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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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사냥이라는 19금 방송을 마치 애청자라도 된 마냥 훤히 꿰고 있는 예린이를 탓하는 것도 잠시, Twinkle 멤버들은 좀처럼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내용들과 노골적인 섹드립으로 인해 차마 똑바로 화면을 보지 못하던 좀 전과는 달리 말이다.
[제가 강지혁씨랑 우연찮게 사우나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요. 제가 지금껏 실제로 봤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컸다고...]
[사우나에서 다리를 쫙 벌리면서 땀을 빼는데. 와... 제가 크기로는 자격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인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래서, 저는 오늘 회식하고 나서 내일 사우나 갈 때 지혁 씨랑 같이 안 갈려고요. 왠지 그동안 저랑 같이 사우나가신 분들이 느꼈던 감정이 뭔지 알 것 만 같은... 아주 낯선 감정들이 정말, 정말 불쾌하더라고요. 와... 크기가 아주 애호박 아니 물론 어깨가 엄청.]
누가 봐도 뭘 말하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신동협의 섹드립과 예린이 어째서 애호박에서 강지혁을 떠올렸는지 깨닫게 된 멤버들의 얼굴은 어느새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은 여전히 화면을 떠나지 않았다.
“보통 한국 남자들은 저 정도는 꿈도 못 꾼다구! 그런 면에서 강지혁은 완전 대박이지! 슬희 언니 완전 계탄거라구! 평상시에 애, 애호박이면...”
물론 그중에서도 우리 결혼 할까요 스태프가 놔두고 간 애호박을 멤버들에게 들이밀며 흥분에 찬 목소리로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외쳐대는 예린의 태도는 단연 돋보였지만 말이다.
“너, 너! 예린이 너!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어, 언니가 이런 거 보지 말랬지!”
“치, 모쏠들 주제에 뭘 알겠어? 남자를 알아야 뭔 대화가 통하지. 맨날 야동만 봤으니, 이게 대단한지를 모르지. 하... 답답해.”
“너! 어, 언니한테!”
“누, 누가 맨날 야, 야동을 봤데? 너, 너! 앞으로 TV 금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언니들 인터넷으로 보면 내가 모를 줄 아냐구! 인터넷 기록 보면 다 나오거든! 치! 그래서 이거 더 안 볼거야? 이제 첫사랑 얘기랑 연상녀 얘기까지 나오는데?”
애써 피하고 억눌러왔지만, 그녀들 또한 아이돌이기 이전에 한창 때의 여자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의 여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평상시 언니들의 기세에 눌려 살던 예린이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녀 말마따나, 연애에 관해서는 그녀가 다른 멤버들을 압살할 수 있었으니까.
[지혁 씨는 지금껏 연애 경험이?]
[아... 저는 지금까지 한 번 해봤어요.]
[와, 거짓말!]
[말도 안 돼!]
[예?]
[첫사랑이랑 2년 정도 사귀고 음... 차였다가 군대 갔는데요.]
지금껏 연애를 딱 한번 했고 그 첫사랑과 헤어진 지 3년이 넘은 지금까지 솔로라는 강지혁의 얘기가 흘러나오자, 멤버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기 시작했다. 강지혁이 첫사랑을 잊지 못해 큰 아픔을 겪었고 이를 노래로 만든 것이 바로 그의 정규1집, 2집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였으니 말이다.
[만약에 연상을 사겼다. 그러면 지혁 씨는 반말 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누나, 누나 하면서 귀여운 남자친구로 남을 것 같나요?]
[아, 만약에 제가 연상이랑 사귄다면, 저는 그냥 반말 할 것 같아요.]
[하긴 뭐, 그 정도 크기면 연상이든 뭐든 받들어 모실,]
[이 사람이! 아까부터! 하, 나 진짜 확인한다? 내일 사우나 같이 간다?]
[아니, 지경 씨. 저는 어깨를 말 한거라니까요. 연상이든 연하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어깨!]
