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6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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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나오면 1호 앨범 나한테 바로 줘야 되는 거 알지? 사인까지 해서? 나 바로 SNS에 올릴 거라구! 이건 대박이야! 대박! 내 앞에서 컨트리 냄새나는 음악을 이렇게 잘 부르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것도 한 두곡도 아니고! 진짜!]
[진짜 온 몸이 녹아버릴 것 같아. 너무 마음에 들어.]
[어때? 네 취향대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다른 남자랑 잔 적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거. 전부 네가 가르쳐 준거야. 그러니까! 넌 날 기쁘게 할 의무가 있다구? 알겠어요? 신사님? 뭐, 굳이 대답을 안 들어도 넌 언제나 날 기쁘게 만들었지만.]
녀석은 정말 일주일을 꼬박 채우고 떠났다. 단순히 지나가는 말로 일주일 내내 머물겠다는 말을 한 게 아니라는 듯 알차게 내게 달려들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녀석 덕에 심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편하게 대화할 만한 아는 사람이 한 손가락도 안 되는 이곳 미국에서 녀석이 없었다면 처음 며칠간은 평온했을지언정 알게 모르게 지루하거나 따분했을 것도 같았으니까.
[한국 스케줄이 많아서 이번 해에는 이곳에 오는 게 힘들 것 같아요. 그동안 관리 좀 잘 해주세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어주신 만큼 잘해내보겠습니다.]
게다가 내가 집을 비울 때나 머무를 때나 집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녀석의 소개를 관리인을 구할 수 있었는지라 큰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고 말이다.
[내년에는 아무래도 미국에서 보내는 날이 많을 거에요. 앨범도 생각하고 있고 그 전에 이곳에서 휴식기도 가질 생각이니까요.]
[언제 방문하셔도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게 준비해놓겠습니다.]
어쨌든 존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남자와의 고용계약을 마무리한 뒤, 나 또한 짐을 하나, 둘 챙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물기엔 한국에서 벌여놓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
[아무래도 오늘 출국은 힘들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얼마 정도 미뤄지실 것 같습니까?]
나라가 커서일까. 아니면 내 운이 한계에 도달해서일까. 지난 스위스와 만재도에 이어서 또다시 기상으로 인해 비행기가 못 뜨게 되자 이제는 그러려니 할 정도가 돼버렸다.
물론, 내가 그동안 비행기를 탄 횟수에 비해 이렇게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못 뜬 경우는 비율로 따져봤을 때 그다지 높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낮은 편이었다.
[날씨가 많이 안 좋아서 잘은 모르겠는데, 늦어도 내일 오후는 이륙할 수 있다 네요.]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왠지 이런 경우는 나에게만 있는 것 같고 또 빈번한 것 같게 느껴졌는지라 유난을 떨 수밖에 없었다. 온 김에 면세점 쇼핑이나 하자싶어 면세구역을 둘러볼 때 들려온 낯익은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말이다.
“오빠?”
목소리를 들은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그 정도로 애교 있는 목소리는 흔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LA공항에서 나를 보며 반갑게 오빠라 부르며 나를 알아볼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기에 굳이 피하지 않았다.
“은지?”
“히히. 오빠 진짜, 진짜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보는 거! 그것도 한국도 아니고 LA공항에서!”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의 경험상 그 목소리가 단순 내 팬의 것이었다면 내 이름이나 성을 부르며 달려들지 언정 다짜고짜 오빠라 부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의아하긴 했다. 한국의 방송사 하다못해, 여의도나 아니면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주친 것도 아니고 LA공항 면세구역 한복판에서 마주칠 줄은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녀석의 곁에 있어야할 녀석들은 보이질 않고 코디로 보이는 이 한명만 달랑 대동한 채 나를 올려다보는 은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했으니까. 그래서 물어보았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다두고 너만 이렇게 면세구역에 있냐고.
“K-FESTIVAL하고 귀국하려는데 비행기가 다 지연 됐다고 해서요. 오빠는요?”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봤어도 이 질문의 답을 이미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나도 참 한심했다. 정작 나 자신도 날씨 때문에 한국으로 가지 못했으면서 정작 녀석에게 똑같은 이유를 듣기 위해 질문을 던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숙소는?”
