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3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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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맞닿은 곳은 손바닥 뿐 이었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힘은 가볍지 않았다.
아무래도 하이힐 때문이어서인지 레드 카펫을 걷는 내내 그녀는 마주한 손을 지팡이 삼는 듯 했으니 말이다.
레드 카펫이 뭔지. 여배우가 뭔지.
편할 수 없는 높이의 힐을 신었음에도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과 카메라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보니 이런 게 프로의식인가 싶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프로 의식까지야’ 라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오빠 너무 멋있어요!]
[이유빈 최고다!]
[오늘 신인상 받을 거에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펼쳐진 레드 카펫을 밟고 이동하다보니, 나 또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새 엄청났던 긴장감도 저들의 열기와 환호에 발맞춰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으니까.
“이유빈 씨부터 먼저 포즈 해주세요!”
어느새 레드 카펫의 끝자락에 위치한 포토 존에 도착하자, 수많은 기자들고 방송사들의 카메라들이 나와 그녀를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왜 여배우인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유롭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솔직히 여배우로서 그녀의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니고, 오히려 아직 신인 급에 불과한 그녀가 이렇게 수많은 카메라들을 자연스럽게 대하는 걸 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뿜어내는 매력이 그 공간 자체를 장악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을 뿐더러 내가 그녀와 같은 배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래서 여배우는 여배우구나.
“다음은 지혁 씨 포즈 해주세요!”
정작 나는 그저 한손을 든 채 주변을 향해 환하게 웃는 것 뿐 이었는데 말이다. 하아. 이거 나도 포즈 좀 준비해 올걸 그랬다. 당장 참석한다는 거에만 신경 썼지, 이런 거에 신경을 못 썼으니 말이다.
“자! 됐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두 분 함께 포즈 해주세요!”
그래도 나의 그런 간단한 포즈가 아예 꽝은 아니었나보다. 별다른 추가 요청 사항 없이 곧바로 내 개인 포토타임이 끝났으니 말이다.
하아. 한 시름 덜었다. 다음엔 꼭 준비해야지.
“헉”
그런데 순간 움찔해버렸다. 각자 개인 포토타임을 가진 뒤, 기자들의 요청에 함께 포즈를 취하던 그때 갑작스레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뭉클함 때문에 말이다.
내가 괜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버렸나보다.
“지혁 씨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해주세요! 활짝 웃어주시고요!”
“너무 굳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한번만 부탁드려요!”
연신 사진을 찍어대던 기자들이 그런 내 표정과 행동에서 어색함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좌측!”
“우측!”
“정면!”
그래도 다행이다.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재빨리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하아. 시상식 참 힘들다. 다음엔 그냥 혼자 들어가면 안 될까?
*
[후와... 힘들었다. 고마워요. 사실 중간에 몇 번 넘어질 뻔 했는데.]
[혹시... 번호 줄 수 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오늘 꼭 상 받길 기원할게요!]
그렇게 이유빈 그녀를 자리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야, 내 자리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걷는 건 그렇다 쳐도 앉아 있을 때는 편한 거라도 신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감돌았지만 그건 코디나 매니저들의 영역이니 만큼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이 거기까지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내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다. 영화 부문과 TV 부문으로 나눠진 연기 쪽 테이블과 더불어 TV예능 쪽 테이블로 인해 장내는 복잡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다, 어느 순간 삼촌들 모습이 보이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나 참. 그런데, 하필 삼촌들 자리가 여기서 제일 먼 곳에 위치해있다. 하아.
[와, 강지혁이야. 강지혁.]
[대박, 대박]
뭐, 지금 내가 있는 자리와 꽤나 떨어져있는 테이블이라서 가는 동안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솔직히 조금 민망했다. 물론 대부분 TV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분들이라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면이 있다거나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반가워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강지혁 입니다.]
[드라마 잘 봤어요. 노래도 잘 듣고 있고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강지혁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강지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연기자 강지혁 입니다.]
그래도 이곳에 온 만큼 나보다 후배인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정신없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내게 인사를 걸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말이다.
하아. 솔직히 힘들었다. 내가 가야할 길에 앉아있던 선배들의 수가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이야! 이게 누구야! 지혁아!”
그런데, 그때였다. 내게 구세주와도 같은 이가 다가온 것은 말이다.
과장 조금 더 보태고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하아. 허리 아파.
정신없이 인사를 하며 이동 중이던 내 손을 단숨에 이끈 이의 정체는 바로 석재 삼촌이었다.
