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86화 (86/502)

00086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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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할게요! 이런 자리 많이 만들 테니까요. 지켜봐주세요!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시간 늦었는데 조심히 들어가세요! 안녕!”

[전국은 지금 강지혁 열풍! 이화여대 삼성홀 700석, 연세대학교 대강당 1600석, 63빌딩 국제회의장 840석, 벡스코 오디토리움 4000석,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100석 등 공개 팬 미팅 전석 1분 14초 만에 매진!]

[팬들을 위해 순수자비로 시원한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준비한 강지혁! 빠듯한 팬 미팅 일정에도 불구하고 모든 팬에게 일일이 악수와 사인을? 몇 천 명에 달하는 팬들에게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는 강지혁의 인성!]

[강지혁을 보기위해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 2만 명에 달하는 인파 몰려! 정식 진출하지도 않은 대만에서 이미 최정상급 인기를 누리는 강지혁! 현지 경찰 3천명이 투입되었음에도 통제되지 않은 뜨거운 열기! 대만은 지금 강지혁 돌풍!]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이어 일본 나리타공항을 마비시킨 강지혁의 위엄! 일본 첫 나들이에 3만 2천명의 일본 팬들이 몰려, 공항에 현지 경찰 5천명 급히 투입!]

[강지혁 일본 팬 미팅 장소는 사이타마 수퍼아레나! 현지 스폰서의 요청으로 기존 5천명에서 1만 명까지 수용하기로 결정! 공식 활동 하나 없이 일본 현지에서의 인지도 확보에 성공한 강지혁의 한계는 어디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서울, 부산 그리고 예상치 못한 대만과 일본까지. 정신없이 이동해서 팬 미팅을 하고 또 이동해서 팬 미팅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일본에 와있었다.

그래도 국내 팬 미팅은 서울에서 하고 삼사일 쉬고 부산에서 하고 이런 식이어서 별로 안 힘들었는데, 대만일정은 조금 힘에 부쳤다. 비행기로 몇 시간 밖에 안 걸리는 대만이지만 그래도 타지인지라, 알게 모르게 피로가 누적됐고 또 곧바로 일본 일정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기뻤다.

지금의 나란 가수가 존재할 수 있도록, 500만장 가까운 앨범 판매량이 고작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팬들의 열정과 사랑은 내게 단순 팬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해줬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되는 것인지 의아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환호는 내게 알 수 없는 일종의 확신을 주었다. 너는 충분히 그 사랑을 받아도 된다는 듯한 확신을 말이다.

모든 게 좋았다. 그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내게 호응해준 국내 팬들과 모르는 언어임에도 내 노래에 열광해줬던 대만 팬들 전부다가 말이다.

다만, 몸이 지쳐 마지막 광주 팬 미팅일정에서 힘없는 모습을, 피곤한 모습을 보여줄까 조금 걱정되긴 했다. 안 그래도 방송 활동도 별로 없고 그마나 꾸준히 했던 토크 콘서트도 서울에서만 이루어져 지방 팬들을 만날 수가 없었는지라,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지혁아 이제 한국 가서 광주 팬 미팅 하면 그래도 쉴 수 있을 테니까. 그 뒤로 실컷 쉬자. 그나마 국내 팬 미팅은 일자가 띄엄띄엄 있었는데 대만, 일본은 딱 달라붙어서 힘들긴 힘드네.”

데뷔 이래 처음으로 스케줄이 폭발하는 바람에, 다른 아이돌 가수 매니저처럼 바쁜 나날을 보냈던 석현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수고했어.”

형도 혼자서 나를 케어하느라 많이 지쳐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헤어, 의상 스타일리스트들과 현지 스태프들이 항상 내 주변에 있었지만, 정작 최측근에서 내 수발을 들어준 것은 석현 형 혼자라고 봐도 무방했는지라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 이제 좀 쉬겠네.

*

“삼촌 이 LP들은 듣기나 해?”

