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0 2016 =========================================================================
#
[단독보도!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인 것일까? 자신이 가장 응원 받고 싶은 이로 가수 겸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월드스타 강지혁이 직접 손이나를 찾아와...... 최종예선 볼, 후프에서 역대 최고점을 기록하며 최종예선 성적 2위로 결선에 진출한......]
내 정체가 들켰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내 정체를 알았음에도 현장에서 아는 척을 하지 않은 기자의 배려 아닌 배려에 소름이 돋았다.
하아. 진짜 기자들이란.
어쩌면 내가 손이나의 리듬체조 퍼포먼스에 너무 넋이 나가서 못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중계되다시피 내 행적들이 중계가 되자 더욱 집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온전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집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없다는 게 슬프지만 사실이 되고 말았으니까.
아마 그래서 서울에 있는 잠실 타워집이나 본가보다 LA저택이 좀 더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가족들이 있는 서울 본가집이 더 좋을 때도 있지만, 그건 단지 가족들이 그곳에 있고 그곳에 나의 추억이 서려있기 때문이지 집 자체가 더 좋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지금처럼 마음껏 산책도 하고 산타모니카 해변이 훤히 보이는 전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LA저택은 어느새 타지가 아닌 ‘나의 집’이 되어있었다.
문제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들로 인해 산책이니 전망이니 구경할 새 없이 굴려지고 있다는 게 중요했지만.
“기본적인 체력은 아주 훌륭합니다.”
“크윽...”
“전체적인 체격 또한 훌륭해서 수련을 위한 체력단련에 큰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되겠군요.”
처음 봤을 때부터 자신이 받은 돈 값은 꼭 하겠다는 말을 건넬 때부터 알아봤다. 다짜고짜 짐을 풀기가 무섭게 수련장으로 준비한 공간에서 내 체력을 측정하려하자 질려버렸고.
그 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매주 수, 금은 칼리 아르니스를, 일요일은 절권도를 수련하겠다는 일정을 고지하자마자 난 60cm도 안 되는 스틱을 들고 올리시(Olish)라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하아. 망했다.
*
[이 주점에 들어서기 전부터 나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고 이렇게 분석하는 법을 알고 있는 지.]
유리잔에 가득 담긴 맥주를 손에 쥐어 잡으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자연스럽게 하지만 세밀하게.
[저기 저 바텐더. 체격은 제법이지만 주먹질은 잼병입니다. 굽어진 등, 한쪽이 올라간 어깨까지 전부 운동이랑은 벽을 쌓은 사람들의 특징이니까요.]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신중했고 또한 가벼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 내 자신은 그저 여느 때처럼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자 주점에 들른 흔해빠진 사람들 중 하나로 각인되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의도는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저기 저 작은 체형의 아시안. 겉으로 보기엔 주먹 한방으로 나가떨어질 것 같지만,]
[너 뭐해?]
[어?]
[너 뭐하냐고.]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있는 이로 인해서.
[간만에 밖에서 뭐라도 먹자해서 웬일인가 싶었더니, 뭐야, 그게. 혼자서?]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당초 이곳에 온 목적 자체가 얼마 전 받게 된 오디션 지원자용 샘플 대본의 숙지를 테스트함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녀석에게 설명도 해주기 전에 연기에 빠져버렸나 보다. 녀석이 저렇게 서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그래도 이내 나의 표정 속에 담긴 미안함을 눈치 챈 것인지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금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방금 전 서운함을 감춘것인지 털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열심히 하고 있나보네? 바깥외출이라면 끔찍해하는 사람이 이렇게 파파라치들 훤히 보라고 대로변 음식점까지 오고?]
[뭐, 내가 하고 싶으니까.]
오디션 지원자용 샘플 대본을 인편으로 건네받았을 때 너무나도 흥분하고 말았다. 내가 어째서 그동안 독립영화만 찍었던 감독의 첫 상업영화에, 그것도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 작품에 그다지도 강렬한 욕심이 생겼는지 절로 깨달았을 정도로 건네받은 짤막한 대본은 그 욕심에 충분히 부응해주었으니까.
[후회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 너무 기본적이고 간단한 상식인데. 너무 망설였나봐. 그래서 열심히 해보려고. 뭐, 그래서 요즘 죽을 맛이지만.]
