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18화 (218/502)

00218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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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칼리 켈로스에요. 지혁 강 맞죠?]

[네, 네? 아, 예. 안녕하세요. 강지혁입니다. 반갑습니다.]

칼리 켈로스. 오늘 나와 화보 촬영을 하게 될 여인을 소개 받았을 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와 눈높이가 맞는 여자는 처음 봤으니까. 그것도 맨발로.

어쨌든 그때 때마침 코디네이터들이 다가와 대기실로 나를 안내하지 않았다면 크게 웃음거리가 될 뻔했다. 그 정도로 자신을 칼리 켈로스라고 소개한 여인네는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으니까.

[어머, 몸이 너무 좋아요. 평소에 운동을 자주 하나 봐요? 이 정도면 거의 전문적인 운동선수 수준인데요? 진짜 단단하네요?]

하지만 크게 웃음거리가 될 만한 기회는 방금 전 뿐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오늘 총 12벌, 아니 팬티 12개를 입을 건데, 어때요? 마음에 들어......]

[굳이 복근 쪽에 수정 메이크업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와우! 어깨도 굉장히 넓은 편이고 등 근육도 굉장하네요. 이 몸을 누가 가수라고 하겠어요? 게다가... 그곳 볼륨도 제법 훌륭해요. 원더풀!]

[메이크업은 얼굴 쪽만 하면 될 것 같네요. 그나저나, 정말 영광이에요! 저 정규 3집 앨범 샀고 콘서트도 갔었거든요. 미국에서 했을 때.]

[아시안과 처음으로 일해 보는 건데,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나 봐요.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인데요? 훌륭해요. 팬이었는데, 더 팬 할 것 같아요.]

코디네이터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이동하자마자 나는 여자아이들의 장난감 인형처럼 다루는 십여 명의 코디네이터들에 의해 내 몸은 내 몸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내 겉옷을 벗겨버린 채 몸을 감상하듯이 바라보는 코디네이터도 있었을 뿐더러, 오늘 입을 속옷들을 내게 대보는 코디네이터들 그리고 메이크업 도구를 가져와 분주히 내게 그림그리기를 하는 코디네이터들도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무슨 미국 여자들은 죄다 성격이 이런지, 테일러 열 댓 명에 둘러싸인 기분이었으니 오죽할까. 하아. 세상은 썩었어.

*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들 모두의 행동이 약간은 의도된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속옷 모델이 처음인 또는 이쪽 업계에 처음인 타 직종 모델에게는 의도적으로 약간은 과장되게 장난을 걸어 긴장감이나 어색함을 풀어주는 게 관례 아닌 관례라나 뭐라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 참. 그게 약간 과장? 약간? 아예 대놓고 주무르시던데? 하아.

어쨌든 코디네이터들의 행동에 불만은 있었지만 그래도 태풍이 지나갔다는 위안과 안도감에 취해 이를 머릿속 너머로 넘겨버렸다. 뭐, 비록 가운을 입었다고는 하나, 메이크업을 받으며 핸드폰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점에서 그들의 말이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됐으니까.

그렇게 메이크업을 받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해서 검색을 하게 되었다. 어찌됐건 오늘 하루 종일 촬영을 함께 할 그녀에 대해서 궁금증이 돋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으니까. 뭐, 키가 183에서 185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나와 눈높이가 같다는 점에 꽤나 놀랐다는 부분이 크게 한 몫을 하긴 했지만.

[칼리 켈로스. Models.com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의 여자 모델 50인 중 7위로 뽑혔다. VAGUE 파리의 2000년대 최고의 모델 30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1992년 7월 2일 생으로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국적은 미국이다...... 키는 185cm이며 몸무게는 52kg 신체 수치는 US 기준 31, 23, 34이며......]

그런데 막상 그녀를 모바일로 검색해 본 결과는 생각 외로 더 대단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톱 모델이었으니까.

물론 조르쟌 아르마의 수석 디자이너가 말하긴 했었다. 미국에서 유명한 모델을 이미 내 상대 모델로 섭외한 상태라고. 더군다나 아까 본 그녀의 첫인상 자체가 굉장히 비범해보였는지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 사람도 이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놀랐고 동시에 부담이 됐다.

