름대로의 평가가 끝났음을, 그 평가 결과라는 것이 예상과 전혀 빗나가지 않았음을 확인한 나이기에 나 또한 할 말은 하고 싶었으니까.

“팬들의 사랑 없이는 연예인도 없다.”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합니다.’와 같은 지금까지의 수상소감이 아니어서 일까. 찰떡같이 나를 따라오던 야유가 그 순간만큼은 힘을 잃어버렸다.

“맞는 말입니다. 가수든 연기자든 팬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빛날 수 있고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껏 이렇다 할 대응 없이 여론의 물매를 맞았던 나이기에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야유를 하던 이들, 응원을 하던 이들 가릴 것 없이 모두의 관심이 나의 멘트에 집중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으니까.

“요 며칠 가수와 연기자는 한 그루의 나무와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자가 팬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빛날 수 있다면 후자는 햇빛과 물로 울창한 가지와 잎사귀를 자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내 행동이 평소의 나였더라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진데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말이다.

“본 시상식과 관련 없는 주제인지라 언급하지 않으려했지만, 음반 대상을 수상한 만큼 감히 제 마음이 가는대로 해보겠습니다.”

평범해지고 싶다, 일상을 즐기고 싶다,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

나는 현실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한 사안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아니 그동안은 받아들여 왔으나 점점 더 힘에 겨웠다. 애써 이런 현실을 합리화시키며 버텨나가느라 내 일상의 활력 자체가 현저히 줄어들어 갔으니까.

“저는 지금 이 순간 저를 향하는 수많은 야유들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저는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합니다. 제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이 그르지 않았다고 자신합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싶어서 그동안 버텨왔던 것들을 터트리거나 누그러뜨려야만 했다. 나는 당연히 후자를 택해 미국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리고 한국에서도 LA와 같은 저택을 지으려 했고 말이다.

[와... 인기 좀 있다고 유세 졸라 떠네. 사인 한 번,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게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저렇게 뻐겨? 나 참 더러워서.]

[맞아. 사인 한번 해주는 게 뭐 힘들다고 저리 비싼 척이야? 초심 잃었네.]

그런데 때마침 맞이하게 된 초심이니, 비싼 척 한다느니 같은 발언이 의도치 않게 일종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 같다.

“가지와 잎사귀를 자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햇빛과 물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면 그 나무가 어떻게 될지, 한번쯤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강요는 아닙니다. 지난 며칠 동안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것들이 저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셨으니까요.”

그동안 애써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일순간에 터져버리고 말았으니까.

“오늘 시상식 내내 아니, 레드카펫을 밟을 때부터 수상소감을 말할 때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해서 야유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것들을 사실로 믿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제가 쌓아왔던 신뢰와 믿음이 얼마나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셨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뭐, 그렇게 막상 터트려버린 감정들로 인해 상상이상의 활력을 얻을 수 있긴 했다. 이내 겪게 된 수많은 이들의 반응들에 허무해지기도, 언제나처럼 똑같은 반응들을 내보이는 대중들로 인해 허탈해지기도 하면서 그 활력이라는 것이 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오늘 이렇게 많은 상을 주시고 음반 대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있을 음원 부문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시상소감을 마무리한 내게 수많은 야유 소리가, 그런 야유 소리에 묻힌 응원 소리와 환호소리가 들려왔지만 나의 발걸음은 당당했고 얼굴 표정은 밝았다. 아주 많이.

============================ 작품 후기 ============================

bin11님 후원쿠폰 2 장 감사합니다.

뮤얀님 후원쿠폰 18 장 감사합니다.

WhoUR님 후원쿠폰 1 장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열심히 하겠습니다.

[코멘트 퀴즈]

Q. 지혁이 아체대에 참가한 아미가를 위해 처음으로 선물한 도시락 회사이름은?

[코멘트 퀴즈 선착순 정답자]

(1등 : 라이몬드님 3점 /// 2등 :사랑그사람님 2.5점 /// 3등 : silbia실비아님 2점 /// 4등 : vcnpav님 1.5점 /// 5등 : 칸르님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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