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1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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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공연 때는 우리 애들 시간 조절해볼게. 어차피 그때쯤 애들 짧게나마 휴가 보내주려고 했는데 제주도 여행 보낸 셈 치고 목요일 공연이니까, 일요일 오전까지 놀다오라 할게.]
[섭외 비는 부족하지 않게끔 드릴게요. 회사에서 이번에 전적으로 부담한다고 했으니까요. 아! 그리고 애들 휴가 주신다니까, 숙소는 제가 좋은 곳으로 마련해볼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숙소니, 섭외비니 안 해줘도 되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 마라, 지혁아. 몇 만 명 앞에서 무대 경험하는 것도 애들한테 도움 되면 됐지 해는 안 되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서울 공연 때는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지혁아. 이미 계약이 돼버려서...]
[다른 것도 아니고 광고촬영인데 당연한거죠. 제주도 공연 때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리고 섭외 비는 당연히 드려야죠. 제 공연 초대가수인데요.]
물론 저번 토크 콘서트 섭외 때도 예원이에게 섭외 비를 따로 챙겨주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무조건 섭외 비를 챙겨주리라 다짐한 만큼 나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섭외비랑 숙소를 마련해주면 애들 게스트 건은 없던 일로 하겠다는 소경진 대표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소경진 대표님도 한 발 물러나야했지만 말이다.
[그럼 안전하고 사생활 보장 잘 되는 곳으로 알아볼게요.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 지금 애들 주간 아이돌 촬영하고 있을 테니까, 끝날 때쯤 가서 저녁이나 같이 먹으면서 콘서트 얘기라도 나눠라. 내가 매니저한테 말해서 법카 줄 테,]
[아니에요. 초대가수 해주는 애들인데 제가 사줘야죠. 그럼 다음에 뵈요.]
또 괜히 부담만 줄까봐,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조금 무례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내 의도를 이해해주리라 믿을 수밖에.
그렇게 전화를 끊고 걷기를 10여분. 어느새 눈앞에 MBC ANYTIME방송국이 보였고 그런 내 앞에 익숙한 얼굴의 Amiga 매니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벌써 오셨네요. 사장님이 미리 전화 주셨어요. CP님한테 허락받았으니까 그냥 들어가시면 되요. 물론 방송출현은 안하는 걸로 미리 조율했고요.”
“아! 감사합니다.”
“뭘요. 아! 그리고 애들 지금 랜덤플레이댄스 들어가기 직전이라, 조용히 들어가셔야 될 거에요.”
어떻게 촬영장을 찾아갈지 고민했는데, 소경진 대표님의 배려로 의외로 쉽게 주간아이돌 세트장을 찾아갈 수 있었다.
랜덤플레이댄스라고? 자, 어디 실력 좀 볼까?
*
[시간을 달려서 - Amiga]
......
미처 말하지 못 했어 다만 너를 좋아 했어
어린 날의 꿈처럼 마치 기적처럼
시간을 달려서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거친 세상 속에서 손을 잡아 줄게
......
“아... 시나 뭐 하나요! 또 틀렸어 또!”
“이거 봐주려고 해도 도저히 봐줄 수가 없겠는데요?”
제법 진행에 물이 오른 대프콘과 돈사돌 스페셜 MC 정용와의 멘트에 촬영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홀로 구석에서 인상을 찡그리는 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예능을 몰라서, 방송 촬영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애들의 실수는 웃음으로 그리고 분량확보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안무 제작자임과 동시에 시간을 달려서 전체 디렉팅을 맡은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상황은 최악이다. 시나를 비롯해 안무를 틀린 애들의 행동이 웃음을 위한 고의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니까.
하, 모르겠다. 내가 지금 오버를 하는 건지, 과민 반응을 하고 있는 건지 말이다.
[어디에 내놔도 완벽합니다. 제가 확신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애들이 흘린 땀방울이 적지 않으니까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제가 디렉팅해서 드리는 말이 아니라, 저희 애들 진짜 잘하거든요.]
만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먼저 자랑할 정도로 내 디렉팅과 애들의 노력 그리고 실력을 믿었기에 지금 느끼고 있는 실망감도 큰 것 같다.
“너, 메인댄서 맞아? 다 틀린데?”
“아! 아니에요~”
“하하하하!”
그나마 안무를 틀리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리더 소정의 모습이 보였기에 촬영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모두가 엉망인 상태였다면,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이 이곳을 벗어났을 테니까.
촬영 스태프들과 출연진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나 또한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씁쓸하기 그지없는 자조 섞인 웃음이.
[아! 시나 또 틀렸어요. 이거 시계 상품은 물 건너갔습니다! 용화 돈 굳었네.]
