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8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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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고프지?”
“응? 응! 우리 뭐 먹을까?”
몇 시간을 격렬히 힘을 쓴 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서일까. 깜빡 졸아버렸다. 그것도 그녀와 나 둘 다 말이다.
아무래도 따뜻한 물에서 몸 곳곳을 시원하고 어루만져주는 거품 마사지와 서로의 따뜻한 체온이 이렇게까지 상황을 만든듯하다. 살다 살다 욕조에서 잠들어보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뭐, 어쨌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도 나도 그저 웃었다. 조금이나마 잠에 빠져서일까, 훨씬 개운해진 몸 상태를 느끼며 말이다.
“요리 잘해?”
“응? 나 수제비 잘해!”
“정말?”
본래 반신욕보다 저녁을 먼저 먹는 게 우선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저녁 먹는 게 가장 나중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도 그렇고 나도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어느새 시계는 저녁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래서 서둘러 룸서비스 책자를 살펴보았다. 방송 카메라 없이 밖으로 나가 무엇인가를 먹을 수 없는 우리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다 별 기대 없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전부터 궁금해왔던 사안이 방금 전 문득 떠올랐으니까.
그런데, 이게 또 새로운 답변을 가져와버렸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슬희가 묘하게 요리에 자신있어하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하아.
이렇게 예쁜데, 요리까지 잘하다니. 요즘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문 여자여서 기뻤다. 그게 내 여자라서 더욱 기뻤고.
“에헴!”
“예쁘고 요리도 잘하는 거 보니, 시집가야겠네?”
“치. 누가 너한테 시집간데?”
그런 그녀를 보자니, 또다시 장난 끼가 동했다.
솔직히 내 성격자체가 그렇게 심심한 편은 아닌데, 왜 자꾸 그녀만 보면 장난을 치고 싶은지 모르겠다.
장난을 던졌을 때 볼 수 있는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나, 당황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일까.
어쨌든 그녀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내심 놀랄 때가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로 내색하기에는,
“어? 난 시집가야 되겠다고 했지, 내가 데려간다고는 안했는데?”
“뭐라고?”
지금 그녀가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으니까.
겉으로는 별로 기대하지 않은 듯 하지만, 막상 내가 그녀의 말에 부정적으로 받아치자 슬희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에 반응해 그 귀여운 눈동자로 나를 흘겨보는 건 당연했고 말이다.
“하하!”
“뭐야? 웃어? 지금 웃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이를 본 그녀가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었지만, 나로서는 이미 장난에 대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상태라 딱히 상관이 없었다.
뭐, 그녀가 계속해서 이 상태로 있는 건 바라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아. 귀엽다, 귀여워. 이 모습을 보고 누가 연상이라고 생각할까.
조금은 꺼내기 애매한 얘기인지라 말하고도 흠칫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좋으니 앞으로도 장난을 끊지 못할 것 같다.
“웃는다 이 말이지? 진짜,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결혼.
물론 이 얘기를 꺼내는 게 너무나도 이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고작해야 2달 가까이 만남을 이어온 우리 사이에 결혼은 너무나도 먼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냥 먼 미래라고 치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돌이라는 직업도 직업이거니와, 꿈, 미래까지 고려한다면 그녀에게 있어 결혼은 먼 미래의 일일 테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때 까지 사랑해줄 자신이 있는 나로서는 이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일이 아닌 확정된 사안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나한테 시집오고 싶어?”
“뭐? 흥! 누가 너한테 간데?”
“나한테 오고 싶으면 와도 돼. 기다릴 테니까.”
뭐,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그녀의 행동에서 이미 내가 원하는 답을 충분히 들었는지라, 그녀를 꼭 껴안아주었다.
갑작스럽게 던진 돌 직구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만으로도 나는 충분했으니까.
*
[나 수제비 해주면 안 돼?]
[지금? 음... 그럴까? 그럼? 혹시 집에 재료 뭐, 뭐 있어?]
[내가 재료 사올게. 어차피 바로 밑이니까. 뭐, 뭐 사오면 돼? 적어주면 그거 사올게.]
밥 먹으려고 했다가 또다시 그녀를 껴안았고 또다시 입술을 마주하느라 삼십분이 흘러버리고 말았다. 그 덕에 내 배는 그 어느 때보다 홀쭉해진 상태이고 말이다.
뭐, 어쩌다보니 그녀가 해주는 수제비를 먹게 됐는지라 서둘러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다.
