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7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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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랑 목소리는 슬펐는데... 왠지 모르게 그냥 안타까웠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고슴도치도 떠오르고... 아! 내 정신 좀 봐.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노래 너무 좋아요!]
간신히 흘러나오는 감정의 홍수를 막아 세웠지만,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에게 감탄을, 슬픔을 안겨다주는 데 성공했지만 오로지 한명만은 다른 것을 느낀 듯 했다. 그래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무뚝뚝한 표정만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저 연습생 소녀의 눈과 마주하자니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내 자신을 느꼈으니까.
“음... 뭐 먹을까... 등심도 맛있을 것 같고 안심도 괜찮을 것 같고... 육회도...”
하아. 상념이 너무 길었나보다.
“등심 3인분 주세요. 육회 비빔밥도요. 아! 술은 소주로 아무거나 가져다주세요.”
자리에 착석한 지 벌써 10분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녀석의 중얼거림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문을 해버렸다. 때마침 밑반찬을 가져온 종업원에게 말이다.
“어? 뭐야? 나 아직 안 골랐는데, 왜 먼저 시켜?”
“안 고르긴. 그 정도 되면 못 고른 거지. 벌써 메뉴판만 10분 동안 보고 있는데. 그러다가 오늘 내로 먹을 수나 있겠냐?”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리려는 듯 짐짓 녀석에게 장난스러운 말투를 건넸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주문을 하지 않았다면 10분이고 20분이고 계속해서 결정 장애의 선택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그런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저거 먹어. 저거 맛있으니까. 어차피 넌 여기 안 와봤다며.”
“어, 어? 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 정규 3집 앨범 수록곡인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의 녹음 후 그녀를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었으니까.
솔직히 조금 의외이긴 했다. 그녀의 전화가.
그녀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함께 나눈 후 우리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선택을 종용하는 내 장단에 맞춰 그녀가 내게서 거리를 벌리려는 행동을 취했는지라 나 또한 더 이상 그녀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으니까. 뭐, 저번에 녹음했을 때도 그녀의 행동에는 미세하게나마 어색함이 담겨져 있었고 말이다.
“너 조금 바뀐 것 같아.”
“뭐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느낌이 조금...”
“뭔 소리야. 젓가락질이나 해. 고기 타니까.”
어쨌든 반갑긴 했다. 오랜만에 만난 주제에 대뜸 내가 바뀐 것 같다는 이유 모를 말을 하는 녀석의 입에 고기 한 움큼을 집어 넣어줄 정도로.
“왜? 두근두근 했냐? 또?”
“뭐, 뭔 소리야? 너 그리고 반말이 너무!”
“반말 얘긴 이미 끝난 거 아닌가? 그렇게 존댓말 듣고 싶냐? 하긴 서른,”
“야! 죽을래! 으읍!”
“탄다니까, 그러네. 꼭 손을 쓰게 만드네, 만들어. 이제 나이 들었다고 젓가락질도 못하는 거?”
물론 이렇게 편하게 장난을 걸어도 되는 이가 내 주변에는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게 큰 몫을 했지만 말이다.
“그래, 중국 활동은 잘 마무리 했어?”
“응? 응. 저번 주까지 중국에 있다가 그저께 한국 왔어.”
“아무리 해외시장이 좋다지만 국내 활동에 너무 소홀하면 후회할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응. 그래서 원래는 두 달 정도 더 있을 계획이었는데, 회사에서 취소한 것 같아.”
그렇게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꽤나 오랜만에 만난만큼 맛있게 익은 고기를 정신없이 먹는 와중에도 녀석의 중국활동 얘기는 끊이질 않았으니까.
“너는 활동 안 할 거야? 이번 해에 뭐 한거 없잖아.”
“이번 해에 한건 없는데 일은 많았지.”
“어?”
“야, 고기 탄다니까. 아주 먹여달라고 광고를 해라. 광고를. 진짜 젓가락질 못하냐? 손에 힘이 없어? 이제?”
“읍읍!”
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 근황을 묻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부지런히 집게로 고기를 집어 넣어줘야 했지만. 어쨌든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줄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던 내 근황을 묻는 녀석 때문에 곤란하긴 했어도 맛있는 고기에 술병을 하나, 둘 비워가다 보니 기분은 좋았다.
