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59화 (259/502)

00259  2016  =========================================================================

#

이미 언론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놓여서일까. 아니면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던 가요계 최고의 아이돌 기획사가 쇠락해가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봐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주주총회 자리에 참석한 일부 주주들과 SD ENTERTAINMENT 소속 가수들 그리고 회사 관계자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두웠었다.

[기존 등기이사 이수재, 이지철, 김석현, ...... 등 8명의 등기이사와 한영선, 김해연, 이치현, 김보연...... 등 이상 4명의 비 등기이사 해임상정안이 찬성 57.2%, 반대 38.2%, 기권 및 무효 4.6%로 통과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미 코앞으로 다가온 재판 때문인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수재와 여타 등기, 비 등기 이사들의 해임 안이 꽤나 압도적인 찬성표로 통과되었을 때도,

[......과 김해연, 이치현, 김보연 등의 전 연예인 비 등기 이사들의 등기이사 선임이 찬성 72.8%, 반대 18.4%, 기권 및 무효 8.7%로 통과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새로운 등기이사로서 기존 비 등기 이사였던 연예인 이사들의 선임이 확정되었다는, 비교적 밝은 소식이 그들을 찾아왔을 때도,

[...... 기존 감사 해임건과 더불어 새로운 감사로 추현성 전 삼이회계법인...... 통과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의 선임이라는, 지금 당장은 이렇다 할 체감이 되지 않는 건이 통과되었을 때도.

어쨌거나 그나마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안대로 결과가 도출되자 딱히 그 후부터는 주주총회의 면면에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때부터는 관련 사안들을 검토하고 새로운 이사 선임 건에 대한 발언에 있어 전부 관리사님이 대신 나서주길 바라며 두 눈과 귀를 닫다시피 했으니까.

더욱이 이곳 주주총회 장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의 빈번함에 질려했을 진데, 그 후로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수많은 이들에게서 적대감 또는 두려움 또는 절망과 같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는 감정들을 건네받았으니 오죽할까.

하아. 모든 건 오늘부로 끝을 내겠다는, 더 이상 이일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생각만이 그때의 나를 구원해주었는지라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었다.

어찌된 일인지, 제 아무리 아이돌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이들일지라도, 새롭게 등기 이사라는,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는 실세 이사가 된 이들일지라도,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왔던 회사 관계자들도 이번 주주총회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지를 모르지 않아서인지 표정이 어두웠을 진데, 정작 이 일을 주도한 나도 표정을 밝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었으니까.

*

[내일 갈게. 나 오늘 작업할게 있어서. 어, 어. 걱정 말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작업 잠깐 하고 바로 잘 수 있어서 여기가 편한 것뿐이니까. 그래, 내일 저녁은 돼지 갈비 해줘. 맛있게. 응. 꼭 갈게. 어, 어.]

당초 관리사님과 같이 본가에 가기로 했던 일정을 취소한 채 잠실 타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에 삼촌과 작은 엄마 그리고 관리사님까지 내게 걱정스러움을 드러냈지만 이내 괜찮은 척 애써 그들의 걱정을 넘겨버렸다.

지금 당장은 위로를 받기보단 누군가에게 이 빌어먹을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으니까.

“뭐야, 불은 왜 이렇게 꺼놓고?”

“켜지 마.”

그래서 지금 당장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불렀다. 다짜고짜 자신을 부른 나로 인해 온갖 짜증을 부렸고 또 부릴 테지만, 공지연은 결국 내게 올 것이고 다짜고짜 자신에게 털어놓아버릴 내 감정의 찌꺼기들을 기꺼이 감내해줄 테니까.

“사랑 같은 거 진짜 못하겠다.”

고마웠다. 입고 온 가벼운 봄 외투를 벗기도 전에 자신의 무릎을 베개 삼아 다짜고짜 얼굴을 훔치는 내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감정의 파동을 느껴서인지, 그녀는 그 순간부터 내게 불만을 토해내는 것을 멈춰줬으니까.

“너무 사랑했었나봐. 솔직히 배신감보다는 서운함이 컸어. 어째서 그런 일이 있음에도 나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는지. 왜 단지 날 외면하고 버렸어야만 그 사태를 해결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물론 그녀는 이렇다 할 대꾸를 해준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이미 술에 취할 대로 취해버린 내 입에서 나는 술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내 스스로 그녀에게 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지금은 내가 털어놓는 찌꺼기들을 감내해주기만 해달라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복수랍시고 두꺼운 가면을 썼고 오늘까지 오게 됐어. 그런 서운함이 쌓여가고 그래서 배신감이 더욱 커지고 또 나 스스로를 애써 두드리고. 하아...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내가 망가진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내 자신을 원망하면서까지, 그냥 무시하면 수그러들 아픔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지 수없이 고민까지 하면서까지. 나 웃기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한심해. 진짜.”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를 정도로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감정을 털어놓아버렸다. 그녀에게 이렇다 할 상황 설명도 해주지 않은 채 그저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나를 끙끙 앓게 만들었던, 애써 가슴 한편으로 포장하고 또 포장했던 찌꺼기들만을 모아서.

