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9 2017 =========================================================================
#289
“나 아직 좋아해.”
아직까지 잊지 못했다는 말 그리고 여전히 좋아한다는 말.
물론 이런 말 따위 굳이 지금 듣지 않아도 동생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바보같이 제 스스로 이별을 통보한 주제에 이를 떨쳐내지 못하는 동생을 위로하기도, 다그치기도 하면서 다시금 일상으로 돌려보낸 것이 그녀 자신이었으니까.
“언니가 사실 너무 미웠어. 나 아직 마음 정리 안 된 거 모르지 않으면서... 나한테 숨긴 것도 모자라서 끝까지 그 드라마 찍겠다고 해서. 그래도 이해하려 노력했어. 언니한테는 그게 쉽게 져버릴 수 없는 기회였을 테니까, 어쩔 수 없겠구나 하면서. 그리고... 나한테는 항상 엄격한 언니지만 그래도 날 사랑한다는 거 모르지 않아서 미안한 적도 많았으니까... 괜히 나 때문에 언니가 신경 쓸 게 많아졌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동생의 의심 가득한 눈빛을 받아내야 했었던 때도 울면서 자신을 원망하던 때도 동생을 위로하며 미안해하던 그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말문이 턱하니 막혀버렸으니까.
“내가 봤던 언니의 그 눈빛이. 오빠를 봤을 때 그 눈빛이 그냥 내가 잘 못 본거라 생각할게. 언니는 옛날부터 겉으로는 차가웠지만 속으로는 날 아껴주고 사랑해준다는 걸... 이제는 모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차가운 겉모습이 생각 외로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낸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동생에게 실수로나마 자신의 무엇인가를 들켜버렸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
[무례해. 정말.]
모든 상황을 전달받은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로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미 상황은 발생했고 일은 벌어졌으며 우리 일행은 강남의 고급 한정식 집에 앉아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흔히들 사람들은 생각한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만큼 개인의 사생활을 제대로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물론 이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다. 그래서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생활이 기사가 되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것이고 이를 방지하기위해 나를 포함한 수많은 스타들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 엄청난 돈을 사용하는 것일 테니까.
[그 사람들 도대체 뭐야? 파파라치들이야? 그 사람들이 전부?]
[진정해. 파파라치는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야. 자, 타겠다. 얼른 먹어.]
[개인 사생활인 것 뻔히 알 텐데 그렇게 대놓고! 너무 무례해!]
하지만 이 부분에서 중요한 점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개인 사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개개인의 행동들 때문이 아닌 파파라치라는, 연예인 등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특종 사진을 노리는 직업적 사진사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유럽, 남미, 북미 쪽 팬들은 유명 스타의 등장에 놀라 관심을 줄지언정 대놓고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주변으로 다가와 소리를 지르진 않았으니까.
[어떻게 초심이니 뭐니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진정하고 맛있는 거나 드시지요. 아가씨.]
어쨌든 상황파악이 끝난 녀석이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은 나보다 더욱 분개하는 모습이 쭉 이어지길 바라지 않았는지라 서둘러 구운 고기들을 녀석의 앞 접시에 담아주었다.
뭐, 더 이상 상황이 지속되면 내 옆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 녀석의 젓가락질이 더욱 주눅들 것만 같았으니까.
자식, 영어를 못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얼어있는 거야? 도대체.
“와... 난 형이 대단한 사람인건 알고 있었지만.”
녀석이 이 공간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있고 나와 테일러 때문에 마음 편히 경기를 직관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함 마음도 있어 한정식 집에 온 것이기도 한데 괜히 눈치를 보게 만든 것 같아 괜스레 퉁명스럽게 대하게 되었다.
“뭐가 인마. 얼어있지 말고 평소처럼 해. 영어를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지렸다. 지혔어...”
“뭐래. 너 영어 공부랑 일어 공부는 하고 있지? 예전에 삼촌이 너랑 애들한테 외국어 공부시킬 거라고 했던 것 같은,”
뭐,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예전 민재 삼촌의 말이 떠올라 녀석의 영어 실력을 확인해보려 했지만.
*
“형 그나저나 어떻게 할 거야? 아까?”
