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1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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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유일하게 진동하고 있는 지수의 휴대폰으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오로지 그녀의 휴대폰만이 주인의 손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으니까.
“와! 역시 여동생이라 이건가? 뭐야? 나머지 그룹들 별거 아니네? 너희들 강지혁이랑 모르지?”
“오빠...”
“그럴 리가! 우리 지혁이가!”
“지, 지혁이가!”
그렇게 다른 아이돌 팀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이들을 보며 다시금 김희현의 깝죽거림이 시작되었고 이는 촬영장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수야, 뭐해? 얼른 받아야지. 전화 끊긴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손에서 우렁차게 진동음을 발휘하고 있는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지수에게 대프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전화가 끊긴다면 그녀는 물론이고 대박 콘텐츠를 기대하고 있던 제작진과 MC들 모두는 찬물을 맞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언니! 뭐해? 얼른 받아!”
“맞아! 끊기겠다!”
더욱이 옆에서 덩달아 전화 받길 부추기는 멤버들의 외침에,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던 지수가 정신을 차린 듯 떨린 손을 휴대폰 액정으로 가져다 대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지수에게 집중된 그 순간이었다.
“여보세요? 지혁 오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소리에 기대감이 극대화 된 것이.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그들의 의도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전화 잘 못 거셨습니다. 번호 바꾼 지 얼마 안 되서 그런 것 같은데 지혁이라는 분 번호 아니에요. 급하신 것 같아서 전화 드렸어요. 그럼 이만.”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전화가 뚝 하고 끊겨버렸으니까.
모두가 아무런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전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J, JV오빠, 지혁 오빠 전화번호 이거 아니야?”
이내 정신을 차린 지수가 옆에 있던 JV의 핸드폰을 뺐다시피 가져와 번호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 침묵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살아날 수가 없었다.
“어, 어? 이... 이거 맞는데?”
JV가 가지고 있던 번호도,
“저... 저기 이거 지혁 오빠 번호 아닌가요?”
“네? 아... 저도 이 번호로 알고 있었는데...”
유나가 가지고 있던 번호도,
“민혁 형, 형도?”
“어... 내가 알고 있는 번호도 그건데.”
민혁이 가지고 있던 번호도 지수 본인이 가지고 있던 번호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아! 뭐야! 너네들 다 안 친하네!”
이내 상황을 파악한 김희현의 모두를 향한 질타 아닌 질타로 다시금 촬영 분위기가 돌아오는 듯 했지만,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 있던 4명의 아이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했다.
“번호 바뀌었는데, 말해주지도 않을 정도면 게임 끝난 거 아냐?”
“아, 아니에요! 이럴 리가 없는데...”
“지혁이가...”
“오빠가...”
“지혁이가 그럴 리가...”
다급히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으며 뭔가 잘 못된 것임을 호소해 보려했지만, 회심의 콘텐츠가 실패로 돌아간 공백을 어떻게든 채워보려는 듯, 그들을 몰아세우는 김희현과 대프콘의 멘트들은 그다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 됐어! 너네들 전부 강지혁이랑 안 친한 걸로 결정! 에이, 뭐야 이거. 괜히 떨렸네.”
“아니라고요!”
“아니에요!”
그렇게 한동안 그들은 김희현과 대프콘의 의심스러운 눈빛과 멘트들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말없이 번호를 바꾼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원망을 간직한 채 말이다.
*
“예, 예?”
이 집에 처음 온 날, 수영장에 휴대폰을 빠뜨리는 바람에 번호를 바꾸게 됐다. 그 후로 주변 사람들에게 번호가 바뀌었다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정작 내가 암기하고 있는 번호가 고작해야 슬희, 민재 삼촌과 재성 삼촌 그리고 조 관리사님뿐이었는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외였다. 지금 이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네? 실례지만 강지혁 씨 휴대전화 아닙니까?]
