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9화 (49/502)

00049  2012  =========================================================================

[지금 만나고 싶어]

처음 만난 날 아직도 기억하나요.

지나가는 날의 추억을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했던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싶어서

......

녹음하고 나서 지금까지 딱 한번 불러본 노래를 지금 이곳에서 부를 줄은 몰랐다. 그사이에 가사를 까먹지 않은 내 자신이 용할 정도로 이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될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심정과는 달리, 민아와 다른 일본출신 Trendy 멤버들은 그런 내가 마냥 신기한가보다. 내 앞에 옹기종기 앉아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 일본어가 이상했나? 취리히 공항에서도 느꼈던 고요함이 생각날 정도로 아무런 환호성도 박수도 없는 그녀들의 반응에 그저 살며시 마이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 참 이럴 거면 왜 불러달라고 한건지.

“민아야 그러면 24일부터 이틀 동안 시간 통째로 비워주는 거지?”

토크 콘서트에 게스트로 와줄 수 있냐는 내 질문의 의도가 조금 잘 못 전달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데이트 신청이라나 뭐라나, 연습실이 떠나가라 유난을 떠는 다희 씨의 말과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민아의 반응을 보는 순간 뭔가 일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사정을 설명하고 데이트니, 고백이니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겨우 인지시키기는 했지만, 이미 나는 녹초가 된 상태였다. 도대체가 내 말을 듣겠다는 건지, 안 듣겠다는 건지 사람이 말을 해도 좀처럼 듣질 않았으니 말이다.

어쨌든 오해도 풀렸고 당초 목적이었던 민아 섭외도 완료된 상태니까, 다른 것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뭐, 힘든 거야 쉬면되니까.

“어, 형? 왜?”

조금 쉬었다가자는 뜻에서 옆에 있던 소파에 털썩 몸을 기댔다. 그때 때마침 들려오는 벨소리가 아니었다면 아예 드러누웠을 테지만 말이다.

[지혁아 섭외한 밥 차랑 디져트 차 출발했단다. 넉넉잡고 2시간 내로 도착한다니까, 알아둬라. 아! 그리고 밥 차는 한식으로다가 뷔페식으로 메뉴 준비된 거고 디저트 차는 와플이랑 츄러스 이렇게 해서 커피랑 같이 준비됐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수고해라.]

“알았어, 형. 도와줘서 고마워.”

오늘 새벽부터 뮤비를 찍는데 저녁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촬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직 촬영이 반도 안 끝났다는 말은 놀람을 넘어선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앨범 낼 때마다 뮤비를 안 찍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 말이다.

뭐, 어쨌든 이번 앨범 타이틀 곡을 전적으로 담당한 나이기에 마냥 녀석들을 외면 할 수는 없었는지라 뭐라도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밥 차였다.

뮤비 찍을 땐 뭘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부랴부랴 디저트 차도 추가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슬슬 가볼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나는 나를 바라보는 수십 쌍의 눈빛을 마주하게 됐다. 뭐야, 이 눈빛은.

“오빠 가게?”

“어, 할 일 있어서.”

“무슨 할 일?”

마치 자기가 대표인마냥 내게 질문을 던지는, 아! 우리 지수 리더였지? 어쨌든 일행의 대변인이 된 듯한 지수의 행동이 마냥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말이다.

그런 내 행동이 그다지 기분 나쁘진 않았는지, 녀석이 잽싸게 내 옆에 앉아 내게 기댔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Amiga 애들 오늘 뮤비 촬영 날이라, 밥 차랑 디져트 차 보냈거든. 나도 한번 가봐야 될 것 같아서 이만 가봐야 될 것 같네? 해야 될 일이 있어서 그게 빨리 마무리 돼야 갈 수가 있거든.”

“치! 뭐야, 나 뮤비 촬영할 땐 밥 차는커녕 오지도 않았으면서!”

“오빠, 서운해요.”

“나 서운해. 오빠 나쁘다.”

“선배님 서운해요.”

