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55화 (55/502)

00055  2012  =========================================================================

[치! 뭐야, 나 뮤비 촬영할 땐 밥 차는커녕 오지도 않았으면서!]

그 말이 생각 외로 가슴에 깊게 박혔다. 내가 과거사를 핑계로 지수를 너무 홀대하는 것은 아닌 가 싶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로만 내 동생, 내 동생 하고 있는 내게 많이 서운했을 지수를 챙겨주고 싶어 석현 형에게 부탁했다.

녀석들이 주간아이돌이라는 최고의 아이돌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만큼, 외조를 해주고 싶어 간단한 다과를 제작진들에게 뇌물삼아 전달해주라는 부탁을 말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지수의 서운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겠지 싶었다. 오랜만에 지수의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겠거니 했다.

전화 통화를 위해 잠시 뒤쳐져서 걷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팔짱을 끼며 어울리지 않는 혀 짧은 소리를 낸 시나 녀석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오빠? 누구야?]

평소엔 남자애들도 안할 털털함으로 연습실을 제 집 마냥 돌아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고생 꽤나 했다.

[제가 작사, 작곡부터 안무까지 전무 디렉팅 한 Amiga의 새 앨범 타이틀 곡 1차 티져가 오늘 자정에 공개될 예정이라서요.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맛있는 거라도 사주려고 지금 예약한 식당에 가는 중입니다.]

[아직 방영전이기는 한데, 제가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는데요. 그때 미리 최한석 셰프님 레스토랑을 예약해놔서 거기로 가고 있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의문 섞인 질문에 해명하느라 말이다. 그런데 대프콘이라는 분 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Trendy 멤버들에게는 매니저를 통해 그냥 간식을, Amiga 멤버들한테는 대한민국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직접 함께 하시네요?]

[그럼 일단 식사하셔야 되니까, 전화 통화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즐거운 식사하시고 다시 한 번 커피랑 쿠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Trendy 멤버 분들 데뷔할 때는 맛있는 거 사주셨나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화를 끊었다. 이쪽은 밥 먹으러 가는 중이지만, 저쪽은 촬영 중일 테니 말이다.

“이거 놔, 이것아. 평소에 하지도 않는 애교를 떨어?”

“나도 애교 한다면 한다, 왜! 치!”

그렇게 메롱을 시전하며 앞선 멤버들에게 달려가는 시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만 벽을 허물어버리는 녀석의 행동이 신경 쓰였으니 말이다.

“언니! 얼른 가자 배고파!”

하지만 멤버들에게 달려가는 시나의 입 꼬리는 눈에 띄게 올라가 있었다.

과연 시나는 그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랐을 까. 그것은 오로지 시나 만이 알 뿐이었다.

*

[아름다운 누나! TBN 자체 최고 시청률기록보유 프로그램인 대답하라 1998 시청률 21.6%을 뛰어넘나? 방송 4화만에 시청률 20%돌파! 뮌헨 시청사에서의 깜짝 버스킹 순간 시청률 20.97%, 4화 전체 시청률 20.14%기록! 강지혁과 네 누나의 폭풍 케미 이펙트!]

-와... 미쳤다 진짜... 이정도면 레전드 아니냐? 진심.

-아 궁금해 미치겠네. 정산 반전 내용은 언제 나옴? 하... 티져에서 나온 것 때문에 진짜 미치겠네. 하........

-고칠게랑 나쁜 남자는 언제 나옴? 그리고 어제 버스킹에서 부른 노래는 언제 나옴? 하... 정규 2집 이제 나왔는데 정규 3집 언제 나옴? 하...............돌겠네 ..................

[강지혁 정규2집 앨범 발매 후 판매량 40만장 돌파! 현재 총 판매량 240만장 돌파! 과연 300만장 돌파 가능하나? 포이보스 측 曰 “일본 및 동남아 지역의 판매량 증가로 재고가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다. 새롭게 재판할 예정이 없는 만큼, 재고가 모두 소진 된다 가정하면 최종 판매량은 대략 405만장이 될 듯.”]

-240만장... 와... 말이 안 나온다. 1집이랑 2집 합쳐서 수백 만장...? 진짜 미쳤다.

-ㅇㅈ. 우리는 진심 전설과 함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임. 조용필 시대에 살았던 윗세대랑 동급임. 그런데 솔직히 조용필 때랑 지금이랑 비교가 안되는 게 요즘에 누가 음반 삼? 다 음원으로 듣지. 그래서 1집, 2집으로 300만장 넘은 강지혁이 대단한거. 게다가 아직 다 팔리지도 않았는데...

-하... 쌌다. 아름다운 누나보다 쌌는데, 음반 판매량 보고 또 쌌다. 이러다 조루 될 판...하...

