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8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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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뭐하라고? 택현이도 없고 아무도 없잖아?”
“뭐가 아무도 없어. 관규 형 있잖아.”
“아씨, 관규 형은 있으나 마나야. 뭐만 하면 힘들다고 누워있는데!”
“야! 뭐가 누워있어! 불도 내가 피웠고만?”
여느 때처럼 이시진의 투덜거림과 함께 시작된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져 가고 있었다. 물론 당사자인 이시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아, 오늘 이렇게 힘든데 고기 좀 줘. 택현이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되잖아. 관규 형은 할 줄 아는 게 없다니까.”
언제나 궂은일을 담당했던 옥택현이 일본 스케줄로 인해 이번 촬영에서 빠지게 되자, 고스란히 그 역할을 하게 된 이시진은 계속해서 나영식에게 투덜거리며 오늘도 고기를 얻기 위해 때 아닌 때를 쓰기 시작했다.
“무슨 고기야. 마당에 널린 게 봄채소인데. 그리고 오늘 게스트 오니까, 준비 잘해.”
“게스트?”
“여자야?”
“엄청 모시기 힘든 게스트니까, 진짜 하루세끼 망신시키지 말고.”
“그럼 고기를 달라니까. 고기를. 그렇게 귀한 손님 오는데 풀만 대접할 거야?”
나영식의 입에서 튀어나온 게스트 얘기에 잠시 주의가 끌리긴 했지만, 이내 기승전 고기를 선택했을 정도로 말이다.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새싹 비빔밥에 된장찌개로,”
“아니 글쎄, 그걸 할 사람이 없잖아. 짐짝 관규 형 말고 택현이를 불러오라고. 택현이를.”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이시진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저렇게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할 건 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에 걸쳐 능숙하게 나영식의 요구에 맞춰 점심상을 차린 이시진과 김관규를 화면에 담던 나영식의 바지에서 진동이 울렸다.
새로운 이가 등장했음을 알리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
“형들은 요즘 좋아하는 가수 있어?”
“가수?”
“요즘 노래들은 하나도 몰라. 다 옛날 노래지 뭐.”
점심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두 남자가 마당 탁상에 드러누웠다. 그래봤자, 곧 저녁 준비를 해야 될 테지만 말이다.
그런 그들이 문득 들려오는 나영식의 말에 무심코 반응했다.
가수. 이미 아이돌 판이 돼버린 음악방송 탓에 40대 이상세대들은 좀처럼 현 음악 유행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는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시진, 김관규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영식의 질문에 대한 이시진, 김관규의 대답은 시큰둥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왜? 오늘 게스트가 가수야? 요즘 가수? 여자가수?”
이시진의 날카로운 촉이 순간 발동됐다 사라졌지만 말이다.
“뭐, 얼마 전에 엄마가 CD한 장을 사달라고 하더라고. 주문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래? 누구?”
“강지혁 있잖아. 요즘 핫한 애. 뭐, 핫한 것 같긴 해. 우리 엄마 생전 나한테 그런 부탁안하거든.”
“어떤 것 같은데? 형 생각에는?”
“나야 잘 모르지.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으니까. 그래도 아름다운 누나 보니까, 애가 나이에 비해서 예의도 바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오늘 게스트가 걔야?”
“에이 설마. 요즘 얼마나 핫 한데 이런데 오겠냐?”
“하긴, 이런데 오라고 섭외 요청했으면 넌 진짜 양심도 없는 애다. 진심.”
그렇게 한참동안 시덥잖은 대화를 이어가며 점심 때 먹은 풀들을 소화시켜나갈 때였다. 문득 물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김관규의 눈에 멀리서 몸통만한 박스를 들고 오는 이가 들어왔다.
“어? 저기 게스트 온 것 같은데?”
“뭐야, 남자네. 어휴. 너도 진짜 답도 없다. 여기서 또 남자를 끌어들이고 싶니? 어휴.”
