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8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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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아... 힘들다.”
한국제일의 아이돌 기획사답게 SD는 정기적으로 한국 및 아시아 각지에서 SD 아티스트들만의 콘서트를 개최해왔다. 이는 이미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지에서도 SD만의 브랜드가 확고하다는 것과 이들의 마케팅 역량이 그만큼 대단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는 일례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신인이라 할지라도 쟁쟁한 SD출신 가수들이 모두 모인 SD콘서트에 잠깐이나마 공연을 펼쳤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결코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언니 오늘이 마지막이지?”
“응. 콘서트는 오늘 상하이 콘서트가 마지막이야. 매니저 오빠가 그러는데 4월까지는 SD콘서트 없고 조금 휴식 가진 다음에 한국 활동만 할 거래. 그동안 수고했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신인 아이돌이 직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을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지도의 벽이었다.
한해에도 많게는 수십, 적어도 열 그룹이상이 데뷔라는 관문을 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아이돌 그룹이 성공이라는 달콤한 결실을 맺을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아이돌에 비해 한발 앞서 인지도를 쌓을 수 있다면, 아이돌의 버팀목이자 수익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팬덤 생성에 조금이나마 앞설 수 있다면 이는 굉장한 장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아이돌 그룹이 SD, YH, JS와 같은 대형 기획사를 선호하는 것이다. 데뷔하기는 어렵지만 데뷔만 한다면 회사 자체가 지닌 기획력과 마케팅 역량 거기다 탄탄한 선배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무시할 수 없는 지원까지, 최소 중박 이상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SD콘서트는 신인 아이돌 그룹뿐만 아니라, 기존 아이돌 그룹에게도 해외 시장에 보다 손쉽게 나아갈 수 있는, 일종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황금 노른자임이 틀림없었다. 당장 이렇게 정기적으로 소속사 콘서트를 국내외 측면에서 개최할 수 있는 기획사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14년에는 특히 많았던 것 같아. 강지혁 콘서트는 그렇다 쳐도 제 작년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그래서일까. 2014년 한해에만 6차례 이상 SD콘서트에 참가한 Twinkle은 정식으로 진출하지도 않은 일본,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벌써부터 팬클럽이 결성되는 등 꽤나 큰 이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그만큼 과도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한국 가니까. 기분 좋겠네? 슬희 언니는?”
“어? 응...”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강지혁의 남미, 북미 콘서트의 고정 게스트로 참가하게 된 Twinkle의 몸에는 이미 피로가 누적될 대로 누적된 상태였다. 각 지역 콘서트 무대가 끝난 뒤 곧바로 한국으로 이동한 뒤 또다시 아시아 각지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또다시 강지혁 콘서트가 있을 때면 다시금 비행기를 타고 장기간 이동을 감수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연말 방송 3사 가요대전에 참가해야 했기에 특별 무대를 위한 준비도 게을리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1월 초에 기획된 북경, 상하이 콘서트 준비도 겸해왔으니 오죽할까.
“언니, 강지혁이랑 몇 개월 만에 보는 거지?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슬희랑 강지혁이랑 미국 콘서트 때 보고 못 봤으니까 벌써... 헐, 한 달 넘게 못 봤네? 뭐, 그때도 슬쩍 얼굴만 본 게 다일 테지만.”
“그렇게 따지면 6월인가 7월부터 거의 못 보지 않았어?”
“응.”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멤버들의 이목은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저마다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이다.
“연기대상에서 상 받은 거 축하한다고 연락은 했어?”
“응? 응.”
“완전 멋있더라. 역시 남자는 수트 빨인가?”
그녀들과 같은 그룹에 속한 슬희가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강지혁과 사귀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멤버들이었는지라 그녀를 놀리는 멤버들의 얼굴엔 부러움이 한가득 담겨져 있었다. 수연의 행동에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부러움보다는 장난 끼가 더욱 담겨있었지만 말이다.
“언니 그럼 한국 가자마자 강지혁한테 갈 거지?”
“어? 음... 잘 모르겠어.”
“어? 슬희야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재밌게 놀다 와. 이번에 한국 가면 그래도 일주일은 휴식이니까.”
“어? 어.”
하지만 그녀들의 예상과는 달리 숙소 내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보다 그 당사자인 슬희의 반응이 담담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언니 무슨 고민 있어?”
그런 슬희의 모습이 평소와는 꽤나 달랐는지라 멤버들의 얼굴에 순간 걱정스러움이 담기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낭군님 만나러 갈 텐데 표정이 왜 그래?”
“그러고 보니까, 어제부터 이상하네?”
그녀들이 알고 있는 평소 슬희였다면, 지금 이 순간 가장 기뻐하며 들떠있었을 테니까.
“어? 아,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나저나 오늘 회사에서 근처 클럽 빌려서 뒤풀이 한다고 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내 활기찬 목소리로 돌아온 슬희의 모습에 멤버들의 걱정이 일순간 해소되었다. 체력 좋기로 유명한 슬희가 지칠 정도로 저번 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그녀들이 소화했던 스케줄 양은 어마무시 했는지라, 슬희 또한 사람이구나라는 식으로 상황이 치부되고 말았으니까.
더욱이,
“근데 난 피곤해서 그냥 얼굴만 비추고 올 건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그럼 나도 언니 올 때 올래. 너무 피곤해.”
“승희랑 수연이 너는?”
“나도 그렇게 할게.”
“나도. 언니.”
“슬희 너는?”