광주 팬 미팅을 끝으로 모든 팬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콘서트부터 팬 미팅까지. 꽤나 바쁜 나날들을 보냈던 4월과 5월이 지나가자 나는 언제나 그랬듯 다시금 여유로운 상태가 됐다.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우리 결혼 할까요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뭐, 그것마저도 5월 달에 나와 그녀 모두의 스케줄이 빡빡했는지라 어느새 한 달 넘게 촬영을 못하고 있었는지라 나로서는 할 일 없는 백수가 되어 집이든 본가든 아니면 포이보스 휴게실이든 그저 소파에 드러누워 하루를 보내기 일상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6월 중순 쯤에 첫 방송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러다 그때까지 촬영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번호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았어야 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기엔 너무 경황이 없었을 뿐더러, 이 정도로 오래 촬영을 하지 않을 줄 몰랐는지라, 지금 내 휴대폰은 영양가 없는 연락들로 가득했다.

“망가질까봐 애지중지하는데 듣긴 뭘 들어. 듣고 싶으면 다 인터넷으로 듣지.”

간만에 바쁘게 돌아다녀서일까. 평소라면 소파에 누워 있어도 별다른 지루함을 못 느꼈을 텐데, 일주일가량을 그렇게 있다 보니 좀이 쑤셔왔다.

그래서 집안을 조금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몸이라도 그렇게 움직여야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 집안 곳곳을 둘러보던 내 시선에 문득 오래된 LP들이 들어왔다.

삼촌이 지금껏 산 LP와 CD들이 놓여있는 진열장에서 말이다.

“엄청 오래되지 않았어? LP면?”

날 때부터 딴따라라며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삼촌이기에 CD와 LP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벽면 진열장에 가득 차있을 정도로 많았는지라,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가에서 지낼 때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봤던 광경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삼촌도 1집 LP로 냈다.”

“뭐? 진짜?”

“1집 LP로 내고 그 다음부터는 테이프였다가 또 CD로 바뀌고 그랬지, 뭐.”

진열장 안에 있어 먼지가 쌓인다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한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는 LP를, 까마득한 옛날의 유산이라고 생각했던 LP로 음반을 발매해본 이가 내 눈앞에 있었다는 게 정말이지 놀랐으니까.

“대박... 삼촌 그러고 보니까 나이 진짜 많이 먹었구나.”

“거기서 나이가 왜 나와? 나처럼 쌩쌩한 사람 없다.”

“그러니까, 결혼 좀 해. 그... 저번에 그 여성분이랑은 잘 안 된 거야? 삼촌 또 여자한테 함부로,”

“너! 삼촌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어떻게 가면 갈수록 누나 닮아가냐? 어휴.”

운동도 꾸준히 해서 몸도 완벽한 편이고 댄스 가수 인만큼 트렌드에 민감해서인지 그다지 삼촌의 나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그나저나, 저걸 말이라고 하나? LP로 음반까지 냈으면서 아직까지 장가를 안 간 거면, 어휴... 이쯤 되면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모르겠다.

“다 잘되고 있으니까, 신경 끄세요. 조카님.”

“진짜지?”

“쓰읍!”

“치.”

진짜 편한 이 집 놔두고 독립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정작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라고 집을 비워줬는데, 당사자는 이렇게 화창하고 데이트하기 좋은 날 집에서 TV나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LP들과 CD를 둘러보다, 나 또한 다시금 소파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 운동은 쉬어도 되겠다 싶었으니까.

“쏴라있네!”

“어? 삼촌도 범죄와의 결투 봤어?”

그런데, 그런 내게 익숙한 멘트가 들려왔다. 그 멘트를 던진 이가 삼촌이라는 게 감흥을 조금 떨어뜨렸지만 말이다.

“어? 아니.”

“뭐야, 근데 뜬금없이 무슨 ‘살아있네’야.”

배신과 배신이 이어지는, 간만에 본 영화인데도 꽤나 재밌어서 지금까지 생생한 영화의 간판 대사가 삼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깨달았다. 하정후의 연기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휴, 대사가 죽네. 죽어.

“요즘 유행한다길래. 삼촌이 아직 쏴라있잖아. 쏴라있네! 어때? 똑같지? 쏴라있네!”

그렇게 식어버린 흥을 뒤로한 채 완전히 소파에 드러누우려던 그때였다. 무엇인가가 뇌리를 스친 것은.

살아있네. LP. CD. 카세트테이프.

순간적으로 들썩이는 어깨를 뒤로한 채 재빨리 거실의 피아노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촌! 잠깐만 TV꺼봐.”

“어?”

“잠깐만 꺼봐!”

주변의 잡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들이 사라져버릴까, 그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피아노 건반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갑작스럽게 잘보고 있던 TV를 끄라는 내 말에 의아해하던 삼촌 또한 이내 내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듯 내 곁으로 다가왔다.