[누가 어깨를 크다고 말해, 넓다고 하지! 이 사람이.]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멤버들을 흥분하게 만든 것은 바로 방송의 말미에 공개된 내용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당장 그녀들 멤버인 슬희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침만 꼴깍 삼키며 눈이 빠져라 화면을 바라보던 멤버들이 제각기 비명을 지르며 배게며 이불에 고개를 파묻었다.
“까아악! 반말 한데! 슬희 언니가 한 살 더 많지 않아? 강지혁보다? 대박!”
물론 그 와중에도 예린은 쉴 새 없이 입을 놀렸지만 말이다.
“내말 맞지? 슬리퍼는 시상식에서 슬리퍼 신고 있었던 거! 그리고 애호박은 마인사냥!”
“그런데, 대박이다! 나 저번에 성제오빠랑 혼수 장만할 때, 강지혁이 냉장고랑 침대 해줬었는데... 설마 부부로 나올 줄이야. 그나저나, 승희 언니랑 아이리스 언니는 아쉽겠다. 둘 다 완전 강지혁 빠잖아.”
그렇게 잔뜩 신이 난 채 애호박을 휘두르는 예린과 자신의 가상남편인 성제를 떠올리는 수연의 수다 소리가 Twinkle 숙소를 한참동안 메웠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세 멤버들의 침묵과 함께 말이다.
*
[아니, 누가 남편 만나러 처음 가는데 그렇게 입고가? 이거 아이리스 언니가 코디해 준거지? 이러니까, 아이리스 언니가 노처녀 아니 연애를 못하는 거야!]
[예, 예린이 너! 어, 언니가 노, 노처녀라고 하지 말랬지!]
[언니! 일단 그거 다 벗어! 남녀 관계는 첫인상이 반은 먹어 준다구!]
[그, 그리고 이게 어때서!]
[남자랑 만나는데 무슨 첫 만남부터 바지야? 첫 만남은 무조건 치마라구! 어휴, 진짜 모쏠들 천지니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네. 어떻게 된 게 그때 수연 언니 첫 만남 때도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오전 11시까지 강남역 사거리에 도착해야 한다는 미션 내용에 따라 슬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과의 첫 만남을 준비하려했다. 마치 음악방송 때처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자신을 코디하기 시작한 멤버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했다.
[일단 오늘 날씨가 여름에 가깝다고 했으니까, 셔츠는 긴팔, 하의는 팬츠로 가자. 음... 언니! 옷 좀 이상한 거 사지마! 입을게 없네! 입을게! 그리고! 어떻게 된 게 승부속옷 하나도 없어? 하... 그래, 뭐 첫 만남인데 승부속옷은 조금 그렇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휴, 그러니까 지금까지 모쏠이지.]
[일단 위에는 네이비로 하구 음... 아래는 블랙으로 심플하게! 여기에 에코백 하나 딱 들고 가면 되겠네! 이름 하여 청순섹시 여대생 룩!]
음악방송의 경우 보통 4시에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무려 그보다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그녀를 종이인형마냥 코디하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이를 전적으로 담당한 것이 예린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됐다! 이제 그럼 샵 가서 머리하자. 얼른!”
다른 사람이 봤다면 조금은 유난이라고 봐도 무방할 테지만, 슬희 또한 처음엔 이러는 게 오버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떨려오는 마음에 다행이다는 생각부터 들기 시작했다.
예린과 멤버들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자신을 코디해주지 않았다면 막상 일어났을 때 꽤나 당황했을 테니 말이다.
“예, 예린이 너! 스, 승부속옷이라니 그, 그런 말 도대체 어디서,”
“치! 맨날 마트가서 만원에 3개 이런 속옷만 사는 언니들만 빼고 다 알아!”
물론 예린의 폭풍조언에 대한 후폭풍은 꽤나 컸지만.
*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VJ 1명과 동승한 상태이지만, 지금 내 눈에는 그 무엇도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 회사에서 집 가는 길, 그 길을 그대로 가고 있음에도 창밖 풍경은 너무나도 낯설었고 심지어 이국적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지혁 씨 정말 팬입니다. 지금 방송 중 이신가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사님 이제 10분 정도면 도착하겠죠?”
