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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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 약간 섹고 아니 떡 먹는 고릴라 이미지가 있으니까, 포인트 안무로 이건 어때?]
[오케이, 그거 괜찮다.]
[갓식스 컴백이랑 겹치면 조금 그러니까, 빨라도 9월쯤으로 잡고 준비하면 될 것 같아.]
[그럼 일단 포인트 안무는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까? 아니면 너도 어느 정도 참여할래?]
[에이, 내가 뭘 안다고 참여해. 포인트 안무도 그냥 얻어걸린 건데... 그리고 삼촌 노래니까, 삼촌이 만드는 게 낫지 않겠어? 박재성 클라스가 있는데? 뭐, 그리고 가사 자체가 약간 삼촌 위인전? 그런 필 나니까 삼촌이 댄스까지 짜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럼 그건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녹음은?]
[삼촌 알아서 잘하면서 왜 그래? 애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떠오른 곡으로 인해 삼촌은 휴일을 마저 즐기지도 않은 채 회사로 가버렸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한테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갓식스의 컴백 준비와 회사일 모두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아는 삼촌은 음악활동에 대한 열정을 쉽사리 꺾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즉석에서 만든 곡을 듣고선 기쁨과 흥을 감추지 못하던 삼촌의 미소는 보기 좋았다. 본인 스스로가 날 때부터 딴따라라고 자칭할 만큼, 음악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삼촌은 배울 것이 많은 선배 가수였으니까.
“안녕하세요.”
그렇게 며칠 전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가 다가왔다.
근 한 달 넘는 시간동안 보지 못했는지라, 여전히 우리 사이는 어색했다. 첫 만남 때 채 어색함을 풀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너무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늘색 체크 원피스에 블랙 크로스 백 그리고 올림머리를 한 그녀가 내 앞에 앉는 순간, 과일 향이 물씬 풍겨왔다. 봄 같지 않은, 마치 여름 같은 지금 날씨에 정말 잘 어울리는 향이었는지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녀 입에서 반말을 내 입에서 반말이 나오도록 하고 싶다. 더불어 전화번호 교환도.
팬 미팅 일정이 끝나 세상 누구보다 여유로워진 나와는 달리, 아직 최근 앨범 활동이 끝나지 않은 것인지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스며들어있었다.
“우리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네요. 금방 만날 줄 알았는데.”
“그, 그러게요.”
그래서일까, 의도한 건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 스스로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왠지 모르게 짠해졌다.
“어? 미션봉투?”
그렇게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묻고 피곤해하는 그녀를 위해 음료를 주문하려 할 때였다. 여느 우리 결혼 할까요 커플이 그러하듯, 본격적인 촬영의 시작을 알리는 PD의 미션봉투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다.
[TO. 강지혁, 강슬희 부부]
부부가 되었지만, 바쁜 스케줄로 인해 한 달이 넘게 만나지 못한 지금! 어색함을 깨고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게 오늘 하루 멋진 명동 거리 데이트를 해보세요. 데이트 세부 코스는 부부 마음대로!
미션 카드에도 적혀있듯이 우리는 아직 어색한 사이일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명동 거리를 걸으며 서로에 어색함을 깨라는 미션 내용은 바람직했다. 내 눈앞의 그녀가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말이다.
솔직히 아이돌의 일상이 어떤지 자세히는 모른다. 그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떨어져나간 나로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
하지만, 지금 상황은 짐작이 곧 확신이 되는 경우였다. 활동의 막바지라고는 하나, 이것이 활동의 빈도가 줄었다는 의미는 아니었기에 그녀는 여느 아이돌이 그러하듯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 나와의 만남이 있는 오늘까지도 말이다.
미션 내용이 끌렸지만,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이란 게 본인 의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에 애써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씨도 더운데 저번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 괜찮죠?”
날씨도 덥거니와 그녀가 많이 피곤해보여 서둘러 음료를 주문했다. 더불어 숨겨뒀던 장난 끼까지 불러들였지만.
“네, 네? 아, 네...”
