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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노래로-244화 (244/502)

00244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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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스타분과 함께 자리를 하니 정말 영광이군요.”

“그렇게 느끼신다면 그렇게 느끼시는 거겠죠.”

미리 약속 시간에 맞춰 주문을 시켜놓았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꽤나 많은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놓이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눈앞 사내를 대하는 내 행동이 긍정적으로 변하거나 호의적으로 보게 되지는 않았지만.

“이거 저희 쪽이 미움을 받아도 너무 단단히 받고 있나봅니다. 하하!”

따라서 그와 나의 대화는 여전히 단방향 일 수밖에 없었다. 사내가 호의적이지 않는 내 행동에 짐짓 호탕한 웃음과 넉살을 내게 보이며 대응했지만, 정작 나는 내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었으니까.

“밥 좀 먹고 나서 얘기하죠. 체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사내는 꽤나 고집스러운, 좋게 말하면 꽤나 끈기 있는 성격의 소유자인 듯 했다.

중식당답게 원반위에 꽤나 호화스러운 음식들이 가득 담겨있어, 원반을 돌리며 하나, 하나 이를 맛보고 있을 때조차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으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이룬 업적이 셀 수도 없이......”

그래서 그냥 내가 먼저 본론을 요구했다. 누가 봐도 밑밥을 까는 듯한, 사내의 행동이 이쯤 되니 더욱 거북해졌고 부담스러워졌으니까.

“본론 꺼내셔도 돼요. 본론으로 빨리 가고 싶으신 것 같은데.”

뭐, 당연하게도 그런 내 예상은 100%들어맞았다.

마치 본론을 꺼내라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사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전혀 다른 목소리,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으니까.

“혹시 죄수의 딜레마라고 아십니까?”

다만 그런 사내가 건넨 본론이 죄수의 딜레마라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는지라 내심 당황하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이 자리는 그 순간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 공간이 되어버렸다.

넉살을 떨며 내게 영양가 없는 소리만 내뱉던 사내의 모습이 일견 그의 신분과 직위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내게 비춰지기 시작했으니까.

*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고전적 사례.

이 게임이론은 꽤나 간단하고 또한 현실에서도 많이 이용되었다. 그것도 형사와 검사들에 의해서.

두 명의 용의자가 있다. 하지만 그 두 용의자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추정되나 아직 확인은 되지 않은 용의자들이다.

이때 담당검사가 그들에게 제안을 했다.

[지금부터 당신들을 분리시켜 심문하겠다. 만약 둘 다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면 이를 참작해 징역 3년을 구형하겠다. 하지만 한 사람은 자백을 했는데, 나머지 한 사람이 자백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백한 사람에게 자백의 대가로 방면을, 자백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징역 10년을 구형하겠다. 하지만 만약 둘 다 부인한다면 둘 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3개월의 징역을 구형하겠다.] 라고.

이 상황에서 두 용의자들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은 바로 둘 다 범죄를 부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의사전달이 전혀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는 가장 어려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만약 자신은 자백하지 않았는데 동료가 자백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징역 10년을, 동료는 방면이라는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될 테니까.

“저희가 행한 잘못들 모두 인정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눈앞 사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내게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는 사내의 말만으로도 사내가 어째서 이 자리를 만들었는지, 어째서 내게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잔뜩 들고 왔다고 자신할 수 있었는지 이를 통해 모두 깨달았으니까.

“저희는 자백을 한 용의자가 되고자 합니다.”

아마도 사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흠...”

“아무래도 지혁 씨의 화살촉이 노리는 곳의 주된 방향은 저희 측이 아닌 것 같은데 괜히 이 상황만 모면해보고자 사업 자체에 영향을 끼칠 지속적인 피해를 가만히 볼 수만은 없다는 게 저의 뜻이고 회장님의 뜻입니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상은 WMC 그러니까, CI E&M이 아닌 SD ENTERTAINMENT에 가깝다는 것을, 자신들을 SD ENTERTAINMENT와 관련되어 있기에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을.

물론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추론은 아니었다.

“이번 사태의 ‘공식적인’ 원인으로 꼽힌 WMCA 시상식 관련된 부분은 전적으로 소급될 겁니다. 또한 관련자들은 꼬리 자르기 형식이 아닌, 진짜 책임이 있는 이들 전부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고요.”

WMC에 비해 SD 측에 대한 나의 행동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많은 자금을 소모하는 것으로 이루어졌으니까.

