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195화 (195/502)

00195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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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 오빠가 연락을 끊었어요. 그냥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당분간 연락 안하겠다면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한 채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가 꺼낸 첫말은 다른 무엇도 아닌 성제 녀석의 얘기였다. 그래서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한결 같은 녀석의 행동이 내게 일종의 안도감을 선사했으니까.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박수연씨.”

“오빠가 갑자기 이러는 게... 혹시, 언니일 때문에 저랑 성제 오빠 사이에 방해라도,”

그런데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나보다. 한결 같은 녀석의 행동이 내게 건넸던 것은 안도감뿐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만만해? 아니, 만만하세요? 박수연씨?”

나도 무른 게 무의식적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이나마 내게 사과를 건네기 위해, 저들이 저지른 잘못을 감추기 위해, 저들 스스로가 살기위해 내게 했던 짓을 용서받기 위해 그나마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하아... 전화할 때는 그렇게 안 받더니, 염치가 없나봐?”

하지만 그건 내가 눈앞에 있는 이를 너무 ‘사람’으로 생각해서 생긴 ‘오해’일 뿐이었다.

너무나도 뻔뻔한 행동에서 안도감을 그리고 그 정도가 지나쳤음에 분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했으니까.

“그럼 어떡해요! 당장 수습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렇고 IP도, 전부 큰일 난다는데! 우리라고 좋다고 그렇게 한 줄 알아요? 슬희 언니도 원해서 그렇게 한 것 같냐고요! 기사는 났지, 회사는 난리 났지! 당장 다음 앨범 준비하고 있던 우리도 IP도,”

“그럼 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이런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이런 꼴을 봐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래서, 너네만 살면 나는 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런 식으로 따지면 너랑 성제 사이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너네가 잘되는 안 되는 상관이 없어. 아니, 차라리 성제 녀석 선택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네.”

“무슨!”

“또 버릴 거잖아.”

그리고 역겨웠다. 이것이 내 눈앞에 있는 이만의 생각일지 아니면 전체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토할 것만 같았다.

“너네가 잘 못 될 것 같으면 바로. 어떤 상의도 없이 그냥 너네 살겠다고 버릴 거잖아. 너는 물론이고 너네 멤버들 전체가 연락도 안 받을 거고 숙소도 옮길 거고. 하아... 그래 네가 조금의 염치라도 있었다면 애당초 나한테 연락을 해서 이 자리까지 나오진 않았겠지.”

할 수 있었음에도 연락한번 하지 않는 잔인함과 무신경에 치가 떨렸고 지금에와서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박수연의 행동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모습이었으니까.

“상황이 어떻게 됐고 어쩔 수밖에 없었다. 이딴 개소리는 집어치워. 어쨌든 선택했잖아?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그리고 나 몰라라했잖아. 당사자는 물론이고, 성제한테 전화할 여유는 있었으면서 너에게 수십, 수백 통의 전화를 했던 내게는 단 몇 초의 시간도 베풀지 않았으면서 도대체 무슨 심보야?”

어쨌든 성제 녀석의 의도가 어떻든 더는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염치라는 걸 조금 가졌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연락하지 마세요. 아니, 제가 전화번호를 바꿔야겠네요. 그쪽 분들께서 일생기자마자 바꿨듯이 이제는 제가 바꿀 차례니까.”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했어야 했는지, 정말로 내가 아닌 이에게 마음이 흔들렸는지,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나로 인해 느꼈던 외로움이 그 정도로 컸는지에 관한 그 어떤 이해가는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이젠 상관이 없었으니까.

“아! 그래도 TV나 인터넷은 자주 이용해주세요. 당신들 스스로가 살기위해 버렸던 것이 얼마나 값지고 대단한 것이었는지,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더 이상 저쪽과 연관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강경한 대응을 선포한 강지혁! 포이보스 뮤직 측 曰 “현재 인터넷 상으로 허위 사실과..... 1차 적으로 정도가 심한 72명에 대한 형법상 명예훼손 및 민법상 불법행위로 고소장을 강남구 경찰서로 접수...... 합의 의사는 전혀 없으며 관련 행위에 관한...”]