낯을 많이 가리는 건지, 아니면 초면이나 다를 바 없는 우리사이 때문이어서 그런 건지 그녀 는 역시나 내 예상대로 자신의 식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이미 그녀의 프로필을 찾아본 나로서는 그런 그녀의 동공지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많이 기다렸죠?”
“아, 아니에요.”
그렇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주문한 음료를 건넸다. 그러자, 이미 체념한 듯,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던 그녀의 입에서 의아함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어?”
“단 것 좋아하면 말해주지. 너무해요.”
“아!”
내가 주문한 것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라멜 마끼아또였으니 말이다. 꽤나 놀란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녀에게 장난 섞인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라도 해서 친해지고 싶었고 또한 피곤해하는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활력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그녀와 나란히 걷다, 근처의 택시를 골라 탔다. 아무래도, 방송이다 보니, VJ한명이 우리와 동승했고 또한 택시 곳곳에 카메라들이 설치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성제가 가상이라는 느낌을 못 벗어난다고 했나?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상을 전제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많이 피곤하죠?”
“아, 아니에요.”
그렇게 촬영 준비를 위해 10여분 정도를 소모하고 나서야, 우리를 태운 택시는 출발할 수 있었다. 물론, 택시요금은 그 준비시간을 포함했지만.
“명동까지는 조금 걸리니까, 그 사이에 좀 자둬요. 깨워줄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내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조금만 자다 일어나요. 네?”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서 그래요.”
피곤한 상태에서 몇 십분 남짓한 잠이 얼마나 꿀 같은지, 얼마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지를 모르지 않았는지라, 그녀에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라 제안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런데,
[툭]
정말로 많이 피곤했나보다. 끝내 내 제안을 거부했던 그녀가 대화가 끊긴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숙였으니 말이다. 이럴 거면 왜 물어 본거야? 알아서 자는 데?
그런 그녀를 신기한 듯 한동안 쳐다봤다. 그러다, 갈 곳 잃은 그녀의 고개가 계속해서 허공을 수놓자, 용기를 내 그녀의 얼굴을 내 어깨로 가져다댔다. 하, 심장 떨려.
“쉿!”
그런 내 행동에 본인이 VJ라는 걸 망각한 득한 VJ가 입을 열려하자, 이를 잽싸게 제지했다. 기껏 원하는 대로 그녀가 잠들었는데, 원하지 않은 방해꾼으로 인해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질 정도인데 명동을 가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가봤자, 우리가 겪게 될 상황이라는 게 너무나도 뻔했으니 말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나와 그녀. 물론 촬영 팀을 통해 이동하는 데 큰 무리는 없겠지만, 정작 멀쩡한 컨디션인 나조차도 피곤해할 일을 지금의 그녀가 감당한다?
뭐,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되면 그녀의 기억 속에 오늘은 설레고 즐거운 날이 아닌 피곤하기 그지없어 녹초가 된 날로 기억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사 아저씨.”
“응?”
“죄송한데요. 명동말구요. 그... 남한산성 가는 길에 약선재라고 있는데 혹시 거기 아세요?”
“아! 명동으로 안가고?”
그녀가 오늘을 나쁘게 기억하지 않게,
“네, 제 부인이 많이 피곤해해서요. 몸보신 시켜주고 싶은데. 약선재라고 네비게이션 찍으면 나올 거에요. 거기로 가주세요.”
덤으로 내게 애호박으로 빅 엿을 먹인 제작진에게 복수할 수 있게 말이다.
“저, 저기 지혁씨 가, 갑자기 그러시,”
“쉿!”
그런 내 돌발적인 행동에 VJ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타고 있는 택시를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스태프들과 그녀의 매니저, 스타일리스트들이 뒤따라오고 있을 것이니 만큼 지금 내 행동은 확실히 우발적이었으니까.
뭐, 명동 데이트를 위해 제작진이 따로 섭외한 곳이 있을 수도 있다. 말이 자유 길거리 데이트지, 사실 그들 입장에서 이는 촬영의 일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미션 카드에도 명동 데이트를 하라고 나왔지, 미리 섭외된 곳을 가라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미션 카드 좀 어기면 어떤가. 명동에서 못한 데이트 산속에서 하면 되지. 아 몰라, 배째.
