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9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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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괜찮아요. 이미 오래전 일이고 나름대로 대응을 하고 있어서요. 예, 예.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석재 삼촌.”
2016년의 첫 날은 1년 전과 달리 수많은 사람들의 연락과 함께 시작되었다. 방금 전 석재 삼촌의 통화와 같이 그동안 나와 적지 않은 관계를 맺어왔던 이들의 걱정 가득 담긴 문자와 통화를 받아야만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몸이 꽤나 무거웠다. 아침부터 차승헌, 유혜진 삼촌 그리고 희연, 미애 누나를 비롯해 거의 100여 통 가까운 통화를 받아내고 보니 다른 무엇인가를 딱히 하지 않았음에도 벌써 밖은 어두워진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핸드폰 전원을 살며시 꺼버렸다. 나를 걱정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만큼 이제는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싶었으니까.
“배 안고파?”
“어? 어. 이제 먹으려고. 미안, 신경을 못 썼네. 전화 받느라.”
그런데 슬슬 배가 고파 룸서비스를 시키려던 찰나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차 싶었다. 곳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벌써 2시간 가까이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한 연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으니까.
“뭐, 상황이 상황이니까. 뭐 먹을 건데?”
“너 먹고 싶은 거. 뭐 먹고 싶어?”
짧은 국내 활동을 마치고 또다시 중국활동에 돌입했던 연지가 며칠 전 귀국해 오늘 나를 찾아왔다. 간만에 보는 연지의 모습에 반가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졸지에 TV나 보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터폰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그녀가 앉아있던 소파로 뛰어들었다.
“어, 어? 뭐야? 애처럼.”
편하게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을 정신적으로 안정되게 만들어주는 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왜? 싫어?”
“아니, 뭐 싫은 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럽잖아.”
“그럼 무릎 좀 빌리자. 잠깐만.”
뭐 간만에 본 탓인지 더욱 반가웠다는 점이 큰 몫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꽤나 피곤했던 머릿속이 말끔히 씻겨내려 간 듯 했는지라 기분이 절로 상쾌해졌다.
그래서 그녀의 무릎을 베개 삼아 귀찮아함 없이 대화를 건넸고 말이다.
“나 드라마 2월부터 방송에 나오는 데 본방 사수 할 거지?”
“어? 본방? 뭐, 생각 좀 해보고.”
“뭐?”
“키스신이랑 베드신까지 있다던데 그걸 내가 왜 봐? 누구 좋으라고.”
“누구 좋긴, 너한테 좋지.”
“뭐?”
“그대로 해줄게. 네가 봤을 때 부러워할만 한 것들.”
물론 공지연, 테일러 등과는 달리 나에 대한 마음이 단순히 관계를 나누는 것 이상인 그녀에게 이런 행동들과 말 한마디, 한마디는 참으로 못할 짓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내 행동을 막아서질 못했다.
“여기서? 아님 침대?”
쓰레기 같지만 그녀가 나를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지금 그녀가 필요했으니까.
*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수많은 기자들과 카메라들이 자신을 마주보고 있음에도 단상의 중앙에 홀로 앉아있는 이의 표정은 담담했다.
20여 년 전, 록 음악과 더불어 각종 장르들의 음악들이 한국 가요계의 황금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을 때,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아이돌 음악의 시작을 알렸던 이수재.
일본에서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던 아이돌이라는 형태의 음악 시장을 한국으로 가져와 현지화 시킨 첫 선두주자이자 지금에 와서 가요 계를 아이돌 판으로 만든, 한국 가요계에서 극과 극의 판단을 받고 있는 그의 갑작스러운 기자회견 소식에 수많은 기자들이 SD ENTERTAINMENT의 기자회견 실 앞으로 모였다.
“안녕하십니까, SD ENTERTAINMENT의 대표이자 최대주주 이수재입니다.”