그래서 뉴욕 콘서트, 마이애미 콘서트를 치루는 와중에도 칼리 아르니스, 절권도의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당초 내가 마음먹은 계획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 당초 계획이라는 게 콘서트 준비를 하면서도 최소 주 3회는 아르니스, 절권도 수련에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처음 뉴욕 콘서트를 하기 직전이 되자, 너무나도 빡센 일정에 슬쩍 계획을 고쳐볼까도 싶었는지라 그맘때쯤 건네받은 오디션용 샘플 대본이 아니었다면 그 계획은 높을 확률로 수정될 가능성이 컸을 것이기에 내 자신이 조금은 뿌듯했다.
물론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내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항시 역력했지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어제도 마이애미서 공연하고 왔잖아?]
[이제 LA공연 하나 남았는데 뭘.]
그래도 이제는 2주일 뒤에 있을 LA공연 하나만을 앞두고 있었는지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오랜만에 본 테일러 녀석이야 지금 당장의 내 상태만 보고 한껏 걱정스러운 눈빛을 건네고 있었지만.
그래서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너 진짜 뭐 안하냐?]
괜스레 녀석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이미 우리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들이 힐끔힐끔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는, 파파라치들은 연신 우리들을 향해 대놓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공개된 장소였으니까.
[뭘?]
[아니, 그냥.]
[뭐야, 내가 완전 바빴으면 좋겠다는 말투네?]
그런데 그 화제를 바꾸겠다는 의도가 꽤나 날카로운 녀석의 반응을 이끌어냈는지라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제 아무리 나와 테일러가 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다지만 이렇게나 공개된 장소에서 주변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킬만한 감정들을 들어내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자아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녀석의 눈 흘김을 자초하고 말았으니까.
[아니 너도 작년에 앨범 냈는데,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네 팬들도 네 음악 엄청 기다릴걸?]
그래서 변명 아닌 변명을 녀석에게 잽싸게 건네야만 했다.
[나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네가 밥 먹자고 해서 나온 거잖아.]
[뭐?]
[곡 줘.]
이내 들려온 녀석의 또 다른 목적에 할 말을 잃고 말았지만.
*
기분이 솔직히 나빴다. 다짜고짜 곡을 달라는 녀석의 행동이.
물론 테일러에게 곡을 주는 행위 자체는 싫지 않았다. 작곡가 입장에서 자신의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도 모자라 그 이상을 보여주는 가수는 최고의 음악 파트너였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태도였다. 곡을 달라는 태도.
그렇다고 해서 바짝 엎드려서 ‘곡 좀 주세요. 제발.’이라는 반응을 원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곡 좀 주면 안 돼?’라는 식으로 내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을 테니까.
하지만 다짜고짜 곡을 맡겨놓은 마냥 내게 곡을 요구하는 녀석의 행동은 꽤나 날 불쾌하게 만들었는지라 이런 걸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녀석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 또한 이런 것은 그때그때 해결하고 넘어가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을 모르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난 네 방에서 따로 먹고 싶은 게 있어서 밖에 나가기 싫었거든.]
뭔가 미묘한 어투로 또 다른 목적을 말하는 녀석의 눈빛도 눈빛이거니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묘한 뉘앙스가 내 머리를 하얗게 만들어버렸으니까.
[콜록 콜록]
[앨범 준비 때문에 이렇게 밖으로 나온 거지만. 어쨌든 책임져.]
[뭐, 뭘?]
[네 부탁대로 나와서 같이 밥 먹어줬으니까.]
지금 주변에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기에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다른 테이블에서는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태연하게 스테이크를 썰어먹으면서 나를 묘한 눈빛으로 슬쩍, 슬쩍 바라보는 녀석의 태도에 무너져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먹어도 되지? 네 방에서?]
[꿀꺽]
물론 내가 억제할 수 없는 신체적 반응은 막을 수가 없었지만.
*
정원 속 오두막에서 보이는 환상적인 경치를 나는 사랑했다. 마치 호수와도 같은 수영장과 더불어 저택 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곳 오두막이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켜주었으니까.
[하긴 나도 네 집이 좋아. 경치도 좋고 저기 정원도 좋고.]
물론 이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테일러 녀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렇다보니 녀석과 나는 정말 잘 맞았다. 물론 안 맞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음악과 관련된 얘기 지금과 같은 사소한 얘기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나갔으니까.
[그래도 난 네 서울집도 좋긴 하던데? 뭐, 거기서 계속 살라고 하면 못 살 것 같지만.]
뭐, 녀석은 하다못해 지금처럼 잠실 타워 집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고 말이다.
[그건 나도 뭐... 그래서 잘 안 가게 되더라고. 위치가 좋아서 그냥 잠만 자는 용도로 쓰고.]