하지만 막상 받게 된 전화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로 인해 더 이상 의아해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놀람과 당혹스러움을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수화기 건너편 목소리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놀래서... 실례지만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백악관에서 매년 주최되는 크리스마스 전야제 파티에 미스터 강을 초대하고 싶다는 영부인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내주시어 자리를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악관.
자신을 청와대도 아닌 백악관의 수행 비서라고 소개한 이가 전달한 말은 꽤나 간단했다. 다만 그 말 자체가 지닌 의미가 간단치 않았다는 게 중요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일순간 의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Voice fishing처럼 지금 이 전화도 무엇인가를 노리고 거짓을 전달하는 사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말이 일체의 금전적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을 뿐더러,
[초대장은 관련 직원을 통해 3, 4일 내로 직접 배송이 될 것입니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알겠다고 말한 내게 차후 초대장을 인편으로 전달하겠다는, 무엇인가 설득력 있어 보이는 그분의 말에 훅 넘어가고 말았다.
정말로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이 백악관의 수행비서가 맞다는 확신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뭔데? 무슨 전화야?]
그런 나의 멍한 표정이 너무나도 바보스러워서일까. 녹음식 부스에서 밖으로 나온 테일러의 말이 들려왔지만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내 나라 대통령 얼굴도 못 봤는데 천조국 대통령을 내가?
*
“문화일보 조병연 기자입니다. 지난 5개월간 전 세계 총 39회 콘서트를 통해 120만 3500여명의 해외 팬들을 만나보셨는데,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두 눈을 가득 채운 카메라 플래시들과 귀를 가득 메운 함성소리를 맞이하게 되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내가 귀국할 날, 시간은 이미 언론을 통해서 공공의 정보가 된지 오래였으니까.
그래도 오랜만에 한국에 온 만큼 마냥 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임하는 기자회견임에도 비교적 웃는 얼굴로 임할 수 있었고 말이다.
“제 노래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일보의 김한석 기자입니다. 당초 10일 정도로 예정했던 귀국일이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 참가로 2주가량 미뤄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 연예인 최초로 미국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청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더욱이 질문들 자체도 그다지 짓궂은 것들이 없었는지라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했다. 다만 아무리 전용기를 타고 왔다지만 백악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전야제 파티를 치루고 곧바로 귀국한 만큼 몸의 피로를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미 영부인 분께서 백악관에서 매년 개최되는 크리스마스 전야제에 초대해주셔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고 수많은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주간연예지 주현아 기자입니다. 백악관 크리스마스 전야제 파티에 테일러 스위트양과 동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테일러 스위트 양과 별다른 관계가 아닐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혹시, 열애로 발전 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뭐, 질문들을 보니 한국에서도 이번 백악관 크리스마스 전야제 파티가 꽤나 화제가 되었나보다. 당장 기자들이 파티 당일 날 내가 누구를 에스코트했는지조차 훤히 알고 있는 듯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저 주간 연예지 기자 양반이 진짜 큰일 날 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해버렸다. 아니, 누구 마누라한테 죽이려고 그러나?
“미국 생활에 적응할 당시, 테일러 양과 코난 오프라이언 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테일러 양과 저의 관계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관계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테일러 양 또한 저와 별개로 백악관 크리스마스 전야제 파티에 초대된 상태였기에 동행하게 된 것, 그것 뿐입니다.”
게다가 생각도 없는 테일러는 무슨 잘못이야?
자칫 잘못하다가는 두 여인네들한테 두고두고 갈굼 받을 만한 질문이었는지라 답변을 하는 데 특별히 신경을 썼다.
“아! 그리고 이번 미국에 머물러 있는 동안 테일러 스위트 양의 다음앨범 작업의 일부분을 전담했습니다. 따라서 곧 있을 테일러의 음반 발매를 통해 여러분께 간접적으로나마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면 안 돼지만, 테일러의 다음 앨범 작업 관련 얘기를 꺼내며 주의를 환기시키려했고 말이다.