모든 기자들이 오늘 이수재의 입에서 무엇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지 모르지 않았다. 그만큼 작년 말 KBS를 통해 보도되어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SD와 CI E&M 소속의 WMC측과 관련된 대가성 현물 수수와 그 뒷얘기는 지금에 이르러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되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기자회견장에 자리를 잡은 기자들의 입은 저마다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도 관련 사실을 부정하던 CI 측과 SD측일 진데, 갑작스럽게 SD의 최대주주이자 대표경영인인 이수재가 친히 기자들을 불러 모은 만큼 이런 상황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
“우선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본 사와 관련되어 피해를 입으신 강지혁 씨와 저희 측의 잘못된 대응으로 상처를 입으신 팬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자들의 기대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던 이수재의 입이 다시금 열리는 순간, 기자들의 직감은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 관련보도 자체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만을 반복하던 SD측의 입장을 번복하는 듯 한 이수재의 이어진 말이 기자회견장을 휩쓸었으니까.
그렇기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속도와 기자들의 타이핑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이수재의 발언은 SD가 지금껏 거짓된 태도로 대중들에게 나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일맥상통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WMC측과 CI E&M측이 관련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보도가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까지도 관련 보도를 부정하던 CI측을 더욱더 구렁텅이에 집어넣을 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기자들의 다급함은 이내 멈칫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SD측의 차기 아이돌 데뷔 프로모션과 대가성 현금을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WMC측과 사전에...... WMCA에서 IP의 올해의 가수상과 WMC에서 기획한 방송 프로그램 섭외 등을 보장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따라서 회사의 대표이자 최대주주로서 이번 사태에 관련해 미리 내부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뜻입니다.”
모든 관련 사안들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로 관련된 이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던 이수재의 발언에 묘한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기자인 그들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그 발언은 회사의 대표이자 최대주주인 본인이 이와 관련된 논란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따라서 기자들의 질문이 한층 격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 이곳에 온 이들 대부분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의욕만 넘치는 초짜 기자들도 아니거니와 설사 그렇다할지라도 이런 이수재의 발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명약관화한 것이었으니까.
“IP와 새롭게 SD측에서 발표할 새로운 개념의 아이돌 그룹은 이번 사안과 무관하며 기사와 관련 보도에서 드러났듯 WMC측의 이 모 부장과 본 사의 이지철 등기이사의 독단에 의해,”
“이거 꼬리 자르기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지금 발 빼려 하시는 겁니까! 상식적으로 아무리 등기이사라고는 하지만 그런 중차대한 일들이 회사의 대표이자 최대주주인 이수재씨 몰래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벌어진 일입니다. 다만, 저 또한 대표 경영자로서 이에 대한 책임을 깊게 통감하는 바,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며,”
이미 작정을 하고 나온 듯 준비해온 멘트를 착실히 내뱉는 이수재의 행동에 기자들이 단체로 반발했지만 이로 인해 바뀐 것이 전혀 없었으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이상 이번 기자회견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팬 여러분들과 강지혁 씨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기자회견은 막을 내렸다. 다음날 마찬가지로 기자회견을 진행한 CI E&M 소속 WMC측 또한 SD측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태도를 내보였음은 당연했고 말이다.
*
“언니 밥 먹었어?”
“응? 응...”
“영진 오빠랑 먹고 왔구나? 미리 연락 좀 해주지.”
“미안해.”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마무리된 정규 앨범 활동 덕에 그녀들은 꽤나 여유로운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여타의 앨범 활동 때라면, 심지어 싱글이나 미니앨범 활동 때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이와 관련되어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지금의 생활이 달콤한 휴식일 뿐이라는 듯, 어째서 이렇다 할 활동이 잡혀있지 않는지에 관해선 일종의 꺼내선 안 될 금기가 되고 말았으니까.
물론 이 모든 일의 원인에서 자신들은 한 층 벗어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WMC와 SD 그리고 IP와 새롭게 SD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보이 그룹을 꼽았다고는 해도 이는 그녀들에게 있어 그다지 통용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정작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들이라는 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의 멤버인 슬희와 IP의 김영진 그리고 강지혁으로부터 이 모든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녀들의 마음 곳곳을 짓누르는 진정한 ‘사실’이었으니까.
