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142화 (142/502)

00142  2013  =========================================================================

#

“오랜만이네?”

그녀는 입장표명을 나름 확실하게 했다.

[자꾸 보고 싶다느니 하면서 간 보거나, 나랑 전 남친이랑 헷갈리면 나도 가만있기 억울하잖아.]

[다음에 봤을 땐 입장표명 확실히! 오케이?]

그때 대화를 나눈 이후, 한동안 내게 연락을 끊었으니 말이다.

그게 내 요구에 대한 답변인지 아니면 국내외 바쁜 스케줄 때문이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하나 확실한 것은 그녀와의 묘한 관계는 그것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노래는 어떤 것 같아?”

“응? 어, 괜찮은 것 같아.”

내가 출연했던 라디오 토크가 방영된 후, 믿기지 않게도 수많은 이들이 나와 듀엣을 하기위해 민재 삼촌과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아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다만, 그 숫자가 쉰 명을 넘어갈 정도라는 게 문제였지만.

덕분에 그쪽에서 보내온 음원 파일을 하나, 하나 체크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말이 쉰 명이지 개인당 4분씩만 잡아도 200분 동안 꼼짝없이 노래만 들어야 끝날 작업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음원 파일을 보내온 이들의 면면이 결코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았으니 오죽할까.

하아. 이래서는 내가 너무 손해다. 라디오 토크를 통해 듀엣 파트너를 구한다는 말을 한 게 애당초 삼촌을 당황시키기 위해, 그동안 당했던 것에 대한 약간의 보복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도리어 내가 당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내 듀엣 파트너가 된 소감이 어떤데?”

“뭐, 나쁘진 않네.”

“나쁘진 않을 정도가 아닐걸? 댁이 누굴 떨어뜨리고 최종 선정 됐는지 알면 놀라서 까무러칠 테니까.”

“뭐? 누군데? 누군데, 누군데?”

“그냥 알려주면 재미없지.”

“뭐야?”

뭐, 어쨌든, ‘우리 결혼 할까요’에 출연할 때 끊겼던 연락을 재게 한 그녀가 이번 내 앨범의 듀엣 파트너로 등장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녀와 나 사이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나보다.

“시간이 많이 없게 돼버려서 길어도 내일까지는 끝내야 돼. 오늘 끝내면 더 좋고. 뭐, 오늘 안으로 끝나게 되면 알려줄게. 누굴 떨어뜨리고 선정됐는지.”

“음... 그럼 일단 불러볼까?”

“나는 일단 내 부분 녹음 끝났으니까, 준비되면 말해줘. 바로 시작할 테니까. 아니면 내꺼 한번 들어볼래? 감정 이입하기엔 이쪽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어때?”

비록 그녀가 나를 대하는 게 약간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했다.

“그래, 그러자.”

“자! 그럼 한번 전체적으로 듣고 나서 바로 시작할게.”

“오케이!”

이제는 예전과 같은 묘한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 볼 수 없겠지만, 이를 배제하고서라도 그녀는 제법 훌륭한 친구였으니까.

*

“어머! 역시 우리 지혁이 수트 빨은 최고다. 최고. 진짜 코디할 맛 난다니까?”

“오늘은 완전 포마드로 나쁜 남자 스타일이니까, 가서 배우들이랑 카메라들 다 씹어 먹어버려!”

벌써 3시간 째, 내 곁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코디 누나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흘러나왔다.

누구는 지금 긴장돼 죽겠는데 옆에서는 실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아. 지금 이 순간이 차라리 콘서트 무대 직전이었다면 이렇게 떨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나에게 무대는 긴장감보다 기쁨과 감동을 가져다주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지금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수트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늘 이렇게 꽃단장을 하는 이유는 바로,

“안 그래도 비율이 넘사벽이라 뭘 입혀도 최곤데, 우리 지혁이는 협찬도 골라 받을 수 있어서 코디 할 맛이 난다니까? 그래, 그렇지. 손수건은 살짝 보일정도로. 그래, 완벽해!”

“이제 완전히 고정됐으니까, 시상식 끝날 때까지는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중간에 쉬는 시간 있지? 그때 한 번 더 봐줄 테니까, 걱정은 말고. 알겠지?”