뭐, 안 그래도 줏대 없는 나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계획을 바꾸게 된 된 테일러에게 더욱 미안하긴 했지만 차라리 이렇게라도 해서 그녀와 나 사이의 오해를 푸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사회일보 주민영 기자입니다. 그렇다면 강지혁 씨 이번 귀국 후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드라마 상속인들이 한국에서 시청자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말에 SBS에서 열릴 연기대상에 참가하기위해 귀국하게 되었는지라, 향후 자세한 일정은 정해놓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론 지금부터 연기대상이 열릴 말일까지의 스케줄 또한 아무것도 없고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런 내 의도는 성공한 듯 했다. 그 질문을 끝으로 테일러와 관련된 얘기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아니, 도리어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푸른 사회 매거진의 진성현 기자입니다. 지혁씨의 후원을 받은 학생들 가운데 이번 해에 수능을 치룬 3명의 학생들이 작년 박건준 군에 이어 이번에도 서울 주요대의 최상위권 학과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더불어 최근 100명 조금 넘던 고아원 후원 규모를 부산 50명, 광주 30명, 대구 40명, 대전 30명 등 총 270명 규모로 늘리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앞서 언급하셨던, 수능을 본 3명의 예비 대학생과 더불어 자신과 같이 어려운 형편을 지닌 이들을 돕고 싶다는 일념 하에 경찰대에 합격한 지석이와 수시로 대한민국에서 미술로 가장 유명한 대학에 합격한 지현이까지 해서 저는 그들 모두가 그저 대견할 뿐입니다.”
해외 활동을 하는 지라, 최근 들어 알게 되었던 좋은 소식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금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훌륭히 잘 살린 다섯 사람과 더불어 직접 뜬 털모자, 장갑, 지방에서 손수 보내주신 물고기들과 쌀 한 가마니, 과일 바구니 등 작은 것 하나, 하나 나눔을 실천해주신 많은 분들 덕에 보다 많은 후원을 할 용기와 계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가진 많은 것들을 베풀며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더 진행되고 나서야 인터뷰는 종료되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장시간 비행에 시차적응까지 조금 힘들어서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입니다! 비켜주세요!”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인터뷰에 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여전히 질문과 대답에 목이 말라있는 듯 했지만,
“비켜주세요!”
“지혁 씨 질문 한 가지만 더!”
“잠깐만 더 시간을 주십쇼!”
더 이상은 나도 피곤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으니까.
*
“형 얼굴 좋아졌네?”
오랜만에 본 석현 형의 얼굴은 확실히 좋아져 있었다. 매니저에게 케어를 받는 것이, 꽤나 유별난 행동으로 치부되는 미국 현지의 사정상 형의 얼굴은 남미 투어 때부터 통 보질 못했는데, 그때에 비해 살이 포동포동 올라와 있었으니 말이다.
“뭐, 나야 너 해외활동 하는 동안 일이 없었잖냐. 다른 애들 방송활동은 지선이가 담당하니까. 아! 넌 지선이 모르지? 애들 방송 활동은 지선이라고 새로 들어온 매니저가 담당하고 있어. 나는 너만 담당하고.”
어쨌든 내 나라에서, 누군가와 내 나라 말로 대화를 나눈다는 오랜 익숙함에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없는 사이에 새로운 식구가 회사에 들어왔다는 소식부터 해서,
“아무리 전용기라고 해도 비행기 안에 있어서 피곤하지? 바뀐 시차도 불편할 거고.”
“뭐, 그렇긴 하네. 비행기 안에서 자고 와서 안 그럴 줄 알았더니, 인터뷰 하고나니까 피곤해졌어.”
“그래, 푹 자.”
나를 걱정해주는 석현 형의 배려까지, 좀처럼 미국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정들이었으니까.
“응? 어. 알겠어. 그럼 부탁해. 형.”
“그래, 미안하다, 아, 아니 그래 푹 쉬어라.”
그래서 마음 놓고 벤에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보게 될 익숙한 광경을 어렴풋이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