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7 2017 =========================================================================
#287
그래도 삼촌, 조카라 불릴 정도의 관계인데 도와줄 줄 알았다. 실제로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 몰랐다.
“근데 원래 가지고 있던 표를 양도했다고 했는데, 누구한테 양도한 거죠? 그 불가피한 사정이라는 게 뭐죠?”
그것도 저렇게 음흉한 미소를 내보이면서까지 말이다.
“그게...”
불가피한 사정, 양도된 나의 본래 표. 이 두 가지의 단서만을 가지고 저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떠보는 듯한 지경 삼촌의 말에 당황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그 뒤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겠지 하며 낙관적인 전망을 했던 게 두 번째 실수였고.
“...... 그 상황에서 그냥 제 팬 분이신 것 같아서 티켓을 드렸어요. 제가 가진 나머지 티켓이 그런 좌석인 줄 모르고요. 그게 끝이에요”
“설마 꼬시려고?”
솔직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 아니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시끄러웠던 세 명의 여인네들이 하필 내 팬들이었고 마음이 너무너무 넓은 나로서는 티켓이 물에 젖어버려 당황한 그녀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뿐이니까.
“예? 아니, 그게 아니라,”
“뭐야. 그 여자 예뻤습니까. 안 예뻤습니까?”
“그게 아니라,”
“예뻤네. 예뻤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요?”
“꼬시려고 넘겼는데, 잘 안 된 거네.”
“아니, 제 말 좀...”
문제는 이곳에 있는 이들 중 태반이 내 말을 아예 들으려하지도 않았다는 점이지만.
하아.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라지만, 모두가 장난인 걸 알지만 무섭다. 나 원 참.
*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안건을 살펴볼 텐데요. 게스트인 지혁 씨가 직접 한번 읽어주시죠.”
한번 몰이를 당하고 난 뒤에도 토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토크 자체가 꽤나 재밌었고 나 자신을 프로그램에 잘 녹아들게 만들었는지라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새 문화사절단의 마지막 코너인 안건 토론을 맞이하게 되었다.
“주위사람들의 시선이 절 너무 피곤하게 해요...... 평범하게 공원에서 낮잠도 자고 싶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싶은, 때로는 친구들과 홍대나 강남 거리에서 생각 없이 거닐고 싶은 데 그러질 못하기에 쉬는 날이면 집 밖에 나가기 싫어 거의 온종일 집에만 있게 되는데요. 이런 나, 정상인가요? 비정상인가요?”
이번에 문화사절단에 나오게 된 주된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코너 때문이었기에 긴장이 되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안건은 제가 직접 낸 안건인데요.”
“아! 지혁씨가요?”
이번 안건은 이례적으로 게스트 출연자인 내가 직접 제시한 안건이었으니까.
“이런 말을 꺼내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고 또 민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하긴 했는데, 그래도 사전인터뷰에서 제작진분들이 요즘 걱정되는 것이 있으면 얘기해 보라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제 얘기가 안건이 되어버렸네요.”
사실 처음부터 내가 안건을 제시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저 팬들을 위한다는 명분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요즘 굉장히 뜨겁다는 것을 참고로 해 문화사절단을 선택한 것일 뿐이니까.
따라서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주된 이유들 중에 나의 걱정거리와 관련된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프로그램 출연 여부를 타진하던 단계에서 추가된 사안일 뿐이었다.
“제가 일 년 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내는데요. 물론 해외 각 국 일정을 소화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한국에 있으면 굉장히... 주변 시선이 약간 부담스러워요.”
“예? 그게 무슨.”
어쩌다보니, 후에 짜 맞추기로 추가된 사안이 주된 이유들 가운데서도 꽤나 큰 이유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어쨌든 오늘 안건 자체가 내가 낸 것이기에 주저할 생각은 없었다.
“한국에 있는 게 부담스러우시다고요?”
그게 내 언변 자체를 생각 이상으로 거침없게끔 용기를 주었고 말이다.