“무대에서 너무 아름다웠어. 꿈에 대한 열정, 그 뒷면에 숨겨진 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아서 더욱.”

물론 그런 와중에 공지연은 지금 이런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가 궁금하긴 했다.

평상시 그 큰 눈으로 대게 그러듯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부랑자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눈빛을 보내듯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 이 미친놈이 술 먹고서 왜 자신에게 이런 술주정을 하는지와 같은 생각들을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을 지와 같은 생각이 주책없이 내 머리를 잠깐이나마 스쳐갔으니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했던가? 그것 때문이어서 일까? 솔직히 한 달에 많아야 2번. 서로 따뜻함을 느낄 때보다 외로움을 느낄 때가 더 많았어. 그래도 난 같이 함께한 추억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는데, 걔는 힘들었나봐. 그게.”

어쨌든 머리와 가슴 그리고 온 몸을 장악하다시피 한 감정들의 홍수 속에서도 공지연의 무릎과 허벅지를 잡은 손의 힘은 빼지 않았다. 이렇게 안하면 제 아무리 공지연일지라도 비루하기 그지없는 술주정뱅이의 이기적인 행동을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으니까.

“이게 연인들 간에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일은 아니란 걸 알아. 그래서 내가 후련해지지도 않는, 내 스스로가 아프기만 한... 이 복수 같지 않은 복수를 한답시고 남의 꿈을 짓밟아도 되는 걸까? 하아... 나 뭐래니... 병신.”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런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저 그대로 있어주었으니까. 그게 꽤나 촉촉하게 젖은 자신의 허벅지 때문인지 아니면 한없이 내가 불쌍해 보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진짜 호구에 병신 인가봐. 하하... 복수랍시고 아예 꿈을 박살 내버리려했어. 가수고 뭐고 날 버린 대가로 지켜냈던 것들 전부 파괴시켜가면서까지. 그런데, 마지막 가서 그러질 못했네. 내가 제안해놓고 다시 몇 주도 안돼서 다시 번복하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고. 하하... 그래놓고 남자새끼한테는 치졸하게 그대로 탈퇴시키라 하고. 하아... 진짜 병신. 호구새끼. 한심한 새끼. 난 진짜 구제불능이야. 너도 나 한심하다고 많이 생각하지? 알아. 하하...”

그렇게 술에 취해 두서없이 건넨 감정들임에도 어느새 마음의 응어리들이 조금씩 녹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지라 더욱 망설일 필요 없이 모든 응어리들을 녹여내 버리려 하였다.

“이젠 더 이상 신경 안 쓸 거야. 모르지 몇 년이 지나면 지나갈 때 마주치면 인사라도 나눌 수 있을지. 복수도 제대로 못한 호구새끼가 뭘 하겠어. 하아... 나 지금 뭐라냐? 나 진짜 한심하지? 그래도 좀 봐주라. 오늘만 너한테 투정 좀 할게. 불만거리나 구박할 거 있으면 내일 해. 실컷.”

그러다 두 눈이 너무나도 흐릿해지고 목이 텁텁해져 나도 모르게 잠들었을 때까지.

*

다짜고짜 자신을 불러낸 사내의 행동에 차마 그 고운 입에서 흘러나왔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욕을 한바탕 쏟아낸 공지현은 그 후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두컴컴한 거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강의 야경 불빛만이 그윽한 이곳에서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하더니 어느새 제 풀에 지쳐 잠들어버린 사내의 모습이 너무나도 여리고 약해보였으니까.

“하하...”

자신의 허벅지를 흥건히 젖게 만든 사내에게서 여리고 약하다는 단어를 떠올릴 줄은 몰랐는지라 그녀의 입에서 건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180이 훌쩍 넘는 키 그리고 떡 벌어진 어깨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보다 훨씬 큰 이 사내가 이다지도 흐트러진 모습을 한 채 잠들었다는 것을 그 누군가에게 알린다 한들 그 누가 이를 믿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참동안 눈물로 인해 젖어버린 사내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그녀는 생각했다. 소파에 누워 있는 사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안방에서 베개와 이불을 가져왔을 때까지 줄곧.

