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5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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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기다리라는 코난의 말에 음식을 집으러 가지도 그렇다고 코난을 따라가지도 못한 채 그저 어정쩡하게 의자에 앉아있을 그때였다. 정작 나를 소개해달라고 했다던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익숙한 향기를 가진 이가 내게 안기듯 다가온 것은.
[치... 너무해. 너 진짜 나쁜 남자야. 이런 면에선 보통 남자들이랑 똑같네?]
이곳이 미국 그러니까, 젊은 남녀 간의 우정이나 서로간의 간단한 스킨십이 반가움의 표시로 꽤나 자연스러운 곳이라지만 녀석이 갑작스레 다가와 안기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나마 가벼운 포옹으로 포장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미국에 왔으면서 나한테 왜 연락 안했어? 난 네가 나를 미국에 온 첫날 당연히 부를 줄 알았는데.]
어쨌든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게 꽤나 오랜만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서운함이 많은 듯 짐짓 내게 투정하듯 불만을 토해내는 테일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정이 무엇 때문에 이뤄지게 된 것인지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열심히 촬영을 하다 지금은 한쪽 구석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HOME ALONE 제작진들이 미국에 온 후로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는 것까지.
[뭐야, 그런 거였어? 뭐, 그런 거라면 이해해줄게. 그나저나 더 멋있어졌네? 잡아먹고 싶을 정도로?]
다행히 테일러는 그런 내 말에 수긍한 듯 했다. 서운하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던 얼굴이 어느새 환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고 또한 내 옆자리를 본인의 자리마냥 자연스럽게 차지했으니까.
[그런데 방금 전 코난이 들고 있던 거 뭐야? 엄청 예뻐 보이던데.]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녀석이 나를 지켜보고 있던 게 꽤나 오래전이었다는 걸, 정확히 말하면 이곳에 들어설 때부터였다는 걸 알게 됐다. 더불어 카메라를 들고 있는 3명의 낯선 이들 때문에 내게 다가오질 못했다는 것까지.
[왜 나는 안 줘?]
그나저나, 녀석이 감홍로가 담긴 조선백자를 봐서인지 꽤나 투정 섞인 말로 내게 조르기 시작했는지라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봐서인지 평소 녀석 답지 않은 모습들이 행동과 말에서 종종 느껴졌으니까.
[오늘 네 집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가겠네? 그럼? 아 짜증나.]
어쨌든 그런 녀석의 모습이 까다롭다기보다는 그저 귀여운 여동생 같았는지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180cm가까이 되는 이런 거구와 여동생은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다 생각하며 웃음까지 나왔으니까.
[미국에는 언제까지 있을 건데?]
그런데 녀석과 대화를 나누다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것에 녀석이 꽤나 예민한 듯 해 기울이던 와인 잔을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뭐? 4일 뒤면 한국 간다고? 조금 더 있다가도 되지 않아? 드라마? 그거 작년에 촬영했다고 하지 않았어?]
녀석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제대로 같이 시간을 보내지도 않은 채 다시금 한국으로 가야한다는 말이 서운하게 다가왔을 테니까.
하지만 녀석의 그런 말에도 귀국일정을 늦출 수 없었는지라, 미안한 기색을 내보였을지언정 한번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주주총회가 있어서. 그때 꼭 참석해야 될 일이 있어서 그래.]
녀석과 있는 시간이 꽤나 즐겁다는 감정은 별개로 둔다 해도, 주변시선 신경 쓸 필요 없이 미국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게 있어 정말 좋은 휴식이었지만 이번 주주총회는 무조건 참석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럼 나도 따라갈까? 한국으로?]
다만, 녀석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것은 사실이지만.
[뭐, 저번에 한국 구경하긴 했는데 제대로 구경 못했잖아. 너무 일정이 짧아서. 나 이번엔 휴식기도 길고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물론 녀석이 요즘 휴식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최근 발매했던 앨범이 대박을 쳐 월드 투어가 성황리에 마무리될 수 있었고 또한 그동안 각종 시상식들에서 주인공 역할까지 해야 했었는지라 지금 휴식이 꽤나 길게 계획되어 있다는 것도.