어쨌든 그런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의 한숨을 던지는 것도 잠시, 자초지종을 듣게 되자 걱정부터 앞섰다.
“응? 매니저 오빠가 지금 공항 쪽에 비행기 스케줄 알아보러 갔어요. 우리는 그 시간에 코디 언니들이랑 대기하라 하고요. 저는 엄마 줄 선물 사느라고 잠깐 코디 언니랑 같이 여기 온 거구요!”
물론 회사 관계자인 매니저가 있는 만큼 숙소를 잡는 다던가, 갑작스런 지연 사태에 대비를 할 테지만 말이다.
“은지 너! 오빠가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너 이렇게 행동하다가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 지혁씨 아니십니까? 지혁 씨가 여긴 웬일로...?”
그런데 막상 은지를 찾으러 온 듯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매니저를 보아하니, 썩 믿음직스럽지 않아 절로 불안한 마음이 감돌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이는 매니저를 그만뒀거나 다른 분야로 갔는지는 몰라도 모습을 드러낸 매니저는 누가 봐도 어려보이는, 많아봤자 은지보다 한두 살 많을 것 같은 초짜인 것 같았으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애들 숙소는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소속사 측에 연락을 하고 숙소부터 잡아놓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VIP라운지가 있다고는 해도 그곳에서 하루를 꼬박 새우는 건 여러모로 불편할 텐데요. 혹시나 비행기가 오늘 못 뜨면 더욱 그럴 테고요.”
“아무래도 이곳이 점심 인만큼 한국은 새벽인지라 현재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애들은 어쩌시려고요.”
“그게... 일단 몇 시간만 이곳 라운지에서 대기하고 한국과 연락이 되면 조치를 취하려고 합니다. 어차피 애들 점심도 먹어야 되고 면세점 쇼핑도 하라고 하면 될 것 같아서요.”
하아. 그런데 역시나였다. 내 불안감이 꽤나 신통력이 있는 듯, 매니저의 대응수준이 기대에 못 미칠 정도가 아니라 그냥 바닥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중소 기획사인이상 일개 매니저, 그것도 초짜인 매니저의 권한이 많을 래야 많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경험이 없는 만큼 이런 일의 대처에 회사 대표에게 일일이 승인을 맡아야할 테고 말이다.
그래서 마냥 매니저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오늘 저녁까지 비행기가 안 뜬다는 게 확실시 되면 공항에 있는 밴 택시를 타든 뭘 타든 해서 이곳 주소로 오세요. 지금 보니까, 공항 호텔부터 이 부근 숙소는 거의 자리가 없을 테니까.”
“네?”
“대표님한테는 제가 말할 테니까.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있다 해도 제가 말한 방편이 더 나을 테고.”
어쨌든 내가 보지 못했으면 모를까, 직접 본 이상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혁 씨한테...”
“저는 상관없으니까, 공항에서 대기하다 아까 말한 대로 비행기 안뜰 것 같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오세요. 괜히 애들 피곤하게 하지 마시고요.”
어차피 날씨도 날씨이거니와, 저녁 늦게 날씨가 갠다 해도 이미 내일 귀국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Amiga애들에게 신경을 끄기엔 저들과 나의 사이는 그리 간단치가 않았으니까.
“오빠, 정말 그렇게 해도 되요?”
“그래. 딱히 상관없으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와. 알겠지?”
“네!”
물론 걱정은 됐다. 은지를 제외한 녀석들의 마음을 안 순간, 나 나름대로 제법 강하게 녀석들에게 선을 그었고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로 내게 선을 그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로부터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점,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제시한 방안이 최선이라는 점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뭐, 은지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다른 멤버들한테도 말해주고.”
“네!”
“실례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애들부터 먼저 생각하세요. 저는 아까 말했다시피 딱히 상관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매니저와 은지에게 일러두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혹시나 비행기가 오늘 저녁에라도 뜨게 된다면, 당장 하루, 하루가 소중한 수익원인 아이돌로서 Amiga는 즉시 귀국하는 것이 최선일 테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은지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내 옷자락을 살포시 붙잡은 것은.
“오빠! 그런데 저기...”