하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니, 내가 스포츠 스타들과 근육질 몸매를 겨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믿을 건 키뿐인데, 정작 상대 모델의 키가 나보다 크다니 이건 진짜 농락이다. 농락.

답이 안 나왔다. 안 나와. 안 그래도 그 짧은 새에 조금이라도 몸을 더 만들어보겠다고 애를 써 약간 피곤한 몸으로 이곳에 왔는데, 더욱 피곤해졌다. 너무 아름답고 완벽한 몸매를 지닌 상대 모델 때문에.

[인상 찌푸리지 마세요. 갑자기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봐요? 오늘 상대 배우가 칼리 켈로스인데 설마 켈로스 양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나요?]

아시아의 희망? 희망은 개뿔. 망신만 당하게 생겼는지라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나 보다. 내게 메이크업을 하고 있던 코디네이터가 이를 지적하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다.

[네? 아니요. 마음에 안 들다니요. 저렇게 아름다운 분이랑 같이 화보를 찍을 수 있어서 영광인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누구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아니, 마음에 안 들고, 들고 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봤자, 뭐가 바뀌지도 않는데 저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날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요? 칼리 켈로스는 역시 아시안들에게도 인기가 좋나보네요. 아까 살짝 들어보니까, 칼리 켈로스 양이 미스터 강의 팬이라서 흔쾌히 한국으로 왔다고 하던데요? 뭐, 조르쟌 아르마에서 페이 부분을 조금 더 높게 잡아준 것도 있지만요.]

[하하... 그래요? 정말 영광이네요. 저런 미녀가 제 팬이라서요.]

그래요. 저 사람이 내 팬이고 예쁘고 뭐 키 크고 몸매 좋고 다 좋아요. 같이 화보를 찍을 것만 아니라면.

[어머! 저도 팬인데. 그럼 저랑 있으면 안 기쁜가 보죠?]

[서, 설마요. 이렇게 미인이신분이 제 팬인데다가 이렇게 메이크업까지 해주시니까 너무 좋네요.]

하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도 약간 이상한 게, 남우세스럽다고 치를 떨 때는 언제고, 막상 속옷 모델을 하겠다고 결정하자, 멋지게, 다른 스포츠 스타들과 그리 뒤떨어지지 않게 화보에 나오고 싶어졌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나마 전문 트레이너를 고용해 주요 근육들을 단련시켰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상대 배우가 너무 예쁘고 완벽해서 문제가 생기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거긴 그대로인거죠? 이렇게 미인이 가까이서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는데?]

[네, 네? 뭐라고요?]

더군다나,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듯 한 코디네이터까지 있으니 오죽할까.

아니 너 진짜 몇 살이냐?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벌써부터 까져가지고.

아무리 천조 국이라지만 눈앞의 메이크업 코디뿐만 아니라 다른 코디들도 저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걸 보면, 테일러에 대한 나의 평가가 조금 잘못되었음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여자들이 다 이런 성향이면 테일러는 절대 상식 외의 존재가 아닐 테니까. 테일러, 너 정상인이었구나.

[후훗. 장난이에요. 역시 아시안들은 부끄럼이 많다더니, 미스터 강도 다를 건 없네요? 귀여워. 팬 하길 정말 잘한 것 같네요.]

하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아. 세상은 썩었어.

*

[보통 속옷 화보를 남녀 같이 찍게 되면 우리들끼리 내기를 해요.]

[몇 번이나 자주 커지는 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지.]

[저번에 베이컴, 로날드 화보 때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꽤나 흥미진진했죠. 그나마 베이컴은 아내랑 같이 찍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로날드는 솔로 화보였는데 시도 때도 없더라고요. 뭐, 우리들이 조금 장난을 치긴 했지만.]

[참고로 저는 제일 많이, 길게, 큰 쪽으로 걸었어요. 오늘 기대할게요. 50달러나 걸었으니까.]

내가 염려하는 부분을 정확히 비집고 들어온 문제의 메이크업 코디네이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다. ‘중간, 중간 가랑이 사이에 있는 녀석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떡하나’에 대해서 말이다.

당연했다. 한창 때의 남자가 속옷만 입은 채, 속옷만 입은 여자와 밀착한 상태로, 때로는 껴안기도 하고 침대에서 그 여자를 품에 안기도 하는 데 그 물건이 그대로이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상대역 자체가 몸매면 몸매, 얼굴이면 얼굴 어디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여자이니 오죽할까.