석재 삼촌의 성격상 아마 내 처지를 짐작했나보다. 내게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며 잽싸게 자신의 테이블로 데려갔으니 말이다. 덕분에 제법 수월하게 테이블 사이를 이동할 수 있었다. 예능 쪽에서 대선배 급에 속하는 석재 삼촌이기에 다른 이들의 접근이 순식간에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뭐, 아예 없던 거는 아니었지만.
“너무 오랜만이네. 그때 콘서트 때 이후로 처음이지?”
잠시 숨이라도 고르고 오랜만에 만난 석재 삼촌과 근황이라도 나눌 겸 석재 삼촌 테이블에 슬쩍 앉았다. 지난 콘서트 때였나?
“그러게요. 전화랑 톡으로는 가끔 연락드렸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그때 이후 처음이네요.”
그때 무모한 도전 출연진들과 촬영 팀에게 초대권을 보내 콘서트 장에서 인사를 나눈 뒤 얼굴을 직접 마주본 건 오늘이 처음이기에 제법 반가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좋은 얼굴로 마주하는 이를 마음 편하게 해주는 건 석재 삼촌의 장끼이자 장점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다른 멤버들은 어디가고 삼촌 혼자 있어요?”
“응? 뭐, 조금 늦는다네? 내가 빨리 온 거기도 하고. 어? 저기 태오야! 여기야!”
“다른 형들은 어디가고 형 혼자 있어요? 어? 지혁 씨가 여기 왜? 아! 지혁 씨 이번에 연기 신인상 노미네이트 됐다는 거 들었어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때마침 자리에 착석한 김태오 PD님까지 해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꽤나 즐거웠다. 방금 전의 수고로움이 잊혀 질 정도로 말이다.
“12월에 콘서트 계획 있으니까, 그때 시간되면 말씀하세요. 표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한동안 석재 삼촌과 김태오 PD님까지 함께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어느새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MC들이 무대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는지라 석재 삼촌과 김태오 PD님께 인사를 드리고 내 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또다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지나가야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제 곧 행사가 시작된다는 것 때문인지 다들 저마다 코디들에게 옷차림과 얼굴 상태를 점검 받고 있었는지라 자기들 곁을 지나가는 개인에게 신경을 쓰기는 힘들 테니까.
[뭐야? 오늘 연기 신인상 후보 아니십니까? 난 또 오늘 얼굴이 안 보이 길래, 참석 안하는 줄 알았지?]
뭐 물론 예외는 있었지만. 하아. 영식 삼촌은 왜 또 저러는지 모르겠다. 뭐야, 왜 보자마자 삐져있는 건데?
*
[연말에 송년회요? 아름다운 누나 팀이랑 하루세끼 팀 다 모인다고요? 음... 내년 1월에 앨범 발매도 있고 해서 12월에 스케줄이 조금 빡빡한데, 일단 알겠어요. 최대한 스케줄 조절해볼게요.]
영식 삼촌과도 잠깐이나마 대화를 하고나서야 나는 무사히 내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어떻게 된 게 레드카펫 걸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시간도 더 오래 걸렸고 말이다.
“막내야, 너무 늦게 온 거 아니냐? 삼촌들 기다리다가 지치겠다. 응?”
“에에?”
그런데 막상 삼촌들이 있는 테이블로 와보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신사의 품위에 출연한 신인 연기자로 이곳에 온 만큼, 내 자리 또한 삼촌들 사이로 잡혀있었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최 측을 찬양했던 내 행동이 너무 어리석었다. 젠장.
이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라는 게 지금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다. 더욱이 지금 내게 어깨동무를 하는 이 사람 바로 옆에 앉으라니. 말문이 턱 막혔다.
“이거, 이거 우리 막내가 요즘 잘나간다고 삼촌들한테 연락도 안하데?”
장동근, 감수로, 이중혁, 김민중.
촬영 하는 내내 연기에 대해서 도와주시고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도 연락을 이어온 삼촌들이지만, 오늘만큼은 옆에 있기 싫었다. 아니, 이 중 한두 명 옆에는 딱히 상관없기는 했다.
솔직히 이들과 같이 있어야한다면 나는 무조건 수로 삼촌과 중혁 삼촌 옆에 있겠다고 할 테니 말이다.
뭐, 문제는 친절하게도 내 자리가 동근 삼촌과 민중 삼촌 사이에 있다는 것이었지만.
“다들 잘 지내셨죠?”
“오냐. 네가 연락 안하는 것 빼고는 다 좋았지.”
“죄송해요. 저번에 콘서트 때 이후로 얼굴 보는 건 처음이죠?”
“그래, 무심한 녀석아!”
