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90화 (90/502)

00090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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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 할까요’는 한 시간 동안 보통 3~4 부부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따라서 각 부부는 많게는 20분 적게는 15분 정도의 분량동안 시청자들에게 비춰진다. 하지만, 이번에 나와 슬희의 첫 이야기는 고작해야 10분 정도의 분량을 차지한 채 끝을 맺었다.

뭐, 가만 생각해보면 이 분량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우리 결혼 할까요’는 한 번의 촬영이 2화분으로 나눠져 방영됐으니 말이다. 다만, 우리들 같은 경우 첫 촬영이 그다지 길지 않았고 두 번째 촬영 또한 한 달 가량 뒤에 이루어졌는지라 유난히도 더 짧을 수밖에.

그래도 실망 같은 거는 하지 않았다. 어찌됐건 나는 슬희와 말을 텄고 번호도 주고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분량이 적은 건 그렇다 쳐도 예고편을 보니 제작진 속셈이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어! 조, 조심!]

[괜찮아요?]

[네, 괘, 괜찮아요.]

[저... 저기...]

[네?]

[소, 손 좀...]

[아! 죄, 죄송해요!]

분량은 가장 적었지만, 30초 남짓 전개된 예고편에서 나와 슬희의 분량은 절반에 육박했으니 말이다. ‘우리 결혼 할까요’를 직접 기획하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내공이 바로 이런 것일까?

내가 만약 시청자였다면 진짜 약 올랐을 것 같다. 바로 옆자리에 있었다면 멱살 잡고 다음 편 내놓으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어깨, 탄력 있는 허리, 기분 좋은 향기. 정작 당사자인 나조차도 그때를 그립게 만들 정도로 예고편이 주는 임팩트가 강력했을 정도니 오죽할까.

뭐, 그래봤자 다음 주에도 나와 슬희 분량은 오늘과 다르지 않을, 오히려 더 적겠지만.

그렇게 예고편까지 남김없이 본방사수한 뒤 TV를 껐다. 방송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 진동이 울려왔지만, 그저 침대에 드러누웠다. 보나마나, 누가 보낸 것인지 훤히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던,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유진.

대놓고 삐졌다고 광고하듯 툴툴거리던 시나.

어느 순간부터 전화와 연락을 끊은, 오늘 하루 종일 내게 말을 걸지 않았던 지하.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조금씩 서운한 기색을 내보이던 소정.

그동안 내색을 안 해서 나 또한 걱정하지 않았던,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오늘 갑자기 본인 특유의 해맑은 눈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던 예원.

한우를 꼭꼭 씹어 먹으며 귀여움을 한껏 뽐내던 은지와 달리, 각각 예상된 태도와 예상하지 못한 행동들로 나를 당황시킨 다섯으로 인해 머리가 아파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일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이 말이다.

힘들었던 때 내게 힘이 돼주었던 유진이기에 애써 녀석의 마음을 눈치 챘음에도 강하게 밀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나머지 녀석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달라도 내가 강하게 녀석들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할 때이기도 하거니와, 통제와 관리의 연속인 아이돌 생활에서 일순간의 동경이 사랑이라는 설렘으로, 자신도 모르게 오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낙관적이었나 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이별의 아픔을 무디게 만들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더욱 증폭 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으니까.

그녀들이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소정의 말처럼 아직은 연애를 할 때가 아니라는,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녀들의 감정을 애써 모른 척 넘어갔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없었다면 나는 그녀들의 마음을 받아들였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해지는 연결고리에 머리를 거칠게 좌우로 흔들었다.

하, 모르겠다.

내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었다면 이런 고민조차 쉽게 해결할 수, 아니 애초에 이런 고민거리를 만들지 않았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신이 아니었다.

하, 이런 돼도 안 돼는 생각까지 하는 걸 보니 많이 복잡하긴 한가보다. 평범한 인간주제에, 무교인 주제에 관심도 없는 신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하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나보다. 내 생각의 주된 논리로 따지자면 지금 나는 그녀들과의 인연을 잠시 접어두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처럼 여동생들, 친구처럼 그녀들을 대하고 싶었으니까.

지금처럼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그녀들을 대하면, 정작 그녀들은 기뻐할까, 아니면 싫어할까. 무엇이 그녀들에게 더 좋은 방법일까. 너무나도 복잡하고 내 개인이 재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라 마음의 저울추는 이미 내 하고자 하는 쪽으로 상당부분 기울어지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빠져있어서일까. 뜨거워진 얼굴에 두통까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는지라, 애써 복잡한 생각을 뇌리에서 몰아냈다.

