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1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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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랜만이네요.”
복잡하기 그지없는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달리, 이곳은 한적했고 또한 고요했다. 전혀 별개의 세상처럼.
단오 날에 먹는 술이 바로 창포주라고 했던가. 사진에 드러난, 분청사기라는 도자기에 담겨있는 노란 빛깔을 자랑하는 술에 절로 입맛이 돌았다.
그래서 해외일정을 마치고 하루가 지난 아침 내게 걸려온 전화에 망설이지 않고 광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덕에 아침은커녕 점심도 못 먹은 상태가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창포주 100병이 완성되었다고 내게 언제쯤 배송할 지를 물어봤는데, 다짜고짜 내가 직접 내려와 버렸다는 점에서 강신주가(姜信酒家)의 하나 뿐인 술 장인은 꽤나 놀란 듯 했다.
또 무슨 술을 담그고 있는지 연신 술독에 있는 무엇인가를 맛보고 있던 술 장인의 행동이 일순간 멈춰지고 말았으니까.
*
“창포주입니다. 도자기는 분청사기이고요.”
사진 속에서 보았던, 고려시대 때도 만들어먹었다는 창포주가 고려를 상징하는 도자기 분청사기에 가득 담겨있는 모습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물론 나는 흔히 말하는 주당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먹었던 감홍로와 김치전의 기억이 사뭇 강렬했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냥 넘어가기엔 아침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이곳까지 온 내 노력이 너무 아까웠으니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이 원하는 수준이 그러니까. 혹시 청자상감운학무늬매병이라고 아시는지...?”
갑작스런 내 방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내 창포주와 창포주가 담긴 분청사기에 대해서 설명하다 이름도 생소한 청자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눈앞 사내로 인해 정작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청자상감운학 뭐?
“아직 상감기술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고... 족히 수백 개는 깨먹었는데도 만족을 못하고 결국 모란꽃이 새겨진 분청사기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상감기술이니 청자상감운학이니 난생 처음 들어본 말들로 가득했는지라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내 반응이 눈앞의 ‘강신’이라는 사람에게는 딱히 상관이 없는 듯 했다. 애당초 내게 답을 듣고자 질문을 건넨 것이 아닌 듯 했으니까.
“아! 제가 너무 지엽적인 얘기만 꺼냈나보군요. 요즘 들어 녀석이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 하는 것 같아서... 그 저번에 지혁씨가 미국일정 때 감홍로를 홍보해주신 덕에 주문이 물밀 듯이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의 홍수에 휩쓸리는 것은 오래가질 않았다. 고맙게도 스스로 제정신을 차려준 덕에 그 대화라는 것에 내가 낄 수 있었으니까.
“그래요? 진짜 다행이네요.”
그렇게 이어진 사내의 말에 기분이 꽤나 좋아졌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지인과 업무상 관계자들에게 술 선물을 한 것뿐인데, 내 일을 도와준 이들까지 이로 인해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된다는 게 문제였지만.
“물론 그 중 대부분의 주문 요청은 거절해야했지만요.”
“네? 왜 그러셨어요?”
“술 하나를 일 년에 많이 빚어봤자, 지혁 씨를 제외한 손님들에게는 남는 술이 100병 남짓이라 많이는 팔지 못할 것 같습니다. 뭐 그 100병도 이미 주인이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
“아...”
일일이 손수 술을 빚는다는 점이 이런 점에서는 꽤나 안 좋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효과로 꽤나 많은 주문 요청을 받았음에도 홀로 만들 수 있는 술은 한정적이기에 사내 입장에선 이를 제대로 수익으로 대응시킬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사내의 표정은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도리어 제가 추구하던 쪽으로 일이 진행된 것 같으니까요.”
“네?”
모든 게 자신이 뜻하던 대로 흘러갔다고 말하는 사내의 말에 순간 반문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 병당 최소 100만 원 이상으로 판매할 예정입니다. 세계 유수의 술들 가운데서 제가 빚은 술과 녀석이 빚은 도자기가 그 정도 값어치는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물론 앞으로 저와 녀석의 실력이 한층 진일보 한다면 그보다 더한 값어치도 매길 겁니다.”
이어진 사내의 말에 절로 감탄했고 말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무척이나 자부심과 애착이 강한 사내가 바로 눈앞에 있는 강신이라는 남자였다. 그래서 이 남자를 애당초 선택했던 것이고.
그러다보니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다. 한 병당 최소 100만 원 이상으로 판매할 것이다 는 사내의 말과 더불어 그 정도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고 말하는 말까지 전부.
