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82화 (82/502)

00082  2013  =========================================================================

#

[우리 결혼 할,]

[성제 나오는 거 말하는 거야? 삼촌?]

[어, 거기서도 섭외,]

[거긴 나갈게. 받아내야 되는 게 있어서.]

[으, 응? 뭘 받아내야 하,]

[성제 집들이 때 다 받아내야 되. 그 자식이 평소엔 연락도 없던 게.]

[그, 그게 아,]

[삼촌 그럼 나 나갔다 올게. 오늘 할 일이 좀 있어서.]

[지, 지혁아! 진짜 나가는 거지? 난 분명히 말,]

[나간다니까? 오디션이랑 우리 결혼 할까요 나간다고!]

“밥 안 먹냐? 왜? 입맛 없어? 컨디션 안 좋아?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줄,”

“아 쫌!”

이미 프로그램 기획이며 상대방까지 정해진 상태라는 우리 결혼 할까요 CP의 말에 계약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번 사태의 원인제공자는 말을 흘겨들은 나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며칠을 심난한 상태로 보내다가 간만에 본가에 들렀다. 삼촌에게 신세한탄 겸 조언이나 얻으려고 말이다. 그런데 도리어 마음만 복잡해졌다. 자꾸만 조카바보 짓을 하는 삼촌의 행동과 더불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지금 상황자체가 어이없었으니까. 아니, 삼촌 장가보내려고 독립했는데, 결혼은 내가 하게 생겼네?

“집에서 혼자 뭐해?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아니, 연애도 좀 하고 결혼도 하라그랬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날씨도 좋고 스케줄도 없으면 데이트를 해야지 집에서 뭘 하는 거야? 하... 진짜.

“간만에 휴식인데 집에서 쉬어야지. 그래도 집에 있길 다행이네, 너도 이렇게 와서 밥도 같이 먹,”

“하... 쫌! 연애도 하고 그러라고 독립했는데, 뭐하는 거야? 도대체.”

속상한 마음에 투덜거려보지만, 뭐 효과는 딱히 없는 듯 했다. 어휴...

“이, 이게! 누가 누나 아들 아니랄까봐 갈수록 잔소리만 늘어가네. 걱정 마! 너보단 결혼 일찍 할 테니까.”

얼씨구, 나보다 결혼을 일찍 해?

“졌네. 삼촌이.”

“뭐? 뭐가?”

“나 결혼해. 내일.”

나 지금 내일 결혼하게 생겼는데? 오늘 결혼 하시나봐요. 박재성씨.

“그래. 내일 결혼한다고? 어디서?”

“나도 몰라. 근데 내일 결혼해.”

“정해지면 말해라... 뭐, 뭐?”

[푸와악!]

[콜록 콜록]

“아, 더럽게 뭐하는 거야!”

*

[TO. 남편 강지혁]

당신의 아름다운 신부는 지금 강남역 사거리 어딘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강남역 사거리로 이동하세요.]

[추신]

1. 신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당신을 상징하는 물품들을 들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곤란해 하고 있을 신부에게로 서둘러 다가가주세요.

2. 신부를 상징하는 물품은 곰 인형입니다. 곰 인형을 들고서 신부에게 다가가주세요.

3. 신부의 이상형은 강동훤입니다.

[너, 너! 삼촌이 피임 제대로 하라 그랬지! 누, 누군데! 어, 어떤 여우가 너, 널!]

[사, 상대누군데? 거기 피디가 누구지? 가만있어보자. 연하에 조신하고 요리도 잘하고 시댁 잘 챙기고 남자관계 안복잡한 조강지처...]

피임은 무슨, 어제 말을 꺼낸 그 순간부터 집을 나서기 전까지 들들 볶아대는 삼촌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우리 결혼 할까요 프로그램 나간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뭘 저리 오버야?

“이동은 어떻게 하나요? 저 차가 없는데...”

평범한 대학생들이 소개팅 하듯,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상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심란했고 왠지 모르게 꺼려졌지만 내가 진심이면 상관없는 거니까. 뭐, 상대방은 가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막상 촬영 당일이 되니까 마냥 마음을 가볍게 먹기가 쉽지 않았다. 미친 듯이 떨려오는 심장과 함께 부풀어 오른 설렘이 날 미치게 만들었으니까.

