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1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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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어?]
침대에 누워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그때였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테일러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거리낌 없이 그녀를 품었고 내 마음껏 욕구를 해소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어제 거실 풀에서부터 시작된 관계가 아침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결국 우리 둘 다 지쳐 잠에 빠졌는지라 해가 져버린 지금에서야 일어나버렸으니까.
[뭐가?]
[나 잘하는 거 같아?]
[콜록 콜록]
그런데 깨어나자마자 하는 얘기가 이런 내용이라니,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하다. 날 당황시키는 것 하나는 세계에서 최고인 것 같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런 말을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도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서 하니 오죽할까.
[난 네가 처음이지만, 넌 내가 처음이 아니잖아. 그래서 궁금했어. 내가 너한테 어느 정도의 기쁨을 줄 수 있는지.]
널 어떻게 대해야할까. 도무지 감이 안 왔다. 하아.
녀석에 대한 생각만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또다시 머리가 아파왔는지라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녀석 입장에서는 방금 전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별로였어? 정말? 나... 그래도 본 건 있어서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네가 잤던 여자들보다 별로였어? 나 정도면 완벽하지 않아? 얼굴 예쁘지. 몸매 예쁘지. 나 이거 관리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어진 녀석의 서운함이 가득 담긴 말에 아차 싶었다. 그래서 녀석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너 품 너무 따뜻해... 나 불면증 있었는데. 이렇게 품에 안겨있어서 정말 푹 잘 수 있었어.]
물론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녀석의 불면증을 고쳐줬는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솔직한 말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키가 178cm나 되는 녀석 답게 길게 뻗은 다리 그리고 볼륨감 넘치는 몸매까지 모든 게 남자의 본능과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으니까.
[상상만 해왔던 순간들인데 현실이 그 상상보다 훨씬 좋아서 너무 좋아. 네가 너무 완벽하니까. 뭐, 이 요술봉도 너무 마음에 들고.]
하지만 자꾸만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대는 녀석의 말 하나, 하나가 점점 부담되었는지라 화제를 돌릴 필요가 느껴졌다. 더군다나 때마침 허기가 꽤나 심하게 느껴졌으니까.
[배 안고파?]
[그러고 보니까, 뭐 안 먹은 지 엄청 오래됐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하다가 바로 잤으니까?]
그런데 그게 녀석의 무엇인가를 끄집어 낸 듯 했다.
[너 무슨 동네 라이브 카페 운영한다며. 거기 가보자. 거기 술도 판다며.]
[거길? 지금? 뜬금없이?]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라이브 카페를 언급하는 녀석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욕조로 향하려는 테일러를 보자니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왜? 오늘은 안 해?]
[그건 아닌데...]
[그럼 가자!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즐기는 지 궁금해. 네가 어떻게 꾸며놨을지도 궁금하고. 술은 내가 쏠 테니까.]
덕분에 눈은 호강을 할 수 있었지만 머리는 다시금 아파왔다. 물어본 내가 잘 못이지. 어휴. 그 술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살 테니까, 안가면 안 되냐?
*
[근데 이 차 산지 얼마나 됐어?]
[왜?]
[아니, 방향제가 있어서 향기가 좋은 줄 알았는데, 가만히 맡아보니까, 새 차 냄새도 나서.]
[산지 얼마 안됐어. 너 오기 전날 인수받았고.]
새로 차를 구입했다. 지난 기억들이 묻어있는 차를 팔아버린 뒤 딱히 구입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럴 수가 없게 됐으니까.
[오! 나 때문에?]
[어차피 차 필요했었어. 마침 너 왔는데, 안내해주기로 해놓고 차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조금 앞당긴 거고.]
[이 차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왜? 너도 사게?]
물론 이동할 때마다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게 딱히 상관은 없었다. 다만, 신변 상 위협에 관한 문제 때문에 경호하는 이들이 애를 먹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를 구입하게 됐다. 더군다나, 때마침 테일러가 한국으로 오게 됐는지라, 차 한 대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했으니까.
[아니, 그냥 차가 꽤 크길래. 너 이렇게 큰 차 좋아하나봐?]