“아! 지금 길이 별로 안 막혀서 5분이면 도착할겁니다. 하하!”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대학생들 마냥 소개팅을 받으러 가는 것처럼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막는 것이 생각 외로 힘든 일임을 깨달았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고 올 걸 그랬다.
그래도 첫 만남이라고 음악방송 전에 가본 게 전부인 샵도 갔고 아침부터 내게 달라붙어 옷을 골라준 코디들 덕에 머리도 그렇고 옷도 내 마음에 쏙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함만 커져갔다. 물론, 이상형이 강동훤이라는 말이 큰 영향을 끼쳤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아니, 내가 뭘 하든 솔직히 강동훤을 어떻게 이겨? 트레이닝복만 입어도 빛이 나는 사람을.
“기사님 여기요. 잔돈은 안주셔도 되요!”
“아이고! 아닙니다. 지혁씨. 사인까지 해주시고 사진까지 같이 찍어주셨는데 돈까지 받으면 제가 염치가 없습니다.”
5분이라는 시간이 이리도 짧은 것인지 몰랐다. 눈 한번 감고 보니 어느덧 강남역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돈을 받지 않으려는 택시 기사님에게 억지로 택시비를 드린 뒤, 차에서 내렸다.
[뛰뛰빵빵]
아직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근이 언제나 그러하듯, 눈앞에 펼쳐진 강남역 사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꺄아아악!]
[가, 강지혁이다!]
[꺄악!]
따라서,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와... 강지혁 수트빨 지린다... 팔이랑 다리 완전 길어! 어깨 봐봐. 지렸다...]
[어깨 진짜 넓다...]
[촬영 중 인가봐. 카메라 있는데?]
[대박! 강지혁 방송 뭐 나간다는 소식 있었나?]
[뭐야, 뭐야. 강지혁 나가면 꿀잼각이잖아! 뭔 프로지?]
VJ가 나를 카메라로 찍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쉽사리 내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주변에 있는 이들 전부가 지금 이 기세로 내게 달려들었다면 사고가 나도 크게 났을 테니 말이다.
[대박! 저기 ...... 있었잖아! 거기도 카메라 있었고!]
[헐! 설마 우리 결혼 할까요? 대박! ......랑 강지혁이 부부? 대박이다! 이거!]
강남역 11번 출구에 도착하긴 했지만, 솔직히 뭘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 나는 홀로 남겨진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신부 될 사람도 나와 같은 처지일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이내 주변사람들의 웅성거림 가운데, 내가 원하는 답들이 들려왔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이 가까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혹시 제 신부가 어디 있는지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꺄아악!]
[신부래! 대박! 우리 결혼 할까요 맞네! 와 진짜 대박이다!]
*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아함과 놀람을 선사한 지혁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부가 어디 있음을 꽤나 쉽게 파악한 그의 마음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설렘, 긴장감, 조급함 등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다리가 떨려오고 있음에도 지혁은 그저 갈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게 지하보도를 통해 몇 분이나 이동했을까. 자신이 있던 11번 출구와 가장 멀리 떨어진 지하철 출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그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림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이내, 11번 출구에서부터 그를 따라오던 인파들이, 그가 가고자 하는 곳에 몰려있던 인파를 발견한 순간.
[휘이익!]
[신랑 왔다!]
[대박! 강지혁이야! 강지혁!]
[와! 지렸다. 지렸어.]
[우와! 대박! 이거 본방 언제야? 미쳤다 진짜.]
웅성거림은 거대한 함성이 되었고 지혁의 앞길을 막고 있던 인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존재했다.
“안녕하세요. 강지혁입니다. 혹시, 곰인형...?”
주변 인파에 둘러싸여있어서인지 고개를 파묻고 있던 그녀가 숙였던 얼굴을 드는 순간, 지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블랙 팬츠에 네이비 셔츠 그리고 단정하게 올린 머리까지. 치마가 조금 짧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자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듯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의 심장이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벤치에 앉아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안녕하세요. Twinkle 슬희 입니다! 슬리퍼랑 애호박...?”
[콜록 콜록]
상황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원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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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가 미래다. 프로듀스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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