“맞아요. 서운해요.”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됬는 지 모르겠다. 언제 내게 기댔는지 모를 정도로 거리를 벌리며 내게 나 삐졌음을 시전 중인 지수는 그렇다쳐도, 체이를 비롯해 민아와 다른 멤버들까지 내게 서운함을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니, 너희들은 너희들이고 Amiga 애들은 내가 곡도 주고 춤도 만들어줘서 신경을 쓰는 건데,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상황을 설명하는 내 꼬락서니를 보니, 어째 너무나도 익숙하다.

하, 그도 그럴 것이 10분 전쯤에 내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니 그렇게 느낄 수밖에.

“내가 진짜 힘들게 시켰는데도 애들이 정말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서 그래. 나중에 지수 컴백하면 그때 오빠가 뮤비 촬영장도 가고 밥 차도 쏠게! 응?”

“디져트 차는요?”

“어, 어? 아, 디져트 차도 보내드릴게요. 다희 씨.”

이 맹랑한 꼬맹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깨알같이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꼬맹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지수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지수부터.

“진짜, 진짜 오빠가 힘들게 시켜서 그래. 한번 볼래?”

“흥, 그래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여줘 봐. 그 여시 같은 것들이 오빠를.”

뭔가 내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이 들려오는 듯 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 파일을 뒤지기 시작했다. 뭐, 내가 잘못 들었겠지. 우리 지수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뮤비는 지금 찍고 있어서 오빠한테 파일이 없고 이건 일 주 쯤 전에 마지막으로 나한테 점검 받을 때 영상이야. 어차피 며칠 뒤에 티져 풀릴 테니까, 선배 아이돌 가수한테 한 수 배운다 생각하고 잘 봐둬. 이 정도는 해야 정상을 노릴 수 있는 거니까.”

[시간을 달려서]

다가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어.

다가가고 싶지만 애써 다른 곳을 보고 있어.

네게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 네 모습처럼

용기를 내지 못해 다가가지 못하고 있어.

마치 영영 못 만날 것처럼.

그럴 순 없어. 네게 반드시 다가갈 거야.

다가갈게 용기를 낼게.

용기를 내지 못 했어 다만 너를 좋아 했어.

내가 꿈꿔왔던 기적처럼

시간을 달려서 네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너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어.

......

약속해줘. 내가 다가갈 때까지.

내가 네가 왔을 때 그때도 나를 보며 웃어 줘.

시간을 달려서 네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너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어.

친분을 애써 외면한 채 깐깐하게 녀석들을 대하는 게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디렉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결과가 사뭇 대단했기 때문이다.

[검사 중이라 반주만 튼 상태로 했는데도 대단하지? 유진이 성량이 좋고 목소리가 깊어서 저렇게 안무가 격렬한 편인데도 제법 안정적으로 노래를 소화할 수 있어. 게다가 자기관리가 얼마나 철저한데? 한 달에 딱 하루만 밀가루를 먹을 정도니 할 말은 다했지.]

[은지는 목소리가 곱고 높은 음역대까지 커버가 가능해서 그룹 자체가 지닌 역량 넓힐 수가 있어서 노래 자체가 풍성해졌어. 유진이 중심 줄기라면 은지는 그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많은 가지들이라고 할까나?]

[시나가 메인댄서인데, 춤 선이 대단하지? 자기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사소한 춤 동작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체크하기 때문에 멤버들 간 싱크로가 엄청날 수밖에 없어. 나이가 어린데도 적어도 자기가 맡은 댄스에 있어서만큼은 자부심이 대단해서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마음가짐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

[예원이랑 지하 그리고 소정이는 별로 눈에 안 띌지 몰라도 저 세 명이 있어서 전체적인 밸런스가 훌륭해졌어. 이번에는 불가피하게 자기 파트가 적었지만 말이야. 그룹으로서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멤버들도 있어야해. 그런 면에서 나는 예원이랑 지하 그리고 소정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했던 게 100이라면 녀석들은 결과적으로 110을 해내버렸으니 말이다. 덕분에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팔불출이 되어버렸다.

