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4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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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가면 무조건 룩셈부르그 공원 가서 와인 따야 된다니까?”
어디까지나 주목적은 재영 삼촌 선물을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우리는 이곳 바에서 떠날 줄 몰라 하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는 선물을 산지 한시간이 다 되도록 이곳에 있는 것일까.
“거기 앞에서 과일 아무거나 팩에 든 거 하나 사고 와인도 싼 거 하나 사서 룩셈부르그 공원 의자에 앉아서 먹음 최고라니까? 잔디밭에 앉을 수도 있긴 한데, 비둘기들이랑 친구 해야 되서 난 일단 비추.”
솔직히 칵테일이건 뭐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평소에도 술을 먹었다하면 그저 소주나 맥주였으니 말이다. 물론 와인 좋아하고 비싼 술 좋아하는 삼촌 덕에 다른 술도 제법 먹어는 보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의 주류는 오로지 소주, 맥주였다.
그런데, 술맛의 50%는 분위기가 좌우한다고 했던가?
“그럼 에펠탑은?”
“아! 에펠탑은 거기 앞에 까르푸 마트 있으니까, 거기서 와인 사서 9시쯤에 에펠탑 앞 정원가면 돼. 10시에 점등하니까, 9시 쯤에 딱 자리잡고 와인 먹으면서 기다리는 거지. 거기 흑형들이 와인이랑 맥주 뭐 에펠탑 모형 같은 거 파는 데 절대 사지 말고.”
“아하!”
“아! 그냥 같이 갔을 때 내가 알려줄게. 그럼 되지? 어차피 파리 가서 에펠탑 한번 갈 것도 아니고 한번만 갈 수도 없어. 진심 한 번 에펠탑 앞 정원에서 노상해보면 매일 가고 싶을 테니까?”
지금 우리들이 앉아 있는 이곳이 비행기 안이라는 점, 비록 스케줄 때문에 가는 것이지만 주말까지만 버티면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일정은 휴가뿐이라는 점 때문이어서 인지 술이 거침없이 훅훅 들어갔다. 달짝지근한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여행기분에 취해 주저 없이 연이어 건배를 했으니 말이다.
“형이랑 누나들은 어디어디 갈 예정인데?”
“어, 어?”
“그, 그게...”
“뭐... 쫌 돌아다니다, 쇼핑도 하고 에펠탑도 보고...”
그렇게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형과 누나들의 휴가계획이 궁금해졌다. 나와 일주일 뒤 파리로 올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석현 형과 누나들 또한 휴가를 유럽에서 보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이에 대해서 물어보니 어느 누구하나 속 시원하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뭐, 뭐야 이 사람들 아무 대책도 없이 지금 휴가 온 거야?
물론 이 사람들이 배낭 여행자였다면, 또는 평소 여행 스타일이 즉흥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걱정은 딱히 필요가 없겠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보였는지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그냥 이번 파리 스케줄 끝나고 자신들이 가진 휴가일수를 붙일 수 있다는 혜택 아닌 혜택을 삭히고 싶지 않아 무작정 휴가를 신청한 듯 했으니 말이다.
“휴... 진짜 대책 없다. 뭐, 파리에서 계속 지낼 거면 재영 삼촌 집에서 우리랑 같이 있어도 상관은 없는데? 어떻게 할래?”
“진짜?”
“정말로?”
코디 누나들은 회사직원으로 우리들보다 더 오랫동안,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가까이 포이보스 뮤직 직원으로 있었기에 애당초 휴가 계획을 짤 때 같이 움직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휴가 때까지 연예인 뒤치다꺼리를 시키는 게 조금 양심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을 철회했었는데 이제와 보니 그건 억측이었나 보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일 기색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 뭐야 이 사람들. 이럴 거면 진즉에 말하지.
“뭔 소리야. 안 될 게 뭐있어. 다 같이 한 식구인데. 같이 있고 싶으면 있는 거지 뭐.”
어차피, 코디 누나들도 재영 삼촌과 나보다 안면이 더 있었으면 있었지 덜 하진 않을 것이기에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뭐, 재영 삼촌 집이 그다지 좁은 것 같지도 않았을 뿐더러, 집주인인 재영 삼촌이라면 이들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진 않을 테니까.
