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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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게, 걸리쉬 팝을 담당하기로 했던 작곡가가 지금 표절시위로...”
“너 이 개새끼! 씨발 장난해? 그 새끼 네가 추천한 거잖아!”
방송 촬영이 시작될 12월까지는 아직 반년 이상 남았다고는 하나, 지금 들려온 상황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는지라 총괄 CP의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졌다. 이미 윗선까지 보고가 올라갔고 이제 결제만이 남은 상태에서 프로그램 진행에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나 있어도 모자랄 진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 그게.”
게다가 아무리 포맷을 새롭게 바꿨다지만, 일종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만큼 지상파의 견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어 이러한 총괄 CP의 분노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의 윤곽이 결정되고 프로그램 정식 런칭 공고가 올라가게 되면 지상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작곡가들이 참여를 꺼릴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내가 근본도 없는 새끼들은 안 된다고 했지! 이 씹 새끼야!”
하물며 자신이 반대했던 인물이 문제를 일으켰으니 그 분노가 오죽할까.
“어떻게 서든 작곡가 섭외해와! 알았어? 또 근본 없는 새끼 섭외해오거나 아예 못 구해오면 너 아주 방송 판에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그렇게 순풍의 돛단배처럼 흘러갈 것 같았던, 프로그램 런칭 공고를 일주일 앞둔 상태에서 차질이 생긴 총괄 CP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
[신사의 품위 시청률 30%돌파! 15화 시청률 31.19%기록! 또다시 나타난 이은숙, 신유철의 매직! 앞으로 남은 5화 내에 40%돌파 가능할까?]
[강지혁 연기력 논란 정면 돌파? 첫 연기임에도 어색함 없는 연기력에 시청자들 호평 일색!]
스타작가와 스타 연출진의 만남. 거기에 이렇게 한데 모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어마 무시한 캐스팅까지.
드라마가 잘 될 것 같긴 했다. 다만 이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지혁아 잘했다. 잘했어. 주변에서 다들 너 연기 잘한다고 난리더라.”
“삼촌 또 왜 그래. 대사가 적어서 그런 건데.”
덕분에 나도 거품이 잔뜩 껴버렸다. 비주얼이면 비주얼 실력이면 실력 모두 넘사벽인 선배배우들 덕에 내 연기도 플러스알파가 돼버린 것이다.
한 화에 많아봐야 두세 씬이 전부인지라 어느덧 내 촬영은 두세 번 정도 남은 게 끝이지만 남은 화에 안 나오는 날이 없을 것이기에 민망하기 그지없다.
“지혁아 요즘 집에 안 들어가고 회사에서 잔다며?”
“에?”
“아니, 너 독립했다며 그런데, 너 며칠 째 회사에서 씻고 자는 것 같길래.”
언제나처럼 내 전용이 돼버린 소파에 누워 TV를 보려했는데 아무래도 그러긴 그른 것 같다. 뭔가 할 말이 가득해 보이는 민재 삼촌이 아예 작정한 듯 내 옆자리에 앉았으니 말이다.
하, 소파도 많은데 왜 하필 옆자리야. 나, 참.
그나저나, 나 독립한 건 어떻게 알았데? 아직 일주일도 안 된 일인데...
“재성이가 말해주던데? 너 독립했다고? 뭐, 사생활 관리해야 된다나 뭐라나.”
하... 진짜 이 조카바보가 또.
뭔가 증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군대 가기 전 삼촌을 떠올려보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이런 삼촌의 행동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당혹스러울 뿐.
“너 독립한다고 했다고 서운하다고 술 왕창 먹더라. 나 그렇게 술 많이 먹는 거 너 군대 간 날 빼고는 본 적도 없는,”
얼씨구 술까지? 하, 진짜 미치겠다. 삼촌 때문에.
“그런데, 집들이 같은 거 안하냐? 그래도 명색이 삼촌인데 뭐 필요한거 있어?”
“됐어, 집들이는 무슨. 필요한 것도 없으니까, 괜히 신경 쓰지마, 삼촌.”
뭐라도 해주려는 듯한 민재삼촌의 멘트에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집들이는 무슨. 나도 어색해서 일주일 동안 첫날 빼고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에이, 어떻게 그래. 주소 불러봐.”
“주소?”
“이상하게 재성이가 주소는 안 가르쳐주더라고. 너 필요할 만한 거 보내준다고 알려 달랬는데 말이야.”
“하하...”
삼촌... 재성 삼촌이 그랬다면 그렇게 한 이유가 있는 거야...