잠실 타워 집은 머무른 일수만 따져 봐도 이곳 LA저택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익숙해질지언정 정이 들지 않았다. 왠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집보다는 차라리 호텔에서 머무는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는지라 그저 잠을 자는 곳, 음식을 시켜먹게 룸서비스를 시키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니까.
[서울에도 경치 좋은데 많은 거 아냐? 하나 사면되잖아.]
물론 녀석의 말마따나,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경치가 좋은 만한 곳은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뭐라고? 진짜?]
내가 원하는 정원이 넓은 집, 사생활이 완벽히 보장되는 집을 서울이나 수도권에 만들려면 일단 어마어마한 세금과 더불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감수해야만 했으니까. 이런 한국적인 특색에 대해 말해주자 녀석이 꽤나 놀라했는지라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비싸긴 하네? 음...]
내 돈을 내가 쓰겠다는 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씁쓸함을 그리고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통용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임을 녀석에게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이러한 세금과 더불어 관련 규제가 아예 악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법이든 관련된 취지와 목적이 있을 것이고 이는 나같이 미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할 수도 없는 넓고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만큼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기에 씁쓸함은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이어진 녀석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건네는 말에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쓸 만하지 않아? 돈 없어? 내가 사줄까?]
그래서 녀석에게 한국의 꿀밤 맛을 보여주게 되었다.
[너 여자한테 손찌검하는 남자였어?]
[이건 손찌검이 아니라, 네 정신교육해주는 거야. 돈을 그렇게 헤프게 쓰면 안 돼.]
뭐만하면 돈 자랑을 하는, 뭐 이렇게 말하니 나조차도 좀 전에 내게 씁쓸함을 안겨다주었던 짓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지만, 어쨌든 너무 돈을 헤프게 쓰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은 테일러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맛보여주던 꿀밤을 날리게 된 것이지만.
그런데 녀석은 꿀밤을 맞은 데를 쓰다듬으면서도 생각이 변하지 않은 듯 했다.
[난 이해가 안가. 그래도.]
[뭐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고 네 자신한테 투자하는 건데 왜 망설이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은 왜 너한테 그걸 간섭하는 거고?]
[응?]
그리고 녀석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와 방금 전 나의 모순된 행동,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을 똑같이 반복했던 그 행동 때문에 정작 내가 당황하고 말았고.
[가지고 있는 돈에 엄청 일부만 써도 집에서 산책도 할 수 있고 사생활 보호도 완벽히 되는 집을 살 수 있는데 왜 망설여? 탈세할거야? 아님 그 돈 불법으로 벌었나?]
[그건.]
뭔가 말릴 새도 없이 한국인으로서의 행동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는 나를 폭풍 지적하는 녀석에 의해 무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는 녀석이 내 말을 막았다기보다 그저,
[네 가치는 작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 쉴 때라도 편히 쉬어야하는 게 맞아. 그래서 수많은 스타들이 이곳에 비싼 돈 주고 사는 거고. 너도 그래서 여기에 집 지은 거 아니야? 정원도 그렇고 담장도 엄청 높게 해두고.]
[그렇지...]
[자기돈 벌어서 자기가 쓰겠다는 데 왜 그걸 다른 사람이 뭐라 하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정 그러면 내가 서울에 집 지을게 네가 월세 낼래? 싸게 해줄게.]
녀석의 말이 너무나도 나를 공감시켰고 옳은 소리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촌철살인이구나. 쩝.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추천, 선작, 코멘트 부탁드려요!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P.S 생각보다 수정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그래도 재미는 있는 것 같아요.
인물 설정집, 노래 설정집, 기타 설정집을 동시에 만들면서 하고 있는데 뭔가 새롭긴 하네요. 약간의 인물 이름, 노래 제목, 그리고 비중없는 설정의 교체(EX. 그룹 멤버수 변동)등을 하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설정집이 완료되면 이해하시는 데 지장은 없을 거라 믿고 싶어요. 쩝. 오늘은 20화까지는 기필코 수정을 완료하고 자야겠습니다.
모두 좋은 꿈꾸시고 굿밤!
[코멘트 퀴즈]
Q. 최유진은 주인공이 버스킹하던 당시부터 열렬한 팬이었고 강지혁 본인이 인정한 첫 팬인데요. 그렇다면 최유진이 주인공을 처음 만난 날 들었던 곡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최유진은 그때 주인공의 마지막 곡을 듣고 한곡만 하고 가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