“나, 나는 무조건 콜!”
“나, 나도!”
“지혁아 그럼 형도.”
내가 안 물어봐줬으면 어쩌려고 저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안이 누나들과 석현 형에게는 꽤나 큰 위안이 됐나보다. 제안을 받자마자 단숨에 수락한 그들이 일제히 칵테일 잔을 비우며 얼굴을 밝혔으니 말이다.
[나는 뭐, 여행 스타일이 박물관가고 미술관 가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다른 애들은 파리 처음이고 그래서 그런데 갈 수도 있어. 그때 같이 가면 되겠네. 덕분에 나도 마음 놓이고 말이야. 뭐, 형이랑 누나들 보디가드 시키는 것 같아 조금 그렇긴 해도.]
[나? 난 그냥 공원 같은데 가서 과일이나 뜯어먹어야지. 배고프면 돌아다니다 맛있어 보이는 데 있으면 들어가서 먹고. 원래 나 이런 식으로 다녀. 뭐 파리는 저번에도 다녀와서 더 그럴걸?]
[우리 저녁에는 에펠탑 가서 놀거나 아니면 퐁뉴프 다리라고 있거든? 거기 다리 강변에 앉아서 노상이나 하자. 거기도 진짜대박이야. 바토무슈 유람선 지나가는 거랑 세트강변 건물들 야경이 죽이거든. 아! 물론 거기서도 에펠탑이 보이긴 보여. 그래서 난 거기가 약간 더 좋더라고. 진짜 파리 사람 된 것 같아서.]
[각자 개인적으로 어디가고 싶으면 뭐 얼마든지 갔다 오고 대신 야간에는 무조건 같이 움직여야해. 자정 넘어가면 그것도 조금 위험하지만.]
뭐, 덕분에 우리들의 분위기는 한층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걱정거리가 해결된 듯 그제서야 저마다 하고 싶은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 꽤 큰 영향을 준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전에 다녔던 여행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되는 여행이었다면 이번에는 같이 다닐 이들이 있다는 점에서, 재영 삼촌과 만난다는 점에서 전과 달리 꽤나 특별했으니까.
그렇게 형, 누나들의 분위기에 맞춰 그리고 내 자신만의 분위기에 맞춰 신나게 대화를 나누던 그때였다.
“지혁아.”
갑작스럽게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는 석현 형의 목소리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분 좋다’를 외치던 사람이 확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응?”
“너 뒤에...”
“뭐가? 내 뒤에 뭐가 있어?”
그런데, 형의 뜬금없는 말대로 뒤를 돌아보니 형의 당황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이해 돼버렸다.
“스, 슬희?”
“아, 안녕.”
*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공짜도 아닌데 벌써 4잔이나 마셨어. 저녁 나오기 전까지 술 좀 깨야겠다. 형 먼저 간다!]
[누나도 먼저 간다!]
[나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조금 졸리네? 가서 자고 조금 있다가 기내식 먹어야겠다. 지혁아 누나 먼저 간다!]
[나, 나도!]
갑작스런 슬희의 등장으로 우리들의 흥겨웠던 술자리는 순식간에 마무리되고 말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쁜 건 절대 아니었지만.
“나 보고 싶어 왔나보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눈치 있게 자리를 피해준 코디 누나들과 석현 형덕에 나는 슬희를 옆에 둔 채 설레는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술 많이 마셨어?”
“아니,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았어.”
“거짓말.”
그녀의 눈빛이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았다는 것과 내게서 조금이나마 술 냄새가 풍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응?”
“많이 마셨잖아.”
지금까지 보였던 귀여운 모습과는 또 다른, 약간은 톡 쏘는 듯한 매력을 내보이는 슬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튀어나와버렸다.
“슬희 꽤나 오래전부터 나 보고 있었나보네? 그런것도 알고?”
“치. 술 좋아하는 남자 별로라고 했을 때, 안 좋아한다했으면서...”
전에도 이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지라, 뜨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말마따나, 방금 전까지 분위기에 취해 술을 제법 마셨으니 말이다.
