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7 2016 =========================================================================
#
“지수 일어났어?”
“어, 어? 응... 오빠.”
신나게 수영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서인지, 늦잠을 자는 지수를 일부러 깨우지 않았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실컷 풀고 원기를 얻어 또 다른 출발을 위한 힘을 얻어가길 바랐으니까.
“밥 시켜놓을 테니까. 밥 먹어. 알겠지?”
“오빠는?”
“오빠는 오늘 스케줄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 될 것 같은데, 어떡하지?”
하지만 시간이 오전 10시가 넘어가자, 마냥 그럴 수가 없었다. 늦잠도 좋지만 아침을 거르는 것은 안 좋다 생각했을 뿐더러, 나도 오늘 점심 약속 때문에 집을 나서야 했으니까.
“다른 멤버들 불러서 놀고 싶으면 그래도 되니까, 편히 쉬다가 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거실에 있는 책자보고 인터폰으로 주문시키면 되고. 알겠지?”
그렇게 어제 입었던 수영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검은색 속옷이 훤히 비치는 파자마를 입고 있는 지수를 억지로라도 깨워 소파로 끌다시피 데려왔다. 같이 아침을 먹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러질 못할 테니까.
“응, 오빠.”
“그럼 다음에 보자. 우리 동생.”
그나저나, 우리 지수 다 컸네. 다 컸어. 그런데 아무리 오빠라지만, 오빠 앞에서 그런 비키니에 그런 속옷 다비치는 파자마는 너무 하지 않았니? 뭐, 그렇다고 다른 어중이떠중이한테 보여주란 말은 아니었지만. 하아. 진짜 어떤 새끼인지 걸리기만 걸려라. 전생에 나라 구한 새끼.
*
[가, 강세진이야. 대박.]
[헐, 어디어디? 헐, 대박! 미쳤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석현 형의 운전 하에, 강남의 어느 한 카페에 도착했다. 뭐, 강남이라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아니,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주변에 서둘러 발걸음을 놀려야 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나를 보며 강지혁이 아닌 강세진이라 칭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그만큼 우리 드라마가 대세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듯 했으니까.
어쨌든 그런 기분과는 별개로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을 애써 외면한 채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카페 안에는 이미 방송국 카메라와 제작진들이 몰려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제가 조금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지혁씨. 저희가 빨리 왔는걸요. 이렇게 만나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물론 아직 촬영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카메라와 제작진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긴 했다. 인사를 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PD의 말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출연해주신다는 점은 확정인지라, 이 부분도 방송에 필요해서요. 미리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예능 출연이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제가 생각이 너무 짧,”
“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거 에요. 저는 상관없어요.”
다만, 너무나도 저자세로 나를 대하는 PD로 인해 예상치 못한 카메라들과 제작진들로 인해 놀랐던 것의 배 이상 놀라고 말았지만.
어쨌든 제작진에서 미리 준비해준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인 얘기를 나누었다. 특별 출연이기는 하지만, 드라마 홍보 겸 팬들을 위한 일정인 만큼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제가 이 프로그램이랑 맞을까요?”
“예? 그게 무슨?”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HOME ALONE. 이번에 내가 특별 출연하게 될 MBC의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HOME ALONE은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생활을 비교적 여과 없이 보여주는 생활 밀착 방송일진데,
“저 엄청 재미없는 사람이라 찍을 만한 게 없으실 텐데...”
정작 나는 고정적인 방송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지금 주연으로 참여한 드라마가 전파를 타고 있다 할지라도 사전제작인 만큼 딱히 스케줄이랄 게 없는, 말 그대로 무늬만 연예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내 걱정에 PD는 물론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는지라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뭐야 저런 반응들은.
“지혁씨가요?”
“네?”
“예?”
어쨌든 나는 그 점이 너무 걱정되었다. 괜히 특별 출연한답시고 촬영했다가 시청률이라도 박살냈다가는 여러모로 민폐일 테니까.
“그럴 리가요. 월드스타이시고 요즘 드라마도 초대박이신데 그냥 가만히 집에만 계셔도 됩니다.”
“네?”
“시청자들은 그저 지혁 씨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할 겁니다. 그 집 소개만 하더라고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어쨌든 뭘 해도 괜찮습니다. 부담 없이 생활하시면 됩니다. 정말로요.”
그래도 그런 내 걱정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려는 듯, 편하게 하라는 듯한 PD의 말에 기분이 조금이나마 괜찮아질 수 있었다.
“진짜요?”
“물론입니다. 가만히 잠만 주무셔도 충분할 겁니다.”