영어 실력을 확인해보려 하기가 무섭게 아까 전 사태에 대해 언급하는 녀석의 의도가 심히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다. 아까 전 내 행동은 한국 사회에선 분명 반향을 일으킬 만한 행동이었는지라 사실 이렇게 마음 편히 한정식 집에서 젓가락을 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기 전 일단 민재 삼촌에게 아까 전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요약해 톡을 보내긴 했었다.
나로서는 딱히 잘못한 행동이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싫어하는 사람들 또한 비례해 많을 것이고 그들을 위시로 이는 수많은 이슈들을 자아낼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이와 관련된 1차적인 뒷수습은 죄송스럽게도 언제나처럼 민재 삼촌의 일이 될 테니까.
“너가 보기에도 형이 잘못한 것 같냐?”
“어?”
돌이켜보면 후회가 됐다. 아니 말을 딱 뱉은 순간부터 후회하긴 했다. 물론 그 후회가 비록 내 행동의 잘잘못 때문이 아닌 나의 즉흥적인 행동 때문에 고생할 민재삼촌에 대한 미안함과 앞으로 귀찮아질 일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들 때문이긴 하지만.
“알잖아. 형이 잘못했든, 잘못 안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어쨌든 어차피 논리적으로나 뭐로나 내가했던 행동들은 저들의 무례에 대한 일침에 불과할 테지만 언론들은 이를 자극적인 기사제목으로 엮을 것이고 사람들은 내가 사인과 사진을 요청한 이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경우에 따라선 윽박을 질렀다는 식으로 인식할 것이기에 후회보단 후속처리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됐다. 얼른 먹어. 슬슬 앨범 준비해야지. 너도.”
“갑자기 무슨... 알아서 잘 준비할 테니까, 형이나 잘해. 분명히 인터넷 난리 났을 테니까. 나 지금 무서워서 핸드폰 안보고 있는 거 알지?”
“됐다. 인마. 얼른 먹기나 해.”
그 뒤처리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들이 생각 외로 단순하고 나 답지 않았는지라 소름이 돋긴 했지만.
*
[모 인기스타 떴다고 팬들을 무시?]
[사진 요청과 사인 요청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윽박을 지른 인기스타?]
[단시간에 부와 인기를 얻은 모 가수의 팬들을 향한 태도가......]
[그동안의 이미지는 모두 이미지 메이킹의 산물? 모 스타가 오늘 오후...... 팬들을 향한 욕설과 더불어...]
[너무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팬들을 향해 윽박을 지르며 사인 요청과 사진 요청을 대놓고 거절한 모 인기스타의 행동이 SNS를 통해서 급속도록 온라인 상으로 유포......]
하지도 않은 욕설, 윽박, 무시와 같은 말들을 타이틀로 삼은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들이 벌써부터 게재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그 덕에 덩달아 머리를 싸매고 있는 민재 삼촌의 모습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고.
“지혁아.”
나지막한 삼촌의 부름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 스스로 잘못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당당하긴 했지만, 삼촌의 모습을 보고 또 그 목소리를 듣고 나자 마치 오늘 점심 때 있었던 일들이 내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어.”
더욱이 이렇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나의 성급한 행동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음에도 삼촌은 도리어 나를 감싸려했는지라 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초심을 잃었네, 비싼 척하네 뭐 그런 건 당연한거야. 네 위치가 달라지게 됐으니까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상황도 바뀌게 되는 거니까.”
“삼촌...”
“그래도 팬들이 있으니까, 네가 있는 거야. 알지?”
그래서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것 같다.
“정도 이상의 유언비어가 아닌 이상 회사차원에서는 그냥 네가 불미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당분간 자숙하겠다고만 발표하고 그 외적인 대응은 안 할 거야.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경대응 해버리면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너도 일정 앞당겨서 차라리 미국으로 먼저 가있는 게 나을 것 같다. 알겠지?”
이내 이어진 삼촌의 말에서 죄송이라는 말과 자숙이라는 말을 듣게 되기 전까지는.
순간적으로 울컥했던 마음과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어 버렸다. 아니, 이를 대신한 다른 무엇인가 때문에 그 모든 게 사라져버렸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감정들이 일순간 차갑게 식어버렸으니까.