뭐, 패널들과 MC들은 그런 내 발언에 꽤나 놀란 듯 지경 삼촌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좀처럼 말을 잇지 못 한터라 ‘너무 했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사실 분에 넘치는 인기와 팬 분들의 사랑을 받아서 너무 좋아요. 좋은데, 그게... 약간 한국에서는 너무 제 개인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요.”
“아!”
“아...”
물론 저들의 놀람이 이해는 됐다. 솔직히 내 자랑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한국의 자랑으로 불리는 내가 정작 한국에 있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을, 그것도 방송 상에서 꺼냈으니까.
“그런데 제가 잘 이해가 안되는 게, 지혁 씨 인기가 방금 전 패널 분들의 말을 들었다시피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 곳곳에서도 엄청나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부담을 느끼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혹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뭐, 그런 나의 발언에 때마침 정신을 차린 신연무 씨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내게 질문을 건넸지만 이는 이미 토론과는 조금 먼 진행 방식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안건이 제시된 후 곧바로 이와 관련된 토론을 해야 될 테지만, 지금 당장 저들의 관심사는 토론이 아닌 ‘어째서’에 관한 나의 대답일 테니까.
*
“사실 한국에서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심지어 포이보스를 왔다, 갔다하는 것 조차도요.”
“네? 그게 무슨.”
내가 한국에서도 LA에 있는 대저택을 마련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주변 시선들과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나마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집뿐이라는 점은 인간 강지혁을 너무나도 지치게 만들었으니까.
“평범하게 애들이랑 같이 회사 앞 김밥헤븐에서 밥 먹기도 너무 힘들고요. 길거리 공연은 엄두조차 못 내고 그냥 거리를 같이 거니는 것도 정말 큰마음을 먹어야 가능해서 솔직히 멈칫하게 되더라고요. 집 밖을 나서는 게.”
“아...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해외에서는 더 힘들지 않나요? 파파라치들도 있고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으시니까요.”
“물론 해외 팬 분들도 저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파파라치들 때문에 바깥을 나서기가 힘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생각하실 거 에요. 파파라치가 없는 한국이 오히려 더 편할 것이라고요.”
더욱이 평범하게 편의점을 가는 것도, 홍대를 가서 길거리 공연을 보는 것도, 한강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는 것도 할 수 없는, 그리고 밖이라고 하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전부일 수밖에 없는 내 생활 자체가 심적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했는데 털어놓을 상대가 없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여기 패널 분들이 세계 각국에서 오셨으니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에서는 개인 사생활 면에서 한국처럼 엄청난 관심이 없어요. 그게 할리우드 스타여도요.”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 관심을 주시긴 해요. 절 발견했을 때 주목하시긴 하니까요.”
“그렇다면 별다른 차이점이,”
“하지만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으려 핸드폰부터 들이대거나 사인 요청을 해서 개인의 휴식 같은 것을 방해하지 않아요.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할 때는 정말 정중하게 먼저 허락을 받고 만약 거절을 해도 도리어 미안해하시고요. 뭐, 물론 제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서양 분들 입장에서는 얼굴을 잘 구분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아...”
재성 삼촌한테는 엄청난 걱정을 끼침과 함께 정신 병원을 다니라느니 약은 하면 안 된다느니 같은 조카 바보 행동을 감당해야 되기에,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괜히 걱정을 끼치기 싫었거나 이러한 속내를 꺼낼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여기 외국에서 온 분들도 많으니까,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지혁 씨의 방금 말처럼 정말 그런가요?”
“일단 미국에서는 지혁 씨 말 대로에요. 물론 지혁씨처럼 진짜 유명한 스타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아니면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거나 뭐 이러면 일단 주목은 하겠죠. 하지만 딱 봐도 개인 사생활을 즐기고 있는 듯 하면 되도록 접근을 안 하려고 해요. 뭐, 파파라치들은 달라붙겠지만요.”