“정아도 데려오지 그랬어. 걔도 집순이잖아. 보다나마 집에 있을 거 아냐?”
“아! 어제 술 마시고 들어와서 오늘은 쉰다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해서 문득, 문득 느껴지는 녀석의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근데... 그거 진짜야? 정아 쉰다고 한거?”
“뭐가? 아! 야! 너 도끼병이냐?”
“설마 나한테 미련 있냐? 아직?”
“내 말 듣고 있냐? 정아한테 전화해 볼래?”
“미련 있으면 전부 버려.”
“뭐?”
“나 그렇게 좋은 놈도 아니고 너한테 상처주기도 싫으니까.”
“뭐래... 그런 거 아니니까! 김칫국 먹지 마.”
“아님 말고. 어쨌든 난 경고했어. 명심해.”
내가 헛 다리 집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다행이었다. 차라리 내가 헛 다리를 집는 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의 파편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
“근데 살 좀 빠진 것 같다?”
뭐, 약간 쪽팔리는 건 감수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시금 살리기 위해 아까부터 아껴두었던 질문을 꺼내들었다.
“어? 아닌데?”
“펑퍼짐한 옷 입어서 그런가?”
“뭐, 뭐? 야! 그대로거든?”
“뭘 그렇게 예민하게 그래. 그냥 그렇다고. 어쨌든 오늘 잘 먹을게. 고기 맛있다야.”
그에 걸 맞는 연속기도 꺼내들었고 말이다.
“뭐가? 뭘 잘 먹어. 무슨 소리야. 그 불안한 멘트는.”
“뭐야, 먼저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쏘는 거 아냐? 원래?”
"야!"
“다음에 내가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입 좀 집어넣어.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야! 죽을래!”
뭐에서 발끈 한거야. 네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거에서? 아니면 나이에서? 아니면 둘 다?
*
두 눈을 뜨자마자 다시금 감아버렸다. 온 몸에 부드럽게 느껴지는 온기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말았으니까.
하아. 이런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욕정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탐하는 섹스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모르지 않았으니까.
[차 있다며. 오늘 택시타고 왔어?]
[팔았어. 그 차는.]
[산지 얼마 안됐지 않았어?]
[왜? 내가 운전하는 차타고 싶냐? 너무 그렇게 대놓고 티내지 마라.]
[뭐래.]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꽤나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택시로 그녀를 바래다주려했었다. 내게 안겨오는 그녀의 행동과 더불어 순간적으로 마비되어버린 이성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샤워를 하면서 몸 안 곳곳에 남겨져있는 어제의 흔적들을 지워갔지만 여전히 심사는 복잡할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예전의 관계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상처밖에 줄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릴 때면 지난날이 너무나도 후회됐으니까.
[어디가...?]
[나 약속 있어. 쉬다 가.]
[응. 저기... 또 연락해도 돼?]
결국 대답을 하지 않고 나와 버렸다. 부끄러운 듯 이불을 한껏 뒤집어쓴 채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다시 만나더라도 그녀를 욕구의 배출구로 여길 뿐, 연애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을 대놓고 할 수가 없었으니까.
누구를 상대로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눠주기엔 지금 내 존재 자체가 불신과 허무로 가득 차 있음을 말해줄 수가 없었으니까.
하아. 이럴 거면 도대체 경고를 왜 하고, 그 오버를 왜 한 것인지. 변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자주 듣곤 하는 요즘, 나 혼자만 부정하고 있었던 그 말이 순간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변한 게 없다고, 평소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데, 주변 사람들의 말이 이런 생각을 바꿔버릴 듯 했으니까.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마음의 파도를 애써 다잡았다고, 가두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나 싶었으니까.
혼돈, 엉망진창, 얽혀버린 실타래.
“지혁씨 오랜만이네요.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안색이 어둡네요. 괜찮아요? 그때 공항사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괜히 걱정 끼쳐드렸네요.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 안하셔도 되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인해 눈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 나온 이유가 눈앞에 있는 이 때문이라는 것을 까먹어버렸나 보다.
