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7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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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신랑 강지혁]
당신의 사랑스러운 신부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깜짝 프로포즈를 해주세요. 예산은 봉투에 동봉되어있습니다.
촬영할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내 스케줄을 물어보는 ‘우리 결혼 할까요’ 제작진들로 인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가져온 미션카드 내용을 본 순간 당황을 넘어서 놀라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션카드 내용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동봉된 예산 때문에 놀랐다. 기억에 남을 만한 깜짝 프로포즈를 준비하라 길래, 뭔가 대단한 액수가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봉투에는 고작 5만 원짜리 지폐 2장이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장난인줄 알고 계속해서 CP를 쳐다봤는데, 뭔가 너무나도 당당히 내 눈을 마주보길래 도리어 내가 당황해버렸다.
아니, 프로포즈하면 근사한 곳에서 밥도 먹고 반지도 주고 뭐 그러는 게 정상 아닌가? 설마 신부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프로포즈라는 게 다른 의미로 기억되게 만들라는 말인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제작진의 의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변함없는 태도로 나를 찍기 시작하는 제작진들로 인해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원 참. 나 한번 나오게 하겠다고 일주일마다 몇 천 만원 씩 쓰는 사람이 고작해야 10만원을 줘? 하...
어처구니없는 예산이지만 그래도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비록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슬희에게 프로포즈를 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뭐 전부터 그녀를 위한 자작곡을 만들어 불러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사랑해도 될까요.]
[말도 안 돼]
그런데 자작곡을 준비한 것 까지는 괜찮게 진행된 것 같은데 다른 게 문제다. 10만원 가지고 뭘 해야 될지 감이 안 왔으니 말이다.
어차피 다음 촬영이야 신혼집에 입주하는 내용일 테고 프로포즈까지는 적게는 3주, 길게는 4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답이 없다. 답이. 하, 그냥 내 사비 쓰면 안 되나?
*
[지, 진짜? 정말?]
[그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너 그런 거 잘 안하잖아. 방송 활동도 안하구...]
[그럼 맞춰봐.]
[어, 어?]
[맞춰 보라구. 평소 방송활동도 안하고 이런 행사 섭외 오면 거절만 하던 내가 굳이 왜 머나먼 파리까지 간다고 했는지.]
[모, 몰라. 왜 간다고 했는데?]
[뭐, 모르면 어쩔 수 없고.]
[그, 그게 뭐야. 가르쳐 줘!]
[그냥, 누가 파리 간다길래. 게다가 LA는 안 간다고 하데? 그래서 LA는 안가고 파리는 간다고 했지.]
[그, 그래? 누, 누군데?]
[모르겠어?]
[으, 응?]
[진짜 모르겠어? 모르면 어쩔 수 없고.]
앨범 활동이 끝났는지라, Twinkle 멤버들의 하루 일과는 매우 간단했다. 비교적 체력부담이 적은 라디오 활동이나 간혹 예능 활동을 나서는 경우를 제외하면 연습실에 나와 간단히 몸을 푸는 것이 하루 일과의 거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대박! 언니 이건 대박이고! 이건 빼박켄트야!”
“뭐, 뭐가?”
“언니! 대박! 우리가 파리에서 하는 K-FESTIVAL 간다니까 섭외 받아들였다는 거잖아! 딱 보면 몰라? 하, 답답해!”
“그, 그게...”
“뭔데? 너무 뻔하잖아?”
“아니면 어떡해.”
“하...”
이런 상황에서 슬희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연습실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전화를 건 이가 보통 사람이 아니었는데다가 통화내용도 심상치 않았으니 말이다.
“뭐야, 슬희 언니?”
“으, 응? 뭐, 뭐가?”
“어떤 비법이 있길래, 강지혁이랑 썸을 타, 응?”
“무, 무슨 소리야. 그, 그리고 언니가 혀, 형부라고 부르랬지!”
“지금 그게 중요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니 같은 모태솔로가 강지혁이랑 썸을 탄다는게 중요하지! 지금 강지혁이 이상형이라고 말한 배우며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지나 알아?”
멤버들의 성화에 걸려온 전화를 스피커로 전환시킨 덕에 지혁과 슬희의 통화를 엿들은 예린의 확신에 찬 소리가 그 호들갑의 정점을 찍게 만들었고 이는 슬희의 얼굴을 또다시 벌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솔까, 누가 이걸 보고 비즈니스라고 생각해? 멀리 볼 필요 없이 수연언니 봐봐! 번호 주고받았어도 일주일에 한번 연락할까 말까인데, 언니는 못해도 이삼일에 한번 씩은 하잖아! 이건 완전 썸이라고!”
