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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노래로-84화 (84/502)

00084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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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Twinkle 슬희 입니다! 슬리퍼랑 애호박...?]

[콜록 콜록]

하, 세상은 썩었어.

흔히 당고머리라고 일컫는 머리 스타일에 매력적인 무쌍 눈과 취향저격 옷차림. 간만에 느껴보는 설렘에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당혹스러운 것도 잠시.

그녀의 손에 들린 물건들을 본 순간 망연자실해버렸다.

하... 지금 뭐하자는 거지? 제작진 나랑 지금 싸우자는 건가?

*

제작진의 농간에 얼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내 곁으로 다가온 그녀를 보니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날라 가버렸다. 내 가슴팍 정도에 불과한 그녀가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는지라, 표정을 확인하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그저 좋았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기분 좋은 설렘과 강남역 한복판의 더러운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디서 우릴 지켜보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우리가 마주친 그 순간 등장하여 근처 카페 주소를 알려주는 담당 CP를 살짝 째려봐줬지만, 대놓고 무시당했다. 아니 제 발에 찔려서 순식간에 내 눈에서 사라졌다. 하, 진짜 두고 봐요. 나 은근히 뒤끝 있는 사람이니까.

“갈까요? 우리?”

“네? 네.”

‘우리’라는 말이 이렇게도 쑥스럽고 설레는 단언인지 처음 알았다. ‘네’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지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방송활동 하시는 건가요?]

[저, 다음 주에 음악코어, 최고가요, 뮤직파티도 나가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팬 여러분께 인사도 드리고 선배님들한테도 인사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추후 방송활동은 아직까지는 계획에 없습니다.]

내 첫 생방무대였던 음악뱅크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선배가수가 Twinkle인 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슬희 씨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말이다.

새삼 인연이라는 것의 오묘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그때의 그녀가 지금 나의 신부가 되리라는 것을.

그렇게 말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제작진이 일러준 카페가 눈에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순간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멈춰 섰던 나와는 달리,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이며 따라오던 그녀는 바뀐 신호를 보지 못한 듯했다. 파란불이 되자마자 질주할 차들이기에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어! 조, 조심!”

다급한 나머지 그녀를 뒤에서 껴안은 채 인도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파란불은 칼같이 빨간불은 설렁설렁 지키는 것이 이곳 강남역 부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그녀가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쌩쌩 달리는 차들로 가득 찼으니 말이다.

“괜찮아요?”

“네, 괘, 괜찮아요.”

너무 생각에 빠져 있었나보다. 곁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를 두고 말이다. 서로 대화도 좀 나누고 그러면서 이동했다면 곁에 있던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걷지도 않았을 것이고 방금 전처럼 위험한 일도 겪을 뻔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내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그런데,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 말고 하나가 더 있었다.

“네?”

“소, 손 좀...”

“아! 죄, 죄송해요!”

한 손은 그녀의 어깨를 나머지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은 상태.

많이 놀란 듯 한 그녀의 목소리로 인해 지금 내 행동이 어떤지를 깨닫게 되자마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첫 만남에, 그것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엔

[대박! 강지혁이 슬희 안았어! 대박!]

[헐, 대박! 배, 백 허그!]

[잘 어울린다! 휘이이익!]

꽤나 낯부끄러운 자세로 그녀를 껴안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손에 가득 들어오는 가녀린 어깨,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향기, 탄탄하고 야릇한 느낌을 주는 허리.

순간 뜨거워지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 참 좋다. 세상 참 좋아.

*

아무래도 초면이기도 하고 이곳으로 오기 직전 있었던 사건도 있어서인지, 카페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제작진 측에서 아예 카페를 빌린 것인지 우리들과 제작진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손님들이 없었으니 말이다.

“뭐, 마실래요? 아! 배고프면 따로 뭐 먹을 거라도 시킬까요?”

“아, 아니에요. 그냥 음료만 마실게요.”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을 건데, 슬희 씨는요?”

“저두요.”

슬쩍 검색해보니, 나보다 한 살 많은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는 행동들을 보니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철이 덜 들었다느니, 뭐 그런 뜻이 아니라 나보다 연상이라고 하기엔 그녀의 행동하나하나가 귀여웠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다. 그래서, 이미지 손실을 감수하고 정장 재킷을 벗었다.

