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2 2013 =========================================================================
짧은 순간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와! 제부! 우리 별희 보러 온 거에요? 헐, 대박!]
[치... 미리 말해주지 그랬어.]
[형부! 그 새 별희 언니 보고 싶었던 거?]
[아, 아니에요. 마이무 선배님들 뵈려고 온 거에요.]
무무 가면이 벗겨진 순간 내게 집중된 시선에 속했던 별희와 나머지 마이무 멤버들의 놀란 표정을 볼 수 있었고,
[이 바보, 멍청이!]
[지... 지수야.]
바로 옆 관중석에서 팬들과 식사를 하던 지수의 분노에 찬 외침을 들을 수 있었으며,
[오빠, 디저트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오늘 아운대 오셨다면서요? 그... 마이무 선배님 팬 분들 관중석에 계셨다던데... 서운해요. 저도 보고 싶어요.]
[와... 진짜 치사해! 우리들도 거기에 있었는데!]
[오빠, 예워니는 안 보고 싶은 거얌? 힝...]
[지하는 기다릴게요. 오실 때까지...]
[와... 동갑한테 설렜는데 이젠 화나기까지 하네?]
스케줄을 핑계로 겨우 아운대 촬영장을 빠져나온 순간 여친 애들의 폭풍 메시지를 받아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하야 기다리긴 뭘 기다리니. 잠은 숙소 가서 자야지.
어쨌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은 썩었다.
동생한테 예쁨 받으려고 애썼는데, 분노의 외침을 들었으며 지금 나는 찐득거리는 머리카락과 목, 어깨를 주체하지 못 한 채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옆자리 여고생이 수상하다. 아니, 도시락 줬더니 나한테 이런 빅 엿을 날려? 아니 어떻게 엎지르면 내 바지도 아니고 머리랑 어깨에 커피를 엎지르는 거지?
“지혁아 너 머리랑 옷이 왜 그래? 안되겠다. 일단 집 들렸다가 가자.”
그런 내 모습을 본 석현 형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겨울이어서 다행이지, 여름이었으면 어휴. 상상도 하기 싫으니 말이다.
그렇게 집에 가서 간단히 샤워를 한 뒤 다시금 차에 올라타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한, 1시간 정도 갔을까.
꽤나 큰 규모의 세트장에 도착한 순간 지금까지 머리를 헤집고 다니던 아운대 사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 지혁아 저, 저기 장동근이다. 장동근이야!”
“기, 김아늘도 있어! 대, 대박!”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대는 지혁 형 말마따나, 이곳은 뭔가 내가 사는 세계가 아닌 별천지였으니 말이다.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가 들어있는 박스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았음에도 나와 석현 형은 한참동안 그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수많은 스태프들 그리고 그곳에서 찬연히 빛나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있자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
“어? 이게 누구야! 지혁 씨 아니야?”
“에?”
“우와, 강지혁이다. 강지혁!”
“대박!”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총연출을 맡고 계신 신유철 감독님이 멍하니 서있는 나와 석현 형을 발견한 것인지 반가움의 인사를 표현하셨고 이를 본 주변 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우리들에게로 쏟아졌으니 말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번 신사의 품위에서 칼린 역을 맡게 된 강지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들에게는 무조건 깍듯이.
[지혁아, 가요계도 물론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겠지만 연기 쪽도 만만치 않아. 그러니까, 네가 가수로서 어떤 위치에 있든 촬영장에 가면 신인배우로서 무조건 선배배우들한테 예의바르게 해야 된다. 알겠지?]
[연기 쪽은 캐스팅 기회가 워낙 좁다보니까, 이미지 관리를 잘해야 돼. 지혁아. 한번 잘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퍼져버리니까 그래. 알겠지? 뭐, 우리 지혁이는 예의바르고 착한 애니까, 걱정은 안 된다만.]
신사의 품위에서 주인공 중 한명의 아들인 칼린 역을 맡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연기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에게서 말이다.
