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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노래로-53화 (53/502)

00053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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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녀석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했지만, 의외로 녀석은 별다른 소동을 벌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거리를 온통 물들인 꼬마전구들과 빨간색 물결 그리고 커플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공연은 그 막을 올렸다.

[좋은 사람]

......

네가 웃으니 나도 웃을게.

네 옆에서 웃고 있는 그를 보면

저절로 초라해지지만

네게 잘하라는 말 밖에

널 울렸던 그를

대신할 수 없는 나

네가 웃으니 나도 웃을게.

넌 아니었겠지만,

널 보며 웃었던 날, 널 보며 슬펐던 날

내겐 언제나 행복이었어.

나는 어찌돼도 상관없어.

너를 지켜볼 수만 있다면 난

항상 널 기다리는 널 그리워하는

그게 내 운명인걸.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노래 Trendy 민아 씨가 불렀을 때 그리고 이 노래 작사, 작곡하신 분이 지혁 씨라는 거 보고 알았습니다. 그때 위로가 될 만한 곡 만들어주겠다는 약속 기대 안하고 있었는데, 지켜주셨다는 걸요.]

[정말 감사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이 후회되지 않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이번 4차 공연은 우리들에게 있어 꽤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승현이 녀석의 센스로 1회 공연에서 우리들 모두를 울렸던 사연의 주인공인 남자 분을 초대해 그 분을 위한 노래를 불러드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생각도 못했던 일인지라, 직접 초대를 성사시킨 승현이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특한 행동이니 말이다.

민아 또한 자신이 부른 노래의 사연을 알고 있었는지라, 더욱 열심히 노래에 임했던 것 같다. 자신의 노래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는 남자분의 모습은 그냥 넘어가기엔 애절하고 또 한편으로는 후련해보였으니까.

“저는 고2이고 남자친구는 고3인데요. 제가 중3일 때 처음 사귀게 됐어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노래를 부르고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감정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공연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사귈 때부터 걱정이 많았어요. 평범한 저와는 달리, 남자친구는 전교 10등 밖으로 떨어져 본적이 없는 수재였으니까요. 그래도 적극적으로 제게 다가와준 남자친구의 용기에 저도 마음을 열었어요. 그렇게 2년이 지났어요.”

아마도 마지막 사연이 될 어느 여고생의 말에 우리들은 물론이고 관객들 또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집중이 초래한 몰입은 주변에 있는 이들을 눈물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너무 힘들어 하는 게 보이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모든 게 제 탓인 것만 같았어요. 주변에서 저를... 남자 기 빨아먹는 년이라고... 인생 망치게 만들었다고...”

용케 말을 이어간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사연을 고백하는 소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어요. 좋아했지만, 오빠가 힘들어하는 게 내 탓 뿐만은 아니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그 것 뿐이니까요. 저만 옆에서 사라져주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았어요.”

소녀의 사연에 눈물짓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는 홀연히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냉정을 가장한 채, 그저 무대 천장만을 올려다보았다. 어째서일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명문대를 선택해서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잘 했던 오빠가 어느 순간부터 학교를 안 나오더니, 결국엔 자퇴를 해버렸으니까요. 제가 했던 고민들, 결정들 너무 한심해요.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다시 다가가기도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있기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단순히 몰입과 이해로 인한 슬픔의 감정이라고 칭하기에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다.

[안아줘]

서글픈 마음을 이기지 못해

잠들 수 없는 기나긴 밤을 견디고

내 좌절과는 상관없이

아침은 언제나처럼 나를 깨우네.

고통은 예상보다 깊고

아픔은 예상보다 짙어

널 기다리는 기나긴 밤들이 내겐 좌절이야.

날 떠나지 말아줘 내 곁에 있어줘.

널 붙잡은 날 외면하지 말아줘.

네가 한 발자국 멀어지면

내가 두 발자국 더 가면 되잖아.

......

힘겹게 마이크를 들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을 선사했다. 그게 소녀를 위로 해 줄 수 있을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설명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말 그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으니까.

“다가가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 남자 분에게 필요했던 건 말씀하신 분이 ”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그 남자라면 어땠을까.

단순하게 눈앞에 놓여 진 것만을 생각하자, 나를 먹먹하게 만들던 복잡함이 잠시나마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너무 늦지 않게 가주세요. 많이 힘들 테니까요.”

어째서 그렇게 쉽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느 누구하나, 쉽사리 위로를 건네지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할 상황에서 나는 어떤 확신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그런 내 행동에 나 자신도 놀랐을 때였다.

마침 가장 앞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꼬맹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 할지라도 방금 전 사연을 그냥 넘기기엔 무리였는지, 녀석의 눈 주위는 흥건히 젖어있었다.

옆에서 마찬가지로 마스크에 모자를 쓴 여성분을 위로해주고, 응?

순간 나를 찾아온 위화감에 상체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쏠렸다.

마치 자신의 사연인 마냥 꼬맹이의 품안에서 서럽게 우는 이의 얼굴에서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익숙한.

*

[다들 수고했어! 이렇게 게스트로 와준 민아한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의미로 박수 한번 쳐주자!]

[와우!]

[유후!]

[민아야 맛있게 먹고 내일도 잘 부탁해. 다희 씨도 맛있게 드세요.]

[오빠, 잘 먹을게요.]

[요즘 재연언니가 기운이 없어 보이 길래, 재연언니랑 같이 왔어요. 잘했죠?]

민아에게 건넸던 초대권은 총 4장이었다. 이브 때 2장, 크리스마스 때 2장.

한국에 이렇다 할 친구가 없을 그녀이기에 그 초대권이 멤버들에게 간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그 숫자를 착각한 것일 뿐.