“언니 나는 그냥 숙소에서 쉴게. 몸이 조금 안 좋아서.”
평소 이런 뒤풀이가 있을 때마다 춤을 좋아하는 성격상 빠지지 않고 참가했던 슬희가 대놓고 몸이 안 좋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응? 몸이 안 좋다고? 많이 안 좋아?”
“아니 그렇게 심한 건 아닌데.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봐.”
“별일이네? 슬희 언니가 우리 중에 체력 짱인데.”
그렇게 슬희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은 피로가 누적된 나머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생긴 것으로 결론지어져 버렸다.
“언니가 죽이라도 해달라고 말해볼까? 여기에 한식당도 있던 것 같은데.”
“아니야. 언니. 그냥 푹 쉬고 싶어.”
멤버들 모두에게 방금 전과는 또 다른 걱정을 안긴 채.
*
[누나 슬희는 어디 있어요?]
[어? 아! 영진이구나. 요즘 완전 대세! 저번에 잡지 화보 나온 거 보내줘서 고마웠어. 이번에 들어보니까, 드라마도 도전해본다고 하던데.]
[네? 아, 네. 운이 좋았죠. 드라마는 아직 결정된 거는 아니고요. 그런데 슬희는...?]
[아! 내 정신 좀 봐. 슬희는 몸이 조금 안 좋다고 해서 지금 숙소에 있어.]
[몸이 안 좋다고요?]
[응. 어제 콘서트 끝나고 나서부터 조금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오늘 콘서트까지 마무리하느라 많이 지쳤나봐. 그래서 숙소에서 쉬고 있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못 오게 됐어.]
[어제 콘서트 끝나고서부터요...?]
[오오! 그래도 베프라고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 하지 마. 언니랑 애들 여기 얼굴만 비추러 온 거라서 금방 들어가 볼 테니까.]
“뭐야, 아프다더니 왜 여기 나와 있어?”
데뷔한 이래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대세 그룹 IP의 리더답게 김영진은 팀 내 최고의 인지도와 개인 팬덤을 보유한 SD의 대표스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 달에 쉬는 날이 고작해야 삼사일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과도한 스케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김영진은 도리어 그런 과도한 스케줄이 좋았다. 그녀와 같은 소속사라는 점, 거기다 소속 아티스트들 간 합동 스케줄이 많은 SD소속이라는 점 덕분에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역설적으로 평소보다 더욱 늘어났으니까.
“어, 어? 어...”
“아픈 거 아니지?”
“응? 응...”
하지만 이번 SD콘서트는 이런 맥락에서 한층 더 나아간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어제 했던 말이 그렇게 부담 됐어?”
어젯밤 피곤한 몸과 달리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아 호텔 내부에 마련된 정원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던 그가, 우연히 슬희와 마주친 그 순간, 이국이라는 점과 주변의 분위기에 힘입어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좋아해. 친구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전부터 그리고 많이.]
[네가 강동훤 좋아한다는 말 했던 게 중 3 때였어. 그래서 나는 중 3때부터 강동훤이 하는 머리부터 옷까지 전부 따라했어. 네가 패션지에 나온 남자 모델이 멋있다고 해서 그때부터 모델 수업도 들었었고.]
[지난 연습생 생활동안 널 좋아했던 마음 한시도 가볍지 않았어. 다만, 내가 부족한 걸 알아서, 네가 나를 친구로만 대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렇게 내 마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어. 그런데 더 이상 참기는 싫어. 네가 그랬지? 나는 왜 여자 안 만나냐고? 자기가 소개해준 여자한테 잘 좀 해주라고 그랬었지? 네가 있어서 다른 여자는 눈에 안 들어왔어. 네가 소개해준 여자들은 더더욱.]
[그동안 네 옆에 있던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어. 그리고 좋았고. 그런데, 이제 더는 친구로 네 옆에 있기 싫어.]
고즈넉한 달빛 아래에서 벅찬 스케줄에 대한 토로 그리고 함께 했던 예전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어째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그 또한 알 수가 없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말을 다시금 꺼낼 수조차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미 쏟아져버린 물임을 알기에 김영진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미 그녀의 곁에 누군가가 있음을 그 또한 모르지 않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할 정도로 그가 지닌 마음은 가볍지 않았으니까.
“아이리스 누나는 너 아프다고 했는데, 왠지 아닐 것 같아서... 그래서 혹시나 하고 여기 와보니까, 너가 있네?”
아이리스가 슬희가 아프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아픈 게 아닌, 자신이 어제 충동적으로 했던 말들을 곱씹고 있을 거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녀라면 자신이 했던 말들과 과거 무심히 지나쳤던 자신의 행동들을 하나, 하나 맞춰보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또다시 그녀를 찾아 이곳으로 왔고 그녀 또한 어제의 그 장소에 나와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마음을 단숨에 털어놓게 만든 이 마법의 장소에.
“나... 이미.”
“항상 네 곁에 있었어. 그래서 앞으로도 항상 네 곁에 있고 싶어. 네가 외롭지 않게.”
그래서 김영진은 또다시 과감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굳건하게 자신의 감정을 가로막고 있던 댐이 어제의 일로 균열을 일으켰고 지금에 와서는 그 존재가치를 잃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더군다나, 반년동안 자리를 비운 골키퍼가 내일이면 제자리를 찾으려 할 것임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쪽]
자신의 그런 갑작스런 행동에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린 그녀를 보며 그는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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