이래서 삼촌이 한때 양다리, 삼다리, 오다리까지 걸친 걸까? 마냥 철없는 행동이라 삼촌을 비난했는데 상황이 너무 복잡하다보니 심지어 그런 삼촌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듯,

하아.

진짜. 내가 진짜 미쳤나보다. 이런 별 거지같은 생각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걸 보니 확실히 쉬어야겠다. 아무생각 없이.

*

[어! 조, 조심!]

[괜찮아요?]

[네, 괘, 괜찮아요.]

[저... 저기...]

[네?]

[소, 손 좀...]

[아! 죄, 죄송해요!]

예고편의 후폭풍은 어마 무시했다. 당장,

“뭐,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끝나!”

“나, 나도 아직 성제 오빠랑 안 해봤는데... 첫 만남에서...”

“대, 대박! 가, 강지혁이 슬희 언니 배, 백허그?”

“슬희 너! 우, 우리들한테 이런 말 없었잖아! 이래서 촬영 갔다 와서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하는 거야? 너 어, 언니도 안 당해본 배, 백허그를, 아니 이게 아니지. 너 빨리 불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예고편에 강지혁이 너한테 배, 백허그를 왜 하는 건데!”

슬희 그녀와 같은 그룹 멤버인 이들이 불을 뿜으며 흥분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고작해야 10분 남짓한 본편에서도 틈만 나면 호들갑을 떨며 슬희를 놀리던 그녀들의 행동이 마지막 예고편에서 절정에 치달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연습벌레로 유명했던 슬희.

그래서일까, 그동안 연애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모태솔로 슬희가 가상이나마 연애를 넘어선 결혼을 한다는 것부터가 놀라울 일 일진데, 첫 만남부터 초면인 남자에게 백허그를 받았다는 점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슬희의 표정과 행동에서 그녀가 이를 기분 나빠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그녀들이기에 이 같은 반응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물론 방송에서 슬희는 백허그를 한 지혁에게 손을 놔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슬희를 오래 봐왔던 멤버들이 보기에 이는 그 행동의 싫고 좋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

“언니 뭐야! 말 좀 해봐! 내가 코디도 다 해줬는데! 그동안 촬영 끝나고 어땠는지 말 안 해준 게 다 이유가 있었네!”

“아, 아니야.”

“그럼 뭔데! 지금도 얼굴 빨개졌네!”

“스, 슬희가 백허그를...”

“슬희가...”

“백허그를... 성제 오빠는 그런 거 할 생각도 없는 것 같던데...”

그녀들이 보기에 이는 부끄러움의 표현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명백히.

“이미 인터넷도 난리 났네. 난리 났어.”

[강지혁, 강슬희 부부! 첫 등장부터 임팩트 폭발? 겨우 10분 남짓한 분량임에도 네티즌들의 관심 점점 커져만 가! 예고편의 백허그에 대한 문의 쇄도!]

[강지혁이 강슬희에게 백허그를? 첫 만남부터 백허그를 시전한 강지혁의 위엄! 강슬희를 사랑에 빠뜨리다! 이러다 가상이 리얼로?]

재빨리 핸드폰으로 실시간 기사들을 살펴본 예린의 말에 연신 슬희를 놀리던 Trendy 멤버들과 새 보이그룹 멤버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우리 결혼 할까요 강지혁 효과 발동? 전주 시청률 3.4%에서 무려 2.4% 상승한 5.8% 기록! 하지만 정작 강지혁 분량은 10분?]

[섭외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강지혁 또다시 섭외 함정에 빠져. 선배 부부 박수연, 육성제 부부의 집들이로 착각? 박수연, 육성제 부부의 큰 그림이 이걸?]

그리고 이내 그들 또한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연예 기사 면을 장식하다시피 장악한 우리 결혼 할까요 기사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놀라게 한 사건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포브스 선정 2012년 6월 1일부터 2013년 5월 31일까지 기간 중 30세 이하 유명인 수입 TOP30에 빅밤, 강지혁 랭크! 한화 약 517억 원을 벌어 13위에 랭크된 빅밤, 한화 약 581억 원을 벌어 10위에 랭크된 강지혁 등 아시아에서 단 2명뿐인 순위 자가 모두 한국인!]

“헐, 대박!”

또다시 예린의 입에서 흘러나온 경악성에 장내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예린이 직접 자신의 핸드폰을 슬희에게로 가져갔다는 점이었다.