하지만 예린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답이 뻔한 문제임에도 쑥스러워서인지, 아니면 조심스러워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연애경험이 없어서인지 유독 감을 잡지 못하는 듯한 슬희가 답답한 나머지 뱉었던 말이 누군가를 저격하고 말았다는 것을 말이다.
“김예린!”
“어, 어? 아! 수연 언니 미안...”
그런 예린을 리더인 아이리스가 재빨리 제지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슬희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수연이 종종 자신을 비즈니스로 대하는 성제 때문에 속상해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것을 멤버들 모두 모르지 않았기에, 당차게 분위기를 주도하던 예린 또한 입을 다문 채 수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치, 아니야. 뭐 없는 얘기 한 것도 아니고.”
그런 멤버들의 시선에서 무엇인가를 느껴서일까. 괜찮다는 듯 예린을 껴안으며 웃음 짓는 수연의 행동으로 인해 연습실 내부의 분위기는 다시금 밝아진 듯했다.
평소 수연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말이다.
*
[SD ENTERTAINMENT가 내놓은 대형신인 IP! 앨범 발매 첫 주부터 1위 후보 등극! 타이틀곡 MYMY로 가요계 돌풍 일으키나!]
[갓식스 컴백! 타이틀 곡 ‘니가 하면’ 뮤직비디오 공개! 중독성 깊은 후렴구로 흥행 예고! 작곡, 작사에 무명 작곡가 J를 기용한 JS ENTERTAINMENT의 승부수는 과연 통할 것인가!]
- ‘니가 하면’은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댄스곡이다. 감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멜로디와 후렴구에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가 인상적이,...
[갓식스 Teaser 영상에 이어 뮤직비디오에까지 등장한 가면인물은 누구? 6인조 그룹 갓식스! Teaser영상과 뮤직비디오에서는 7인조? 7인조 안무를 선보인 갓식스에 추가 멤버가? JS ENTERTAINMENT 측 曰 “본격적인 활동 시에는 6인조 안무로 활동하게 될 것,... 앨범 준비 시 6인조, 7인조 안무 두 안이 나와 팬분 들에게 모두 선보이기 위해 Teaser영상과 뮤직비디오에서는 7인조 안무를 보여드린 것이,...”]
-뭐임? 조금 뜬금포 아님?
-꺆ㄲㄲㄲㄱ이번 노래 대박!
-근데 뭔가 이상하긴 함. 굳이 6인조 그룹인데 7인조 안무를 만들 필요가있음? 뭔가 있는 것 같긴한데.....쩝. 그래도 노래는 좋네.
-원래 짝수 멤버 그룹이 안무짜기가 애매함. 그래서 아이돌들이 보통 홀수로 멤버짜는데, 갓식스는 짝수라서 그런 거일 수도 있음.
[SD ENTERTAINMENT VS JS ENTERTAINMENT! 대격돌의 승자는 누구? 내일 갓식스 정규앨범 발매와 함께 본격적인 경쟁 시작! IP는 이미 데뷔 첫 주 1위 후보에 올라!]
-IP노래도 대박이긴 한데, 갓식스 노래도 좋긴 좋음 근데, 노래 나온 타이밍 자체가 IP쪽이 더 좋은 듯, 홍보도 IP쪽이 더 화제였고.
-갓식스는 일단 내일 첫무대니까 일단 라이브한번 봐보면 될 것 같고 IP는 뭐, 이미 데뷔 첫주에 1위 후보니까 최소 중박이상이지 않겠음? 내 예상엔 초대박이랑 대박 사이정도일 듯.
-일단 비주얼은 IP압살아님? 김영진부터가 이미 사기임. 무슨 배우를 아이돌 그룹에 놔뒀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약간 씁쓸한게 김영진 노래실력에 MYMY이러고 있으니 조금 깨긴 함 ㅋㅋㅋㅋㅋ아이돌 그룹멤버라서 강지혁이랑 비교하긴 그런데, 그래도 강지혁처럼 보컬가수로 나왔으면 좋았을 건데 ㅋㅋㅋ쩝...아쉽네..... 마이마이 말해줘 이러는데 솔직히 안어울림 ㅋㅋㅋ그 비주얼로 이런 오글거림 가사를 내뱉다니 ㅋㅋ
*
“이번 주 영예의 뮤지션 송은?”
[두구두구]
“IP의 MYMY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물론, 오늘 컴백 무대를 가진 갓식스 입장에서 바로 1등의 영예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애초에 데이터 집계자체가 안될테니 말이다.
하지만, 데뷔 1주일 만에 공중파 방송 1위의 자리를 차지한,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IP를 보니 당장, 다음 주가 걱정됐다. 아니 갓식스의 이번 앨범 활동이 전체가 걱정됐다.