“이거 덮으세요.”

그런 내 행동에 역시나 슬희 씨가 의아한 듯 나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어서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나만 보면 모를까, 지금 주변에 남자들이 몇 명인데 저렇게 짧은 팬츠를 입고 있는 단 말인가.

“죄송해요. 제가 좀 보수적이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제 것인 마냥 그녀를 대하는 게 실례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식 없이 진심으로 이 프로그램에 임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냥 참고 있기는 싫었다. 지금 상황에서 상대방이 진짜 내 여자 친구였다면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저 애호박이랑 슬리퍼는 언제까지 들고 있을 건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버려버리고 싶은데.

하... 신동협, 성지경, 허진웅...

*

[우리 결혼 할까요 새 부부 강지혁과 Twinkle의 슬희? 강남 사거리에서 속속들이 목격담 속출! 이번 달 말 가상 결혼 종료 예정인 오현석, 강미원 커플의 뒤를 이은 부부로 유력!]

-...미친 이게 뭐임? ㄹㅇ임?

-강지혁이?????????????이거 오피셜 떴음? 루머 아님?

-벼, 별희는 어쩌고 Twinkle???????뭥미? 이거 진짜 맞나여????

[강남 사거리 한복판 횡단보도에서 만난 강지혁과 슬희? 우리 결혼 할까요 제작진 측 曰 “이달 말부터 방영될 새 부부로 강지혁, 슬희 커플이 투입될...... 첫 촬영 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를 몰랐을 뿐만 아니라, 강지혁 군은 촬영 직전 계약서 작성까지 본인의 출연사실을...]

-미친 대박! 오피셜 떴다! 와. 지리네...............

-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마지막 문구 뭐임? ㅋㅋㅋ또 섭외함정임????진심? ㅋㅋㅋ미치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포이보스...ㅋㅋㅋㅋ

-헐, 대박! 모쏠 슬희가 결혼을!!!!!!!!!난 반댈세! 반대야! 애호박한테 슬희를 줄 순 없어!!!

-슬, 슬희... 해...행복해라..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애, 애호박에 한번 맛들이면 게임 끝인데.....

-흑형이랑 한번 사귄 여자는 한남 못 만난다던ㄷ.ㅔ.......애호박 한테 넘어가는 거임? ㅠㅠ

-처음할 때부터 애호박으로 시작하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친 윗 댓글들 미쳤네. 고소 인정각?

[강남역 부근에서 강지혁이 슬희에게 백허그를? 관련 사진들 속속들이 SNS에 퍼져!]

-미, 미친! 애호박이 버, 벌써! 처, 첫날부터!

-헐...슬희 남자랑 처음으로 포옹한게 그럼 강지혁임????????대박.

-그러네, 슬희 모태솔로니까 강지혁이랑 한거는 뭐든지 처음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리네...

-이런 젠장! 우리 결혼 할까요 작가양반! 진짜 이러기요! 우, 우리 슬희를! 모, 모태솔로 슬희를! 다, 다른 놈도 아니고 애호박한테! 우리 슬희 죽일 작정이오!!!!!!!!!!

-윗 댓글 미쳤네. 캡쳐했음. 고소 ㄱㄱ

-아 진짜 저질 댓글 많네.

[또다시 섭외 함정에 빠진 강지혁? 우리 결혼 할까요 제작진 측 曰 “자세한 사항은 본방송에 밝혀질 것.”]

-미친 강지혁가지고 떡밥뿌리는 거 TBN에서 제대로 배웠네. 아 짜증나. 이러면 내가 볼 줄 알고? 근데 이거 언제 부터임? 생방 언제부터?

-콘서트에 이어서 이걸 또 유민재가?ㅋㅋㅋㅋㅋㅋㅋㅋ아졸라궁금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핰ㅋㅋㅋ핰ㅋ핰핰 감성 변태가 큰그림을!! 큰그림 지리구여!

-감성변태 큰그림 지리구여 오지구여!

*

“헐, 대박! 지수 언니 아니, 언니들 얼른 일로 와 봐요! 얼른!”