내가 노미네이트 된 벽상예술대상이 오늘, 그것도 한 시간 후면 시작한다는 점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뭔 소리야. 소리 좀 낮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나 사람들한테 돌 맞아.”

“애는 무슨 소리니? 내가 코디하면서 너처럼 비율 좋고 어깨 넓은 애 본적이 없는데.”

“맞아. 오늘 네가 제일 멋있더라.”

“하아... 진짜...”

그런데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해대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금 이 시상식에 누가 오는 지나 알고 그러나?

우리 신사의 품위 출연진들만 해도 나는 그냥 들러리인데 누구를 죽이려고 저런 소리를 하는 지 원. 더 이상 있다가는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 서둘러 대기실에서 빠져나왔다.

슬슬 이동해야 될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안녕하세요. 강지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유빈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정말 팬이에요!”

같이 이동해야 할 동행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조금 늦었나보다.

주최 측에서 정해준, 내가 에스코트해야 될 이가 차에서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가 조금 늦었죠? 죄송합니다.”

“에이, 뭘요. 아직 만나기로 한 시간도 안됐는걸요.”

천사가 있다면 이런 것일까. 이건 반칙이다. 반칙.

나보다 나이도 많은 주제에 저렇게 어려보이는 것도 반칙이지만, 저 몸매는 진짜. 어휴.

“슬슬 가볼까요?”

베이글녀.

아기 같은 얼굴을 지녔음에도 볼륨감 넘치는 여자를 일컫는 베이글녀라는 말은 그녀를 위한 말이라는 듯 그녀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손잡으세요.”

“감사해요.”

더군다나, 시상식답게 제법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었는지라, 그녀의 이러한 매력은 한층 돋보일 수밖에 없어서 더욱 그랬고 말이다.

벽상예술대상.

연기와 예능부분에 있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합 예술 시상식인데 이번에 참석하길 잘했다. 진심 행복하다.

물론 절대로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닌, 내가 TV부문 신인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는 점 때문이지만 말이다.

“여기에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

그렇게 그녀와 함께 주최 측에서 준비한 밴에 올라타 여러 얘기를 나누던 그때였다. 문득 내게 사인을 해달라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낯익은 앨범이 나타난 것은 말이다.

꽤나 뜻밖이었다.

그녀와 파트너가 돼서 이렇게 한 밴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내 앨범을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제가 정말 팬이거든요. 사실 작년에 청용에서 사인 받고 싶었는데, 이제 와서 받게 되네요.”

나의 팬이라는 말을 그저 의례적인, 형식적인 인사로 생각했었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더군다나, 내게 내민 앨범이 한 장이 아닌, 1집, 2집 앨범 모두였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제 노래 사랑해주셔서.”

“노래가 정말 좋아요. 원래 이렇게 슬픈 노래 잘 안 듣는 편인데 말이에요.”

그렇게 한 눈에 봐도 손때가 묻어있는 듯한 앨범들의 상태에 그녀가 하는 말이 더욱 와 닿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성의껏 그녀의 앨범에 사인을 했고 말이다.

“정규 앨범 내년에 나온다고 들었어요.”

“네? 아, 네. 내년 1월 초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12월부터 예약 주문이고요.”

그렇게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팬을 만나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긴장했던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뭐, 그 팬 분이 말도 안 되게 예뻤다는 점도 큰 몫을 했지만.

“이번에는 포토카드도 한 장씩 실릴 거고요. 1집 때처럼 화보집도 실릴 예정입니다.”

“정말요? 대박! 그럼 이번에도 저 앨범에 사인해주시면 안될까요? 저 무조건 살 건데!”

“소속사 통해서 제가 보내드릴게요. 사인해서요.”

“우와! 정말요? 음... 그래도 저는 하나 더 구입해야겠어요.”

“네?”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꽤나 편해졌다. 이렇게 살 떨리는 미모를 가진 여배우가 말이다.

진짜 나 출세한 것 같다. 이런 사람이랑 이렇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포토 카드 그거 전부 같은 사진은 아니죠?”

“네? 아, 네...”

“혹시, 시크릿 카드? 뭐 스페셜 카드 그런 건 있나요?”

“아! 이번에 히든카드라고 해서 4천장만 들어가는 게 있긴 해요. 그런데 그걸 왜...?”