“택시를 타고 이동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상형이 강동훤? 하... 완전 대놓고 오징어가 되게 생겼다. 아니, 이상형이 강동훤이면 대한민국 2500만 남자들은 전부 오징어 아닌가? 하... 어쨌든 곰 인형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상이지만 신부될 사람이 강남역 사거리 한복판에서 곤란하다니까.

*

“축하해! 이번에 데뷔한다며?”

뮤직 비디오를 찍느라 밤샘 촬영을 했지만, 그는 그저 좋았다. 자신이 수없이 상상했던 장면은 데뷔를 확정 받은 순간뿐만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자신을 축하해주는 이의 미소도 포함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결국 목표 달성이네! 진짜 다행이다!”

10년 전 처음 SD의 연습생이 되기 위해 오디션을 봤을 때 그녀 또한 자신과 별 다를 바 없는 대기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저 자신의 앞 순번에 불과했던 그녀는 점점 그에게 있어 의미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어제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에 밤샘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안 피곤해? 난 그럴 때마다 엄청 피곤하던데.”

보컬분야 1등으로 당당히 SD의 연습생이 된 그와 달리, 그녀는 턱걸이로 겨우 SD 연습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았다. 매일 연습실 문을 처음 열었고 마지막으로 닫고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포기할 줄 모르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 빛나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작았던 키가 커지고 점점 여성스러운 몸과 얼굴형을 가지게 된 그녀를 볼 때마다 욕심은 끊임없이 자라났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았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으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를 가지고 싶어졌다. 온전히 나의 여자로.

물론 연습생에게 있어 연애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오랜 연습생 생활 덕에 모를 수가 없었다.

“대박! 그럼 이제 우리 음방도 같이 가고 그러겠네?”

하지만, 그녀에게로 가는 마음을 점점 막기가 힘들어졌다. 땀 흘리며 연습을 하다가도 자신을 볼 때면 환하게 웃음 짓던 그녀의 눈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켜버렸으니까.

[나는 데뷔 조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는데, 뭐 어때? 실력 때문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자체 연기된 건데? 가자 떡볶이 먹으러! 내가 쏠게!]

힘들 때마다 내게 다가와 위로를 건네던, 정작 본인이 힘들 땐 혼자 마음속으로 삭혀내던 그녀였으니까.

[나 이번에 데뷔한데! 한 달 뒤에 녹음도 하구! 바로 뮤직비디오도 찍는데!]

하지만, 그러한 그의 마음은 채 용기를 발휘하기도 전에 현실의 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 오빠가 먹을 것 뺐어가니까, 너네 대기실에 몰래 숨겼다가, 나중에 먹으면 되겠다. 오성 오빠들이랑 주니어 오빠들은 너무 짓궂어서 숨겨준다면서 자꾸 뺐어먹는 다구!”

보컬뿐만 아니라, 댄스에도 자신의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했던 그녀가 그보다 훨씬 앞서 데뷔에 성공했고 그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년 연습생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는 그를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대했다. 다만, 잦은 스케줄과 여자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전과같이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를 나누기는 힘들었을 뿐.

“슬희야, 고마워.”

그래서 기뻤다.

“에이, 내가 뭘.”

데뷔를 하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겨우 그녀와 같은 계단으로 갈수 있는 출발선에 선 것이 고작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애써 숨길 필요는 없게 됐다는 사실이.

*

[TO. 아내 강슬희]

당신의 멋있는 신랑을 만나기 위해 당신을 내일 오전 11시까지 강남역 사거리에 도착해야 합니다. 당신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게 남편을 상징하는 물품을 들고 기다려주세요.

[추신]

1. 강남역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당신을 구원해줄 이는 오로지 남편뿐입니다. 남편은 당신을 상징하는 물품을 들고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때까지 당신은 강남역 사거리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2. 신랑을 상징하는 물품은 애호박과 슬리퍼입니다. 이것들을 들고서 신랑을 기다려주세요.

[슬희야 정말 네가 나갈거야? 언니가 나가도 돼는,]

[치, 언니는 이런 거 싫어하잖아.]

[그래두...]

[그럼 내가 나갈까?]

[언니, 승희야 나 나가보고 싶어. 그냥 빈말이 아니라, 수연이 꼼냥거리는 것도 부럽기도 하고,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상대편 남자는 보나마나 비즈니스일텐데, 너가 상처받으면...]

[맞아, 수연이가 요즘 얼굴이 밝아보여도 성제가 가끔씩 비즈니스인 티 낼 때마다 얼마나 슬퍼한다구...]