[하하... 다희씨 잘하셨어요. 재연 씨도 맛있게 드세요.]

마지막 사연을 끝으로 그날의 토크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미니 사인회와 사진촬영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재연과 다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회식을 가기 위해 민아와 함께 이동하려 할 때까지 말이다.

“안녕하세요! 수나 입니다!”

어제 마신 술 때문 인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어제의 공연이 더 떠오르는 걸까.

대답할 이 없는 질문도 잠시, 내게로 다가오는 익숙한 얼굴에 상념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와요. 오는데 불편하진 않았죠?”

허리가 유연한 건지 아니면 튼튼한 건지, 90도를 넘어선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해오는 수나 양을 반갑게 맞이했다. 민아의 초대 손님이자, 그녀와 같은 그룹 멤버인 수나 양에게 심란한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데려다 주셔서 편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지, 지수는 조금 있다가 올 겁니다!”

“여기 에코백 있으니까, 테이블에 있는 기념품 한 개씩 담아가시면 되요. 공연 끝나고 사인이랑 사진도 꼭 찍으시고요. 혹시 배고프시면 좌석마다 다과세트 있으니까 드시면 되요.”

또래나이의 한국 여자들답지 않게 행동과 말투에 자연스럽게 베여있는 귀여움이 나를 웃음 짓게 하기에 충분했는지라, 나 또한 가슴 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털어버릴 수 있었다.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민아와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는 그녀의 행동에는 가식이 담겨져 있지 않은 듯 했으니 말이다.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기념품들 하나, 하나를 살펴보며 환한 미소를 보이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빤히 바라봤나보다.

[에에! 스고이!]

[카와이!]

그녀가 그런 내 시선을 눈치 챈 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으니 말이다.

“부, 부끄럽습니다!”

서둘러 기념품들을 챙기고 공연장 입구로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 짓고 말았다. 나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

“오늘같이 짜증나고 재수 없는 날! 이곳에 오신 분들은 모두 축복받으셨네요.”

공연을 시작한 지 어느덧 세 시간이 지났다. 가수들도 그렇고 관객들도 잠깐의 휴식시간을 원할 것이기에 꺼낸 말이 생각 외로 큰 호응을 얻었다.

크리스마스는 20대 인구의 절반은 가장 추운 날로, 반대로 나머지 20대에게는 가장 뜨거운 밤으로서 국가출산율 정책에 기여할 날이니 만큼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모두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솔로천국! 커플지옥!”

모두가 슬프게도 솔로니 말이다.

“솔로천국! 커플지옥!”

연말인데다가 휴일이지만, 친구들과 바깥에서 놀 수 없는 잔인한 날. 그렇다고 혼자보내기엔 너무나도 추운 날. 그런 날을 이곳에서 다 같이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그나마 축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지도 못한 채 집에서 쓸쓸히 케빈과 보내는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다.

“오늘이 이번 토크콘서트의 마지막 이고 또 크리스마스 인만큼 저희가 케이크를 따로 준비했어요. 학식들에게는 샴페인도 준비했으니까, 잠시 앞줄에 앉아계신 분들은 자기 뒷줄에 있는 학식들 숫자 좀 체크해주실래요?”

그래서 특별 선물들을 준비했다. 지난 공연에서는 없던 선물들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의 표정이 매우 밝아졌다. 1회 차 공연이 끝나자마자 속속들이 올라오는 후기들을 보며 오늘의 공연을 기대했던 그들에게 와인과 케이크는 특별하게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급식 분들도 무알콜이지만, 샴페인 준비했으니까. 앞줄에 계신 분들이 급식들 숫자 도 좀 조사해주세요. 혹시나 잘 못돼서 그냥 샴페인을 받으면 안 되니까요.”

관객들과 가수들 절반가량이 급식들이었는지라, 그들을 위한 샴페인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씨 없는 수박격인 무알콜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반응을 보니 역시 준비하길 잘했다.

“좌석보시면 옆에 작은 받침대가 달려있을 거에요. 거기에 받으신 조각 케이크랑 샴페인 올려두고 우리 잠시 쉬어가는 타임 가져요! 옆자리에 앉은 분과 가볍게 대화도 나누고 화장실 다녀오실 분은 다녀오시고요!”

샴페인을 받으며 좋아하는 학식들 사이로,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급식들이 환한 미소를 내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개부분에 껍질을 벗기시고 옆에만 살짝 돌리면 열리니까, 조심하세요. 뽕! 하고 소리 나면서 마개가 튀어나갈 거니까요!”

[뽕!]

혹시나 샴페인을 먹어보지 못한 학식들이나, 당연히 먹어보지 못했을 급식들을 위해 주의사항을 건넨 뒤 나 또한 무대에 걸터앉았다.

[뽕!]

“민아야 오빠가 해줄까?”

곳곳에서 들려오는 마개 열리는 소리에 약간 겁을 먹은 듯하여 민아의 샴페인을 대신 잡았다. 뭐, 소리가 제법 무섭지 마개를 여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치, 나는 안 해주고.”

순식간에 민아 것과 내 것의 마개를 열고서 건배를 하려던 그때, 관객석에 있던 지수와 수나 양이 내 옆으로 와 앉았다. 특히 지수는 갖고 싶은 것을 사달라며 조르는 듯한 얘기의 모습을 한 채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가만히 나와 지수를 지켜보던 민아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연 것은.

“오빠... 혹시 지금 사귀는 사람, 아니 재연이랑 알던 사이였어요?”

문제는 지수가 아니라 민아에게서 터져나왔다. 다 같이 짠이라도 할 참에 들려오는 민아의 질문에 나는 물론이고 수나 양과 지수도 순간 얼어버렸으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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