[시나야! 이거 뭐 봐주려고 해도, 혼자 크크크크크. 이걸로 시계 상품에 이어 이온 음료도 획득 실패!]
[뭐야, 너희들 저번에 나왔을 때 안마기 타가지 않았어? 퍼펙트로? 아... 목마르신 Amiga 분들은 세트장 한 켠에 비치된 정수기를 이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하하하하!]
물론 여러 곡의 부분, 부분 안무를 랜덤으로 춰야 된다는 점에서 헷갈릴 수도 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내 기준으로 무대는 음악 방송 무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내가 노래하고 있는 그 순간의 장소를 의미했다. 그래서 내가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어디든 결코 가볍게 노래를 한 적은 없다.
내가 만약 저들이었다면, 안무를 틀렸을 때 방송을 위해 겉은 웃을지 언정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 실수가 단순 실수가 아닌 자신의 실력 그 자체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지 않기 위해 말이다.
하, 이제는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무대도 아니고 예능에서 내 기준을, 내 감정을 애들한테 강요할 권리까진 내게 없었으니까.
촬영은 방송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제법 원활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
랜덤플레이댄스 실패로 큰 웃음을 뽑아낸 대프콘의 진행이 이어진 순서에서도 빛을 발했으니 말이다.
[잠깐, 휴식하고 녹화 진행할게요!]
문득 들려오는 스태프의 목소리에 혼자만의 사색에서 빠져나왔다.
“지혁 씨 언제 저희 주간아이돌 한 번 나와 주시면 안 될까요?”
휴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총괄 CP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으니 말이다.
“아, 저는 아이돌이 아닌데요?”
아이돌이 나와야 주간아이돌이 자랑하는 메인콘텐츠인 랜덤플레이댄스를 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나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와서 무슨 댄스를 추겠는가. 애당초 노래에 댄스곡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 간접적으로 출연은 힘들 것 같다는 점을 어필했지만, 총괄 CP의 생각은 다른가보다.
“괜찮습니다. 지혁 씨가 나와 주신다고 말씀만 하시면 저희가 무조건 최대한 맞춰보겠습니다.”
간이며 쓸개며 다 빼다주겠다는 식의 어조에 더 이상 거부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상황을 빠져나갈 수밖에.
그렇게 총괄CP와 대화를 나누던 나를 발견한 것인지, MC를 맡고 있던 대프콘 선배와 정용와 선배가 내게 다가왔다.
“대프콘 선배님, 정용와 선배님 안녕하세요. 강지혁입니다.”
비록 안면은 없지만, 가요계 선배들 인만큼 그들을 외면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 내 모습에 총괄CP가 알아서 자리를 피해준 터라, 그들은 자연스럽게 내 앞 간의의자에 앉았다.
진행 실력만큼이나, 꽤나 유쾌한 대프콘 선배와 다가서기 힘든 귀공자 이미지를 지녔지만, 실제로 보니 동네 형 같은 정용와 선배와 잠시나마 간단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애들한테 할 말도 있고 이번 앨범 타이틀 곡 디렉터인 만큼 안무 확인도 해볼 겸 와봤습니다. 대표님께서 여기에 있다고 하셔서요.”
마침 그때 메이크업 수정을 받고 나온 Amiga 애들이 나를 발견한 듯 다가왔다.
“오빠!”
“헐, 대박!”
환하게 웃으며 말이다.
“아하! 그런데 오늘 Amiga 분들 랜덤플레이댄스 실패했는데, 많이 서운하시겠어요. 딱! 성공해야 되는데.”
용와 선배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의 시선은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오빠!”
나를 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바라봤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래도 소정이가 잘해줬으니까요.”
가장 먼저 온 탓에 듣게 된 나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짓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
그 후로 간단히 담소를 나눴다.
[리더가 잘하니까, 마음이 놓이네. 제법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티가 나지 않게 멤버들을 잘 챙겨주는 소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니 어느새 녹화 재게 시간이 다가왔다.
[촬영 시작합니다! 모여주세요!]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잔소리를 몇 마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티를 내기 싫었다. 아이돌한테 내 기준은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끝나고 같이 밥 먹으러 갈 거니까, 녹화 열심히 하고 뭐 먹을지 생각해놔. 알겠지?]
뭐, 그래서 평소처럼 녀석들을 대했다. 예능 나와서 웃기면 최선인 것을, 말해 무엇 하리.
그렇게 다시금 촬영은 재게 되었다. 나 또한 스태프들과 시선을 같이했다. 찝찝했던 마음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소정언니 랩으로 오디션 들어왔다는데, 랩 보여주세요. Amiga 사랑해요.]