[덕분에 그래미에서 상을 몇 개나 탔는데, 내가 보답을 해줘야지. 이렇게 미인이랑 같이 다닐 수 있는? 그리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따라 한국에 가겠다는 녀석의 말에 마냥 수긍할 수가 없었다. 이번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고 또한 배달의 후예의 인기에 힘입어 상반기 내내 해외 스케줄이 가득 잡혀있음을 모르지 않았는지라 녀석을 제대로 챙겨줄 수 없을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아름다운 내가 밤에 널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어때? 끌리지 않아?]
물론 녀석의 마지막 말은 그런 내 마음을 무척이나 흔들어댔지만.
[지혁! 인사하게. 여기는 요즘 독립영화계에서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는 감독 다이그 리넨만이라네. 이 사람이 자네 노래의 열혈 팬이라 어찌나 소개해달라고 조르던지!]
때마침 들려온 코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녀석을 데리고 침대로 갈 뻔했다. 붉은 입술과 더불어 매끈한 다리와 볼륨감이 돋보이는 드레스 차림의 녀석은 남자를 미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
[안녕하십니까. 다이그 리넨만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강지혁입니다.]
코난이 이 파티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 원망스러웠다. 아니, 소개시켜주겠다고 사람을 데려왔으면 끝까지 마무리를 하고 가야지, 그냥 사람만 달랑 데려와서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나, 원 참.
[평소 팬이었는데,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영광이군요. 그리고 옆에 계시는 아름다운 레이디까지 볼 수 있어서 더욱 그렇고요.]
[어머. 별말씀을. 그나저나 제가 더 영광이에요. 요즘 한창 독립영화계서 유명하시다고 들었어요. 저번에......]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옆에 테일러가 있어 어색한 이 분위기를 나름 희석시켜줬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유명한 가수가 되어 세계적인 스타가 된 테일러는 이런 자리가 매우 익숙한 만큼 인맥 또한 화려했는지라,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든든했으니까.
뭐, 결과적으로 나도 내 노래의 열혈 팬이라는 눈앞 사내가 생각 외로 정중하고 또 유쾌했는지라 어느새 이 자리가 조금은 편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요즘 근황에 대해 말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보니 아시아지역을 제외하고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내 자신의 배우 생활 또한 자연스럽게 언급하게 되어버렸다.
[아! 연기까지 한단 말입니까? 그럴 수가! 가수로서의 재능도 악마 같을 진데! 연기까지!]
[네? 악마라니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음... 그리고 테일러 말대로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미국이나 남미, 유럽 쪽에서는 제가 연기도 하고 있다는 걸 대부분 모르시지만요.]
역시나 영화감독이어서 일까. 나의 노래에 담겨있는 풍부한 감성에 빠져 팬이 되었다는 그가 방금 전과는 또 다른 반응으로 놀람을 표현했는지라 뿌듯했고 또한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왠지 모르게 내 자랑만 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곳에 내 자랑만 하는 이는 나뿐만이 아닌 듯 했다.
[호오... 그렇다면 주로 어떤,]
[지혁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배우에요. 지금 한국 그리고 어디였지?]
[어, 어?]
[동시 방영한 데 있잖아. 어디야.]
[하,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정작 나보다 앞서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하는 테일러의 모습에 눈앞 감독만큼이나 놀라고 말았다. 아니, 저 자식이 휴식기라고 하더니, 내 드라마까지 챙겨보고 있었나? 뭐가 저렇게 구체적이야? 사람 민망하게.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질문 아닌 질문에 답하고 나자 얼떨떨하기 그지없었다.
[맞아. 그래. 지혁은 거기 5개국에서 동시에 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드라마의 주연이에요. 그게 지금 아시아에서 얼마나 인기인데요? 아주 난리에요. 난리!]
[그게 정말입니까? 미스터 강?]
[아, 네... 뭐.]
일단은 눈앞 감독의 확인 질문에 입을 열어야 했지만.
그나저나, 저 녀석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시아에서만큼은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배우라는 점을 자랑해주는 것까진 좋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어머! 지혁! 네 드라마가 3천만 달러나 팔았어? 우와! 드라마 한편에 3천만 달러면... 대박이야!]