[쏴라있네]

나는야 날 때부터 딴따라.

떴다가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아이돌과는 달라,

허세부리다 사라진 애들 좀 봐봐.

내 여자 친구는 팬 뿐, 이런 가식 없이

날 때부터 딴따라, 그 모습 그대로 춤을 춰.

그랬는데 아직까지 살아있어.

......

너희들 내가 누군지 모를 수가 없을 걸?

너희 오빠, 누나들과 나를 비교하면 안 돼지.

내가 받은 상 만해도

네 오빠, 누나들 숫자보다 많지.

네 오빠 누나들이 날 보고 배워야 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날 보고 배운다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걸?

LP에서 카세트테이프,

카세트테이프에서 CD,

CD에서 스트리밍.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난 살아있어, 살았구나, 살았잖아.

90년대부터 지금까지.

30년 정도는 가수생활 해야 레전드.

그래서 난 아직도 음악을 하지.

뭔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방금 내가 피아노로 뭘 친 건지도 기억이 안날정도로 말이다.

“삼촌 방금 내가 친 거 기억나지?”

믿을 건 삼촌뿐이었다. 옆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으니, 적어도 멜로디는 기억하겠지.

“너, 너!”

“삼촌이 그랬잖아. LP로도 음반내보고 카세트테이프로도 내보고 CD로도 내봤다고. 멜로디 기억하지 삼촌? 나 지금 하나도 기억 안 나서 그래. 기억하지?”

“하...”

그런데, 뭔가 불안하다. 뭐야, 저 반응은. 설마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도 기억이 안 난다고?

*

“아무래도 공중파 쪽에서 압박이 있어서...”

이미 예정돼 있던 새로운 프로그램 런칭 공고도 미룬 채 그들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프로그램에 참가의사를 표한 기획사들과의 사전협의에 따라, 이미 121명의 연습생들은 선발된 상태였지만 계속해서 미뤄지는 진행 상황에 제작진들의 얼굴을 새까맣게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상부까지 기획안의 보고 및 결제가 완료된 상태에서 정해진 공고 일을 넘긴 현재 상태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주변의 눈치를 한껏 받고 있는 상태일진데 콘셉트 자체를 바꾸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Girlish Pop을 제외시키고 나머지 콘셉트에 인원을 재배정하는 것이...”

“이런 미친새끼야!”

이 모든 일의 직접적인 원흉이자, 눈앞에서 멍청한 소리를 해대는 이의 머리에 담당CP의 문서더미가 날라 갔다.

“걸 그룹 기본 콘셉트인데 거기서 Girlish를 어떻게 빼냔 말이야! 이 씹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이미 세세한 부분까지 모든 구성을 짜놓은 상태이기에, 여기서 수정을 하는 것은 전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물론, 작은 부분하나 정도를 바꾸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 정도쯤은 그들의 편집기술과 진행으로 커버할 수 있다 자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곤경에 빠뜨린 부분은 한 라운드 평가 콘셉트 자체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확연했다. 수정을 하는 순간, 평가 콘셉트 자체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될 것이고 이는 또다시 상부에 보고가 올라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는 필히 책임추궁을 동반할 것이다 는 것을 말이다.

따라서 담당 CP의 입에서 고운 말이 흘러나올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대책은커녕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는 눈앞 사내에게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으니까.

“내가 말했지. 이번 일 잘못되면 넌 매장이라고. 무조건 수습해. 어떤 조건을 들여서라도 섭외해. 안 그럼 내가 한 말이 말 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걸 그룹 콘셉트에 가장 중요한 콘셉트 중 하나인 Girlish.

콘셉트 자체를 바꾸고 인원을 재배정할시, 앞 뒤 라운드 탈락자 수의 조정과 평가내용 변경 등 기획안 자체의 대대적인 수정을 요한다는 점.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위해, WMC가 대대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명분과 프로그램이 확보한 트레이닝과 지원책이 대단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 그래서 스타급 명성을 지닌 작곡가가 필요하다는 점.

어설프거나 이름 없는, 설사 이름 없는 작곡가의 곡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쯤이야 셀 수도 없이 많았기에 담당 CP의 두통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가 미래다. 프로듀스 정주행.

선작, 추천, 코멘트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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