[뭐, 넓은 차라기보다는 그냥 사다보니까. 이름은 레인지로버 LWB인가? RWB인가 그럴 거야.]
[뭐야, 시시하게... 뭐, 어쨌든 좋네. 편하고.]
차를 고르는 데 취향을 따질 줄은 몰랐다. 예전의 나였다면, 차는 그저 어쩔 수 없이 타야만 하는 교통수단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또 다른 차를 고르려다보니 내 취향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안전이니 뭐니 하는 이유도 분명 존재했지만 세단이나 경차보다는 묵직한 SUV에 끌리는 내 자신을 문득, 문득 느끼곤 했으니까.
어쨌든 만족했다. 길게 뻗은 다리를 뽐내며 내 무릎위에 앉은 녀석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 너 거기 의자 안 보이냐? 네가 앉아야 할 데는 여기가 아니라 거기라고.
[나 근데 하고 싶었던 거 있는데.]
[뭔데?]
내 무릎을 자신의 카시트마냥 여기는 모양인지, 도무지 자리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의 말에 그저 자포자기 해버렸다.
[카섹스.]
[콜록 콜록]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골반과 함께 들려오는 녀석의 말에 사례가 걸려버렸지만. 하아.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어?]
겨우 녀석을 밀어내고서야 회사 근처 별자리들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아. 기운 빠져.
[아니, 이런 거 쉬운 생각 아니잖아. 더군다나 24개나 만들었다며? 건물까지 다사서.]
어쨌든 막상 도착하고 보니, 녀석의 두 눈이 꽤나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라이브 카페 오픈 시간인지라, 4개의 별자리 카페가 모여 있는 이곳은 사람들로 인해 꽤나 분주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뭐, 관심이 있으니까 나름 조사 좀 했지.]
괜히 이곳에 가보자고 한 것이 아닌 듯, 녀석 또한 자기 나름대로 별자리 카페들에 대해 알아본 듯 했으니 말이다.
[그냥... 한국은 미국이랑 조금 다르거든.]
[달라? 뭐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었다. 제 아무리 내 영어회화 실력이 일취월장 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일상회화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뿐만 아니라,
[4명에서 많게는 10명 넘게 그룹을 이루지 않으면 못 살아남아. 방송 무대도 못서고.]
[그래? 그럼 콘서트나 그런 거 하면 되잖아.]
[그것도 힘들어. 실질적으로. 음... 그러니까...]
한국 가요계의 현실은 꽤나 복잡하기 그지없어 한국말로 설명한다 해도 한참 걸릴 화제였으니까.
[흠... 뭔가 있나보네.]
그래서 그런 복잡한 설명 대신 이 기획을 생각해냈을 당시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룹이 아닌 가수들이나 가수 지망생들한테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었어. 나도 연습생, 아니 그러니까 그들이랑 처지가 다르지 않았거든.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계속 그랬을 테고.]
다른 미사여구 필요 없이 그 마음이라면 녀석 또한 이 별자리 카페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역시 멋있어. 밤에도 환상적인데 이런 모습 보니까, 그냥도 더 멋있는 것 같아.]
뭐, 그게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갔는지 생각 외로 돌아오는 반작용이 심한 듯 했지만.
어쨌든, 대놓고 별자리 카페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라 관계자에게 따로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뒷문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조명과 음악이 가득한 실내에서는 우리 둘 다 정체를 들킬 염려 따윈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관리자에게 전화를 하며 건물의 뒤편으로 이동하던 그때였다. 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광경이 그리고 녀석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광경이 펼쳐진 것은 말이다.
“별 자리 카페 지켜주세요!”
“폐쇄하지 말아주세요! 가수들의 꿈을 지켜주세요!”
[근데 저 사람들은 뭐야?]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끄럽게 함성을 질러대는 것을 본 탓일까, 녀석의 입에서 저 광경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이 못 본 척 그냥 지나갔다면 나 또한 그들을 무시한 채 지나가려 했으니까.
[너랑 관련돼 있는 거야...?]