“아니, 삼촌. 그렇게는 하기 싫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정작 내 자신이 당황하고 말았다. 좀처럼 통제되지 않는 감정들 때문에 이번 일이 벌어졌음에도 또다시 머리를 거치지 않은 말들이 튀어나오고 말았으니까.
“어?”
“일정 앞당겨서 미국 가는 건 그렇게 할게. 안 그래도 골든 디스크 참가하고 바로 출국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회사차원에서 내가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어서 잘못했다고, 그래서 자숙하겠다고 발표하는 건 싫어.”
“지혁아.”
그런 나의 모습에 삼촌은 명백히 당황한 듯 했다. 지금껏 이런 반응을 보인 적 없던 나였기에, 삼촌의 말이 옳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이런 분위기 속에서 건넨 삼촌의 조언에 항상 수긍했었던 나였기에 더욱.
“난 내가 잘못 안했다고 생각해. 삼촌이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 건 정말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 생각에는 변함없어.”
물론 지금도 삼촌의 말이 상식적으로는 최선임을 모르지 않았다.
“지혁아. 굽히는 게, 지는 게 아니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때로는 굽혀야 될 때도 있어. 물론 삼촌도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굽혀야 하는데. 왜 자숙을 해야 하는 데? 스타라는 이유로 그래야 한다면 나는 이제 계속 그렇게 살아야해?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사과를 하고 자숙을 해야 하고, 이제는 평범하게 거리를 거닐지도 못하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몇 시간씩 의무적으로 사인도 해줘야하고 사진도 무조건 찍어줘야 하는 거야?”
하지만 가슴 속 무엇인가가 이를 거부했다. 이 행동에 대해 내 자신의 진심이 담겨있든, 형식적인 것이 담겨있든 사과를 하고 자숙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되면 나의 어느 한 부분이 소실되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강하게 나를 휩쓸었으니까.
“지혁아. 그런 일들은 네가 스타가 아니, 연예인이라는 길을 걷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아니, 그 연예인 길이라는 거 애당초 난 걷겠다고 결심한 적 없어.”
“뭐?”
지금 내가 열 몇 살 먹었을 때의 나로 돌아간 것일까. 이렇다 할 사춘기 홍역을 겪지 않았던 나로서는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아니 최근 1, 2년가량의 시기가 오히려 흔히들 말하는 사춘기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난 가수가 되겠다고 아니, 가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었어. 그냥 노래 부르는 게 좋고 노래 만드는 게 좋아서, 삼촌이 음악 하는 동안 외롭지 않게 해주겠대서 포이보스에 들어온 거였어. 아니야?”
방금 전까지 나를 대신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삼촌에게 죄송한 마음이 가슴 가득했다면 지금은 그저 섭섭함, 서운함을 포함한 저항감이 내 온 몸을 가득 채웠으니까.
“지혁아.”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그런 일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연예인이라는 거 하기 싫어. 음악이라는 게 그런 것들을 감내해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나 혼자 곡 쓰고 나 혼자 듣고 나 혼자 부를래. 듣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그 사람들이 주는 환호성, 박수 소리를 못 듣는 게 아쉽고 날 힘들게 하겠지만 요즘은... 하아... 그냥 포기할래. 그럴 거면.”
“지혁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삼촌의 반응을 보건대 그 발언이 평소와는 다른, 꽤나 충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음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미국에 갈 거야. 골든 디스크 끝나자마자 당장.”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당당하다, 난 잘못한 게 없다. 이런 발표까진 안 바라. 그냥 아무런 발표하지 말아줘. 자숙하겠다느니 그런 발표는 절대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야. 믿을게.”
2012년 가수가 된 이래, 2017년 지금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명성과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게 부질없다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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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800808님 후원쿠폰 3 장 감사합니다.
JORDAN님 후원쿠폰 3 장 감사합니다.
ShinHyeJeong님 후원쿠폰 8 장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열심히 하겠습니다.
[코멘트 퀴즈]
Q. 지혁이 처음으로 미국 진출을 했을 때 마이식스 멤버들과 같이 묵었던 호텔의 이름은?
[코멘트 퀴즈 선착순 정답자]
(1등 : 라이몬드님 3점 /// 2등 :vcnpav님 2.5점 /// 3등 : 사랑그사람님 2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