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6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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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바로 그...]
[이번에 개인 소장용 겸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줄 용도로 100개 정도 따로 만들었거든요. 물론 왕자님이신만큼 턴테이블도 있고 하실 테지만, 세트인 만큼 여기 LP랑 턴테이블을 준비 했어요. 그동안 신경써주신 일도 많은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
이번 앨범의 부록 가운데 LP와 턴테이블은 내 개인적으로 소장할 요량으로 따로 100개 정도를 추가 주문했었기에 아레나 사업에서 여러모로 힘써준 왕자에게 고마움이라도 표현할 겸 한 세트를 선물로 가져왔다.
[오! 신이시여!]
[네? 왜, 왜 우세요. 저기 왕자님?]
다만 그 선물에 신까지 찾으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왕자의 모습에 일순간 당황하고 말았지만.
[이게 진정... 그... 그 LP와 턴테이블이란 말입니까? 전 세계에 딱 1천장만 있다는 그!]
[그게 딱 1천개는 아니고요. 제가 따로 100개 세트를 만들어서 1100개 정도...]
[이걸 구하려고 제가! 체면불구하고 수하들에게 시켜 추첨권을 사 모으고 있었는,]
[네, 네? 저기요? 저기 왕자님?]
틀려버렸다. 이미 저 왕자라는 사람은 턴테이블과 LP를 신주단지 모시듯 쓰다듬으며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었으니까.
[하무르! 하무르!]
아니, 저기요. 턴테이블이랑 LP 선물을 그렇게 소중히 여겨주는 건 너무 감사한데요. 그 표, 표범을 그렇게 내던지고 LP랑 턴테이블을, 저, 저기 쟤 지금 이빨 들이대려고 했는데! 조, 조심!
[예, 주군.]
[지금 이걸 당장 이 귀물을... 크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자네는 알겠지?]
[물론입니다. 주군. 명하신대로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완벽히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분명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었다. 저 표범의 이빨이, 선홍빛 핏물로 물들여져 있는 표범의 송곳니가 일순간 바깥으로 드러난 것을 그리고 이내 맹수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저기 경호원 분! 목숨을 거기다 걸지 마시고 여기다 걸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기 지금 표범이 나 노려 봤... 아니, 저 사람은 도대체 키울 것도 많은데 왜 저걸 키우는 거야. 도대체! 두바이 왕자면 낙타나 키울 것이지!
*
[인간이 만든 물건이란 것은 영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물건에 대해 제한적이게나마 영원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지요.]
[설마...?]
[방금 미스터 강이 제게 선물해준 물품은 제 혈족들 사이에서 영원히 보관될 것입니다. 그 첫 단계가 방금 저의 충직한 신하에게 명한 보존처리......]
괜히 이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부터 심기가 불편한 것인지 송곳니를 드러내는 표범부터 시작해서 단순 열혈 팬이 아닌듯한 왕자의 모습까지. 도대체가 이집에서 정상인 것은 나 하나뿐인 듯 했으니까.
[사막은 사막만의 정취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사막을 볼 수가 없어서 더욱요.]
그래서 말을 돌려야 했다. 더 이상 이와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하다가는 나까지도 이상해져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럼요. 해가 질 때의 사막을 찍은 사진들을 여럿 보았는데, 그때마다 뭔가 뭉클해져요. 흔히 산이나 바다에서 일몰사진을 볼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요. 뭔가 환경이 인간을 압도하는 공간이어서 그런지, 자연 앞에서 너무 초라해지는 기분도 들고요. 음... 말로 설명을 잘 못하겠네요. 그냥 음... 사막만의 분위기가 너무 강렬해서 오묘해요. 정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과장이 다분히 섞였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 말할 ‘시기’의 문제일 뿐, 지금 내가 있는 곳의 테라스에서 보이는 사막의 일몰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주시고 이런 멋진 풍경도 보여주셔서요. 왕자님 덕에 제가 이런 호강도 다 해보네요.]