[Amiga 새 앨범 타이틀 곡 시간을 달려서 30초 1차 티져 공개! 공개 이틀 만에 조회 수 25만 돌파! 강지혁의 새로운 도전! 강지혁 표 멜로디, 안무에 관심 폭발! 스타뮤직 曰 “2차 티져는 12월 31일 자정에 발표 될 예정.”]

[삼촌을 뛰어넘고 싶다. 우상인 삼촌을 향한 첫 번째 도전! 과연 강지혁 표 걸 그룹은 성공할 것인가!]

-솔직히 가사가 두 세 마디 밖에 없어서 판단은 잘 못하겠는데, 여튼 기대해본다. 2차 티져에는 뭐라도 나오겠지.

-근데 아무리 강지혁이라고 해도 춤까지 가능할까? 그것까지 가능하면 진짜 사기캐인데...

-미친 이미 강지혁은 사기 캐야 ㅂㅅ아. 앨범 두 개 내고 지금 수백억씩 쓸어 담고 있는데.

-티져가 좀 아쉽긴 하다. 뭐, 안무랑 그런 거 하나도 안 나오고 애들 뛰는 거 밖에 안 나옴. 그냥 유나가 미처 말하지 못했어. 이거 딸랑 나온 거 가지고 판단하긴 이른 것 같음. 2차 티져 기대해봐야겠다.

기사들을 훑어보던 찰나, SBS 가요대전의 본격적인 시작을 MC분들의 멘트에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이 자리에 '가요대전'이 더 '핵꿀잼'이 될 수 있도록 SNS를 통해 미리 홍보영상을 올려준 고마운 분들이 있는데요."

"많은 스타 분들이 '심쿵 셀캠' 심장이 쿵쿵 뛰는 셀프 카메라를 찍어주셨는데요. 영상 간단히 살펴볼까요?"

발음도 힘든 심쿵 셀켐이라는 이슈가 SBS 가요대전의 첫 장을 장식했다. 나 또한 주최 측의 부탁으로 짧은 영상을 찍었던 기억에, 전방 스크린에서 재생되는 영상에 어느새 빠져들었다.

그리고 전방 스크린은 이러한 내 기대에 충족할 만한 영상을 비춰주었다.

대표로 대여섯 명의 영상이 재생된 가운데, 마지막 설연 씨의 영상은 말 그대로 심쿵이었으니 말이다.

“설연씨의 영상은 공개 된지 3일 만에 조회 수 20만을 달성하는 등, 수많은 남성분들의...”

하, 내가 외롭긴 외롭나보다. 순간 흘러나올 뻔 한 침을 다시금 삼킨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전방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솔로 티를 냈다가는 오늘 흑역사 한번 제대로 만들 테니까.

“그렇다면 가장 많은 조회 수와 좋아요를 받으신 심장 폭행범은 과연 누구일까요!”

“베스트 홍보대사로 선정될 심장 폭행범은 바로......”

그런데 올린 지 3일 만에 조회 수 20만이면 이미 게임이 끝난 것 아닌가? 신동협씨와 아인유 양의 말마따나, 20만이라는 조회 수는 결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결과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발표될 결과에 신경을 끈 채, 눈 앞에 놓여진 쿠키에 더욱 집중했다. 누가 만든 건지 아니면 어디서 산건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쿠키가 너무 맛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쿠키를 너무 집어먹어서 일까. 마침 목이 막혀 물을 마시려고 할 그때였다.

[오늘 만은 안 돼 오늘 만은 안 돼. 오늘만 내 곁에 있어주면 나도 잊을 수 있어. 네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어.]

[푸아악!]

순간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나는 그만 먹던 물을 내뿜고 말았다.

“바로 영상을 올린 지 단 이틀 만에 조회 수 30만을 돌파한 강지혁씨입니다!”

이어서 들려오는 신동협씨의 멘트와 곳곳에서 들려오는 환호성과 웃음소리는 보너스였고 말이다.

노래 소리가 나오자마자 잽싸게 나를 찍기 시작한 카메라에 의해 내 모습은 공연장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의 원 샷을 차지하게 되었다.

“콜록콜록”

다만, 사래에 걸려 연신 기침을 하고 있던 나는 이를 포착해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곁에 있던 녀석들이 내 등을 두드려주어 겨우 사래를 넘겼지만 어느새 내 눈앞에는 아인유씨와 신동협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강지혁씨!

하... 인생은 썩었어.

간단한 인터뷰와 함께 상황은 일단락 됐지만, 내 속내는 썩어 들어갔다.

제길, 한중일 세 나라에서 생방송 중인데 물을 내뿜다니! 쿠키를 뿜어내다니!

*

그렇게 나름 소소한? 에피소드를 뒤로한 채 가요대전은 물 흐르듯 진행됐다. 수많은 가수들의 특별 무대가 주는 볼거리에 나 또한 흑역사를 뒤로 한 채 나름 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사실 강지혁씨 하면 비밀이 가득한, 은둔자로 소문이 나있는데요.”

“제, 제가요?”