이런 오지 산골에 촬영 팀을 제외한 이가 찾아올 리 만무했기에, 일행은 저 멀리서 오고 있는 이가 오늘의 게스트임을 그것도 그들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남자 게스트임을 알아챘다.
“근데, 뭐 들고 오는 것 같은데?”
“누군데 뭘 저리 들고 와?”
다만, 한눈에 봐도 키가 커 보이고 어깨가 넓어 보이는 게스트가 자기 몸통만한 상자를 들고 온다는 점이 그들의 관심을 그나마 이끌어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내 육안으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게스트가 가까워지자,
[헐, 대박! 강지혁이야. 강지혁.]
[오늘 게스트 강지혁이었어?]
[어쩐지 나PD님이 말 안 해주더라니... 대박이다. 진짜.]
장내는 급격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작, 그 주인공이 마당의 탁상으로 도달했을 때는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연기자 강지혁입니다! 2박 3일간 잘 부탁드립니다.”
쥐 죽은 듯이 썰렁해졌지만 말이다.
*
이번 하루세끼의 게스트가 될 강지혁의 등장에도 촬영장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나영식 PD가 잽싸게 앞으로 나와 그를 맞이했지만 말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연기자 강지혁입니다! 2박 3일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숨 막힐 듯한 어색함을 느꼈는지, 지혁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시진과 김관규를 인지한 것인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 그래.”
“아, 뭐야. 아까 내가 맞췄네. 왜 아닌 척해?”
이시진과 김관규 모두 그다지 살가운 편은 아니었는지라, 서로 인사를 나눴음에도 촬영장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본래 여자 게스트가 아닌 이상, 게스트를 맞이하는 것은 옥택현의 역할이었지만 그가 없는 바람에 지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들고 온 상자를 탁상에 내려놓았다.
[쿵!]
그런데, 그때였다.
꽤나 가볍게 들고 온 것 같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상자가 탁상에 놓여진 순간 내는 묵중한 소리에 모두의 관심이 그곳으로 쏠렸다.
“이게 다 뭐야?”
가장 먼저 상자로 다가가 슬쩍 상자 틈새를 열어본 이시진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강원도까지 왔는데 가마솥에 구운 한우가 먹고 싶어서요...”
“그, 그런데?”
“저희 먹을 거만 사면 뺐길 것 같아서요. 스태프 분들도 드실 수 있게 오다가 횡성 시장에서...”
상자에는 찬란한 마블링 덩어리가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런 이시진의 반응에 곁에 있던 김관규와 나영식이 뒤늦게 다가와 상자를 확인했고 그들 또한 이시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나영식은 사태를 인지하자마자 서둘러 지혁과 같이 온 이미영 PD를 찾았지만 말이다.
“야! 미영이 넌 이거 안 말리고 뭐했,”
그러나 지혁의 뒤편에서 있던 이미영 PD에게 고기가 한 가득인 상자를 지적하며 뭐라 한 소리 하려던 나영식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삼촌! 누나한테 뭐라 하지 마요. 제가 마음대로 산거에요.”
나영식의 의도를 먼저 눈치 챈 지혁이 한발 빠르게 나영식을 막아섰다. 그리고 이는 고요하기만 하던 주변을 일순간 바꾸기에 충분했다.
“누, 누나?”
“누나?”
“헐, 대박.”
그런 지혁의 행동에 나영식 PD는 차마 할 말을 잊어버린 듯 입을 열지 못했다. 뭐라 말을 하기엔 주변의 분위기가 너무 폭발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영식 PD가 멘탈을 수습하려할 때, 지혁은 이번에는 이시진과 김관규의 질문세례에 답변을 해야만 했다.
“뭐야, 이거 다 한우야? 횡성 한우?”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요. 살치 살이랑 치마 살이랑 꽃 등심으로 준비했어요. 10근씩 준비했으니까, 스태프 분들도 같이 드시기에 부족할,”
“뭐? 10근씩?”
“10근씩 세 개면 뭐야, 30근? 18KG? 하...”
“마, 마블링이...”