배도 고프거니와, 빨리 돌아와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말이다.
“어? 관리사님? 여긴 어쩐 일로?”
“어. 어? 아! 지혁씨 오랜만에 뵙는 군요. 그게...”
연륜이 느껴지는 흰머리, 검은 뿔테 안경, 검정색 정장 차림 그리고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가죽 서류 가방 거기다 익숙한 향수 냄새까지.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그는 바로 내 재산을 전적으로 관리, 담당해주고 있는 관리사님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와 여기서 마주친 것은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평소 차분하고 지적인 관리사님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과 행동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런 행동들이 나를 마주한 게 원인인 것 같았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그런 내 의문은 그리 오래지 않아 풀려버렸다. 그것도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말이다.
“삼...촌...?”
“어, 어? 우리 지혁이? 이, 이런 우연이 있나! 여기서 다 마주치네! 하아... 하하!”
도대체 삼촌이 여기 왜 있는 걸까.
어색한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는, 마치 방금 전 관리사님의 행동을 보는 듯한 삼촌의 모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황에서 삼촌이 여기에, 그것도 관리사님과 있을 이유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물며,
“지혁이 너랑 할 말 있어서... 그, 그래, 너한테 가는 중이었지. 같이 밥이라도 먹을 겸.”
“뭐?”
“왜? 삼촌이 조카랑 밥 먹겠다는 데 그게 어때서?”
지금 내 눈앞에서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삼촌의 모습까지 봤으니 오죽할까.
“삼촌 지금 아래에서 온 게 아니라, 위에서 왔거든?”
아니, 누구를 눈 뜬 장님으로 아나. 이 엘리베이터 지금 위에서 내려왔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생전 안하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니, 사람이 안하던 짓하면 죽는 다는 데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아, 뭔데? 삼촌이 여기에 왜. 그것도 관리사님이랑 있는 건지 빨리 설명해. 거짓말 그만하고.”
분명 뭔가 있었다.
나이는 50이 다 되 가지만, 믿을 수 없게도 삼촌은 꽤나 순수한 사람인지라 거짓말을 하면 티가 바로 티가 날 정도인데 이를 그 누구보다 잘 알 나에게 거짓말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물며 지금 삼촌과 마주친 장소자체가 이러니 오죽할까.
“그게...”
그런 내 단호한 태도에 삼촌도 이미 지금 상황을 체념한 듯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 결혼하면 너무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삼촌이 위에 살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래! 내가 손주들도 봐주고 며느리가 시댁 왔다, 갔다하는 것도 편하고, 혹시 걔가 너 구박하고 살면 내가 그걸 어떻게 보고 살어? 응?”
지금 내 귀가 잘못되었나보다. 내가 듣고 있는 게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뭐, 뭐라고?”
하아. 진짜.
내가 삼촌 때문에 미치겠다.
아니, 군대 가기 전의 내가 지금의 삼촌 모습을 알았다면, 뭐라 했을까?
아니, 애당초 이 광경을 믿을 수나 있을까?
“아니, 진짜 얼마 안했어! 이게 생각 외로 분양가가 높아서 공실률이 조금 높다고 하더라고. 그렇죠? 조 관리사님?”
“예, 예? 아, 예 그, 그렇습니다.”
“아직 해외분양 투자 승인이 안 나서 그런 거긴 한데, 그래도 지금 사두면 그래! 재테크에도 좋을 것 같고 그래서,”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무리 조카바보니 뭐니 라지만, 고작 저런 이유 때문에 100억 가까운 돈을 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하아.
정말 몰라서 이런 일을 저지른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아, 지금 제정신이야? 누구는 50 다 되 가도록 결혼도 안하고 있는데, 왜 자꾸 나한테 결혼이니 시댁이니, 하아...”
아니 그리고 자꾸 손주니, 결혼이니, 며느리니 하는데 이게 23살 조카한테 할 말인가 싶다.
“돈이 썩어나는 것도 아니고 뭐 하러 이래? 하아. 이런 말까진 안하려고했는데 나 결혼안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뭐? 너 지금 그게 삼촌한테 할 얘기야? 너 이거 누나가 알았으면,”
“엄마가 알았으면 뭐! 진짜 엄마 있었으면 나보다 삼촌이 먼저 죽었어. 그 나이되도록 장가하나 못가고 이렇게 철부지 같은 행동만 하고 있는 거 알면 삼촌 당장 선보러 다녔을 걸? 하다못해 그동안 울린 여자들만 하아. 됐다. 됐어. 말을 말아야지.”