바쁘기 그지없던 활동을 끝내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Trendy 멤버들은 누구하나랄 것도 없이 전부 소파와 침대,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드라마나 영화, 기사들을 모조리 보겠다는 듯 그녀들은 두 눈을 핸드폰에서 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레 호들갑을 떠는 다희의 행동에 멤버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방송에서 보여 지는 것과 달리 평소 무뚝뚝한 다희가 저 정도로 흥분하며 모두를 부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갑자기 난리야?”

“결혼한다는데?”

“누가?”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다희가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멤버들이 저마다 김이 빠진 듯 저마다 다시금 시선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돌리려했다. 그녀 입에서 나온 말에서 이렇다할 임팩트를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희의 입에서 나올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강지혁 선배님이...”

“지혁 오빠가? 뭐 결혼 할 수도 있지.”

“그래, 뭐 빠른 감은 있어도 서로 좋아하면 결혼 할,... 뭐?”

“뭐, 뭐라고?”

Trendy 멤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강지혁 선배님이랑 Twinkle 슬희랑 결혼한다는데?”

“가, 강지혁 이 바보가! 저,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야? 이씨!”

“대, 대박!”

“헐, 스고이!”

잠시 뒤, Trendy 숙소는 언제 적막했냐는 듯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지금 막 행사를 끝내고 숙소로 이동 중이던 Amiga 멤버들의 차 안도 마찬가지였다.

“애들아! 오늘도 고생했다! 그래도 대표님이 이번 주말은 너희들 휴식 주신다고 했으니까, 내일이랑 모래 편히 쉬어라. 알겠지?”

“진짜요? 대박!”

“우와!”

‘투명구슬’에 이어서 ‘시간을 달려서’로 홈런을 날린 그녀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섭외전화가 이어졌는지라, Amiga로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방 행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말 휴식을 준다는 말은 Amiga 멤버들에게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는지라, 그녀들의 입에서는 저마다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매니저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너희한테 우리 결혼 할까요 출연 제의 온 거 알지? 그거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안 그래도 지금 행사 다니느라 매일 같이 힘들었는데 말이야.”

아직 신인 급에 불과한 Amiga 멤버들이지만, 인지도나 음원 순위측면에서 그녀들은 이미 최정상급 걸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신인 아이돌 그룹에게 있어 엄청난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결혼 할까요’를 소경진 대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미 인지도 측면에서 ‘우리 결혼 할까요’를 할 필요가 없었고 굳이 섭외에 응해 이미지 소모를 할 정도로 Amiga가 오래된 그룹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 너희들은 기사 못 봤나보네. 아까 기사 떴던데? 지혁 씨랑 슬희라더라. 대박이지?”

물론 이는 Amiga 멤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제각각 다를 테지만, 그녀들 또한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가상 결혼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그다지 끌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와! 대박이네! 강지혁에 Twinkle 슬희면 본방시청각이네!?”

“진짜 재밌겠다! 지혁 오빠가 결혼을 한다니!”

“지혁 오빠도 참, 결혼을 하면 나한테 먼저 말해줬어야 될 거 아냐? 그러면 축가라도...?”

하지만, 피곤한 나머지 매니저의 말에 무심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Amiga 멤버들의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 뭐라고요?”

“예?”

“지, 지혁 오빠가 뭐, 뭘 한다고요?”

“이번에 너희들 중 한명 나갈 뻔 한거, 우리 결혼 할까요 있잖아. 그거 상대 신랑이 지혁 씨였다는 데? 지금 인터넷에 그것 때문에 완전 난리잖어. 첫만남에 백허그를 했다나 뭐라나. 어휴, 그래도 다행이다. 너희 친동생처럼 여기는데 부부 될 뻔 했다는 거잖아.”

“뭐, 뭐가 다행이야! 이, 바, 바보가!”

“치, 친동생은 무슨 친동생이야!”

“구, 굴러들어온 복을 차, 찼어...”

그렇게 그녀들은 서둘러 자신의 테블릿으로 인터넷 기사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매니저의 말이 틀렸음을, 그가 장난치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할 듯이 말이다.

그렇게 그녀들 머릿속을 가득 차지하고 있던 졸음은 어느새 존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작품 후기 ============================

선추코가 미래다. 프로듀스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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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식사는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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