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04화 (204/502)

00204  2015  =========================================================================

#

“안무가 한 달 안에 좀 해달라고 하면 뚝딱 나오냐? 무슨 우리가 도깨비 방망이야? 금 나오라고 하면 뚝딱 나오고 은 나오라고 하면 뚝딱 나오는 것처럼 안무가 제 알아서 나오게?”

“뭐, 나올 지도?”

“그렇다고 대충 만들면 퇴짜 놓을 거 아냐?”

“그건 그렇죠. 당연한거 아니에요? 한두 푼 주는 것도 아니고”

“이 새끼가!”

“악! 이씨! 자꾸 때리지 말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내 방식을 잘 알고 실력 있는 안무가라 할지라도 이번 부탁은 확실히 어려운가보다. 웬만해선 안 된다고 하는 법이 없던 아줌마가 저렇게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니 말이다.

“그래도 안무비랑 인센티브는 확실한데 안할 거에요? 나 그런 면에선 확실한 사람인데. 뭐, 알잖아요? 겪어봐서.”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딱히 기본적인 사항을 설명하지 않고도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안무가는 아쉽게도 눈앞의 아줌마뿐이니까.

“하아...”

“이건 저번에 I Need You 안무 비.”

“크흠...”

“저번에도 꽤 넣긴 했는데. 이번에는 크게 한 장 더 넣었어요. 언제나처럼 고생한 형들이랑 크게 회식한번 하세요.”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꿀을 대접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만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줌마와 나 정도 사이에 이 정도면 꽤나 큰 윤활유가 돼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뭐, 스스로 평가하건대 오늘 뿐만 아니라 그전에도 이 점에 대해서 섭섭하게 대한적도 없었고 말이다.

“‘불타오르네’는 순전히 100% 아줌마, 아! 알았어, 알았다고요! 여튼 뭐... 그쪽, 아니 선생님? 뭐 어쨌든 100% 만들 테니까, 안무 비도 더 높겠죠. 아무래도. 거기다 난 ‘I Need You’도 그렇고 ‘불타오르네’도 1등 할 것 같으니까 인센티브도 당연히 받으실 테고.”

“흐음...”

“혹시 알아요? ‘개 쩔어’처럼 빌보드 대박 나서 그때처럼 아줌, 아니 선생님한테 인센티브 작살나게 줄지?”

어쨌든 효과는 있는 듯 했다. 나름 고심한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지만 아줌마의 책상 밑 다리는 쉴 새 없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으니까.

“내가 자본주의에 굴복해서 일을 맡기는 하겠다만... 너 이거 확실히 무리라는 거 알지?”

“모르면 여기 왔겠어요? 아줌마나 되니까, 여기 온 거지. 악! 아 자꾸 씨!”

“알면 됐다. 무리라는 걸.”

이럴 때면 씁쓸하긴 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들의 태도라는 점에서 말이다. 뭐 내 입장에서는 지금 이 시대가 자본주의라는 것이 플러스가 되면 됐지, 마이너스는 안 될 테지만.

“그리고 결과 봐서 괜찮으면 일거리 하나 더 드릴게요.”

“뭐? 이게 진짜.”

“아니, 일거리 준다는 데 이렇게 사람을 구박하나? 나 참. 다른 댄스 팀 알아볼까보다.”

어쨌든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빠르면 8월 말, 늦으면 9월쯤에 컴백할 애들이 있어요. 곡은 이미 나왔고 안무도 대충 메인은 내가 생각해놓은 게 있어서 ‘불타오르네’랑 다르게 ‘I Need You’처럼 연결 부분이랑 동선만 맡아주면 되고요. 대충 6월 중순, 늦어도 말까지는 완성시키셔 우리한테 줘야하는데 어때 콜?”

“그거는 일단 나중에 얘기하고. 불타오르네? 그건 어떻게든 4월중으로는 만들어볼 테니까. 계약서나 가져와.”

“관리사님이 이번 주 중으로 계약서 가지고 여기 올거에요. 그때 도장 찍으시면 됨.”

말은 미리 꺼냈지만 상대적으로 Trendy는 준비하는 데 여유가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오늘 도대체 몇 대를 맞은 거야? 하아. 나 진짜 이렇게 맞고 다녀도 될 사람 아니라니까!

*

아줌마와의 일을 마무리한 채 서둘러 강남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레 울린 핸드폰 알람이 아니었다면 큰 실수를 할 뻔 했으니까.