[와우! 완벽해요! 몸이 정말 좋네요. 비율까지. 이거 진짜 가수냐고 그러겠는데요? 사람들이?]

그렇게 심란한 표정을 애써 감춰보려 했지만, 담당 사진작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해버렸고 부담감을 느껴버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카메라 앞에서 멍하니 서있던 내게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진 것은.

움찔하고 말았다. 내게서 느껴지는 체온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모르지 않았으니까.

[자! 일단 서있는 포즈 그리고 침대, 욕조, 소파 순으로 개인 컷 그리고 커플 컷 찍을 테니까. 편안하게 해봅시다!]

사진작가의 말에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게 기대오는 칼리 켈로스 그녀는 정말 톱 모델이란 이런 것이구나가 몸소 느껴질 정도로 당당하고 프로페셔널 했으니까. 다만 그게 내게는 문제가 되었지만.

*

[좋아요! 눈빛이 너무 좋네요! 강렬한 눈빛! 카리스마! 쌍꺼풀 없는 눈이 이렇게 섹시하다니! 왜 지금 껏 나는 모르고 있었죠? 완벽해요!]

나는 그저 굳어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붙잡기 위해 눈에 힘이 들어갔고 몸에 힘이 들어간 것일 뿐인데 정작 사진작가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칭찬 일색이었는지라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몸이 너무 좋아요! 운동을 정말 좋아하나보죠? 그런 몸 만드는 거 정말 어려운 건데.]

그래도 굳이 뭘 할 필요 없이, 이런 포즈, 얼굴 표정들이 좋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게 기대오는 그녀의 향기와 체온에 속으로 온통 나무아미타불만 되새기고 있었는데 촬영마저 엉망이 되었다면 좀처럼 참기 힘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카메라를 등진 상태에서 내게 안긴 채 등을 내보이던 그녀가 내 귀에 속삭인 것은.

[이게 테일러가 자랑하던 요술봉인가요?]

지금껏 촬영을 할 때 단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내 귀가 잘못된 것 인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괜히 톱 모델이 아니라는 듯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화보에 임하던 그녀가 건넨 말은 꽤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근데 왜 이렇게 축 쳐져있어요? 테일러 말대로라면 시도 때도 없다던데.]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깨닫고 말았다. 방금 전 내가 들은 말은 제대로 잘못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어째서 이 공간에서, 이 시간에 그녀의 입을 통해 테일러의 이름이 들려오는 지, 어째서 테일러가 종종 사용하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매직 스틱이라는 말이 내게 들려오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신이 번쩍 들어버렸다.

[자존심 상하네요? 설마 내가 테일러보다 못해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과 함께, 사진작가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이용해 그녀의 다리가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으니까.

[자! 그럼 포즈 바꿔서 칼리 켈로스 양이 옆에 팔짱을 끼고, 어머!]

당황한 나머지 그녀를 밀쳐 내려했다. 이내 들려온 사진작가의 말에 그녀가 알아서 포즈를 바꾸는 바람에 허공으로 손이 뻗쳐버렸지만.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미스터 강도 남자였네요. 성 취향이 다른 쪽인 건가 싶었는데.]

절로 발끈할 말한 말을 내뱉는 사진작가에게 불쾌감을 표현하기도 전에, 웃음 끼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 메이크업 코디의 가운으로 아래쪽을 가려야만 했으니까.

[잠시 쉬었다 할게요! 진정되면 말하세요. 미스터 강. 후훗.]

잔뜩 힘이 들어간 나머지 터져버릴 듯, 심지어 아픔까지 느껴질 정도로 부풀어 오른 물건에 얼굴이 새빨갛게 뜨거워졌고 정신없이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부풀어 오른 녀석 때문에 팔자걸음을 해야 했지만.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예전의 나였다면 별다른 대응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자신이 조금은 변했나보다. 초면이라 가만히 있으려고 했던 내게 방금 전 칼리 켈로스의 행동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가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 작품 후기 ============================

비비vivi님 5 장 감사합니다.

승찬이아빠님 5 장 감사합니다.

하안숨님 3 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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