미애 누나와 희연 누나의 맨투맨 식 집중 수업은 그 어떤 연기자도 얻을 수 없는 엄청난 기회였기에 나 또한 시간이 될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물론 이 최선이라는 게 실제 촬영에서 얼마나 효과를 보여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내 첫 촬영은 2월 초라서, 전체 첫 촬영인 오늘 이곳에 오는 것이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애, 희연 누나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이곳을 방문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마주하게 됐지만 말이다.
어쨌든, 있는 힘껏 고개를 숙이며 목청을 드높였다. 그런데, 목청을 드높여도 너무 드높였나보다. 본의 아니게 성량 자랑을 한 것 같으니 말이다.
실내 세트장에서도 메아리가 들려 올수 있구나를 증명이라도 하듯 쩌렁쩌렁 울리는 내 인사에 정작 내 자신이 놀라버렸다.
다행히, 선배 배우 분들과 스태프 분들의 안색을 보니 마이너스 효과는 안낸 듯하다. 하, 처음부터 실수 할 뻔 했다.
“지혁 씨, 웬일이야? 지혁 씨 첫 촬영 2월 초 인거 소속사에서 통보 못 받았어?”
“아, 아니요. 그... 전체 첫 촬영 인만큼 제 촬영이 아니어도 오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왔습니다!”
“에?”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렁찼던 내 인사가 문제여서일까 아니면 내가 이곳에 온 게 문제여서 일까. 첫 촬영 인만큼 민폐를 끼치게 될 선배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으러 왔다는 말이 주는 파장은 의외로 적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던 신유철 감독님을 시작으로 주변의 스태프들의 소곤거림이 심해졌으니 말이다.
뭐야, 도대체 뭐가 문제?
*
[반가워요. 우리 보름 쯤 뒤면 같이 합 맞춰볼 수 있겠네요?]
[우와! 저 완전 팬이에요! 정말 너무 반가워요!]
첫 촬영 날, 내가 갔던 시간대에 마침 세트장에 있었던 장동근 선배와 김아늘 선배를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저 사람들이랑 같은 화면에 나올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준비해간 샌드위치와 커피들을 나르는 도중에 헛생각을 해서일까. 또다시 커피를 흘리는 바람에 결국 내가 촬영장에 머무른 시간은 30분도 되질 못했다.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을뿐더러, 괜한 소란을 일으켜 촬영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가수 강지혁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진짜 날이, 날인가보다. 연이어 쏟아진 커피의 찝찝함을 참을 수가 없어 회사 앞 대중목욕탕을 찾았다. 석현 형이 대충 내 몸에 맞는 옷을 사올 동안 말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과 마주쳐 버렸다. 그것도 너무나도 유명한 분을 말이다.
“어? 어! 이야, 정말 반가워요. 원래부터 여기 목욕탕 다녔어요?”
냉탕에 적신 수건을 들고 들어간 사우나에서 최정상을 다투는 MC이자 개그맨인 신동협과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어버린 오늘은 확실히 뭔가 있는 날인 것 같다. 하, 진짜 이 모든 게 하루 동안 모두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아, 아뇨. 그... 오늘 처음입니다. 선배님.”
비록 내가 개그맨이나 MC지망생은 아니었지만, 연예계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이의 앞에서 편하게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이, 뭘 그리 딱딱하게 해요. 편하게 해요. 편하게. 우리 초면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내 낌새를 눈치 챈 것인지 신동협 선배의 입에서 편하게 있으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저, 저기 저희 초면이 아니긴 한데, 그 초면이라는 게 가요대전에서 잠깐 본건데요?
“언제 민재나 재성이랑 같이 해서 술 한잔해요. 술 못하진 않죠?”
“예, 잘은 못하지만 마실 줄은 압니다.”
“그래요. 허허.”