[동운 삼촌 결혼식 축가 13:00]

요즘 아무리 갓식스, Trendy 컴백 그리고 드라마 준비와 더불어 개인적인 일 때문에 심사가 복잡했다고는 하나,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내가 너무 한심했다.

“축하드려요. 삼촌.”

말이 큰 실수지, 내가 그 알람을 못 봤다면 동운 삼촌 일생의 한번 뿐일 결혼식은 축가 없이 진행되었을 테니까.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

“지, 지혁아! 진짜로 와줬구나!”

“네?”

나를 보며 ‘진짜로 와줬구나’라는 알다가도 모를 말을 건네는 동운 삼촌 때문에 잠깐이나마 의아하게 됐지만.

“삼촌이 뭐야. 형이지. 형. 자! 형이라고 해봐. 형!”

“나이 차이가...”

“에이. 얼마 차이 안 난다니까?”

“야! 동운! 너! 지혁이 곤란하게 하지 말라니까!”

“안녕하세요. 석재 삼촌.”

“그래 오랜만이다. 지혁아.”

어쨌든 동운 삼촌의 눈빛과 행동에서 정말로 내게 고마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는지라 내가 다 고마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란 존재가 그리 작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이렇게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동운 삼촌의 모습은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으니까.

“혹시나 해서 말해본건데. 정말 고맙다.”

“아니에요. 이렇게 결혼하시는 거 축하해 드릴 수 있어서 제가 더 좋은 걸요.”

“우리 고은이도 네 팬이라서 엄청 좋아할 거야. 축가 너라고 하니까, 그때도 엄청 좋아했거든.”

그래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길어봤자 5분 남짓할 시간이지만, 동운 삼촌과 신부님에게 있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정도로 말이다.

“연습은 하셨어요?”

“그게... 그때처럼 한다고는 했는데...”

“그럼 여기서 식전까지 연습 해볼까요?”

“그래 형. 한번 해봐. 나 다시 손님 맞으러 가야되니까. 한번만 듣고 가게.”

“그래, 해보자.”

어쨌든 같이 축가를 부르기로 한 석재 삼촌의 긴장한 모습 그리고 설렘 가득한 동운 삼촌을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당사자를 비롯하여 축하해주러 온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오늘은 ‘결혼식’. 신랑, 신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날이니까.

[청혼하는 거에요]

오로지 오늘만을 위해 준비했어요.

그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길 원하고 또 바랐죠.

근사하게 프러포즈를 해줄까 아니면 예쁜 반지를 끼워줄까.

심장이 멎을 만큼 기다려왔던 날 바로 오늘이죠.

......

검은 머리에 흰 머리가 하나, 둘 생길 때 내가 지겨워도 날 안아줘요.

고마워요. 내 곁에서 영원히 있어줄 그대가.

그대는 나의 사랑스러운 여자 그대는 나만의 여인.

그대는 나의 영원한 반려자 내 프러포즈를 받아주세요.

그대는 나의 사랑스러운 여자 그대는 나만의 여인.

떨리는 내 마음을 받아줘요. 나 지금 청혼하는 거에요.

*

“삼촌은 어떻게 결혼할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동운 삼촌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래서 옆에서 공항으로 떠나는 동운 삼촌을 같이 배웅하던 석재 삼촌에게 문득 물어봤던 것 같다. 앞서 결혼이라는 것을 겪어본 이에게 말이다.

“응?”

아마 그런 내 질문이 석재 삼촌에게는 꽤나 뜻밖의, 뜬금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쁜 표정으로 동운 삼촌을 배웅한 뒤, 피로연 자리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나는 그저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우두커니 서있었으니까.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한 건데?”

하지만 석재 삼촌은 이내 당황한 기색을 지운 채 나를 이끌고 근처 흡연실로 데려갔다.

“그냥요. 궁금해서요...”

담배를 피지 않는 나와 담배를 끊은 지 오래인 석재 삼촌이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막상 도착해보니, 아무런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온전히 삼촌과 나 사이의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 곳 이구나를 깨닫게 되었으니까.

“흠... 잘 모르겠어요. 하는 연애마다 뭔가 그 끝이 안 좋아서요. 영원한 사랑이 있을까.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사람도 나를 바라봐줄까. 뭐 이런 회의감만 들어요. 요즘엔.”