“작년 12월 말? 그때부터 공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자백을 한 용의자가 되겠다는 말을 건넴과 동시에 또 다른 당근을 이어서 건네는 사내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희 CI그룹은 문화부분을 주도적인 사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저희는 CI E&M를 방송 사업부분, 영화 사업부분, 음악 사업부분, 공연 사업부분, 게임 사업부분, 스마트미디어 사업부분 등 총 6개 분야로 나누어 막대한 투자를 할 계획입니다.”

오면서 미리 검색해봤을 때, 알 수 있었듯이 전략기획실 본부장이라는 직함보다는 CI 그룹의 후계자라는 직함으로서 이 자리에 온 듯 그가 건넨 죄수의 딜레마는 꽤나 달콤한 과실로 내게 다가왔으며 그 뒤 곧바로 이어진 당근은 수많은 이들에게 해당되는 결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투자를 체계적으로 이행할 CI E&M의 신사옥으로 적합해보이더군요. 한류월드가 말입니다.”

이로서 그가 죄수의 딜레마를 내게 설명하고 또 건넨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해졌는지라 나 또한 마냥 제 3자의 입장에서 이를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다.

굳이 SD와 함께 끝까지 꼬리 자르기 방식을 고수하지 않은 이유가, CI E&M의 주요 사업부문인 음악 사업의 근본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음원 사이트의 수익 하락을 더 이상 바라만 볼 수는 없다는 너무나도 뻔한 이유만이 아님을, 눈앞의 사내는 지금의 상황을 자신에게 득이 되는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나와의 관계에 새로운 틀을 짜고 싶어 하는 듯 했으니까.

“6개의 사업부분 중 방송 사업부분만 따져 봐도 총 18개의 채널 그리고 그 중 2개의 채널은 음악과 관련된 전문 채널이지요. 그밖에 게임 채널 1개, 패션전문채널 3개 등을 고려한다면 저는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각 채널의 큼직한 행사들만이라도 아레나를 통해 진행시킨다면, 근거리에 언제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산업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지혁 씨 입장에서도 충분히 고려해봄직한 ‘재밌는 얘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게 한 회사의 후계자라는 사람의 생각인 것일까?

지금까지 헛짓거리만 해대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듯 ‘거래’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눈앞 사내의 말에 솔직히 흔들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화살촉은 목표를 향해 적중하지 않겠습니까? 자백하지 않은 용의자에게로 말이죠.”

사내의 말은 그의 말마따나, 내게 꽤나 ‘재밌는’ 얘기였으니까.

*

“야! 치사하게 밥 먹고 오냐? 난 너랑 먹으려고 안 먹고 있었는데?”

“지금 시간이 2시인데 안 먹는 게 비정상 아니야? 당연히 점심 먹고 만나는 거지. 이런 경우엔.”

꽤나 화창한, 겨울답지 않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잠시. 애써 배고픔을 참고 있던 내게 너무나도 당당히 밥을 먹고 왔다는 공지연의 뻔뻔함이 들려왔는지라 속에서 열불이 돋기 시작했다.

“진짜 이럴 때 보면 어휴.”

“뭐? 보면 뭐? 보면 어쨌다고?”

“됐다, 됐어.”

더 말해봤자 괜히 내 입만 아플 것 같아, 이내 더 이상 이 얘기 하는 걸 포기해버렸지만.

어쨌든 제 딴 애는 조금 미안해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공지연 성격상 대놓고 이를 표현할 리가 없을 것이기에 그저 전용기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도 못 먹은 상태에서 공지연을 기다렸던 터라 전용기에 마련된 식사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꽤 괜찮네.”

“뭐? 꽤?”

“그래, 꽤.”

그런데 저 성격이란 것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데 뭐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듯 했다. 어차피 혼자가나 둘이가나 기름 값이 달라질 것은 없기에 같이 이동하자는 말을 건넸을 때 그리고 지금처럼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도 저놈의 성격은 별거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겉으로 내보이게끔 만들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당초 계획과 달리 먼저 현지로 이동해 공항에서 우리를 마중 나오기로 한 매니저들까지 같이 대동할 걸 그랬다. 이건 뭐, 놀란 반응을 보겠다고 같이 가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반응 자체가 너무 시원찮았는지라 김이 팍 새버렸으니까.

*

일본, 대만, 필리핀, 중국을 거쳐야 하는 해외활동이기에 당연히 현지어를 어느 정도 숙지해야만 했다. 어찌됐든 이번 일정은 방영을 앞둔 배달의 후예 홍보를 위해 잡힌 것이었으니까.

“가사는 다 외웠냐? 현지 인사말은?”

“다 외웠지. 그쯤이야.”

“그래?”