[에이, 나 슬희라구! 봐 보구 그럴 것 같으면 나도 그렇게 할게. 그럼 되지 언니?]

막내이자 아직 미성년자인 예린과 이미 우리 결혼 할까요에 출연중인 수연을 제외한 아이리스, 승희, 슬희 중에서 결국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이는 슬희였다.

왠지 모르게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던 아이리스와 승희는 진심이 담긴 슬희의 말에 그녀의 결정에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치! 나 나가고 싶어! 언니들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모쏠인 주제에! 요즘 남자들은 산삼대신, 고삼이라고 그랬,]

물론, 막내인 예린은 자기가 나가고 싶다며 난리를 피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는 내일에 앞서 전날인 오늘 미션봉투를 건네주기 위해 들른 촬영 스태프가 떠나자, 멤버들이 하나 둘 슬희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힌트라도 있을 것 같던 미션 봉투에는 그들이 기대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담겨져 있긴 했다. 다만, 그녀들에게는 있으나 마나라는 게 문제였지만.

“힌트가 너무 없는데? 애호박은 뭐고 슬리퍼는 뭐야?”

“나 때는 첫 촬영 전에 기사가 먼저 떠서 힌트도 많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이상한 것 같아. 기사도 안 나고 힌트도 이상한 것만 있고.”

“내일 강남역에 이 애호박이랑 슬리퍼를 들고 가라는 거야? 누구 길래 상징이 슬리퍼랑 애호박인 거지?”

최정상급 아이돌인데다가 해외 시장개척의 선구자인 SD기획사 소속답게 국내와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그녀들이기에 TV나 기사를 챙겨보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휴식기 때는 TV와 핸드폰을 달고 살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들은 좀처럼 미션 봉투에 담긴 힌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당초 애호박과 슬리퍼는 도저히 조합해낼 수 없는, 상상하기 힘든 힌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Twinkle 멤버들 가운데에는 그녀들처럼 마냥 TV와 인터넷 소식에 무딘 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힌트를 보고 갸우뚱거리며 상대편 남자를 추측해보는 멤버들 사이로 좀처럼 말이 없던 예린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큰 두 눈을 터질 듯이 뜨면서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그런 예린의 태도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애, 애호박에 슬리퍼면... 헐, 대박!”

언니들과 다르게 미션지에 담긴 힌트를 알고 있다는 것 말고는 저런 반응을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언니 이거 내가 나가면 안 돼? 나 처음부터 나가고 싶다고 했었잖아, 응?”

다소 유난이다고 할 정도로 호들갑인 예린의 행동에 멤버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런 멤버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예린은 여전히 흥분한 채 방안을 쏘다녔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예린의 행동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멤버들을 대신해 리더이자 맏이인 아이리스가 예리를 잡아끌어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으니까.

“그, 그게...”

그러나, 예린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열기는커녕 계속해서 아이리스의 눈치를 봤으니 말이다.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말해봐.”

그러자, 평소 때도 이런 적이 종종 있어 예린의 이런 행동이 익숙했던 아이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진짜지?”

이런 경우는 보통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했을 때 나오는 예린의 버릇과도 같은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린에게서 답을 듣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아이리스는 예린에게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다만,

“마인사냥에,”

“예, 예린이 너! 어, 언니가 그런 거 보지 말랬지! 그, 그거 19금...!”

예린의 입이 열리자마자 그 면죄부는 등짝스매싱으로 변해버렸지만 말이다.

“치! 나도 알건 다 안다 뭐! 인터넷에 떠들썩한 건데!”

“너, 너! 언니가 그러면 안 된다고,”

“언니들이 그러니까, 다 모쏠인거야! 남자 한번 못 사겨본 주제에! 언니들은 아직 어른도 아니잖아!”

하지만, 자신들의 아픈 구석을 콕콕 집어버리는 예린의 말에 아이리스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게다가,

“그래서! 슬희 언니 남편 될 사람에 관한 건데 안 살펴볼 거야? 슬희 언니 남편 될 사람에 대한 아주, 아주 믿을만한 정보인데?”

일단 지금 중요한 건 예린을 혼내는 게 아니라, 슬희의 남편에 대한 정보였으니까.

============================ 작품 후기 ============================

선추코가 미래다. 프로듀스 정주행.

선작, 추천, 코멘트 눌러주시고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