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3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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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받아.”
지금 이게 꿈인 것인지, 아니면 내 눈이 잘 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과 자작하게 끓고 있는 된장찌개. 평소라면 군침을 흘리며 젓가락과 수저부터 가져다댔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느낄 수 없었다.
[뮤직비디오 안무는 7인 기준이야. 네가 처음 만들었던 그 안무 그대로.]
[삼촌 뭐라고? 내가 잘 못 들은 거지? 지금? 아니, 뭔 소리야. 당장 일주일 뒤에 뮤직비디오 촬영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삼촌. 게다가 일정 자체를 떠나서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애들도 그렇고 나도 전부 동의한 거니까. 그렇게 볼 필요 없다.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니까.]
[뭐?]
삼촌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반발한 것도 잠시, 멤버들 모두가 삼촌의 뜻에 동의했다는 말에 힘이 빠져버렸다.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도망쳤다.
내가 저들 사이에 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았다. 내가 한 짓을 알고 있으니까. 나 하나로 인해 저들의 데뷔가 2년이나 늦춰졌다는 것만 봐도 삼촌의 제안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데뷔하고 막내들까지 성인이 되면 다 같이 삼겹살에 소주 먹자고 자주 말했었는데, 너무 오래 걸렸네.”
“막둥이들도 어느새 소주잔이 어색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니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너를 그때 조금만 더 말렸었다면’, ‘헤어지고 나서 방안에 틀어박혀 있던 너를 정신 차릴 때까지 때려서라도 강제로 밖에 끌고 나왔어야했는데’라는 생각 많이 했어.”
“후회 많이 했다. 나도 애들도.”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 나와 버렸다.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말이다.
“용서니, 뭐니 그런 말 할 필요도 없어. 애초에 그런 걸로 용서받아야 했으면, 우리도 너한테 용서를 빌었어야 하니까.”
“네가 우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만, 그거면 충분해. 그래서 다들 찬성했어. 박재성 PD님 제안 말이야.”
눈앞이 흐려지고 고개를 들 수 없게 돼버렸다.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와 삼겹살의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는 순간 굳게 먹었던 마음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버렸으니까.
“JV가 네 앨범 전부 사서 항상 듣고 다녔어. 겉으로는 너한테 차갑게 대했지만, JV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너 많이 그리워했어.”
“우리가 너한테 화가 났던 거는, 네가 잘못했다느니 실망시켰다느니 말하면서 우리를 피해 다녔기 때문이지 다른 게 아니야. 모두들 네가 돌아오길 기다렸으니까.”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도 날 원망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 혼자만의 착각임을 깨닫게 된 지금 무슨 말을 해야 될까. 어떤 얼굴로 이들을 바라봐야 될까.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지만, 지금 당장은.
“많이 힘들었을 때 언제나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내 얘기를 노래로 만들어줘서 고맙다.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간직해준 것도 고맙고 말이야. 우리의 데뷔곡이 될 수도 있었던 곡이니까, 같이 하자. 비록 같은 무대에서, 우리가 꿈꿨던 대로 한 팀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뮤직비디오에서라도 함께하자. 지혁아.”
“힘들고 지친... 연습생 때 환한 빛이 돼주어서 고마워. 형. 형 덕분에 버틸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나 이제 한국말 많이 늘었다. 이제 내가 네 고민 들어줄 수 있다.”
너무 멀리, 오래 돌아왔다는 생각이 우선일 뿐이었다.
*
[Q. 첫 만남 때부터 신부에게 백 허그를 했는데, 심정은?]
-배, 백허그라니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고요. 단지, 순간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만 들어서요.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에요.]
[Q. 남편이 첫 만남 때부터 본인에게 백 허그를 했다. 그때 심정은?]
-너무 부끄럽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요. 신호가 바뀐지 몰랐는데... 감사했어요. 뭔가, 이런 게 남자친구 아니, 남편인건가? 그,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저번 주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우리 결혼 할까요’이기에 오늘도 그녀들은 숙소에 모여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들 자체가 타고난 집 순이 이기도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그들 멤버들 중 2명이나 출연하는 ‘우리 결혼 할까요’를 모니터링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직무위반이었으니 말이다.