그래서 새삼 고마움이 느껴졌는지라, 이를 표현하게 됐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상 삭막한 곳으로 여겨지는 사막에서 이런 아름다움과 나도 모를 벅찬 감성들을 느낄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우리 조상들은 사막을 터전으로 살아왔습니다. 비록 사막의 혹독한 기후를 몸으로 견뎌내는 고단한 삶이지만, 외부인들과 떨어져 사막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독특한 생활 방식은 ‘참을성’과 ‘육체적인 지구력’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만들었고 우리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눈앞 왕자의 무엇인가를 자극했나보다.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그 사람 좋은 웃음을 항상 내보이던 그가 일순간이나마 인상을 찌푸렸으니까.
[하지만 요즘 들어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왕가의 자제들마저도 이런 전통을 등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독한 기후로 인해 사막 천지이던, 솔직한 말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왕국의 땅들이 검은 보석들로 인해 더 이상 쓸모없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어진 왕자의 말과 더불어 그의 얼굴 표정을 보건대, 그는 안타까워보였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를 가지고 있는 그를 무엇이 이리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는 분명 불평불만을 내보이기보다, 안타까움을 드러내 자신 또한 인간임을 내게 알려줬으니까.
그래서 한동안 왕자와 나 사이엔 어떤 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그저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이맘 때 사막이 보여주는 감성과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
상황이 이렇다보니, 괜히 말을 꺼냈나싶었다. 올림픽 시즌을 앞둔 만큼 리우에서 열리는 올림픽 얘기를 꺼내도 됐을 텐데 말이다.
[그럼 왕국 음... 그러니까, 왕자님들뿐만 아니라 국민들 그리고 외국 사람들도 두바이 조상님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씁쓸해 보이는 왕자에게 위로랍시고 말 한 두 마디를 건네게 되었다. 어쨌든 이 얘기를 대충이라도 마무리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았으니까.
[예전처럼 사막에서 혹독한 기후를 맨몸으로 견뎌내는 것은 힘들겠지만, 이렇게 왕자님 집처럼 사막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사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을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조상님들의 마음을 알게 되지 않을 까요? 조상님들의 후예라는 의식도 생길 것이고요.]
이미 전통을 구닥다리, 사라져버려야 될 것들로 규정짓는 사회에서 살아왔는지라 나 또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를 정도로 두서없이 말했던 것 같다. 그저 평소에 내가 느꼈던 것들을 여기서는 이렇게 적용시키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빨리 이 대화 주제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되도 않는 상상력을 총동원했으니까.
그런데 정말 눈앞에 있는 사내 그러니까, 왕자라는 사람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뭐, 사막에서 일박이일? 이박삼일? 그 정도 지내면서 낙타도 타고...... 손님들이 오면 성대히 접대해줬다는 그... 왕자님 조상 분들이 그러셨다는 전통처럼 밤에는 그런 파티도 하고 하면서 사막의 정기? 호연지기? 음... 여튼 그런 걸 절로 느끼게 하면...]
내가 생각해도 진짜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인지라, 더 이상 얘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제가 너무 앞서,]
여기서 더 말하면 분위기 자체가 더욱 악화될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 종잡을 수 없는 왕자란 사람은 또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또다시 나를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정말이지 미스터 강은!]
[네, 네?]
[가진 바 재능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그, 그게 무슨...?]
[샤티르! 샤티르!]
뭔가 익숙한 광경이 또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예, 주군!]
[지금 미스터 강이 하는 말을 그대도 똑똑히 들었겠지?]
[그렇습니다. 주군.]
[이를 곧바로 왕가의...... 알리도록 하게. 구체적인 계획안은,]
[제 목숨을 다해서라도 이번 달 안으로 주군께서 관련 계획안을 받아보실 수 있도록 일러두겠습니다. 주군.]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괜히 해가 지는 사막의 감성에 취해, 쓸데없는 말을 내뱉어 일을 크게 벌인 것 같았으니까.
저기요. 저 그냥 한말인데, 이러시면 곤란한데. 아니 그리고 자꾸 이쪽 경호관들은 엄한데다가 목숨을 거시네. 그쪽이 목숨을 걸어야 할 곳은 거기가 아니라 저기 저 핏물 줄줄 흐르는 송곳니 자랑하는 표범이라고요! 하아. 미치겠네. 진짜.
*
[이거 안타깝군요. 제가 맡은 일이 보통 중차대한 일이 아닌지라...]