어쨌든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는, 비록 며칠 전 관련 보도에 관한 공식발표를 한 이수재의 영향으로 소수 나마 그들을 비호해주고 있는 이들이 생겼다지만 이미 바닥을 찍어버린 SD ENTERTAINMENT의 이미지 때문에 SD 소속 가수들의 일정은 대부분 취소와 연기라는 결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그 범주에는 Twinkle도 포함된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
처음 같은 그룹의 멤버인 슬희와 김영진의 스캔들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을 때, 정작 가장 당황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Twinkle 멤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슬희를 가장 최측근에서 지켜보며 강지혁과의 연애에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었던 이들이 바로 그녀들이었으니까.
[나도 모르겠어. 너무 보고 싶은데... 사귀고 있는 데 너무 외로워...]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날들을 다 합쳐도 채 한 달이 안됐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 내가 왜 이러는 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되는 지.]
어쨌든 정작 자신 또한 어째서 김영진의 대시에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슬희의 행동에 멤버들 또한 자신들의 행동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군다나, 진실을 밝히는 순간 Twinkle은 물론이고 IP마저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말 것이라는 매니저와 기획실장의 말과 더불어 심지어 평소 많이 의지하던 김해연까지도 그녀들에게 그저 가만히 있음을 요구했었으니 오죽할까.
그렇게 그녀들이 우물쭈물한 사이 연습생 시절부터 사용해 꽤나 정이 들었던 그녀들의 숙소는 어느새 새로운 곳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핸드폰 번호 또한 낯선 번호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제와 무엇을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어쨌든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이미 흔들린 순간부터 기존의 사랑은 끝난 것이다’는 여자의 사랑에 대한 흔하디흔한 말마따나, 좀처럼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는 슬희가 회사의 강압아래 김영진과 실제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를 바로잡지 못한 순간 이는 예정된 미래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그 안일한 결정과 행동으로 그녀들의 생활에 있어 활기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된지 오래였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진 수연과 더불어 다른 멤버들 또한 방송 외의 생활에서 웃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
지내온 시간이 많은 만큼 그때의 말이 더욱 와 닿아서일까.
[좋아해. 친구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전부터 그리고 많이.]
[네가 강동훤 좋아한다는 말 했던 게 중 3 때였어. 그래서 나는 중 3때부터 강동훤이 하는 머리부터 옷까지 전부 따라했어. 네가 패션지에 나온 남자 모델이 멋있다고 해서 그때부터 모델 수업도 들었었고.]
[지난 연습생 생활동안 널 좋아했던 마음 한시도 가볍지 않았어. 다만, 내가 부족한 걸 알아서, 네가 나를 친구로만 대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렇게 내 마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어. 그런데 더 이상 참기는 싫어. 네가 그랬지? 나는 왜 여자 안 만나냐고? 자기가 소개해준 여자한테 잘 좀 해주라고 그랬었지? 네가 있어서 다른 여자는 눈에 안 들어왔어. 네가 소개해준 여자들은 더더욱.]
[그동안 네 옆에 있던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어. 그리고 좋았고. 그런데, 이제 더는 친구로 네 옆에 있기 싫어.]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계속해서 자신을 좋아해왔다는 김영진의 말에 일순간 흔들렸다는 점을 그녀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정말 좋아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도 있는 남자가 있었음에도 사랑보다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는 점과 더불어 너무나도 간절한 절친한 친구의 눈빛이, 자신의 곁에 있어주지 못한 이보다는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주겠다는 김영진의 말이 그녀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항상 네 곁에 있었어. 그래서 앞으로도 항상 네 곁에 있고 싶어. 네가 외롭지 않게.”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주겠다는,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는 김영진의 말이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이내 이마에서 느껴지는 그의 입술은 그 주문의 완성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평소 때와는 달리 곧장 숙소로 온 그녀 자신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그때 느꼈던 그 엄청난 외로움이 어째서 생겨났는지를, 그때 진정 필요했던 것이 내게 사랑을 채워줄 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끔 도와줄 이었는지조차 자신 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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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