그래서 나 또한 가만있을 수 없었다.
“어? 그러면...”
지금 내가 감홍로 그리고 창포주를 비롯해 앞으로 받게 될 술들의 대금으로 지급한 돈이 사내가 말한 100만원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내 의도를 미루어 짐작한 것인지, 사내가 손사래를 치며 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지혁 씨에게 드린 것은 기존 가격대로 팔겠습니다. 물론 질과 양이 기존 것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최상의 것을 드릴 테니까요.”
내게는 최상품으로 이루어진 것들로 주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홍보해주신 답례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날 저녁. 당초 기대했던 김치전에 창포주를 마실 때 그리고 다음 날 아쉬움을 남겨두고 서울로 향할 때까지도 사내는 그 뜻을 끝까지 꺾으려 하지 않았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
[전통 술뿐만 아니라, 앞으로 저희 주가의 주력이 될 술을 개발 중입니다. 나중에 완성품이 되면 가장 먼저 지혁 씨에게 맛보여드리겠습니다.]
창포주 100 병을 집에 들여와 그 중 10여병을 삼촌들에게 돌렸다. 지난번 감홍로가 언론 및 인터넷 상에서 이슈가 되었을 때, 삼촌들이 꽤나 섭섭해 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삼촌들의 꽤나 큰 웃음들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6월부터 예약 받을 거고 7월 1일 발매. 이게 확정이야. 마음에 안 드는 거 없지?”
“어, 어? 응. 그렇게 해줘. 삼촌.”
눈앞에서 앨범 얘기를 건네고 있는 민재 삼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삼촌들과 달리 민재삼촌은 저번 감홍로 때도 이렇다 할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번에 창포주 한 병을 드렸을 때도 겉으로는 그다지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다른 삼촌들과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어도 민재 삼촌의 선홍빛 잇몸이 햇빛을 보는 빈도만 하더라도 삼촌의 마음이 어떤지 손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뭐, 지금이야 앨범 얘기 때문에 꽤나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네가 따로 말한 것들도 주문 넣어놨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이미 화보집이랑 포토카드도 이미 전부 준비된 상태고.”
어쨌든 꽤나 일찍부터 이번 앨범에 대해서 준비를 해왔는지라, 막상 발매일이 다가옴에도 그다지 바쁘지가 않았다. 이미 작년부터 준비가 끝난 화보집과 포토카드 건부터 내가 새롭게 부탁한 건에 대해서도 이미 마무리가 된 듯했으니까.
그래도 긴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 활동 시작하면 수아도 같이 몇 군데 정도는 다녔으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삼촌?”
“어?”
“수아도 같이,”
“걱정 말고. 그건. 어차피 수아는 이번 해 겨울에, 크리스랑 큰 수아는 가을에 앨범 발매할 예정이니까. 뭐, 어디까지나 예정인지라 미뤄질 수도 있지만.”
13년도 연말 이후 이렇게나 오래 걸릴지 몰랐던 그러니까 2년도 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발매될지 몰랐던 정규 4집인지라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에 대해 설렘과 호기심 그리고 두려움이 공존한 감정들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차곡차곡 준비를 한 만큼 자신 있게 일을 추진해나갔다.
“청음회 준비랑 음원 공개 준비는?”
“이미 그것도 완료. 뭐, WMC쪽에서 워낙...”
“아! 뭐, 그럼 됐고.”
정식 앨범 발매 일에 앞서, 긴 시간을 기다려준 팬들을 위한다는 명목의 청음 이벤트 그리고 관련 DVD 제작 같은 경우도 고작 한 달 전쯤에서야 내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아이디어였으니까.
“공지는 네가 올릴 거지? 앨범 발매 공지랑 청음 회 공지는?”
“응. 이번에 미국 갔다가 와서 공지 올리려고.”
그렇게 한참동안 이번 앨범과 관련된 얘기와 더불어 음악 관련된 얘기들을 민재 삼촌과 나누었다. 최근 1, 2년 동안 예전처럼 포이보스 휴게실에서 빈둥거리며 있지 못했을 뿐더러 4월, 5월 동안 배달의 후예 해외 행사 때문에 국내에 머물렀던 적이 거의 없었는지라, 아무래도 예전만큼 음악에 대한 얘기들을 나눌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라이브 카페는 어때? 반응은 괜찮아졌어?”
그러다보니, 예전에 잠깐 얘기를 나누었던 라이브 카페까지 대화의 주제가 옮겨져 버렸다.
