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53화 (253/502)

00253  2016  =========================================================================

#

“무슨 이유 때문에 불렀는지 짐작은 할 거야.”

회의실 한 가운데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앉아있는 VOA의 앞으로 두 명의 남녀가 나란히 자리에 착석했다.

자신들을 부른 이가 VOA라는 것에 희망을 걸었던 것일까. 자신이 상해에서 슬희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을 때, 회사 차원에서 뒷수습을 하게 되었을 때 이사진들의 지시에 일선에서 자신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았던 VOA의 부름에 김영진의 얼굴은 밝았었다.

이내 들려온 VOA의 잠겨버린 듯한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미안하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굳이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던 VOA의 말에 김영진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지금의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이내 그 미안하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털어놓는 듯한 VOA의 덤덤한 목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려와버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Twinkle은 재계약을 하지 못할 것 같아. 그리고 서포트도.”

“그게 무슨...”

어쨌든 이 방에 들어서긴 전부터 말이 없는 슬희를 대신해 영진은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들려서는 안 될 말이 들려버렸으니까.

“물론 2년은 짧은 기간이 아니야. 하지만... 그 기간 동안 회사는 Twinkle을 서포트하지 못하게 됐어. 음반 제작, 안무 창작부터,”

“무슨 소리에요. 지금. 고작 정규 앨범 하나 1위 못했다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그동안 내는 앨범마다 1위했잖아요. 그리고 그 정규 앨범도 1위를 못했다 뿐이지, 그동안 낸 앨범들 중에서 최고로 많이 팔아,”

“그래도, 그래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걸 그룹 평균 수명 7년. 그것도 잘나가는 걸 그룹의 수명이 7년이다.

그래서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VOA의 말은 그다지 충격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다만, 그 시기와 일체의 서포트도 해주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을 뿐.

그래서 김영진의 얼굴은 붉어져만 갔다.

한창 잘나가고 있는 걸 그룹에게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서 일체의 서포트가 없을 것이라고, 그 후 재계약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회사 사정 상,”

“그 자식이 그러던가요? 슬희 아니, Twinkle 재계약 하지 말라고? 앞으로 회사 차원에서 음반 활동이든 뭐든 서포트해주지 말라고?”

그래서였을까. 회사가 자신을 버리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버린 김영진의 분노 아닌 분노가 VOA와 이 사태를 만든 이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작, 지금 이 순간 가장 동요하고 분노해야 할 슬희는 이렇다 할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영진아 진정하고 누나 말,”

“그럼 뭐, 저는 탈퇴라도 하랍니까? 그래요?”

“그래.”

더군다나, 설상가상으로 자신에 대한 처분까지 이미 결정된 듯 덤덤히 이를 내뱉는 VOA의 행동이 이어졌으니 오죽할까.

“예? 하아...”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흥분에 겨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김영진이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껏 가수라는 꿈을 위해 살아왔다 봐도 무방할 그녀와 자신에게, 이러한 조치가 의미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했으니까. 자신들은 이 회사에 얽매여있는 동안 일체의 가수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이는 걸 그룹으로 한창 전성기 때를 맞이하고 있는 슬희에게는 일종의 사형선고와도 같을 테니까. 무엇보다 자신과 슬희는 회사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분명해보였으니까.

“회사는 너희들을 위해서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너희들이 상해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 때도, 그 후로도.”

이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모델, 연기 활동과 더불어 솔로 가수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큰 자신과는 달리 노래 또한 곧 잘하지만 어디까지나 댄스에 주를 두고 있는 슬희에게 있어 이다지도 가혹한, 가수인생의 사형선고가 내려질 줄은.

“이제는 너희들이 회사를 위해서 나서줘야 된다고 생각해. 너희들의 사랑, 꿈만큼이나 연습생들의 꿈 그리고 너희들 선배 가수들의 꿈 또한 중요하니까.”

그렇게 회사 입장에서 자신들이 이제는 버리는 패가 되어버렸다는, 자신들의 저울추 반대편이 너무나도 무거워져버렸다는 VOA의 말에 김영진은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몰랐다. 자신의 옆에서 그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눈이 초점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

“다음 주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영진이 같은 경우는 보도가 나갈 거야. 드라마 촬영 후 곧바로 입대를 예정에 두고 있어서 네가 불가피하게 IP에서 임의 탈퇴하겠다고.”