다만 그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려는 듯한 PD의 말이 꽤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내 스스로 느껴버렸다는 게 문제였지만. 아니, PD양반 너무 나가셨어요. 없는 일정도 만들어야 할 판국에 잠만 자도 충분하다니, 이 사람이 방송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하셨구만?
*
“그럼 촬영일자는 어떻게 되나요?”
“다음 주 중으로 해서 1주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촬영과 관련된 얘기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프로그램 콘텐츠 자체가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삶을 비교적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라 기본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촬영 할 때 주의해야 할 내용들이랄 게 딱히 없었으니까.
그런데 얘기를 나누던 중 촬영일자에 관해서 조금 문제되는 점이 생겨버렸다.
“네, 딱히 상관은 없, 음... 아! 저, 죄송한데요.”
“네? 혹시 무슨 일이라도?”
그런 내 말에 PD와 제작진 일동이 너무나도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서 순간 움찔한 것은 비밀이지만.
“제가 다음 주 언제라고는 정확히 말씀 못 드리는데, 미국에 갈 일이 있어서요.”
“미국요?”
어쨌든 그 문제랄 게, 취소할 수 없는 일정이었는지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촬영과 그 일정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촬영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정이었으니까.
“제가 화보 나올 게 있어서요. 그거 관련된 일이랑 지인 생일이 있어서 꼭 가봐야 되는데, 그러면 촬영에 지장 있는 거 아닌가요?”
“그 스케줄이라는 게 혹시 저희도 동행이 가능한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그런데 눈앞에 있는 PD란 사람은 막상 그 문제라는 것을 듣고서 오히려 좋아한 듯 보였다. 물론 자기 딴 애는 숨기려는 듯 애써 심각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PD의 그런 행동은 나를 속이기엔 너무 어설픈 연기였으니까.
“네? 동행이요?”
“동행만 가능하다면 저희 측은 딱히 상관이 없습니다. 미국이든 어디든 말이죠.”
“음...”
그런데 예산이라는 것이 당연히 있을 진데 일정변경 대신 동행을 언급하는 PD의 말에 정작 내가 놀라버렸다. 촬영을 하려면 적어도 10명가량의 제작진이 필요할진데 이 사람들의 미국행에 필요한 제작비를 고려하지도 않은 채 망설임 없이 동행해도 되냐고 물어보는 PD의 행동은 내 상식에선 이해되지 않은 행동이었으니까.
아니, 저 PD님 힘 좀 있는 PD님 인가? 설마 차기 예능 국장?
“동행이라고 해봤자 그저 지혁 씨의 미국 생활에 대해서 간략히 촬영을 하는 것일 뿐, 일정을 소화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닐 겁니다. 만약 불편하시다면 즉시 촬영을 중단시키실 수 있게 조치할 거고요.”
어쨌든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는지라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되긴 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 제작진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에 딱히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 화보 관계자들이랑 지인한테 한번 물어보고 말씀드릴게요. 제가 미국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드리는 건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공적인일과 지인 생일 파티 때는 아무래도...”
HOME ALONE 촬영과 전혀 별개인 공적인 일과 지인의 생일 파티는 내가 괜찮다고 해서 허락해도 될 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 저희로서는 동행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혁 씨!”
그런데 이 PD라는 사람은 그마저도 좋다고 하니 통 영문을 모르겠다. 나 원 참.
어쨌든 저렇게까지 나온 이상 알겠다고 말해줬다. 물론 이렇게 대답을 했다 해도, 화보 관계자와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지인’의 의견이 부정적으로 나온 순간 미국 촬영 동행은 상대적으로 어렵겠지만.
*
“그런데요. 제가 아까부터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네?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제가 출연해도 될까요? 이 프로그램에? 아무래도...”
“그, 그게 무슨!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지혁 씨.”
나는 팬들에게 내가 평소에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게 딱히 상관이 없었다. 방송 활동이야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인지라, 팬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꽤나 비싸게 구는 연예인일 테니까.
하지만 이번 HOME ALONE 프로그램 참가가 내 개인적으로 꽤나 괜찮다 생각됐을 지라도 걱정이 되긴 했다.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앞서 PD에게 언급했던 내가 너무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점은 이미 해결이 되었다. PD의 말마따나 그냥 편하게 내 일상을 보여 두면 된다고 하니, 그다지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을 듯 했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 걱정 자체가 첫 번째 걱정에 비해 조금 더 나를 우려하게 만들었는지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안녕! 내 사랑 미스터’
단언컨대 이런 내 걱정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닐 것이다.
“제가 경쟁 드라마 주연인데 여기에 출연해도 되나요? 그게 아무래도...”