[하하... 어쩔 수 없죠. 하하...]
‘본격적인 북미 활동에 앞서 리우에 잠깐 들러 올림픽 구경도 하고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건네는 두바이 5왕자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내 자신의 스케줄 때문에 같이 이동하는 게 무산되어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지만.
[정말 저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 가시는 군요. LP와 턴테이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막과 관련된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이걸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아, 아니에요. 보답이라니요. 왕자님 덕에 이틀 동안 정말 편하게 쉴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어쨌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두바이 일정에서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보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으니,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제 전용기로 리우까지 데려다드리고 싶지만 그리 거절을 하시니...]
이미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두바이왕자의 보답이라는 것이 부디 내 상식선에서 그치길 바라는 것부터가 날 미치게 만들었지만.
아니, 거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네. 내가 무슨 조언을 해줬다고 저러는지. 누가 들으면 사막에다가 초특급 호텔이라도 만들어서 낙타타고 파티라도 하게끔 만들려는 줄 알겠네. 나 원 참.
*
8월 남미 공연 투어 때부터 느껴졌던 올림픽 축제의 열기가 완연히 꽃을 피운 듯 했다. 괜히 열정의 나라가 아니라는 듯 브라질의 거리 곳곳이 축제 그 자체였으니까.
뭐, 덕분에 변장이고 뭐고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는 듯 했다. 파나마모자와 더불어 마스크까지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이곳 축제의 장에서 결코 이상한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안 그래도 안 좋은 브라질의 치안 상태가 더욱 엉망이 되어버렸는지라, 자나 깨나 지갑조심을 해야 됐지만.
어쨌든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8시에 있을 개막식을 볼 생각이기에 서둘러 호텔에 풀어놓은 짐들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직 개막식까지 5시간 정도 남았지만, 딱히 8시에 맞춰서 입장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뭐라도 챙겨먹으며 리우데자네이루를 구경하고 싶었으니까.
[사실 저 또한 관련 티켓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만큼은 거절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못 쓸 티켓을 그저 양도해드리는 것뿐이니까요. 아! 물론 관련 절차는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스터 강께서 이용하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할 테니.]
그나저나, 표를 이렇게 많이 가져다주면 내가 이걸 다 볼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 그냥 개막식만 예매하고 나머지는 천천히 구미가 당기는 대로 현장에서 표를 구입하려했는데, 무슨 리우 올림픽 보러 간다니까, 표를 이렇게나 많이 주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무슨 그쪽처럼 왕족도 아니고 개막식 표가 2장이나 된 건 그렇다 쳐도 무슨 표란 표는 전부 나한테 준거야 뭐야.
하아. 이래서 말을 꺼내기가 무섭다. 무서워.
*
남미에서 공연을 할 때면 으레 자신의 속옷들을 무대로 던져버리는 여성 팬들의 열정을 모르지 않았는지라 되도록 정체를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모자를 조금 깊게 눌러쓴 채 도리어 당당하게 걸어 다녔다. ‘난 강지혁이 아닌 그냥 동양인일 뿐이다’와 같은 생각으로.
뭐, 결과적으로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주변 분위기였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어쨌든 길거리에서 파는 삶은 옥수수를 하나 사서 입에서 물고 뜯으며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멋들어진 해변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것도 여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해변에.
이게 바로 얻어걸린 다는 것일까. 무더운 날씨와 더불어 열정하나로는 세계 첫손가락으로 꼽힌다는 남미여서인지 두 눈이 절로 호강을 하게 되었다.
비키니조차도 덥다는 듯 훌렁훌렁 맨살을 태양빛에 드러내는 아름다운 이들부터 끝도 없이 펼쳐진 해변 가의 풍경까지 모두 내가 외국에 나와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으니까.
그래서 절로 해변 가의 파라솔에 의지한 채 한숨 자고 싶어졌다. 내가 딱히 준비한 건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인만큼 유료비치는 이곳에도 있을 것이고 나는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생각이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유료비치로 찾아가 생각 외로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고 파라솔 그늘 아래 선 베드에서 한숨을 막 자려고 할 바로 그때였다.
바로 옆자리가 꽤나 소란스러워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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