어쨌든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마치 초등학생 숙제 검사하듯 그녀의 암기상태를 확인하다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허기가 몰려왔는지라 기내 앞부분에 앉아있는 승무원에게 손짓을 했다.

“저 식사 주세요. 해산물로요.”

“네, 알겠습니다.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화이트 와인, 가벼운 걸로 주세요.”

애당초 기내 관리라는 것이 전용기를 사용하기 전, 그러니까, 빠르면 2주, 늦으면 1주 전에 파일럿들과 승무원들에게 이를 통보하면 이들이 관련된 물품들의 구비 및 비행기의 정비 상태 등을 책임지고 체크하는 형식이었는지라 식사 또한 준비되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전채 요리가 나오고 포크를 들려고 할 때였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안 돌릴래야 안 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것은.

“왜? 너도 먹게?”

“그럼 네 입만 입이냐? 난 주둥이고?”

말 한번 참 ‘예쁘게’ 하는 공지연을 보며, 그녀가 과거 꼬박꼬박 내게 존댓말을 하던 이가 맞는 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편하게 반말을 툭툭 던지는, 물론 그 이전부터 반말로 그녀를 대하던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얼핏 친한 동성친구가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한숨을 내쉬었을지 언정 승무원을 다시 불러 공지연 분량의 식사를 부탁하려했다. 몇 십분 전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밥 먹었다며. 오기 직전에.”

꽤나 결정적 이었나보다. 설마하니, 자신이 한 말을 다시금 되돌려 받을 줄은 몰랐는지, 본인 성격에 못 이겨 내게서 시선을 거둔 공지연이었으니까.

“해산물? 육류?”

그래서 짐짓 약 올리듯 웃음 끼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콕콕 찔러댔다. 이런 경우는 보통 내가 꽤나 흥미 있어 하는 표정을 보여주곤 하던 그녀였으니까.

“말 안하면 진짜 안 시킨다?”

결과적으로 그 의도는 그녀의 쇠심줄 같은 고집에 좌절되고 말았지만.

“어휴, 저놈의 똥고집.”

“뭐?”

“뭐 먹을 거냐고요. 주둥이 아닌 입 가지고 있는 공지연씨?”

어휴, 너 그렇게 해서 시집이나 가겠냐? 밤에 하던 거, 반만 해도 충분할 텐데 어떻게 낮이랑 밤이 이렇게나 다른지. 쯧쯧.

“물어봐서 준비 좀 해주세요. 제가 말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네요.”

속으로 수십, 수백 마디가 떠올랐지만 애써 이를 삼킨 채, 승무원을 불렀다.

어찌됐든 공지연 그녀는 자신과 친분이나 안면이 없는 제 3자에게 꽤나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별종이었으니까.

*

“맛있냐?”

스테이크를 야무지게 썰어먹고 있는 공지연을 보니 나 또한 절로 배가 고파졌다. 정작 포크와 나이프로 로브스터 살을 열심히 발라 먹고 있으면서 말이다.

“뭐, 먹을 만하네.”

“야, 너 그렇게 말하면 이거 준비한 요리사가 얼마나 섭섭해 하겠냐. 나름 성심성의껏 준비했을 텐데.”

어쨌든 오물오물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열심히 칼질을 하는 공지연을 보니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나갔던 것 같다.

그 덕에 공지연의 차디찬 시선을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딱히 상관은 안했다. 어차피 나이프와 포크에 점령당한 손들로 인해 공지연은 고스란히 내 볼 꼬집을 당해야만 할 테니까.

“야, 나 너한테 듣고 싶은 말 있는데 말하면 해주냐?”

“뭐래.”

“해주냐니까?”

그런데 그러다보니 무리를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이면 몰라도 허연 대낮에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의 공지연은 흔치 않은 볼거리였는지라 나도 모르게 과하게 신이 난 듯 했으니까.

“이 손 안 놔? 하아... 뭔데? 뭐라고 불러 주냐고 이 초딩아!”

“그게...”

“빨리 말 안 해?”

“오빠.”

“뭐?”

“오빠!”

결과적으로 그 대가는 내가 고스란히 받고 말았다.

[콜록 콜록]

아직 헤어 관리나 메이크업을 받은 상태가 아니지만 나름 깨끗하게 씻고 온 내 얼굴과 상체에 그녀가 열심히 잘게 부셔놓은 음식물들이 고스란히 쏟아졌으니까.

“야! 더럽게 나한테 뱉으면 어떡해? 매너가 없네. 매너가.”

아니, 불러주기 싫으면 싫다고 말할 것이지, 더럽게 먹던 걸 왜 뱉고 난리야. 진짜 더러워 죽겠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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