방송에서 보여 지는 변태이미지나 능수능란한 진행 실력은 모두 방송을 위한 이미지 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하고 푸근한 표정과 언행에 나 또한 서서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지금 신동협 선배는 마치 동네 삼촌과 같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간간히 대화를 나누며 땀을 뺀 지 10여분 가량 지났을까. 잠시 두 눈을 감고 수건으로 땀을 한번 쓰윽 훑어 내릴 그때였다.
순간 내 몸 곳곳을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라, 두 눈이 번뜩 뜨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우나 안에는 두 눈을 감은 채 땀을 빼고 있는 신동협 선배와 나 뿐이었다. 뭐지? 분명 누가 날 훑은 것 같았는데...
한번 슬쩍 주변을 둘러본 뒤, 괜한 우려인 듯 싶어 마지막 스퍼트를 향해 다시금 두 눈을 감았다. 목욕탕을 온 것이 예정된 일은 아닐지라도 사우나 자체를 마다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하, 그러고 보니 목욕탕에 온 것도 엄청 오랜만이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주 일요일은 삼촌이랑 같이 집 앞 목욕탕에서 때도 밀고 사우나도 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 사우나는 이렇게 사람이 없는데 뭐가 남는 게 있긴 한 걸까?
*
사우나에서 나와 간단히 몸을 행군 뒤 바나나우유를 샀다. 뭐, 사우나에 오랜만에 왔다고는 해도 버릇은 어디 안 가나보다. 사우나에서 나올 때면 나는 항상 바나나우유를 삼촌은 저지방고칼슘 우유를 먹었으니 말이다.
[아!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어쨌든, 바나나우유 2개를 사서 마침 탈의실로 들어오는 신동협 선배에게 한 개를 건넸다. 뭐, 다행히 우리 삼촌처럼 까다로운 입맛은 아닌 듯 단숨에 바나나우유를 입안으로 털어 넣는 신동협 선배의 모습에 나또한 뿌듯했고 말이다.
[다음에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초대해도 되죠?]
[영광입니다. 선배님.]
[그래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회사 통해서 연락할게요. 그때는 회식도 하고 우리 조금 더 친해져서 서로 번호도 교환하는 걸로. 오케이?]
[네! 선배님! 연락만 주시면 무조건 나가겠습니다.]
[진짜죠? 약속한 겁니다? 그럼?]
[네!]
신동협 선배의 섭외 비슷한 말에 나 또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동협 선배가 하는 주말 예능 불멸의 명곡은 나 또한 한번쯤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프로그램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묘하게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들었다. 뭐지?
그런데, 때마침 운동복을 사가지고 온 석현 형에 의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그런 느낌은 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뭐 어쨌든 사라졌으니 다행이다. 조금 더 느껴졌으면 왠지 모르게 조금 무서워질 뻔 했으니까.
*
“죄, 죄송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벌써 두 번째다.
“지, 지혁아!”
“어, 어머!”
삼촌의 연애 사업을 방해한 것이 말이다.
사우나에 들러 땀을 뺐다고는 해도, 쏟아진 커피로 인해 전체적인 일정 자체가 앞당겨진 바람에 예상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고 말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잘 테니까, 힘내 삼촌!”
독립을 해야 되는 걸까?
공인인 이상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다수 연예인들은 실내에서 데이트를 하며 연인과의 사랑을 쌓아간다. 차로 드라이브를 한다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저번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김흥극 선배의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을 때도 독립을 망설였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삼촌과 나.
일가친척이라고는 삼촌 단 하나 뿐인 상태에서 굳이 따로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전자에 비해 좀 더 지배적이었는지라 독립에 대한 생각을 접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또 전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는지라 이제는 독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나이 쉰에 가까워지도록 자식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삼촌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내 연애사업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하, 좋을 때다. 좋을 때.
============================ 작품 후기 ============================
明彰님 쿠폰 5 장 감사합니다.
순위가 자꾸 떨어질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네요.
그렇지만 성실 연재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고 GOOD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