필요한 게 있을 리가 있나. 필요한 가전제품은 전부 빌트 인에 가구도 이미 마련돼 있는데 거기서 뭐가 더 필요하겠어. 더군다나 나 혼자 사는데.
애써 민재 삼촌의 호기심을 억누르기를 십 여분. 하... 나 아무것도 안했는데 너무 힘들다. 간만에 휴게실에서 휴식 좀 가지려고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민재 삼촌의 할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로 얼굴 마주보며 얘기한 게 꽤나 오래전이라고는 해도 이거 완전 날 잡은 건가? 무슨 얘기가 끊이질 않어. 나, 참.
“영식 삼촌이?”
“너 이번에 김태오 PD 끝없는 도전 섭외 된 거 기사 떴잖아. 그래서 많이 섭섭하다고 하더라고.”
새로운 화제는 아름다운 누나 프로그램을 함께했던 영식 삼촌 얘기였다. 엄청 뜬금없이 말이다.
아름다운 누나가 TBN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것과 상관없이 꽤나 바쁜 나날들을 보내왔는지라, 실제로 촬영 후 영식 삼촌과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토크 콘서트부터 시작해서 연말 행사들 그리고 드라마까지.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나름 바빴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영식 삼촌에게는 꽤나 서운하게 다가왔나 보다. 뭐, 비즈니스적으로 만난 사이라고는 해도 보름가까이 타지에서 같이 생활한 터라 이제는 단순 연출자, 출연자 관계라고 하기엔 애매했으니 말이다.
“지금 강원도 정선에서 하루세끼라는 프로그램 하고 있는데, 그게 반응이 꽤 좋나봐. 그래서 너 한번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게 뭐하는 프로인데?”
잘나가는 배우이자 좋은 집안으로 유명한 배우 이시진. 도시적인 이미지를 잔뜩 풍기는 배우 이시진을 시골 깡촌으로 보내 농사를 짓게 만들고 하루 세끼를 직접 해먹게 만든다.
이게 영식 삼촌이 지금 맡고 있는 프로그램의 모든 것이었다. 헌데 이 간단명료한 프로그램이 지금 꽤나 큰 인기를 끌고 있단다.
투덜투덜 거리지만 막상 시키면 다하는 츤데레 이시진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머슴 한 명.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인 그들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과 소소한 재미를 얻고 거기다 가끔 섭외되는 게스트가 신선함을 더해서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열기를 불러일으킨다나 뭐라나.
뭐, 흥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일단 컨셉 자체가 꽤나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시진 선배는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한번쯤은 꼭 만나보고 싶은 선배였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누나에서 정산 반전을 노렸을 때도 모토가 됐던 게 이시진 선배여서 방송 당시 꽤나 화제가 된 것도 있거니와, 초짜 중의 초짜 배우인 내게 이시진 선배 같은 베테랑 배우는 배울 게 많은 선배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알겠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 좋긴 한데, 거기 이시진 선배 말고도 나오는 사람 있잖아.”
꽤나 껄끄러운 사람이 그 프로그램의 또 다른 고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시진이랑 같이 출연하는 옥택현이 콘서트 때문에 빠져서 게스트가 꼭 필요한가봐.”
얘기를 꺼낼 때부터 이 같은 사항은 이미 고려했나보다. 뭐야, 이거. 뭔가 너무 아귀가 잘 맞잖아? 마치,
“그게, 영식이가 내일쯤부터 이삼일 정도 시간 내줄 수 있는지...”
이미 수락한 것처럼...
*
새벽 6시. 채 떠지지 않는 눈으로 차에 올라탔다. 강원도 정선으로 가려고 말이다.
하,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노린 거야. 사실 그동안 민재 삼촌을 알게 모르게 골탕 먹인 게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번 일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는 감이 들었다.
일단 갔다 와서 봅시다. 삼촌.
그렇게 촬영 스태프 2명과 함께 정선을 향해 이동하기를 2시간. 아직 정선까지는 절반 가까이 남았지만, 또 다른 볼일이 생각나 도중에 길을 약간 틀었다.
“지혁아 도착했다.”
뭐, 어차피 가는 길이라 시간상으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테지만 말이다.
후아.
석현 형의 말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밝아지는 것도 잠시,
“스태프 분들이랑 다해서 스무 분 정도라고요?”
“저, 저기 지혁씨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네?”
정선으로 가기 전 횡성 한우 시장에 들른 나를 막아서는 스태프분에 의해 발걸음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잠시지만 말이다.
“저, 이거 섭외 요청 받은 게 어제라서 사실 안하려고 했어요. 아름다운 누나 때 출국 세시간전에 알았을 때처럼 솔직히 버거웠거든요.”