오늘 어쩌다보니, 무심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것 같다. 방금 전 영식 삼촌한테도 무심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석재 삼촌은 입으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심 오랜만이라며 나를 반겼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석재 삼촌도 영식 삼촌도 그리고 눈앞에 있는 4명의 삼촌도 직접 얼굴을 마주한 건 지난 콘서트 때가 마지막인 것 같다. 달마다 적어도 한 번씩은 전화나 톡으로 연락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요즘에 앨범 준비도 하고 연말 행사 일정도 있어서요. 연락을 통 못 드렸네요.”
솔직히 억울했다. 아니, 내가 바쁜 것보다 삼촌들이 더 바빠서 못 만난 건데 말이다.
“진희 누나랑 아늘 누나는요?”
그나저나, 보면 반가워 할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삼촌들뿐만 아니라, 아늘 누나나 진희 누나 또한 드라마가 끝난 후 지금까지 연락을 지속해왔으니 말이다.
“뭐냐, 진희는 그렇다쳐도 왜 우리는 삼촌이고 아늘이는 누나냐? 나 이거 예전부터 걸렸어. 응? 우리도 형 동생하자. 솔직히 별로 너랑 나랑 나이차이 별로 안나.”
그런데, 듣고 싶었던 답은 안 오고 중혁 삼촌의 투정 아닌 투정이 들려왔다.
“에이, 우리 삼촌이랑 나이도 별로 차이 안 나면서 왜 그래요.”
아니, 중혁 삼촌은 볼 때마다 저러시네. 솔직히 내가 동안은 아니지만, 중혁 삼촌이랑 형, 동생 할 정도는 아니다. 진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중혁 삼촌의 말을 가뿐히 거부한 채 민중 삼촌을 보자,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 답이 들려왔다.
“뭐, 아늘이는 여배우니까. 이번에는 안 온다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이건 뭐, 방금 전 중혁 삼촌의 투정은 이해라도 됐지, 답을 들은 것 같은데, 이해가 전혀 안되는 게 전혀 답인 것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뭔가 더 캐묻고 싶었는데, 삼촌도 그다지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 그럴 수가 없었다. 뭐, 때마침 동근 삼촌이 다른 주제로 말을 걸었기도 했으니까.
“이번에 새로운 작품 들어간다며?”
“네?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나저나, 내가 ‘상속인들’의 주인공 배역을 맡았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아직 제작 발표회는커녕 관련 기사들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조금 더 캐물었더니, 답이 금방 나와버렸다.
“뭐, 이은숙 작가님이 너 끌어들이려고 우리한테 연락 얼마나 많이 한 줄 알아?”
“예?”
하아. 작가님.
작가님이 유빈이 녀석에게 뒷 공작을 펼쳤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님의 마수가 삼촌들에게까지 뻗었을 줄은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 대단하다. 자기의 작품을, 자신이 써내려간 대본을 현실로 구현해내기 위한 작가님의 노력이 말이다.
애당초 나를 생각하면서 만든 그 강현이라는 캐릭터를 얼마나 애지중지했으면 이 정도까지 했을까 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자, 더욱 부담이 됐다.
조연도 아니고 주연으로서 이러한 작가님의 관심에 부흥해 드라마를 이끌어나가야 했으니까.
“그래, 이번에는 주연이라며. 연기 연습은 하고 있어?”
“그게... 준비를 해야 되는데, 막상 눈앞에 닥친 일들이 많아서 신경을 못 쓰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걱정되고요.”
게다가, 최근 들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앨범 준비와 나답지 않게 꽉 차 있는 12월 스케줄까지. 드라마의 주연 역을 맡았음에도 신사의 품위 때보다 못한 준비 상태이니 오죽할까.
“뭐, 문제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알겠지?”
“너는 대사에 감정 몰입하는 거랑, 순간순간 감정선 이어가는 게 탁월하니까. 연기도 금방 늘 거야. 다른 애들은 그게 제일 안 되서 연기가 잘 안 느는 거니까.”
내 말 속에 담긴 걱정과 우려를 짐작해서일까. 그래도 삼촌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해줘서인지, 살짝 가라앉을 뻔 한 기분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직 해보지도 않고 부담감에 일을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걱정들을 밀어냈으니 말이다.
“제 49회 벽상예술대상 영예의 시상식 MC를 맡게 된 오성진,”
“김아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뭐, 때마침 들려오는 MC들의 오프닝 멘트에 딴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는 점도 없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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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가 미래다. 정주행 부탁드립니다!
[정주행의 지휘자! 활자 라는 음표! 지휘봉은 펜대로! By.Te4Rs]
선작, 추천, 코멘트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많은 힘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P.S
여러분 서평글 이벤트 많이 참가해주세요.
정주행 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여러분 선추코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