“라이브 카페?”
“어, 그냥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그때 청와대에 훈장을 받으러 갔다 온 뒤, 심경의 변화가 생겨 민재 삼촌에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이와 관련된 얘기를 꺼냈던 적이 있었다. 예전 별자리, 탄생석처럼은 아니더라도 삼촌들이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에 한해서는 월세니 보증금 따위를 받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던 것 같다. 그때 그 날 이후로 라이브 카페가 어떻게 변했는지, 혹시 아직까지 기존의 라이브 카페들처럼 운영되고 있는지가.
“어? 뭐, 그렇지. 가격도 예전 수준으로 내려갔고 운영하는 것도 전이랑 똑같아져서 사람들 많이 오고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예전처럼 올 것 같다.”
“그럼 다행이네.”
이내 건네진 삼촌의 답변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버렸다.
“인터넷 블로그나 그런데서 많이 홍보를 하나봐. 예전 별자리 카페들 가운데서 그대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뭐, 그런 걸로.”
무엇이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처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운영된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라이브 카페가 됐다는 말과 더불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다는 삼촌의 말은 내 자신을 꽤나 기쁘게 만든 건 사실이었으니까.
*
“삼촌 짐 그렇게 안 싸가도 된다니까? LA공항에서 그냥 사. 뭐 하러 그렇게 챙겨.”
무슨 이사라도 가는 지, 다짜고짜 캐리어에 짐을 바리바리 싸고 있는 삼촌을 보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니, 해외 한두 번 가본 사람도 아니고 뉴욕에 멀쩡히 집까지 있는 사람이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그럼 그럴까?”
“작은 엄마는?”
그런 삼촌의 바보 같은 행동을 더 이상 봤다가는 내가 바보가 될 것 같아, 애써 신경을 돌려버렸다.
“어, 지금 애들 챙겨서 내려 올 거야. 어, 저기 온다.”
“작은 엄마. 형이랑 누나는요?”
“아! 태현이는 회사에서, 소담이는 일 보고 공항으로 바로 온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예쁜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나 또한 이제는 딱히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아 다 같이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제는 제법 회사 내에서 자리를 잡은 태현 형과 저번 달부터 본가에서 같이 살고 있는, 지금은 일 때문에 잠깐 나간 소담 누나까지 전부다.
“오오빠아. 옵빠아.”
“우리 사랑이, 소망이, 희망이. 오빠 왔다고 그렇게 웃는 거야? 오구오구 그렇지. 그렇지.”
“오빠는 무슨, 아빠 왔다고 그러는 거지. 사랑, 소망, 희망이. 아빠 해봐. 아빠.
“압빠아. 아바아.”
“그렇지. 그렇지. 아이구 똑똑해라.”
뭐, LA집이 완공된 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가족들을 데려가 본 적이 없다는 게 큰 몫을 하긴 했지만.
“LA 집은 이맘때면 엄청 더울 거 에요. 겨울에도 낮때면 따뜻한 곳이라 서요.”
“아, 그래요? 호호. 몰랐네요. 미국이라고는 우리 태현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번 가본 게 전부라. 그럼 애들 옷 갈아입혀야 될 것 같은데...”
“지혜야. 그냥 비행기 안에서 갈아입히면 되지. 뭘. 가벼운 옷들 하나씩만 싸와. 나머지는 미국 가서 사게.”
“그래요. 작은 엄마.”
어쨌든 너무 설렜다. 그동안 항상 가족 여행이라고 해봤자, 무뚝뚝한 삼촌 따라 제주도 별장을 가는 것 또는 삼촌이 해외 출장을 갈 때면 같이 곁다리로 따라 가는 것뿐이었는지라, 이다지도 대규모로, 그것도 떠들썩한 가족 여행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라 봐도 무방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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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에 후원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츰 차츰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인반선님 速瀨水月님 냐냥님 나의적은나님 [Demon]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보다 필력도 좋고 스토리 전개도 탄탄한 글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힘이 되어주셨는데, 그 기대에 제가 못 미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새두님 인신공격은 자제하세요. 독자님들 말대로 돈을 내신 만큼 비평 코멘트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돈을 얼마나 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인신공격은 하지마세요. 돈을 얼마나 냈든 인신공격 받으려고 글 쓰는 거 아닙니다. 뭐, 돈을 얼마나 제게 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제 글에 실망하셨다니 죄송하고요. 앞으로는 제 작품 코멘트 란에서 안 뵙는거죠? 그러면?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글 읽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