하지만 그런 나의 굳은 표정에 녀석의 얼굴이 순간 조심스러워졌는지라, 서둘러 굳은 얼굴을 풀 수밖에 없었다. 괜히 내 일에 녀석의 한껏 들뜬 기분을 망치고 쉽지 않았으니까.
[시위하는 거야. 이 카페들 폐쇄하지 말라고.]
[응? 폐쇄? 뭘 폐... 아! 이 라이브 카페 이제 안 할 거야?]
[그냥 허무해져서.]
자세한 사정을 묻는 녀석의 질문에 그냥 솔직히 털어놓아 버렸다. 별자리 카페가 어떤 논란을 겪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유언비어에 휘말려야 했는지, 그리고 저들의 이중적인 행동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에 관해서 말이다.
솔직히 어쭙잖은 내 영어실력으로 이를 제대로 설명했는지 자신이 없었지만, 이내 어느 정도 녀석이 내 말 뜻을 알아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딴 쓰레기 때문에 네 뜻을 져버릴 필요는 없어. 쓰레기들은 쓰레기들이니까.]
녀석이 방금 전 나와 같이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시위하는 이들을 바라본 채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으니까.
[얼굴 풀어. 인상 굳는다.]
그래서 서둘러 녀석의 이마를 가볍게 손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정말 듣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내게 해주지 않았던 말을 해준 녀석에게 고마웠지만 대놓고 표현하기엔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는지라,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럼 그냥 네가 운영에서 아예 손 떼버려. 굳이 머리 아프게 그런 거까지 일일이 신경 쓰는 이유를 모르겠네, 나는?]
그런데 녀석은 생각 외로 분개한 듯 했다. 마치 자신의 일인 듯 내 품에 안겨오더니, 온갖 불만과 함께 앞으로의 일을 코칭하기 시작했으니까.
[회사든 뭐든 무슨 상관이야. 그냥 넌 이용료만 받으면 되잖아?]
[그게 무슨 차이인데? 내가 손을 떼는 거랑 지금이랑.]
그렇게 내게 안겨오는 녀석의 부드러운 살결에 약간이나마 정신이 혼미해져서일까. 녀석이 하는 말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의 차이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녀석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럼 사람들이 알겠지. 네가 얼마나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는지. 얼마나 푼돈으로 그걸 누리려고 했는지.]
녀석이 방안이랍시고 내민 해결책은 내게 가장 큰 배신감과 허무함을 안겨다준 이들에게, 어떻게 보면 가장 적나라하게 현실을 일깨워줄 수 있는 방편이었으니까.
*
[마약이나 뭐 그런 거랑은 전혀 거리가 머네?]
개인당 살 수 있는 술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흠뻑 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기대이상으로 신난 듯 보였다.
[기분 좋아졌어. 너무.]
주변 시선들을 피하기 위해 대충 차려입고 화장도 안 한 채 나왔지만, 녀석의 얼굴은 분명 생기가 넘쳤고 웃음이 가득했으니까.
[오늘처럼 이렇게 경호원도 없는데서 거리낌 없이 노래 들어본 거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나 또한 즐거웠다. 맥주병을 부딪치며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가수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생각 외로 즐거웠는지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으니까.
[뭐,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어서 유감이었지만. 나 한국말 배워볼까?]
[응? 갑자기?]
[그냥 재밌을 것 같은데.]
그런데 녀석은 정말이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지닌 것 같았다.
“옵빠?”
도대체 어디서 저런 말을 들었는지,
[이거 맞나? 한국 남자들은 이 말 하나면 뿅 간다던데.]
무슨 반응을 보고 싶어 저런 말을 알아오고 또 내게 건넸는지, 그윽이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으니까. 더욱이,
[그런데 진짜 안 해 줄 거야?]
[뭐, 뭘?]
[여기서 너랑 하고 싶어. 지금 당장.]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내 무릎위에 올라탄 녀석의 행동에 온 몸이 굳어버렸으니까.
============================ 작품 후기 ============================
monar님 5 장 감사합니다.
비비vivi님 1 장 감사합니다.
하안숨님 14 장 감사합니다.
하안숨님 1 장 감사합니다.
200화 축하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