시상식보다는 축제의 성격이 강해서일까. 무대의 사이사이마다 MC분들이 가수 석으로 내려와 인터뷰를 하는 코너들이 마련되어있었다.

아마도 지금이 내 차례인 듯 했다.

MC들이 가수석의 왼쪽 끝에 자리 잡은 이 자리까지 괜히 발걸음을 옮기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은둔자는 무슨 말인지.

하지만, 아인유씨의 말에 의아함을 품는 것은 나뿐 인듯했다. 관중석에서부터 격한 긍정의 환호성이 들려왔으니 말이다.

“사실 강지혁씨 하면 떠오르는 분들이 있잖아요?”

“맞아요. 그중에서 저는 그 사인회 동영상이 아주 감명 깊더라고요? 강지혁씨 어떻게 된 겁니까? 그때 일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이 꽤 많을 텐데, 이렇다 할 입장발표가 없으시더라고요?”

하지만 본격적인 질문은 그 다음이었다. 약간은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질문을 듣고 나니 머리가 잠깐이나마 하얗게 불타버렸다.

안 돼. 정신 차려 강지혁. 지금 한국, 중국, 일본 생중계다. 흑역사를 만들고 싶지 않으면 정신 차려.

“제가 사실 좋아하는 가수분들 사인회를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가는데요. 그때 본의 아니게 정체를 들켜버려서 너무 당황해서 자리를 빠져나가게 됐어요. 하... 끝까지 안 들킬 수 있었는데...”

진심 그때 그 남자의 도발만 아니었다면 들키지 않고 이번처럼 곤란스러운 질문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나의 표정은 아쉬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아니, 근데 여기서 왜 마이무 분들을 찍고 계시는 거야. 더 미안하게.

“아! 그렇다면 그분들 말고도 사인회를 갔는데, 들킨 건 그때뿐이다? 뭐 그런 의미인가요?”

“그렇다면 오늘 강지혁씨께서 가장 기대하는 무대는 어떤 가수 분의 무대인가요?”

폭탄과도 같은 MC 분들의 질문에 멍해져버렸다. 주변에서는 폭발적인 환호성이 들려왔지만 말이다.

[마이무! 마이무!]

그 중에서 압도적인 것은 아무래도 나와의 에피소드가 존재하는 마이무였다. 물론 이는 신동협씨가 의도한 것일 테고 말이다. 하, 누가 명MC 아니랄까봐 너무하다, 진짜.

괜히 마이무 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팬들의 외침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번에 제 노래 가지마가지마를 불러주실 B TO V 선배님들의 무대가 가장 기대됩니다.”

뭐, 그런 내 대답에 팬들의 장난 섞인 질타의 소리가 들려온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어찌저찌해서 가까스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동료, 선후배 가수분들과 이렇다 할 친분이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 강지혁씨 옆에 자리 잡고 계신 Stylish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같이 화보도 찍었던 걸로 유명하던데요?]

[아하하하... 제가 Stylish분들을 정말 예전부터 좋아했는데요. 저번 화보촬영도 그렇고 이렇게 가까이서 뵐 수 있어서 정말 기분 좋습니다. 진짜 몇 년 전부터 팬이,]

[에이~ 거짓말!]

마지막 그 순간까지 식은땀을 폭발하게 만든 신동협씨의 질문을 애써 웃으며 넘기느라 힘들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중국활동 때문에 오랜만에 본 Stylish 멤버들과 인사를 수십 번은 한 것 같다. 하, 힘들구나, 힘들어.

평소에 방송활동을 안하다보니, 아무래도 내게서 뭔가를 뽑아내고 싶나보다. 그래 다 내 죄지, 누굴 탓할까.

앞으로는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자, 슬슬.”

이제 곧 내 차례였으니까.

“힘내!”

“아자, 아자!”

지나가는 길에 내게 힘내라고 말해주는 Stylish 멤버들의 응원에 나 또한 감사의 인사를 해주었다. 얼굴도 고운데 마음씨까지 고운 걸 보니 진짜 세상은 불공평 하긴 하구나. 뭐, 심하게 낯을 가리긴 하지만.

훈훈해진 마음과 내 첫 무대 곡을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역시 내 선택을 옳았어.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무대 뒤쪽에 도착하자, 먼저 가 있던 민혁 형과 승현, 크리스는 준비를 끝마친 것인지 긴장된 표정을 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절로 긴장이 됐다.

막말로 이런 큰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가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일반인은 무대중앙으로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그만큼 수만 명의 기운과 눈빛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발가벗고 명동거리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긴장감에 떨며 입술을 깨물 순 없었다. 점점 다급해지는 스태프들의 움직임에서 우리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예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간주가 흘러나옴에 따라 나와 민혁 형은 서로를 한번 씩 바라본 뒤 무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첫 곡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두 번 째 무대에서 함께할 승현이와 크리스 녀석의 배웅 섞인 눈빛에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 그럼 가볼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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