“응?”
조금 당황했다. 혹시나 말하지 않은 다른 상황이 있는 것일까 싶었으니까.
“해연 선배님도 우리랑 같이 행동하기로 했었거든요.”
“뭐?”
그런데 막상 듣게 된 녀석의 갑작스런 행동의 이유는 다른 의미에서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최 측에서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앞 비행기가 오버부킹이 돼서요. 그래서 해연 선배님하고 우리만 이렇게 남게 됐는데... 우리만 오빠한테 가게 되면... 해연 선배님도 코디 한분이랑 있긴 한데, 그쪽 매니저 분들이 우리한테 부탁했거든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같이 있어달라고요.”
전혀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름이 은지의 입에서 언급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덕분에 일이 꽤나 귀찮아질 것 같은 본능적인 예감이 뇌리를 스치듯 다가왔으니까.
“예, 그런 부탁을 받긴 받았습니다. 코디 분이랑 같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두 분 다 여자라...”
은지의 말이 사실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수긍했는지라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단맛도 통용될 수 없을 정도로 내 입안은 쓰디쓴 맛을 내게 선사하고 있었으니까.
“물어는 봐. 그 대신 불편한 기색 보이면 더는 권유하지 말고. 오히려 그게 실례니까. 알겠지?”
“네! 오빠! 히히!”
이렇게 나온 이상, 딱히 예외를 둘 수 없었다. 그냥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선 비행기로 떠난 매니저가 Amiga측에 구두로나마 김해연 일행을 부탁한 만큼 어떻게든 저들 입장에선 같이 움직이는 게 도리이고 의무 아닌 의무일 테니까.
“그럼 저는 이만. 은지야 오빠 갈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알겠지?”
“네! 히히.”
그래도 내 주위에서 신이 난 듯 방방 뛰는 은지를 보는 와중에도 나는 믿었다. 나만큼이나 그쪽 또한 나를 껄끄러워할 것이고 10명 가까운 대인원인 이쪽과는 달리 그쪽은 단 둘 뿐인 만큼 숙소를 구하는 것이 훨씬 쉬워 차라리 공항에 머무르는 것이 여러모로 편해 할 것이라고.
*
[지혁 씨, 지금 입구에 한국에서 온, 아! 은하 정 그리고...]
[들여보내주세요. 제가 아는 사람들이에요.]
공항 부근에서 머물렀던 먹구름이 이곳까지 기세를 확장한 순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녀석들이 찾아올 것을 말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저녁 전에 이곳에 도착한 것을 보니 초짜 매니저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경험과 권한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Amiga 매니저의 첫 인상은 영 별로였으니까.
어쨌든 손님이 온 만큼 나 또한 마중을 나가게 됐다. 비록 테일러 녀석에 의해 새로 증축한 이 집의 첫 손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초대한 첫 손님이니까.
그나저나, 집이 꽤 커져서 그런지 녀석들을 들여보내라고 한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현관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다. 아니, 이 정도로 입구에서 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차를 타고 왔으면서 설마 입구서부터 걸어오는 건 아니겠지?
왠지 모를 설렘에 마음이 조급해져서일까,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현관문을 내 스스로 열어 밖에서 녀석들을 마중하려 했다.
“실례합니다.”
때마침 바깥쪽으로부터 열린 현관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렇게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나게 됐다. 그 때문에 방금 전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못했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지혁 씨. 오랜만이네요.”
그 결과, 뒤늦게 갸우뚱하는 것도 잠시, 설렘 가득한 얼굴이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얼굴은 내게 일말의 불안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이의 얼굴이었으니까.
============================ 작품 후기 ============================
설날이라서 심야영화나 혼자 보려했더니, 극장 예매가 꽤나 다양해졌네요.
좌석 종류도 엄청 여러가지인 것 같고.
다 상술이고 가격을 올리는 꼼수이지만 기꺼이 감수해야 될 것 같습니다.
독과점이 되게끔 만든 것에 대형 극장의 편리함에 취해 그곳들만 애용했던 제 잘못도 어느 정도 있는 거니까요.
뭐 어쨌든 오랜만에 새벽 2시 영화 보려했는데 쩝... 그냥 자겠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