지금 나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PD의 소속도, HOME ALONE이 방영되는 방송사의 이름도 ‘안녕! 내 사랑 미스터’라는 경쟁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사와 일치했으니까. 그것도 완전.
그래서 처음에 HOME ALONE 측에서 출연 요청이 왔을 때 장난치는 줄 알았다. 누군가가 포이보스에 장난으로 섭외 요청을 했다고 생각하는 게 좀 더 신빙성 있을 정도로 이는 내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믿기 힘들게도 이는 나의 우려였나 보다.
“하하! 지혁씨도 참.”
“네?”
괜히 긴장했다는 듯 너무나도 시원하게 웃는 PD와 심지어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는 제작진들의 모습만 봐도 말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드라마 국에서 조금 쿠사리를 아니, 잔소리 겸 불평이 넘어오겠지만 뭐, 초대박 시청률을 놓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 예능국장님이 전적으로 지원해주신다고 하셨으니 지혁 씨는 이런 부분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요?”
덕분에 어안이 벙벙해져버렸다. 내가 봤을 때 이는 명백히 팀 킬 일진데, 정작 이에 대해 예민해하고 주저해야 할 PD가 도리어 나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건넸으니까.
“그럼요. 대놓고 드라마 홍보만 안 해주시면 됩니다. 드라마 출연진들과 같이 식사를 하거나 그런 것 말입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지 모르겠다. MBC 이거 가만 보니까, 완전 콩가루 집안이잖아?
*
촬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집안에 고정 카메라는 몇 대 정도, 촬영 VJ는 몇 명 정도 언제, 어느 정도 촬영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보니 얼추 내가 알아야 할 얘기들은 전부 알게 됐다. 어차피 그 외적인 출연료와 계약서 작성은 내가 아닌 포이보스 측에서 담당할 부분이었으니까.
그렇게 얘기가 마무리되고 근처에 있을 석현 형에게 데려와 달라 연락을 하려던 그때였다.
“저기 혹시 사인을...”
PD가 쭈뼛쭈뼛 내게 다가와 흰 종이를 내민 것은.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이런 PD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기껏 가져온 것들을 다시금 집으로 가져갈 뻔 했으니까.
“아! 제가 깜빡했네요. 여기 제 정규 3집 앨범인데요. PD님이랑 작가님들한테 드리려고 가져,”
비록 특별 출연이라고는 하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희연 누나와 미애 누나 그리고 나와 인연이 있는 수많은 이들이 조언 삼아 건넨 말이 있었기에 번거로울 지라도 일일이 사인을 해 준비해왔다. 나조차 100여장도 채 가지고 있지 못하는 1집, 2집과는 달리 그나마 재고를 미리 챙겨 300여장 정도 가지고 있는 정규 3집 앨범을.
그런데 이를 건네자마자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순간 귀가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꺄아아악!]
[대, 대박!]
사인 CD 스무 장 정도가 담긴 종이 백을 PD에게 건네자마자 주변에 있던 작가들과 출연진들의 입에서 비명소리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으니까.
“하하... 죄송합니다. 저희 작가들이랑 제작진들이 지혁 씨의 광 팬이라서요. 오늘도 저랑 몇몇 스태프들만 나오면 됐는데 굳이 나오겠다고...”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질문이 덧없을 정도로 수많은 이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PD에게로 꽂혔는지라, 눈앞 PD가 순간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는지라 절로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뭐, 스태프들 수가 얼추 봐도 쉰 명 정도인데 괜히 스무 장만 가져왔나 싶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날려버렸다. 아니, 오늘 스태프들이 이렇게나 많이 나올 줄 누가 알았나?
“아, 정말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PD님이 평소 일 잘하고 성실한 제작진분들한테 알아서 잘 나눠주실 거라 믿고 이만 가볼게요. 혹시 사인 앨범 못 받으신 분들은 숫자 알려주시면 그분들한테는 제가 따로 종이에 사인해서 나눠드릴게요. 죄송한데, 저도 정규 3집이 저도 가진 게 얼마 없어서요.”
“그, 그런... 하아... 네, 그럼 다음 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네, 그리고 촬영 관련된 걸로 말해주실 게 있으시면 포이보스 쪽으로 연락해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안녕히 계세요.”
어쨌든 이어진 내 말에 PD의 얼굴에 갑작스런 땀방울이 맺힌 것 같았지만 때마침 석현 형의 도착을 알리는 진동음이 주머니로부터 느껴졌는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후에 딱히 할 일이 없었어도 지체 없이 일어났을 진데, 오늘은 HOME ALONE 관련 일정뿐만 아니라, 다른 일 또한 있었으니까.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정말 큰 힘이 되는데요. 성실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편은 곧바로 올라갑니다! 1초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