-미친놈들 인실좆 당해봐야 정신차리지. ㅉㅉ 라이브 카페 한다는 새끼들 ㅅㅂ 내가 라이브 카페 가나봐라. ㅅㅂ 인터넷에 명단 나와 있음. 탄생석&별자리 카페 규탄한답시고 서명운동 한 새끼들.

-솔직히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거였음. 깔게 아닌데 까는 것부터가 에바인데, 폭리니 부모 없이 커서 돈벌레가 됐다는 둥 지랄이란 지랄은 죄다 떨어댔잖슴.

-근데 진짜로 라이브 카페들 폐쇄할까? 난 그건 좀 에바라고 생각하는데...

-나 같아도 빡쳐서 관두겠다. 기껏 좋은 뜻으로 라이브 카페 차려놨는데, 별 지랄들을 떠는데 가만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님? 미친놈들이 호의가 계속되면 개지랄을 떤다니까.

-ㅇㅈ 그 자리에 그냥 세만 줘도 월세로 억 단위. 근데 그것도 모르고 개지랄.

“저건 또 무슨 쇼야? 언제부터 저랬어?”

꽤나 오랜만에 포이보스 뮤직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인상을 찌푸릴만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별자리 카페 폐쇄하지 말아주세요!]

[가수들의 꿈을 지켜주세요!]

[근거 없는 유언비어 유포! 강력처벌해주세요!]

그도 그럴 것이, 포이보스 뮤직과 멀지 않은 빌딩들 앞에서 저마다 몸통만한 팻말을 든 채 모여 있는 이들의 의도를 너무나도 훤히 알 수 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저러면 뭐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너무 속보인다. 그렇지 않아? 삼촌?”

“어? 음...”

어쨌든 떨떠름한 반응을 내보이는 삼촌을 뒤로 한 채 건물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뭐, 더 이상 그 광경을 보고 있기엔 정말이지, 역겨웠으니까.

*

“당분간은 음악이든 연기든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동안 너무 무리했지?”

“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쉰다는 말이에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이런 조건으로?”

음악을 할 마음도 그렇다고 연기를 하거나 예능 활동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내 전용 아지트라 할 수 있는 포이보스 뮤직 휴게실을 찾지 않게 됐다. 정신적으로 스스로가 많이 지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라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얘기를 심심풀이로 주고받는 이곳을 본능적으로 꺼리게 됐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다시금 찾게 된 이곳은 여전히 똑같았다. 알게 모르게 지정석이 돼버린 소파에 앉는 순간부터 예상치 못했던 익숙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혁이 네 덕에 벌어들인 수입들은 이렇게라도 돌려주는 게 옳은 거야. 그것 아니어도 지혁이 네가 애들이나 회사에 준 건 많으니까.”

뭐, 그런 편안함과 달리 삼촌과 나누는 얘기는 그리 간단치는 않았지만.

“국내 활동에서 콘서트, 방송 활동에서만 회사 몫을 떼도 충분하다. 그 외적인 것은 네 몫이라는 게 내 생각이고.”

2011년 12월 말 때로 기억한다. 군대를 다녀온 내가 포이보스 뮤직과 3년간의 계약을 한 것이.

그런데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존재가 돼버렸고 말이다.

“아무래도 해외활동은 나보다는 재성이 쪽에서 맡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렇게 한 거야. 아무래도 너도 그게 편할 것 같고 또 우리 회사 입장에서도 그게 나은 것 같아서.”

당초 재계약 문제는 늦어도 1월 중으로 마무리되었어야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여러 일들이 있었는지라 지금에 와서 겨우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너무나도 좋은 조건으로, 실질적으로 지난 3년간의 수익 가운데 가장 큰 파이들이라 할 수 있는 앨범 판매수익, 광고 수익이 전부 내게 귀속되는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말이다. 더군다나 수백억에 달하는 계약금까지 받게 됐으니 오죽할까.

“어차피 계약을 하게 된다면 포이보스랑 하려고 했었어. 그래서 이 정도까지는 안 바랐는데...”