“우와... 강지혁 대박 멋있어.”
“키랑 어깨 대박. 이래서 슬희가 저번 주에 어깨 넓은지 알았구나.”
“치. 내가 나갔으면... 이미 게임 끝이라구! 내가 승부 걸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그렇게 나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렇게 지난 주 자신들을 흥분에 떨게 했던 예고편 내용의 전말이 드러나자, Twinkle 멤버들의 입에서 저마다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물론, 예린의 입에서는 투정 섞인 아쉬움이 흘러나왔지만 말이다.
갑작스럽게 바뀐 신호등. 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대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슬희, 다가오는 차들. 이때 순간적으로 그녀를 낚아 채 품안에 껴안는 강지혁.
그때를 떠올리는 것인지 슬희의 얼굴은 이미 빨개진지 오래였고 이는 다른 멤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신이 슬희가 된 마냥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은 여전히 TV를 좇고 있었으니 말이다.
“죄송해요. 제가 좀 보수적이죠?”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어서요.”
“이거 덮으세요.”
[Q. 카페 안에서 신부의 다리를 가리기위해 자신의 재킷을 벗어주었는데 이 행동의 의미는?]
-그날 슬희 씨가 입은 옷들이 너무 취향저격이었는데요... 그게, 다른 남자들이 보는 게 싫어서... 저만 봤으면 좋겠어요. 이제 첫 만남인데 제가 너무 앞서간 건가요? 그렇게 하고나서 많이 후회했어요. 흐...]
[Q. 짧은 팬츠를 입고 온 본인에게 재킷을 벗어 다리를 가리라는 신랑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
-보, 보수적이라고 하셨는데... 기분이 나쁘진 않았아요. 뭔가, 보살핌 받는 느낌?
“봤지? 내 말 맞지?”
이어진 영상에서 슬희의 첫 만남 복장이 취향저격이라고 하는 지혁의 인터뷰로 인해, 안 그래도 최근 기세등등해진 예린이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아이리스를 쳐다봤다.
“취향저격이라잖아! 아이리스 언니가 해준 대로 나갔으면 아내가 아니라 엄마라고 했을 거라구! 남편이 이렇게도 좋아하는 코디를 해준 나한테 잘해! 그럼 알아? 내가 또 코디 해줄지?”
그러자, 아이리스는 발끈하지도 못한 채 그저 입술을 쭉 내밀뿐이었다. 그녀 말마따나, 요즘 Twinkle 멤버 간 대세는 예린이었으니까.
[Q. 신부의 이상형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다음 만남 때 꼭 하고 싶은 것은?]
-솔직히 많이 걱정됐어요. 하... 그냥 적당히 잘생기신 분이면 어떻게든 꾸며서라도 그분과 저의 차이를 없애보겠는데... 강동훤... 이건 뭐 그냥 저는 무조건 아니라는... 크흠... 그리고 다음번에 꼭 하고 싶은 것은, 음... 번호를 받고 싶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미처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다음 만남 때는 핸드폰 번호 받고 싶어요. 그리고 조금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Q. 만나본 이가 남편으로서 마음에 드나? 본인의 이상형이라 답한 강동훤과 직접 만나본 남편 중 마음에 드는 이는?]
-마, 마음에 들어요. 지금 남편이 더 조, 좋아요!
그렇게 저번 주에 다를 바 없이 10분 남짓한 영상을 끝으로 Twinkle 멤버들의 시선은 TV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녀들이 슬희를 가만 놔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그녀들 모두의 눈빛은 너무나도 초롱초롱 빛났으니까.
“뭐야, 슬희 언니 눈치 없게 이상형에 강동훤이라고 적었어?”
“하... 그걸 적으면 어떡해?”
“으, 응? 응...”
“아니! 이상형에 강동훤을 적으면 어떡해!”
게다가 마지막 영상에도 나왔듯이 모태솔로에 연애를 드라마로 배운 슬희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짓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강동훤.