[실례지만 지금 방영되고 있다는 그 드라마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드라마 제목을 알려주신다면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간단한 Teaser영상쯤은 있을 테니까요.]
마치 눈앞 감독에게 나를 어필하려는 듯 계속해서 관련 화제들을 던지기 시작했으니까.
*
내게 윙크를 하며 빨리 예고영상을 보여주라는 테일러의 행동에서 무엇인가를 느꼈는지라,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관련 영상을 감독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영문을 모를 테일러의 행동에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어쨌든 유명한 영화감독에게 내 연기를 평가받을 기회는 쉽게 올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연기를 평가받기엔 예고편이 꽤나 짧아 과연 평가나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액션이 상당히 많군요. 예고편의 반이 액션이라니. 이건 한국군의 군복입니까? 그렇다면 미스터 강이 맡은 역할은 군인입니까?]
그런데 1분 남짓한 예고편을 본 영화감독의 표정이 꽤나 진지해졌고 이내 관련 질문들이 내게 건네졌는지라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그저 간단한 평가라도 받았으면 좋겠다싶어 건넨 예고편 영상인데 생각 외로 적극적인 태도로 이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으니까.
[군에 있을 때 최전방 수색대에 있었습니다. 그때 관련 무술을 배웠었고 드라마 찍기 전 액션 스쿨을 다니면서 관련 동작들을 드라마에 맞게 교정했고요.]
[오호... 세계적인 가수가 군인이었다니. 아! 듣긴 들었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군대를 간다고요. 호오...]
그러다보니, 뭔가 그림이 그려졌다.
[지금까지 10여 년간 독립영화에서 일해 왔습니다만, 이번에 좋은 투자처와 각본을 얻어 상업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독립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활약했던 그가 이번에 상업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그림의 세밀한 부분이 완성되었고 테일러의 이해 못할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니까.
테일러는 아마 이런 사실들을 주변 인맥들을 통해 알고 있던 듯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쪽으로 얘기를 이끌어내 저 감독에게 내가 배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고.
[기억을 잃은 전직 스파이가 자신을 죽이려드는 수많은 이들의 위협에...... 스스로 기억을 되찾아가는 그런 스토리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테일러 녀석에 대한 고마움이 매우 커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내게 도움이 돼주려고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전적으로 녀석의 공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번 상업영화의 간략한 스토리를 말해주는 눈앞 감독의 말이 배우인 나의 욕심을 자극하기에 매우 훌륭한 내용이었으니 오죽할까.
[관심 있다면 오디션을 한번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본디 주인공이 CIA소속인지라 백인, 흑인 배우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피부색이야 중요하지 않다는 게 감독인 제 입장이니까요.]
[예? 제가요?]
그래서 놀라고 말았다. 내게 오디션을 보지 않겠냐고 말한 눈앞 감독의 제안이.
[물론 오디션을 통해서 연기력을 증명하셔야지 만이, 뭐, 이런 말 제 자랑 같아 조금 그렇지만 내로라하는 수많은 배우들이 이미 오디션 참가 의사를 밝힌 만큼 합격하기 어려우시겠지만요.]
물론 지금까지 작가의 직접 선택에 의해 배역을 따내왔기에, 오디션으로 드라마 배역을 따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감독의 말이 일종의 열혈 팬으로서 내게 예의상 건네 본 말일지도 몰랐다.
[뭐, 영어 대사쯤이야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걱정은 없겠군요. 어찌됐든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번 해 말에 있을 오디션에 꼭 참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영화는 제 첫 상업영화이지만 자신 있기로는 가장 자신 있는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이를 감안하고서라도 마음이 절로 들끓었다. 전 세계에서 연기력하나로 먹고사는 이들이 모두 모인다는 이곳 할리우드에서 감독이 직접 오디션을 제의해준다는 점은 내게 있어, 아니 배우로서 마음속에 담긴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한 자극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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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팅oi님 후원쿠폰 30 장 감사합니다.
하안숨님 후원쿠폰 2 장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오늘 오전중으로 올리겠습니다. 몸이 안좋아서 토하고 난리여서 기력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몸 조리 좀 하고 오전 중으로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해요.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시고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