“네, 네?”
“그래도 섭외 요청 수락한 이유는 오랜만에 영식 삼촌이랑 대준 형 얼굴 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이번 하루세끼 프로그램 제작진 분들이 저번 아름다운 누나 촬영 스태프들이라고 해서에요. 물론 이시진 선배님 얼굴도 뵙고 싶어서기도 하고요.”
한번 깨버린 탓인지 좀처럼 잠 들 수가 없었다. 물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스태프 분들의 행동 탓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스태프 분이 안내를 하는 건 좋은데 어째서 둘 다 여자인거야? 불편하게.
어쨌든, 잠자기를 포기하고 하루세끼 프로그램을 간단히 클립영상으로 훑어봤다. 보면 볼수록 뭔가 불안해졌지만 말이다.
밥하고 밥 먹고, 먹자마자 밥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밥 준비하고 밥 먹고, 그러다가 고기를 위해 수수노예가 돼버린 출연진들을 보자니 내 앞길이 어두컴컴해졌다.
솔직히 등 떠밀려 출연 결정을 하긴 했지만, 나름 내 자신의 힐링을 기대했는데 정작 프로그램을 훑어보니 일만하다 가게 생겼으니까.
그래서 중간에 횡성으로 길을 틀었다. 이왕 일 하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하루 정도라도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시진 선배한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었으니 말이다.
하, 그런데 생각 외로 방해가 적극적이다. 저 PD누나가 말이다.
“이거 못 사게 하면 저 출연 안할 거에요. 누나.”
“누, 누나?”
“네, 누나! 다 같이 맛있게 먹어요. 어차피 사도 오늘 저녁만 먹는 거잖아요. 제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안 들어주실 거에요? 누나?”
“누, 누나!”
“저 출연료 받으려고 출연 결정한거 아닌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돼요, 누나? 영식 삼촌은 제가 설득할게요. 네?”
“누...누나...”
이런 짓 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인기 빨이라는 게 있지, 내가 꽃미남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발 먹혔으면 좋겠다. 이럴 땐 민혁 형이나 성제가 있음 딱 인데 쩝.
그런데 뭔가 이 작전이 먹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 길을 필사적으로 막던 PD 누나와 카메라 누나가 멍하니 제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얼굴 표정을 보니, 그다지 밝은 표정이 아니었는지라 애매하기 그지없다.
에라 모르겠다. 안 막는 걸 보니, 사도된다는 뜻이겠지, 뭐.
“구이용으로는 뭐가 좋아요? 제가 소고기를 잘 몰라서요.”
“저희 횡성 한우는 다 맛있어요. 그래도 그 중에서 구이용으로 따지면 특수 부위가 최고죠.”
최근에 소고기를 구워 먹은 게 프로젝트 데뷔 애들이랑 토크 콘서트 전에 먹었던 게 전부일 정도로 소고기에 관해선 무지했는지라, 정육점 사장님의 말을 그저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횡성이 한우로 유명하다. 그게 끝이었으니까.
“특수부위요?”
뭐, 특수 부위든 뭐든 맛있으면 장땡이지.
“살치 살이랑 치마 살이 좋죠. 뭐 꽃등심도 괜찮고요.”
“그러면 사람이 스무 명이니까... 각각 10근씩, 그 정도주세요. 따로따로요. 아! 카드 되죠?”
“여, 열 근씩이요? 각각?”
그래도 부위별로 300g씩은 먹어야 맛이라도 느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사장님께 각각 열 근씩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그런 내 말에 꽤나 놀라신 듯 했다. 그래서 혹시, 물량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다시 여쭤보니 그런 건 아니란다. 뭐지?
뭐 어쨌든 물량이 있어서 고기를 살 수 있어 다행이다. 이 정도면 간만에 소고기 좀 먹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겨, 결제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일시불로 해주세요. 맛있는 걸로 담아주세요!”
“네! 그럼요! 저도 그렇고 저희 마누라도 지혁 씨 팬인걸요.”
그렇게 계산까지 마무리할 때쯤 뒤늦게 다가온 PD 누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계산까지 다 완료한 고기를 다시 무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지혁 씨 사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팔아주시기도 해서 이건 서비스입니다. 제비추리라고 같이 구워 드시면 맛있을 거에요.]
내 팬이라고 말한 사장님 내외분께 사인을 해드리자, 서비스라며 또 다른 고기부위 한 움큼을 내주셨다. 그래서인지 기분은 더욱 좋아졌고 말이다.
하, 맛있겠다. 그나저나 석현 형은 어디 있는 거야? 무거워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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