쌍꺼풀 없는 눈 하지만 뚜렷한 이목구비.

어째서일까.

지금 눈앞 사내와 자신의 관계가 비정상이어도 너무 비정상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그 관계가 자신에게 통용될 수 없음을 모르지 않을 진데, 지금의 관계를 어째서 자신이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지 그녀는 답을 도출해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생각해왔음에도.

[쪽]

평소라면 질색했을 술 냄새가 가득한 사내의 입에 그녀의 입이 어느새 마주 닿고 이내 그녀 또한 사내를 바라보던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었을 때까지 그녀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답을 내리지 않았다.

*

“왜 그러는 건데.”

“뭐가.”

“너 알고 있잖아.”

“뭘,”

멤버들 가운데서 유재연은 잔소리꾼으로 통했다. 남성다운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 팬들과 심지어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이상형으로 꼽히며 Trendy의 인기상승에 큰 몫을 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내면은 한없이 여렸고 또 여성스러웠으니까.

그래서 멤버들 또한 유재연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잔소리꾼일지라도 자신들을 엄마처럼 챙겨주는 이가 유재연이라는 걸, 겉은 세보일지언정 쉽게 상처를 받고 쉽게 눈물을 보이는 이가 유재연이라는 걸, 멤버들 모두가 이제는 모르지 않았으니까.

“나 아직 지혁 오빠 좋아해. 너도 알고 있잖아. 내 마음.”

그래서 유재연을 바라보는 지수의 마음 또한 편치 않았다. 여러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해 자신이 얻은 상처가 적지 않았음에도 재연은 오랜 연습생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그녀의 친구였으니까.

더군다나, 지금 자신의 앞에서 그동안 불문율로 여겨졌던 얘기를 털어놓는 유재연의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흥건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수는 마음을 단단히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런데?”

“뭐?”

자신의 앞에서 이제는 눈물을 흘리는 유재연의 모습에서 마음이 흔들렸으나, 자신 또한 소중한 무엇인가를 다시금 잃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너도 알고 있었잖아.”

“뭐?”

그런 자신의 행동에서 충격을 먹은 것인지, 말을 잇지 못하는 재연에게 지수가 그날 이후로 꺼내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놓아버렸다.

“그래서 너한테 오빠 처음으로, 내 ‘친한 친구’로 소개해주기전에 말했었어. 내가 오빠 좋아하는데 그 오빠가 지혁 오빠라고.”

“그건!”

“그런데 어느새 오빠는 사귀고 있더라. 다른 누구도 아닌 너랑.”

그저 혼자서 감내했던 고통들을,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친구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이를 빼앗아버렸다는 사실에 수많은 아픔들을 겪어야했다는 사실들을.

“그래서 너랑 오빠가 헤어질 때까지 기다렸어. 솔직히 헤어지길 바랐고.”

“너.”

“그리고 지금 넌 오빠의 과거가 됐지. 그것도 오래전.”

친구라는 이유로, 억울하고 서운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이에게 버림받을까봐 차마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친구의 말에 그저 웃으며 넘겨야했던 그때를 지수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왜 문제되는 건데? 오빠는 지금 여자 친구 없고 너 랑도 아무 사이 아니야. 그렇다면 너도 감내해야 되는 거 아냐? 내가 너와 오빠가 사귄다는 말 듣고 나서 수많은 날들을 버텼던 것처럼?”

그래서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는 과거와 달리 자신의 속내를 명확하게 건넸다. 더 이상 물러서지도, 양보하고 싶지도 않다는 자신의 의지로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친구로부터 비롯된 흔들림을 가라앉혀야만 했으니까.

============================ 작품 후기 ============================

비비vivi님 후원쿠폰 2 장 감사합니다.

하안숨님 후원쿠폰 2 장 감사합니다.

삐딱한침님 후원쿠폰 5 장 감사합니다.

레제노님 후원쿠폰 5 장 감사합니다.

날개피다님 후원쿠폰 2 장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편은 한숨자고 오전에 올리겠습니다. 좋은 꿈 꾸시고 굿밤되시길!

-ps : 오늘 편은 사실 너무 고민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하아... 쓰면서 계속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던 편이라서요. 아무래도 이번편이 조금 어두운 편이고 또 하나의 사건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또다른 사안들을 떠오르게 해야되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독자분들 입장에서 지혁의 호구스러움이 참으로 보기싫어하신다는 거 알지만...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지혁은 저런 놈인 것 같아요. 하아... 그래도 1년 넘게 모은 감정의 찌꺼기를 어느 정도 털어낸 듯 해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자신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신경쓸 만한 일이 사라졌을 테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