수많은 작품에서 두각을 드러낸 대한민국 대표 배우이다. 하지만, 정작 배우라는 단어보다 그를 먼저 수식하는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미남이었다.
조각처럼 뚜렷한 이목구비, 훤칠한 키, 달콤한 목소리. 수많은 여성 팬들을 보유한 그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의 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존재와 비교되는 순간 남자들은 오징어 신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까.
“언니! 강지혁이 이상형이 한가현에 김태히라고 적었으면 어땠겠어?”
물론 멤버들이 보기에 슬희의 이상형을 강동훤으로 한정짓기는 애매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멋있는 배우를 볼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이상형이 바뀌곤 하는 슬희였으니 말이다.
“이래서 드라마랑 영화로 연애를 배우면 안 된다니까? 하늘을 봐야 별을 따든가 하지, 허구헌날 TV앞에서... 하... 답도 없다. 답이.”
“예, 예린이 너! 언니가 말 예쁘게 하랬지. 하,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니!”
“치, 맨날 순진한 척은 혼자 다해. 야동도 언니 컴퓨터에 제일 많,”
“기, 김예린!”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가상 남편으로 출연하는 강지혁으로서는 이를 알 방법이 없다는 것, 그래서 방금 전 인터뷰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말이다.
“휴... 이래서 내가 눈을 못 떼겠다니까? 뭐, 그래도 인터뷰 때 강지혁이 좋다고 한거는 잘했네.”
“예, 예린이 너. 자꾸 강지혁, 강지혁 하는데, 그러면,”
“헐, 대박! 지금 강지혁이라고 불렀다고 나한테 뭐라 하는 거? 벌써부터 남편이다 이거지? 와...”
“그, 그치만!”
“그래서 뭐라 불러주까? 오빠? 지혁 오빠 이렇게?”
“오, 오빠는 조금 그렇고.”
“그럼 형부?”
“그, 그렇게 불러야지. 오빠는 안 돼.”
“헐... 슬희 언니 변했어. 저런 사람 아니었는데. 벌써부터 남편 관리?”
그렇게 예린이 아이리스와 슬희를 휘젓고 있는 사이 승희와 수연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팝콘을 먹으며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강지혁은, 아니 지혁 오빠는, 아! 알았어. 형부는 비즈니스인 것 같아? 응?”
“잘 모르겠어...”
“번호 주고받은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아직 한번도...”
“연락 한 번도 안했다고? 대박! 언니가 먼저 해봐! 혹시 모르잖아. 바빠서 그런 거 일수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슬희에 대해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예린이 자화자찬에 빠져 혼자 실실거리는 틈을 타 슬희에게 다가갔으니 말이다.
“언니 얼른 해봐!”
“지, 지금?”
“그럼 언제 할려구? 우리가 옆에 있을 때 해야 우리가 아니 내가 도와주지.”
수줍어하는 모습,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빨개진 얼굴. 딱 봐도 진심인 것 같은 슬희의 모습에 그녀들은 걱정부터 들기 시작했다.
특히 수연에게 이러한 슬희의 모습은 남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됐다. 슬희가 자신처럼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니까.
*
*
[니가 하면]
네가 하면 Fantastic 내가 하면 시무룩
도대체 어째서 매일 내가 틀린 건지,
넌 항상 날 이겨먹으려고 해.
눈물만 흘리면 다야,
나를 끌리게 만들었던 너의 그 모습
이제는 날 매일 힘들게 하지.
......
“자! 잠깐 쉬고 합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안무촬영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의 분위기는 밝기만 했다. 가면을 쓰고 계속해서 격렬한 춤을 춰야만 했기에 정작 내 얼굴은 메이크업 수정을 다시 받아야 될 정도로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말이다.
전에 Amiga애들이 뮤직비디오를 찍느라 밤을 새워 촬영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절대로 뮤직비디오를 찍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당사자가 되어, 혼자가 아닌 모두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어보니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니, 날아갈 듯 했다. 지난 세월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비로소 하게 됐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그렇게 메이크업 수정을 받고 음료수로 목을 축일 때였다.
“어? 전화 왔는데? 지혁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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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가 미래다. 프로듀스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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