정작 본인은 나이 50되도록 결혼도 안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안되겠다. 삼촌의 이런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될 것 같았다.
“너, 너!”
“하아. 이번 달 안으로 숙모님이랑 자리 마련해줘.”
이 정도면 조카바보가 아니라 조카집착이었으니까.
“그건 네가 상관할게 아닌,”
“이번 달이야. 이번 달. 자리 마련하기 싫어? 그럼 나 진짜 결혼 안하고 최소 삼촌 나이 될 때까지 결혼 안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뭐? 손주? 참나, 손주는 무슨 며느리 그림자도 구경 못할걸?”
“그.. 그건 안 되는데...”
“그분이랑 결혼 할 생각 없으면 말해. 오늘부터 당장 결혼 정보 사이트란 사이트는 전부 가입시켜서 선보러 다니게 할 생각이니까.”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엄마와 삼촌간의 관계가 어째서 그랬는지 요즘 들어 조금씩 이해가 가곤 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삼촌한테는 엄마처럼 누군가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거야. 그래.
만약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나와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는 생각에, 저번 교통사고 때처럼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시켜버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조카바보 평생 나만 쫒아 다닐 테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괜히 삼촌 때문에 이리저리 시달렸을 관리사님께 절로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간도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까지 삼촌 옆에 붙어있는 걸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먼저 가보세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아! 예!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지혁 씨가 예전에 알아봐달라고 하셨던 건 몇 시간 전에 메일로 보내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렇게 관리사님을 먼저 보낸 뒤, 생각에 잠긴 듯한 삼촌의 옆에 털썩 앉아버렸다.
[박재성씨가 지혁 씨를 대할 때와 사업하실 때의 모습은 전혀 다른지라, 저로서도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하하. 지난 이십여 년 간 한 번도 못 본 모습들이거든요.]
하아.
관리사님에게 예전에 슬쩍 듣긴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은 사실인 것 같다. 회사일도 이따위로 하다간 당장 망할 테니까.
아니,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계속 적자. 응?
그렇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느껴진 묘한 연결고리에 소름이 돋으려던 그때였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들어가서.”
“뭐? 어딜?”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치는 재성 삼촌 덕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 사방에 널린 데가 카페고,
“어디긴 어디야. 너네집이지. 삼촌 밥 안 먹어서 배고프다. 룸서비스 시켜먹자. 간만에 우리 조카가 사주는 밥 먹어볼까?”
“뭐 하러 그래? 나가서 먹어. 밖에 맛있는 거 널렸는데, 뭐 한다고 룸서비스 시켜?”
음식점인데.
뭔가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삼촌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이 순간 삼촌을 막지 못한 다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지금 느껴지는 불안함이 현실이 될 경우 찾아올 파장이 감조차 오지 않았으니까.
“좀 편하게 먹고 싶어서 그런다. 왜! 이게, 빨리 앞장 서! 설마 너 삼촌한테 밥 한 끼 사주기 싫어서...?”
“아니 밖에서 맛있는 거 사준다니까 그러네?”
“쓰읍! 너! 삼촌이 큰 맘 먹고 너 억지 부탁 들어준다 했는데, 자꾸 이럴래? 그러면 숙모고 뭐고 자리 만드는 거 없는 일로 하는 거다?”
실수했다. 삼촌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집에 누가 있는지를 망각해버렸고 삼촌을 어떻게든 집으로부터 멀리 내보내야함을 간과해버렸으니까.
하아.
다짜고짜 방금 전 내 제안을 걸고넘어지는 통에 도저히 반박을 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더욱이,
“이거 출입카드 삼촌 것도 하나 해서 주고. 알겠지? 얼른 열어라, 지혁아. 삼촌 배고프다.”
이미 다른 음식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집문 앞에 떡하니 서서 날 바라보고 있으니 오죽할까.
하아. 세상은 썩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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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가 미래다. 정주행 부탁드립니다!
[정주행의 지휘자! 활자 라는 음표! 지휘봉은 펜대로! By.Te4Rs]
선작, 추천, 코멘트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많은 힘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P.S
여러분 서평글 이벤트 많이 참가해주세요. 참가자 저조에 작가는 힘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좋았던 장면들이나 그런 거 간략하게 써주셔도 좋습니다.
여러분 저는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루 2시 시험이 남아있네요.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