이번 활동의 성패를 가르는 데에 있어 IP의 활약은 도움보다는 장애물이 될 소지가 다분했으니 말이다.
물론, 오늘 갓식스의 무대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니가 하면]
네가 하면 Fantastic 내가 하면 시무룩
도대체 어째서 매일 내가 틀린 건지,
넌 항상 날 이겨먹으려고 해.
눈물만 흘리면 다야,
나를 끌리게 만들었던 너의 그 모습
이제는 날 매일 힘들게 하지.
과장된 너의 허언이
날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들어.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는 생각에
참고 견딜 수 있었어.
Any time, any word
makes me gloomy.
도대체 왜 내게 화를 내는 것일까.
다시 예전처럼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네가 하면 모든 게 옳은 것이 돼버려.
네가 하면 나는 잘못된 것이 돼버려.
그런 네가 너무 낯설어.
심지어 평상시에도 불안해져.
네가 갑자기 변해 버릴까봐.
도대체 왜 내게 화만 내.
다시 예전처럼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
홀수가 아닌, 짝수 멤버 그룹이기에 전체 안무 대형이 좌우비대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제쳐두고서라도 준비된 땀과 노력의 결실을 여지없이 무대에서 보여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아이돌세계에서는 실력이 전부가 아님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를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길고 짧은 것은 직접 대봐야 안다고, 아직 제대로 된 경쟁은 해보지도 않은 상태였을 뿐더러, 컴백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한 멤버들 앞에서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오늘은 회식이다! 대신! 내일도 모레도 음방 있고 이제부터 활동시작이니까 술은 안 된다! 알겠지?”
첫 컴백 무대인지라, 직접 대기실까지 찾아온 삼촌의 말에 멤버들의 얼굴이 아쉬움이 스쳐지나갔다. 뭐, 지금 멤버들이 느끼고 있는 무대의 여운을 고려했을 때, 소주를 뺀 회식은 단팥 없는 찐빵일 테니까.
“예.”
“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아이돌 가수로서 컴백은 체력싸움이 시작됐다는 걸 의미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셔도 되겠지?
*
[술 마셨어?]
소속사 대표의 위엄이 이다지도 하찮은 것인지 처음 알았다.
“응, 어제 삼촌이랑 술자리가 있어서. 어떻게 하다 보니 꽤 마셔버렸어.”
애초부터 소속사 대표의 위엄이 의미가 없는 게, 당장 내일부터 활동 있다고 술 마시지 말라던 사람이 직접 멤버들한테 술을 따라줬으니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술을 먹으라고 하든지. 괜히 먹지 말랬다가 먹으라고 하니까, 멤버들 전체가 고삐가 풀리는 바람에 나만 죽어버렸다. 삼촌이 고삐를 풀기 전까지 멤버들을 놀리며 삼겹살에 소주를 마셔댔으니 말이다.
[치, 난 술 좋아하는 남자는 별로인데...]
[나 술 먹어서 별로야?]
[으, 응? 그, 그게...]
뭐, 나는 멤버들과 달리 스케줄이 없어 이렇게 나름 여유롭게 소파에 누워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더군다나, 숙취에 고통스러울지라도 슬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 오죽할까.
[난 내가 술 먹었을 때 아침에 콩나물 국 끓여주는 여자가 로망인데. 슬희한테 기대하긴 힘들겠네? 술 먹는 남자는 별로라고 했으니까.]
[수, 술 좋아하는 남자가 별로랬지, 술 먹는 남자가 별로라고 한 적은 어, 없어!]
[그럼 슬희는 남자친구가 술 먹은 다음날 콩나물국도 끓여줄 수 있는 여자네?]
[그, 그럼!]
역시나 슬희는 놀리는 맛이 있다. 연상임에도 귀여움이 넘쳐 동생같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 행동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일까. 슬희도 이제는 아는 것 같다.
[치... 내가 누난데! 자꾸 놀리기만 하고. 너무, 너무 능숙해!]
[그래서 싫어?]
[봐봐, 이러면 내가 뭐라 말 할 수가 없잖아! 치...]
내가 자신을 놀리는 것에 맛 들렸다는 것을 말이다. 뭐, 이거는 이거 나름대로 기존의 슬희 모습과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는지라 나로서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어나 그저 좋을 뿐이다.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하, 속 쓰려.]
[속 많이 쓰려워?]
[어제 조금 많이 마셨거든.]
어제 멤버들의 집단 소주 공격으로 숙취가 심해서일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서인지, 슬희는 제법 내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나보다.
[그, 그럼 내가 코, 콩나물 국 끓여줄까?]
뭔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GOD BLES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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