“오, 오백 파, 팔십일억?”

“대, 대박... 빅밤보다 더?”

불과 어제까지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이들과 어제서야 활동이 마무리된 그들이었기에 며칠 전에 화제가 되었던 기사를 이제야 확인한 것인지 장내는 또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낸 예린이 아직도 붉어진 얼굴을 감당 못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던 슬희에게 입을 열었다.

“언니, 어땠어? 응? 지금 촬영 두 번 했는데 어땠냐구! 비즈니스인 것 같아? 아니면 진심이 느껴져?”

좀 전과는 달리 작은 목소리였지만, 장내는 이내 고요해졌다. 그만큼 예린이 꺼낸 질문이 주는 화제성은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슬희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다음 촬영 때까지 연락 한 번도 안할 거야? 와... 상처 받았어. 슬희는 오로지 비즈니스구나. 하긴, 강동훤도 아닌데 나처럼 오징어는 슬희한테 번호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없,]

최근 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을 뿐.

그렇게 한동안 그들이 있는 연습실은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 찼다.

“그, 그게...”

누군가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해 얼굴이 빨개진 채로,

“와... 난 슬희 누나가 저런 거 처음 봐.”

“완전 홍당무잖아. 홍당무.”

“슬희 누나도 여자긴 여자구나... 내가 이런 모습을 볼 날이 올 줄이야...”

“오는 남자 쳐내고 그렇다고 다가가지도 않으니까, 완전 연애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대박이긴 하네. 천하의 강슬희를... 저거 누가 봐도...”

누군가는 그런 그녀를 보며 놀란 채로,

“뭐, 뭐야! 뭔데, 뭔데! 말 해봐! 치사해! 내가 다시 도와주나 봐라! 코디 하는 거 안도와줄거야! 그러지 말고 말해봐! 내가 다 조언해준다니까? 나 못 믿어? 이거 왜 이러셔! 나 예린이라고! 예린! 애호박도 내가 맞춘 거잖아!”

“슬희야 어떤데? 비즈니스 같았어? 아니면...?”

“언니는 어떤데? 언니는 비즈니스로 갈 거야? 강지혁 어떤 것 같은데? 응? 성제 오빠 말로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누군가는 호들갑을 떨며 마치 제 일인마냥 부지런히 입을 놀린 채로,

누군가는 그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

“삼촌 뭐라고? 내가 잘 못 들은 거지? 지금?”

삼촌의 연락을 받고 JS ENTERTAINMENT를 찾았다.

[그렇지. 역시 나를 닮아서 우리 지혁이가 그런 건 또 확실하지. 진도는 뺄 때 확 빼서,]

[처음에 백허그를 딱 하면 그래, 우리 지혁이가 누군데 안 넘어오고! 이렇게 완벽한,]

[뭐, 슬희 걔 보니까, 꽤 괜찮더라고. 키는 좀 작어도 그 정도면,]

[그래서 언제 인사 올 건데? 뭐 아직 내가 네 아내로 인정한 것도 아니고 허락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인사는 와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 언제 온다고?]

역시나 예상대로 며칠 전 방영된 ‘우리 결혼 했어요’ 얘기를 꺼내는 삼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어휴, 저 증상은 사라질 기미가 안보이네. 정말, 내가 못산다. 못 살아.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진 얘기였다.

삼촌이 꺼낸 얘기를 듣자마자, 내 귀가 고장 난 것인지를 확인했으니 말이다.

가만히 놔뒀으면 10분이고 20분이고 주구장창 우리 결혼 할까요 얘기만 할 것 같던, 아니 평소의 삼촌이었다면 능히 그랬어야 할 얘기를 10분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 한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의 결과가 방금 전 얘기였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말이다.

“아니, 뭔 소리야. 당장 일주일 뒤에 뮤직비디오 촬영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삼촌. 게다가 일정 자체를 떠나서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애들도 그렇고 나도 전부 동의한 거니까. 그렇게 볼 필요 없다.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니까.”

“뭐?”

하, 뭐야 도대체.

============================ 작품 후기 ============================

l펜리르l님 7장

바람혹바람별님 9장

원고료 쿠폰 주신 펜리르님, 바람혹바람별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추코가 미래다. 프로듀스 정주행.

오늘 하루 선작, 추천, 코멘트 눌러주시고 또 원고료 쿠폰도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P.S - 물만두면 어떠하리, 찐만두면 어떠하리 또 군만두면 어떠하리. 만두인것이 중요한 것을. 진정한 만두성애자는 형태를 가리지 아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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