자신에 대한 관련 보도와 이미 그 시기까지 결정되었다는 점은 제 아무리 대세 보이 그룹의 리더라 할지라도 결코 간과할 수 없었기에 김영진 또한 차마 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그 어떤 수로도 회사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해버렸으니까.

“슬희는... 하아. Twinkle 멤버들에게는 언니가 말 할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숙소 말고 집에 가서 쉬도록 해. 직접적인 서포트를 해주지 못하지만, 스스로가 음악활동을 하는 것까지는 그 자식도 어쩌지 못할 테니까.”

“그게 말이 돼요? 어떻게 이래요? 어떻게! 우리 IP에 Twinkle이에요! 요즘 대세! 그런데 회사에서 그렇게 대응한다고요? 이거 이사회에서 알게 되면!”

하지만 이내 들려온 VOA의 잔인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김영진은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돌 가수가 스스로 알아서 음악 활동을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말을 위로랍시고 건네는 VOA의 말이 그에게는 위선 그 자체로 다가왔으니까.

남자 아이돌 그룹도 아닌 걸 그룹에게, 의상비만 해도 한 번의 음악 방송 때마다 최소 500만원씩은 써야 될 뿐더러 각종 안무와 메이크업, 헤어 관리 비용만 해도 상상을 초월 할 걸 그룹에게 모든 걸 스스로 해라는 말은 너무나도 잔인한 기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너무나도 충격을 먹어서인지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슬희의 모습까지 눈에서 떠나질 않았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VOA의 위선에 반발했던 그 조차도 이내 들려온 VOA의 말에 기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존속.”

“뭐라고요?”

“그거야. 강지혁이 저울 반대편에 달아놓은 추가.”

오늘 그들이 어째서 회사에게 버림받게 되었는지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언급한 VOA의 말이,

“이미 기존의 이사회는 기능을 잃었어. 이번 정기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이사들은 모조리 물갈이 될 거고 새롭게 선임된 이사들은 너희들의 처분여부에 따라 결정되겠지. 월급만 쳐 먹고 회사를 더욱 수렁으로 몰 이사들이 선임될지, 아니면 현상 유지라도 가능할 이사들이 선임될지.”

다시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잔인하게 깨닫게 했을 뿐더러,

“달리 생각해. 모두가 가는 군대야. 그리고 모든 아이돌이 그렇듯 7년 이상 장수하는 아이돌은 거의 없어. 지금 당장은 가혹하다 생각하겠지만 별반 다를 것 없어. 영진 너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빨리 군대에 가는 것이고 슬희 너는 다른 아이돌들처럼 그저 가는 것뿐이야. 다만 그 길이 너무 짧고 고될 뿐.”

그들을 보호해주던 저울추가 이제는 자신을 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절실히 와 닿게 만들어버렸으니까.

*

“홍보대사에 노래요?”

“그래요. 저 뿐만 아니라, 고양시민 모두 지혁 씨가 홍보대사가 되길 원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괜찮은 구내식당 메뉴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다짜고짜 본론을 꺼내는 고양시장의 말에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물론 예상은 했다. 홍보대사 건에 대해서 직접적인 제안을 건네리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홍보대사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건넬 줄은 몰랐는지라 그 순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식사 중에 건넨 말치고는 꽤나 무겁고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전임시장의 탁상행정에 한류월드에 수천억에 가까운 시 예산이 쏟아 부어져 있는 상태에서 임기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암담했죠. 막상 제가 공약으로 걸었던 것들보다는, 전임시장 똥부터 치워야 될 판이었으니까. 뭐, 문제는 그 똥이 너무 커서 도저히 치울 엄두가 안 났다는 거지만.”

하지만 고작 사십대에 시장이라는, 여성 최초로 시장의 자리에 선임된 사람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제안 자체가 거북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지금 내가 고양시에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지 않았을 뿐더러,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시장의 모습이 꽤나 멋있어보였으니까.

“그때 지혁 씨가 아레나 사업에 투자를 해줘서 시 뿐만 아니라 경기도가 살 수 있었어요. 지금에 와서는 아시아 최고의 테마파크를 꿈꾸게 됐고요.”