팬들의 요구사항을 들어보는 콘텐츠에서는 소정이의 랩을 들어볼 수 있었으며,
[귀여운 사진 찍어주세요!]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카메라 어플로 찍은 재밌는 사진도 엿볼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슬슬 화장실이라도 잠깐 다녀오면 녹화 끝날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서던 나는,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Amiga하면 칼 군무로 유명하잖아요. 2배속 댄스 보여주세요!]
*
2배속 댄스를 끝으로 나는 Amiga 멤버들과 근처에 있는 초밥 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소정이 너 뭐 먹고 싶은데?]
[나? 나 초밥 먹고 싶은데?]
내 예상을 깨고 모두가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2배속 댄스를 제외하고서라도 오늘 랜덤플레이댄스에서는 오로지 소정만이 틀리지 않았는지라, 소정이 먹고 싶어 하는 초밥을 저녁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우와, 소정언니 지금 굽 꽤 있어서 키 엄청 큰데도 오빠 눈 까지 밖에 안 오네?]
[화, 화보 같아...]
[대박. 그러고 보니까 오빠 키 엄청 크구나.]
[그러게...]
뭐, 그런 나와 소정의 모습을 보고 애들이 자꾸 뭐라, 뭐라 한 것 같았지만 길을 찾느라 정신없던 나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대충 키 가지고 뭐라 한 것 같은데, 어쨌든 삼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깨나 키 하나는 타고났으니 욕은 아니겠지.
그렇게 예전에 Trendy 애들과 가본 적 있는 초밥 집에 자리를 잡았다. 저번에 먹었던 초밥이 꽤나 만족스러웠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정신없이 젓가락질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밥 잘 먹다가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야, 이것 좀 떼라. 사람들 보면 어쩌려고?”
민망하기 그지없는 감촉에 팔을 빼보려 했지만, 여전히 녀석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을 뿐이었다.
“누가 본다, 그래? 이렇게 안 붙으면 사진에 다 안 나온다고.”
다 같이 기념 삼아 찍는 사진을 위해 모인 것까지는 상관없었다. 다만, 뭉클함이 전해져오는 오른쪽 팔뚝이 문제였을 뿐. 하, 이게 낯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런 나와 시나 녀석의 모습에 나머지 녀석들이 놀란 듯 우리를 바라볼 정도니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서있던 종업원 분은 오죽할까.
[찰칵]
“치, 좋았으면서.”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자리로 돌아가는 녀석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 숨을 내쉬었다.
“뭐래? 쬐끄만 게.”
점점 대놓고 행동하는 녀석의 행동을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으니까.
“오빠, 잘 먹었습니다.”
“그래, 오빠가 스테이크 사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네?”
“아니에요. 저 초밥 엄청 좋아해요. 오늘 정말 맛있었어요. 히히.”
그래도, 저녁을 먹는 내내 기분 좋은 웃음을 내보였던 은지의 모습에 위안을 얻어 본다. 방금 전 내 발언에 흥분한, 저 목석같은 시나와는 달리, 애교가 생활 그 자체에 베여있는 은지의 행동 하나, 하나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 앞으로도 열심히 하면 오빠가 종종 사줄게. 다음에는 스테이크로. 오케이?”
“히히,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유진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표정이 어두워 걱정이다.
그렇게 괜히 유진의 눈치를 보게 될 때였다.
때마침 내 옆자리에 앉아 초밥을 집어먹던 소정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준비할 건 뭐야?”
“당일 날 오전부터 동선체크하고 같이 리허설 몇 번 하면 될 것 같아. 일단 ‘시간을 달려서’, ‘투명구슬’ 은 확실히 부를 거니까, 준비해. 시간을 달려서는 특별 무대 형식으로 나랑 같이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자세한 거 준비되면 말해줄게.”
애초에 이 자리가 제주도 콘서트 얘기를 꺼내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 만큼, 소정의 질문에 되도록 상세히 말해주고 싶었다. 비록 내가 아는 게 없어서 주먹구구식으로 알려주는 게 전부일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 노래 중에서 한 곡 선택한 거랑 시나 솔로곡도 마찬가지로 특별무대 식으로 할 테니까, 그것도 미리 준비해서 나한테 알려줘.”
“결과적으로 단체 2곡, 개인 2곡이네?”
“그런 셈이지. 그나저나, 오늘 소정이 네가 잘해서 마음이 놓이더라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도 모르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동갑이긴 하지만, 주간 아이돌 촬영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녀석이 대견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뭐, 뭐야, 갑자기.”
제주도 숙소에 신경 좀 써야겠다. 섭외비도 없이 애들을 쓰는 만큼 제대로 된 휴가를 만들어 주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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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 해주시고 원고료 쿠폰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