그래서인지 술술 흘러나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석재 삼촌에게 이런 말을 털어놓는 것이 내 자신도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말이다.

“많이 힘들었니?”

다만, 동운 삼촌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는 것만 떠올랐다. 이어진 석재 삼촌의 말에 순간 눈물이 고일 정도로.

“괜히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지.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아물고를 반복해야지 그런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놀라곤 했는데... 그래. 그렇지. 힘들고말고.”

굳이 화려한 미사여구는 아니었지만, 그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그동안 힘들었냐는 듯 내 등을 다독여주는 석재 삼촌의 손길에 그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 순간 내가 갑자기 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게 됐으니까.

“동운 삼촌을 보면 너무 행복해보여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아요. 사랑을 하는 게 두렵고 누구에게 마음을 주는 게 무서워요. 차라리 혼자인 게...”

나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내가 바라고 바라던 모습이 되어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던 동운 삼촌이 내 자신을 너무나도 초라하고 왜소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래, 안 힘들면 그게 사람이 아니지.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지혁아.”

그렇게 한동안 석재 삼촌의 어깨를 빌렸다. 계속해서 어깨와 등을 다독여주는 석재 삼촌의 손길이 그만큼 따뜻했으니까.

*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마라. 지혁아. 그냥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면 돼. 복잡한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면 만나고 싫으면 헤어지고.]

너무나도 갑작스런 내 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방송에서 인연을 맺어 서로를 삼촌과 조카 관계로 규정지어 부르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가까운 사이도 아닌 내가 뜬금없이 자신의 눈앞에서 눈물을 흘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냥 이 사람 옆에 있으면 좋겠다. 이 사람이라면 같이 늙어가고 같이 과거를 추억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사랑이 언젠가는 꼭 올 거다. 지혁아. 그걸 놓치지 않는 다면 너는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을 맞보게 되는 거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재 삼촌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었고 진심어린 답변을 해주었다. 그 답변이 본인의 경험해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에게 들었던 얘기들에서 비롯된 것인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뭐, 너는 아직 젊으니까, 그런 허무함보다는 굳이 멀리 내다 볼 필요 없이 지금 현재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자주 만나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너도 알다시피 삼촌이 한 때......]

그래서 그렇게 한참동안 나를 다독여준 석재 삼촌이 다음 스케줄 때문에 바쁘게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정말 죄송했다. 뜬금없는 내 행동으로, 마침 그 순간 내 옆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정작 배 조차 채우지 못하고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려 이동하는 석재 삼촌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때마침 며칠 전 연지가 내게 속삭였던 말이, 애써 감정을 숨긴 채 담담히 내게 속삭였던 말이 떠오른 것은.

[상관없어. 내가 느끼는 이 따뜻함이 사랑이 아니어도.]

[네가 날 욕구를 푸는 용으로 생각해도 좋아. 난 그래도 네 곁에서 이렇게 있는 게 훨씬 좋으니까. 게다가... 나만 가질 수 없는 게 아니잖아? 모두가 네 사랑을 가질 수 없다면 그냥 지금처럼 네 옆에서 이렇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만약... 아주 만약에... 네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내가 아니라면... 관계를 계속가지고 싶지 않다면 떠나줄게. 계속 옆에서 있으라고 하면 있고.]

[뭐, 나도 딱히 상관은 없어! 나도 좋아하는 사람 따로 생기면 가차 없이 너 버리고...... 떠날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날 봐! 나랑 있을 땐.]

어째서 지금 이 순간 연지의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저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이렇게 마음 어딘가가 고장나버린 내가 뭐라고 그녀가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 내가 어디가 좋길래, 그녀가 그런 아픔까지 감내해야 하는 지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으니까. 그저 머리만 복잡해지기 시작했으니까.

============================ 작품 후기 ============================

조아라 측에서 이북 계약 제안을 받았습니다.

보니까 계약을 한다고 해서 딱히 연재가 중단되거나 그런 점은 없는 것 같아서요.

처음이다보니까 조금 알아보느라 대답은 안했는데, 아무튼 이런 제안이 있었습니다.

이번 설에 고향에 안내려가기로 했어요.

그래서인지 이번 연휴가 긴게 그다지 좋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독자분들에게는 연휴가 긴게 아무래도 좋겠죠?

새해복많이 받으시고요. tv에서 명절이라고 재밌는 예능 파일럿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가족, 친지 분들이랑 재밌게 보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는 명절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