“그건 그냥...”

“두바이 몰의 Time To Say Goodbye 지혁 씨가 두바이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작사, 작곡 해준 것 알고 있어요. 그래서 부탁드려요. 고양시의 홍보대사 뿐만 아니라, 한류월드를 위해서, 아레나를 위해서 홍보 노래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다만, 그 제안이라는 게 홍보 노래를 언급하는 수준까지 이어졌는지라 꽤나 당혹스러웠다. 고양시를 주제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기엔, 이 지역에 별다른 연고도 없었을 뿐더러 두바이의 경우와 같이 이렇다 할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만큼의 보수를 드리진 못해요. 저는 왕족도 아닐뿐더러, 2천억과 15억불짜리 공사를

조건으로 내걸 만큼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니어서요. 제가 이곳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결코 지혁 씨의 노래를 푼돈으로 살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구내식당에서 공무원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으면서까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이해영이라는 사람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는지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의 의견을 고루 수렴해 지혁 씨의 노래에 맞는 보수를 지급할 생각이에요.”

비록 보수의 문제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지만 내게도 충분히 이득이 될 만한 제안을 건네는 이해영 시장의 말이 가진 진정성에 나 또한 끌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

“편하게 들어오세요.”

날씨 문제가 해결되고 LA일정을 행함에 있어 장애물이 사라진 덕에 HOME ALONE 제작진들을 대동한 채 LA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해영 시장과의 얘기와 SD에 대한 후속대처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했는지라, 이런 일정 자체가 내게 큰 힘이 되었는지라 제작진들을 물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계약상 미국일정을 함께하기로 했기에 애써 감내하기로 했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방송에 소모하기로.

“그, 그게... 저...”

“네?”

“여기가 지혁 씨 집 그러니까, LA 집입니까? 그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던...”

“네, 맞아요. 저도 꽤 오랜만에 오지만 그래도 제 집이죠. 이곳이.”

어쨌든 꽤나 오랜만에 와서일까. 나 스스로도 조금 어색할 집이었기에, 저택의 위용에 감탄한 나머지 쉽사리 발을 내딛지 못하는 제작진들의 마음이 얼추 이해가 되었다. 정작 집주인도 어색할 이 거대한 저택이 손님인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존! 오랜만이에요.]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분들이 한국에서 같이 오셨다는 촬영 팀인가 보군요.]

[네, 맞아요. 클라라랑 마이클도 잘 있죠?]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집사 존과 인사를 나누며 집을 슬쩍 둘러보니, 꽤나 잘 관리된 정원, 먼지 하나 없는 집안 구석구석을 확인할 수 있었는지라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입니다. 클라라는 지금 미스터 강과 초대 손님들을 위한 저녁을 만드느라 꽤나 바빠 이곳까지 오지 못했습니다. 물론 마이클은 입구 경비초소에서 보셨다시피 경비중이라 마찬가지고요.]

[여기 촬영 팀 방 좀 안내해주실래요? 전 클라라한테 인사 좀 하러 가볼게요.]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존이랑 클라라 그리고 마이클한테 줄 선물이 있으니까 기대해요. 진짜 귀한 거니까요?]

[오호! 이거 참 저를 애타게 만드시군요. 얼른 손님들을 안내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하하.]

꽤나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존과 마이클 그리고 이제 인사를 하게 될 클라라까지, 가장 힘들었던 때 나의 안식처가 되어준 이곳 LA저택에 비로소 내가 왔구나를 실감하며 아직도 저택 입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제작진들에게로 다가갔다.

“여기 존 따라가시면 촬영하는 동안 묵으실 곳 안내받으실 수 있을 거 에요.”

“아, 아! 예, 알겠습니다.”

“자! 지혁 씨 말 들었지! 각자 짐 챙기고 잘들 따라와!”

일단 저택에 초대한 만큼 그들을 챙겨줄 의무 아닌 의무가 있는 게 당연했으니까.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조종호와사 후원쿠폰 32 장 감사합니다.

하안숨 후원쿠폰 2 장 감사합니다.

비비vivi 후원쿠폰 1 장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