“벌어들인 수익에 30%를 소속사가 거둬들이는 건 가수 입장에서 그다지 손해 볼 계약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지난 3년 동안의 너한테는 이게 너무 손해야. 삼촌이 네게 해준 게 없는 데 회사가 천억이 넘는,”

“됐어. 해준 게 없다는 얘기부터 돈 얘기까지.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 여기다 도장 찍으면 되지?”

어쨌든 이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삼촌 말을 듣다보니,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아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더 이상 들었다가는 그나마 겨우 줄여둔 계약금마저 온전히 지난 3년간의 수익으로 모두 채워 넣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하아. 별게 다 힘드네.

그렇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공증까지 받고 나서야 무거운 얘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때마침 치고 들어온 녀석들 때문에 또다시 시달려야 했지만 말이다.

“형, 왔네?”

“아! 맞다! 오빠 근데 진짜 별자리랑 탄생석 다 그만 둘 거야? 응?”

역시나 녀석들의 가장 큰 궁금 점은 나의 재계약도 아니요, 오랜만에 본 나에 대한 안부도 아닌 탄생석, 별자리 카페에 관한 것이었다.

당장 녀석들 또한 심심할 때면 별자리 무대에 올랐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 꾸준히 출근 도장을 찍는 녀석들 입장에서 회사 밖 시위 현장은 눈에 안 들어올 래야 안 들어올 수 없을 테니까.

“접을만한 사유가 생겼으니 접어도 딱히 상관은 없잖아. 안 그래? 공항 기자회견에서 그런 뜻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기사 못 봤어?”

“어, 어? 기사를 보긴 봤는데.... 진짜 없앨 거야?”

“그거 진짜 그러려고 말한 거였어? 난 그냥 겁줄라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왜들 그래? 혹시 저기 밖에서 팻말 들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래?”

뭐, 그렇다고 해서 딱히 녀석들을 위해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포장해서 전달할 의사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게... 저 사람들 형이 공항에서 기자회견 한 다음부터 계속해서 저러고 있었거든. 팻말 들고...”

“응, 진짜야. 나도 봤어. 거의 매일 나와서 저러고 있는 거.”

“그런 것에 속지 마. 다 속물들이니까.”

녀석들 또한 그런 나의 단호한 대답에 꽤나 놀란 듯 했다. 막말로 녀석들이 알고 있던 예전의 나였다면, 이 정도까지 직접적으로 폐쇄를 언급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호의가 베풀어졌을 땐 그저 좋았겠지. 뭐, 탄생석이든 별자리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무런 이득이 없어. 정작 혜택을 누린 건 그곳을 이용하던 사람들과 가수들이겠지. 그런데 내가 말도 안 되는 논란에, 아니다. 어쨌든 생각 좀 해보고 결정할거야.”

“그래도 사람들이 논란 있을 때 형 입장에서 반박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 듣긴 들었어. 열에 여덟은 내 편에서 반박했다고.”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욕하던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시위도 하고 온갖 행동들을 할 때 저들은 뭐했는데. 고작해야 인터넷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거?”

저들이 무엇 때문에 팻말을 들고 회사와 별자리 주변에서 시위를 하는 지를 생각해볼 때면 그 누구보다 구역질이 나는 게 바로 나란 사람이었으니까.

“온갖 유언비어에 동조했던 사람들이 열에 둘이나 된다는 것도 이해 안가지만, 정작 폐쇄라는 뉘앙스를 풍기자마자 저렇게 밖에 나와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난 그냥... 역겨워.”

“그, 그런...”

“에에? 형...”

“이제 본인한테 주어졌던 혜택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니까, 겉으론 나를 옹호하는 척 하면서 본인의 이득을 주장하는 거니까. 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도 그들처럼 해줄 수 있어. 폐쇄시킨 다음에 인터넷에 어쩔 수 없었다고 적어놓으면 되는 거 아냐? 그러다가 한두 달 그것 때문에 슬픈 척 하면 되는 거고.”

어쨌든 사람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는지라 일말의 염려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마. 너희들이 상처받길 원하지 않으니까.”

녀석들의 행동들에서 과거의 누군가가 너무나도 선명히 떠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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