“일 때문에 가는 것도 있고 형이랑 누나들이랑 다 같이 휴가 가는 거기도 해서 기분이 업 됐나봐. 나 평소에 술 진짜 많이 안 먹어. 무슨 일 있거나 그럴 때만 먹지.”
“치...”
“그래도 기분 좋네?”
“뭐가!”
자신이 불만 아닌 불만, 투정 아닌 투정을 하는 와중에 내가 피식 웃어버려서 일까. 아니면 내가 발뺌을 할 수도 없게 꽤나 오래전부터 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것을 지켜봤었기 때문일까.
슬희는 평소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걱정해주니까.”
“어, 어?”
“관심 가져주니까.”
그저 세상 좋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 외로 효과가 뛰어났다. 톡톡 나를 쏘던 그녀가 일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으니 말이다.
뭐, 그렇게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 순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그녀 또한 애당초 트집을 잡고 싸우기 위해 이를 언급한 것은 아니었는지라 금세 마음을 풀고 밝은 미소를 내게 보여줬으니 말이다.
[그, 그건 뭐야?]
[이거? 여기 기내에 면세점 있길래 지갑 하나 샀어.]
[지, 지갑?]
[응, 지갑. 왜?]
[아, 아니야.]
[많이 아쉬웠겠네? 내가 2층에 없어서? 아니, 비행기 옆자리에 안 앉아서 그랬을 수도?]
[치, 그게 뭐야.]
[어? 아니야?]
[아니야.]
[에?]
[뭐야, 이거. 비즈니스 탔다고 갑자기 나 보는 게 비즈니스 된 것 같네? 하긴 뭐 슬희는 원래부터 비즈니스였지. 하...]
[아, 아니야!]
[뭐가?]
물론 대화 중간에 순간 슬희 얼굴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반지 끼고 있네?]
[어, 어?]
[촬영 아닌데도 반지 끼고 있네? 슬희는?]
[너, 너도 끼고 있잖아!]
[난 진심이었으니까.]
[어, 어...?]
[슬희는 비즈니스인데 반지를 지금도 끼고 있네?]
[비즈니스 아니라구...]
[정말?]
[응...]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부끄러워하는 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서일까. 슬희는 또다시 톡톡 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로서는 마냥 좋을 뿐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형, 누나들과 마셨던 술의 취기가 훅 올라와서인지 나도 모르게 더 나가버렸다. 마냥 기분 좋음에서 끝내기에는 지금의 분위기와 그녀의 반응 그리고 내 욕심이 만족하지 못한 듯 했으니까.
“근데 언제 답해 줄거야?”
“어, 어?”
“나 진심이었어. 너한테 반지 껴줄 때.”
그런 내 행동에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짓궂게 그녀에게 답을 요구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녀를 대했다. 내 자신의 감정만을 좀 더 생각했다.
“그때 반지 줬을 때, 나 껴안은 거 그거 네 답이라고 생각해도 돼?”
“응...?”
“아! 그것도 비즈니스였구나. 슬희는? 하... 슬프다.”
“아, 아니야!”
“그럼?”
그 정도로 지금 나는 그녀에게 답을 듣고 싶었으니까.
“지, 진심이야. 나도.”
그리고 마침내 내 이기심과 짓궂음이 만들어낸 질문에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내가 정말 바라던 대답이 나와서일까. 순간적으로 주변의 이목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갈 뻔했다.
후우.
위험했다, 정말로. 순간 느껴지는 칵테일 잔의 차가움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큰 실수를 할 뻔했으니까.
후우.
BAR라고는 하지만, 비즈니스 좌석과 분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거나 별도의 룸 안에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녀와 나는 그저 데면데면한 상태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뿐이었다. 겉으로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금 전 행동은 지금 이 순간을 순식간에 식게 만들 수도 있는 행동이었기에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마음과는 달리 말이다.
“오늘이 1일이라고 할래. 나는.”
“뭐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지금 내 감정을 숨기고 싶지만은 않았다.
“그때가 진심이었다는 걸 나는 지금 알았으니까, 오늘부터 1일로 할래. 그때 말고.”
그러기에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기뻤으니까. 이 순간을 위해 지난 3년을 홀로 보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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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선추코. 정주행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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