“옆에 있는 아가씨가 색시여? 아따, 참말로 곱네. 참말로 고와. 그래, 남편 된 양반이 참말로 마음씨가 곱네, 고와.”
“그렇죠? 예쁘죠?”
“근데, 나 옆에 카메라 찍는 양반도 그렇고 신랑이 어째 얼굴이 참말로 낯 익은디? 허허허. 나가 나이가 먹어가꼬 그런갑네. 나가 최대한 안 덜컹거리게 운전할랑께. 걱정 안 해도 돼야.
당황하다 못해 얼굴이 굳어버린 VJ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저 좋았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들어버린, 아! 이래서 곰 인형이 마스코트인가? 어쨌든 마냥 평화로웠다. 따뜻한 햇살도 옆에 있는 그녀도 모든 게 완벽했으니까. 물론 지금쯤 당황해하고 있을 제작진들 생각이 가장 좋았지만.
*
남한산성 약선재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진 건 처음이다. 유기농, 유기농 노래를 부르는 삼촌 덕에 종종 와본 내 기억속의 약선재는 가는 데 꽤나 걸리는 음식점이었으니 말이다.
약선재는 전형적인 한식당이다. 식당 자체가 한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수십 개의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창덕궁에 있는 운현궁을 본 따 만들었다는 건물들이 주는 기품과 고전미가 가득했으니 말이다.
한옥과 남한산.
괜히 삼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칠 때마다 찾는 곳이 아니라는 듯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보는 순간 떠오른 곳은 이 곳 뿐이었다. 물론 다른 곳도 몇 군데 더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곳이 여기였으니 말이다.
한옥 안에서 음식을 먹거나, 주변 곳곳에 있는 정자에서 음식을 먹어도 되는 만큼 지금 나와 그녀에게 있어 가장 좋은 데이트 장소는 이곳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밥도 먹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산책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
다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내 예상대로라면 내게 달려와 갑작스런 경로이탈에 대한 자초지종을 물어볼 거라 생각했던 CP가 가만히 우리를 주시하고만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뭐야, 저러니까 오히려 무섭잖아.
뭐, 그래도 하나 둘 나와 그녀를 찍기 시작하는 카메라들을 보아하니, 이대로 그냥 진행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한쪽 어깨를 전세 낸 듯이 잠에 푹 빠져있는 그녀였다. 아니,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스태프들이 촬영준비를 하느라 꽤나 시끄러웠는데, 어떻게 된 게 잠에서 깰 기미가 안보이지? 진짜 마스코트가 곰 인형인 이유가 이것 때문 아니야? 이 정도면 겨울잠 아닌가?
경로 이탈이라는 사고를 치고도 당황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당황하고 말았다. 이걸 깨워 말아? 하지만 이내 왜하고 있는지 모를 고민에 빠진 나와 달리, 너무나도 달게 자고 있는 그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귀엽네.
나보다 두 살 연상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믿기 힘들다. 쌍꺼풀 없는 두 눈이 감겨있는 모습, 아무런 걱정 근심 없어 보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연상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그나저나, 머리숱이 엄청 많다. 얼핏 봤는데도 두피가 안보일 정도로 빡빡했으니까. 흠... 뿌리염색 할 때가 된 것 같네. 흑발은 어떤 모습 일까나?
아직 서로 어색한 사이인지라, 이렇게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건 적어도 오늘 내로는 불가능할거라 생각했는데, 나란 남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얼굴 구석, 구석을 남김없이 기억하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봤으니 말이다.
알게 모르게 신경 쓰였던 주변 스태프들의 시선들과 그들이 내는 부스럭 소리들은 어느새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내 눈과 귀는 오롯이 내 어깨를 전세 낸 이를 향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의 두 눈이 번뜩 뜨인 것은.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 눈동자와 마주치게 된 것은.
[꺄아아아아악!]
괘, 괜히 가수가 아니구나. 조, 좋은 발성이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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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가 미래다. 프로듀스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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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다만, 이제 기말고사... 졸업논문...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