“좋았어! 성덕의 포스를...”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불편함을 초래했다. 조금씩 친밀감이 쌓인 순간부터 남자로서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저기, 이거...”

생각보다 편해져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까부터 시선이 자꾸만 밑으로 내려가서 미치겠다.

하아. 이건 진짜 그 어떤 남자가 와도 어쩔 수 없다고 자신한다. 원래 시상식장에 나서는 여배우들의 드레스 노출 수위가 꽤나 높다는 걸 알려주듯 그녀의 드레스 또한 대단했으니 말이다.

아니 저러고 다니면 춥지 않을까? 애써 시선을 거둔 채 옆에 있던 담요를 그녀에게 건넸다. 더 이상의 아찔함은 나나, 그녀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게 뻔했으니까.

“네? 저 안 추운, 아! 어머! 내 정신 좀 봐. 지혁 씨한테 사인 받을 생각만 하다보니까 실수했네요. 미안해요.”

뭐 어쨌든 눈 호강을 한 건 사실인지라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찔려왔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한 게 없지만. 하아. 이건 어쩔 수 없다. 남자의 본능이니까.

“앞 차 분들 지금 포토 타임 거의 끝나가니까, 슬슬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30여분 정도 지났을까. 어느새 사람들로 인해 시끄러운 바깥 풍경과 함께 우리들이 함께 걸어야할 레드카펫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려갈까요?”

“네. 제가 먼저 내릴게요. 잠시 만요.”

앞에서 운전해주시는 말마따나, 앞선 이들의 포토타임이 끝나자 크게 쉼 호흡을 한 뒤 차에서 내렸다.

[찰칵 찰칵]

[강지혁이다! 강지혁!]

[지혁오빠!]

이미 음악 관련 시상식에서 레드 카펫을 밟아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배우로서 참여해본 적인 처음이었는지라 심장은 어느 때보다도 떨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장소에서 내 심장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려올 정도로 말이다.

“손잡고 내리세요.”

“고마워요.”

그렇게 내리자마자 내게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눈이 부셔왔지만 멈칫할 새가 없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나 혼자가 아닌, 에스코트를 해줘야할 이가 있었으니까.

[우와! 이유빈이랑 강지혁인데? 대박이네.]

[찍어, 찍어. 화보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가 문을 열고 나왔을 때와 같이 수많은 카메라들의 플래시를 받게 된 그녀가 몸의 균형을 잃은 게 말이다.

“아앗!”

순간적으로 시야를 멀게 만든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아무래도 발을 딛을 곳을 잘 못 본 모양인지 그녀를 잡은 손에 일순간 힘이 들어갔다.

“조, 조심하세요. 괜찮으세요?”

다행히 에스코트를 위해 내가 앞에 있어서 망정이지,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다.

안 그래도 어마 무시한 높이의 힐까지 신었는데, 잘못했으면 크게 다칠 뻔 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든 드레스를 입은 그녀였으니 오죽할까.

“고마워요. 힐이 너무 높아서 균형 잡기가 힘드네요.”

그렇게 내 손을 지팡이 삼아 똑바로 서는 데 성공한 그녀 또한 꽤나 놀란 듯 했다. 프로답게 어느새 환하게 주변을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키가 크신 것 같은데, 힐을 조금 낮은 걸로.”

그런데 아무래도 그녀의 힐이 너무나도 높은 것 같다. 제자리에선 그녀의 다리가 미약하게나마 흔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도대체 몇 CM야? 차에서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편안한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그녀였는지라 알지 못했다.

“에이. 그래도 시상식인데 드레스에는 힐이죠. 그럼 가볼까요? 저희?”

이 정도로 높은 힐을 신을 줄을 말이다. 하아. 이래서 에스코트가 필요한가보구나.

새삼 깨달은 에스코트의 중요성에 수긍하면서도 조금은 걱정이 됐다. 저러다가 방금 전처럼 무슨 사고라도 날까 싶었으니까.

============================ 작품 후기 ============================

선추코가 미래다. 정주행 부탁드립니다!

[정주행의 지휘자! 활자 라는 음표! 지휘봉은 펜대로! By.Te4Rs]

선작, 추천, 코멘트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많은 힘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P.S

여러분 서평글 이벤트 많이 참가해주세요.

정주행 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즐거운 화요일입니다. 다같이 선추코 타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