하아. 안색이 어두워진 내 상태가 걱정이 되는 듯 괜찮냐고 물어보는 작가님의 말에 서둘러 상념을 머리 밖으로 몰아내 버렸다.
이런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중국이랑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 거기에 중동까지 판권이 팔렸어요. 모두다 지혁씨 덕이에요.”
오늘 이 자리는 이은숙 작가님의 요청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내 개인번호를 알고 있음에도 나를 배려해서인지, 회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의사를 물어봤다는 점에서 나는 차마 이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고 말이다.
어쨌든 이은숙 작가님의 방금 전 말마따나 그저 죄송할 뿐이었다. 주연 주제에 이렇다 할 홍보활동도 하지 않았고 현재 해외 곳곳에 판권이 팔려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방영까지 하고 있는 상속인들의 해외 활동까지 전혀 참가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제 덕이라니요. 작가님이랑 감독님이 워낙 잘 이끌어주셨고 다른 배우들이 홍보 활동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걸요.”
더군다나 40%를 돌파한 국내시청률과 더불어 해외 판권까지 성공적으로 판매가 되어 내게 떨어지는 인센티브의 액수가 어마무시 했는지라 더욱 그러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의아하긴 했다. 단순히 인사 차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보기엔 작가님이 들고 온 문서들이 꽤나 범상치 않아 보였을 뿐더러 무엇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정체모를 불안감이 스물스물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번에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됐어요. 촬영은 10월 중으로 들어갈 거구요.”
“네? 드라마 끝난 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요? 조금 더 쉬다가 하시는 게 낫지 않을 까요?”
“벌써라니요? 저번 작품 탈고한 지 벌써 1년도 더 넘었는걸요? 1년 반? 그 정도면 슬슬 차기작 준비해야죠.”
그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지만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한다는 작가님의 말은 축하해야 할 일이지 걱정해야 될 일이 아니었으니까.
“지혁 씨가 예비군? 그거 갖다오는 기사 본 적 있어요. 군복이 너무 잘 어울리던데요? 진짜 남편이랑 비교돼서 한동안 밥맛이 없었, 아니 이게 아니지. 그러니까, 지혁씨 지금 뭐 하는 거 있어요?”
“아! 저는 이번 해는 쉬려고요. 아무래도 지금까지 너무 쉴 틈없이 달려온 것 같아서요.”
문제는 그 얘기를 하면서 예비군 얘기를 하는 작가님의 표정이 너무나도 신나 보였다는 것이지만. 그리고 문득 떠오른 과거로 인해 순간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는 게 소름이 돋았다는 게 중요했지만 말이다.
[시청률 40% 잘하면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말요? 그럼 시청률 40%넘으면 제가 작가님 부탁하나 무조건 들어드릴게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선에서요.]
[그럼 제 작품에 지혁 씨 무조건 섭외 권 줄 수 있나요?]
[네?]
[당연하죠. 그런데, 그건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그거면 충분합니다. 충분해요. 만약에 40% 시청률 돌파했다? 그럼 무조건 나와 주셔야 되요? 아셨죠?]
“어머! 그럼 촬영일자는 10월이 아니라 11월 쯤으로 미뤄두고 10월은 그리스 로케를 가야겠네요. 가서 휴식도 취하고 촬영도 하고.”
“예?”
“지혁씨 생각하면 어찌나 작품이 잘 써지는 지. 저도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요?”
“설마...”
“이번에도 분명히 대박 날 거라 자신해요! 다른 배역들도 제가 원하는 사람들로 다 채워서 그런지 그림도 대박일거고요.”
불안감이 현실이 된 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전혀 기대도 않던 시청률 40%를 달성하게 됐을 때, 왠지 모르게 찝찝했던 것이 바로 이것 이었구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빼도 박도 못하게 돼버린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었으니까.
“시청률 40% 달성했을 때 무조건 섭외 권 준다고 했죠? 그거 지금 쓸게요! 이건 무조건 지혁 씨가 있어야할 작품이거든요.”
하아. 세상은 썩었어. 전부.
============================ 작품 후기 ============================
비비vivi 1 장 감사합니다.
einmond 5 장 감사합니다.
박씨아자씨10 장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