뭐, 테일러나 유지연이 옆에서 내 고민들을 들어줄 상태가 되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테일러와 유지연은 내 속내를 머뭇거림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들 중 한명은 나와 맞먹는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해 차마 내 걱정까지 부담을 더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고 나머지 한명은 요즘 들어 통 내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독일도 마찬가지...”
“스페인도 마찬가지에요.”
“영국도......”
“프랑스도......”
“그런데 한국에서도 미리 물어보지 않나요? 핸드폰으로 찍거나 사인 요청을 할 때,”
“미리 찍고서 물어보시죠. 스마트폰으로 찍으신 뒤에 제 의사를 물어보시면서 사인 요청을 하세요. 백이면 백이요. 이런 건 서지경 씨 그리고 신연무 씨도 굳이 제 대답을 듣지 않으셔도 느끼셨을 텐데요.”
어쨌든 이번 촬영분이 언제쯤 방영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관련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인기를 얻은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반인처럼은 아니어도, 그래도 최소한의 사생활만큼은 보장받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
*
“다른 할리우드 스타들이 비싼 집들을 사고 그러는 게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었어요. 처음에는요. 그런데 어느새 저도 집을 넓게 만들고 경비원들까지 고용하면서까지 생활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이해를 못했던 할리우드 스타들의 행동처럼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촬영의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빈번하게 떠올랐다.
“너무 배부른 소리라고 욕 하실 수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조금씩 생겨나고 뭔가 생활하는 데 활력자체가 없어져서요. 그래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국내 활동을 꺼리지는 않아도 굳이 찾아가서 하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일단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나 혼자 속으로 끙끙 앓았던 사안에 대해서 아쉬움 없이 모두 털어놓을 수 있어 너무 좋았고,
“이게 사실 저는 이해가 되는데.”
“에이, 뭔 소리야. 이해가 된다니!”
“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 형 그건 아니다!”
“아니 내 말 끝까지 한번만 들어봐요. 사실 저는 방송인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이해가 돼요. 사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거든요. 그리고 산책이랑 피크닉도 좋아해서 한강 공원도 정말 자주 가고요. 그런데 이 방송에 출연한 후로 그게 너무 힘들어요.”
이러한 고통들이 전혀 독특한, 나만 유별나서 느끼는 고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위안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까.
“마음 편하게 뭘 하고 있는데, 어디서 찰칵, 찰칵 그런 소리가 들려요. 그러다가 그 소리 들린 쪽을 보면 그 소리의 원인이 저를 찍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요.”
“아, 정말? 그 정도로 인기가 있단 말야? 레오가?”
“지금 연무 형처럼 정말 가볍게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 자체가. 한국 사람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제 모습을 찍고 있고 저한테 다가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해요. 저는 그런 행위 자체가 굉장히 무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그래? 그럼 그러지 말아달라고 하지 그랬어.”
“일단 연무 형 말처럼 처음엔 저도 거절했죠. 그런데 이미 그런 말을 꺼내기 전에 사진 같은 경우는 이미 수십 장씩 찍혀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한테 사진을 찍지 말라고, 지워달라고 하거나 사인 요청을 거절하면 그 사람 표정이 엄청 어두워져요. 마치 제가 잘못한 것처럼 분위기가 확 바뀌고요. 그래서 솔직히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어요. 이 방송 출연한 후로. 다른 패널 분들도 마찬가지일걸요?”
물론 이런다고 해서 나에 대한 말들이 안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 그래요? 그럼 혹시 패널 분들 중에 로스처럼 느낀다는 분 손 한번?”
“뭐야. 중국 빼고 전부야? 헐.”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내 걱정과 이런 내 고민들이 유독 유별난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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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르님 후원쿠폰 3 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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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하안님 후원쿠폰 2 장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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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지혜의 동생 두명의 이름을 열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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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 silbia실비아님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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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등 : 너의업을짊어져주마님 0.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