“오늘 새벽 도축된 거라 완전 싱싱하다고 거기 정육점 사장님이,”
“오, 오늘 도축? 와...”
“저 마블링 좀 봐... 완전 눈꽃이네. 눈꽃.”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데면데면했던 이시진과 김관규의 관심을 한껏 끌어올릴 정도로 지혁이 가져온 물건의 효과는 대단했다. 순간적으로 다가온 이시진이 지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연신 잘했다, 잘했다를 연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건 압수.”
“예?”
어느새 멘탈을 수습한 것인지, 나영식이 다가와 이시진과 김관규에게서 고기가 가득 담긴 상자를 뺐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이러한 나영식의 행동은,
“야, 뭐야. 애가 기껏 사왔는데, 압수라니. 말도 안 되지.”
“와... 양심 없네. 애를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대접은 못해줄망정!”
“혼자 먹을라고?”
김관규와 이시진의 거친 저항을 받기에 충분했다.
“삼촌, 나 삼촌이랑 같이 소주도 마시고 싶고 그래서 사온 건데 안 돼? 나 어제 섭외요청 받고 사실 거절하려다가 삼촌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사실 출연료 때문에 수락한 거 아니란 거 삼촌이 제일 잘 알잖아.”
그리고 이는 지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 어?”
“와. 진짜 네가 미쳤구나? 애한테 어제 연락해서 오라고 했어? 그래놓고 또 고기를 뺐어? 너 혼자 먹을라고? 네가 사람이냐?”
“어? 뭔 소리야 내가 언제 나 혼자 먹는 다고,”
“와, 너무하네. 넌 이시진보다 더 심하다야.”
이시진과 김관규의 저항은 고려했지만, 지혁마저 자신의 행동에 반기를 들 줄은 몰랐는지라 나영식 또한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번 물고 늘어진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이시진과 김관규의 어시스트에 이어,
“영식 삼촌 실망이야. 저번에 아름다운 누나 마지막 날 밤 우리끼리 술 먹은 거 몰래 찍어서 예고편으로,”
“아, 아니. 지혁아 그건.”
“와... 그것도 몰래 찍은 거였어? 몰래 찍고 그날 바로 편집해서 예고편으로?”
“진짜 너무하네... 와...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지혁의 강력한 한방이 연달아 그를 공격했는지라 나영식은 뺐었던 상자를 들고 차마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 그래, 먹어라 먹어. 마음껏 먹어라. 먹어...”
[와우!]
[됐다, 됐어!]
하물며, 지혁이 가져온 고기들을 보며 내심 군침을 삼키던 스태프들 또한 그의 편이 아니었기에 그로서는 항복 선언을 한 뒤 상자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영식을 제외한 모두의 환호성과 함께 하루세끼의 화로는 분주히 움직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팍]
[부지직]
“지혁아,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 이제 그만하고 장작 가져와.”
“네, 선배님.”
어느 정도 장내 분위기가 진정되자마자 나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됐다. 짐을 놓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내게 도끼를 쥐어주는 이시진 선배의 지시에 장작을 패게 된 것이다.
뭐, 나로서는 제주도 별장에서 지낼 때마다 장작을 패왔던 경험이 있기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땀이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예상외로 장작을 잘 패는 그런 내 모습에 시진 선배 또한 만족을 했나보다. 겉으로 표현은 한해도 얼굴에 보조개가 잡히는 걸 두 눈 똑똑히 봤으니까.
“이야... 살살 녹네. 살살 녹아.”
“이게 고기지. 고기. 벌써 식감부터가 다르잖아. 투 플이라서.”
그 후부터는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제작진과 출연진 구분할 필요 없이 카메라를 고정시켜둔 채 모두 가마솥으로 모여 고기를 구워먹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크으! 좋다!”
“장난 아니네. 크으!”
“여기, 한잔 더!”
촤, 촬영 중인데 한두명도 아니고 저렇게 스태프 전체가 소주를 들이켜도 되는 지나 모르겠다.
어, 얼씨구? 이젠 글라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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