왠지 공부하라고 독서실에 보냈는데 자기 스스로 공부에 흥미를 붙이더니, 덜컥 하버드에 입학한 자식 보듯이 말이다.

뭔가 예가 오묘하게 구체적이지만, 어쨌든 영상 중간 중간마다 나도 모르게 녀석들의 칭찬을 하고 말았다.

[미미도 춤 잘 출 수 있는데...]

[나야, 저 여시들이야. 선택해! 나 갓지수야, 갓지수! 나 메인보컬이라고! 성량하면 난데!]

[민아도 목소리 고운데...]

[쳇...]

[랩은 내가 최곤데...]

주변 분위기가 더 이상해져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1월 달에 컴백한다 했나?”

“어? 삼촌 왔네?"

영상에 집중하고 있느라, 삼촌이 곁에 와있는지도 몰랐다. 뭐, 삼촌이 봐도 딱히 상관은 없으니 나로서는 찔릴 게 없었다. 어차피 며칠 뒤에 티져 영상이 풀릴 테니 말이다.

“후우...”

그나저나, 복 떨어지게 왜 한숨을 쉬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처음에서 조금 수정됐네.”

“아, Amiga애들은 짝수라서 안무를 조금 수정할 수밖에 없었어. 어때? 괜찮지, 삼촌?”

처음 안무를 짤 때 JS 안무 팀과 데모 영상을 만들었던 탓일까. 삼촌은 한 눈에 지금 안무의 수정된 사항을 파악해냈다. 괜히 춤에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자기소개 춤이랑 타임머신 춤, 발레 춤, 짝사랑 춤, 도미노 춤, 시계바늘 춤 이렇게 6개 메인 안무동작은 괜찮은데, 연결부분이 조금 어색해서 계속 손봤어. 안무 만드는 게 처음이라 머리가 엄청 아팠는데, 재밌더라고. 막 신나서 밤도 세고 그랬는데 하나도 안 피곤할 정도로.”

“하...”

“노래 만들 때 빼고는 이런 적 없었는데, 춤 만들 때랑 출 때 뭔가 너무 개운해져. 복잡한 생각도 다 날아가고. 뭐, 이번엔 운이 좋아서 그런 거겠지만 말이야. 삼촌도 알잖아? 나 춤 실력 완전 꽝이라는거. 월말 평가 때도 항상 겨우 커트라인 넘고 그랬으니까.”

“뭐가 꽝이라는 거야! 너 임마! 너, 너! 너! 하...”

춤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는 삼촌에게 피드백 받을 생각에 주저리주저리 있는 대로 말하고 있는 와중에 들려오는 삼촌의 큰소리에 순간 움찔해버렸다.

“하... 아니다. 그래,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활동은 언제까지 할 것 같은데?”

아니, 왜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그래? 무섭게끔.

“활동? 그건 나야 모르지. 난 디렉팅만 담당하는 거고 나머지는 대표님이 알아서 하겠지. 잘  되면 오래하고 못해도 짧게는 안할걸.”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삼촌의 얼굴에 서둘러 기기에 연결된 핸드폰을 챙겼다. 뭐야, 뜬금없이 와서는.

나가기 전 지수에게 인사를 하려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타고 있는 눈빛에 그저 손인사만 건넨 채 잽싸게 연습실에서 빠져나왔다. 뭐야, 기껏 도와주려고 아직 티져도 안 풀린 영상 보여줬더니, 왜 또 저래? 지수야 바르게, 귀엽게 자라야 된다. 왜 자꾸 무섭게 변하니. 네가 보여 달라며?

*

지혁이 모습을 감춘 뒤, 연습실은 고요 그 자체로 가득 찼다.

“애들아 저 정도는 해야 정상에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는 거야.”

그 고요를 깬 사람은 박재성이었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 할만도 하건만, Trendy 멤버들에게 그런 기색은 존재하지 않았다.

“네.”

“네.”

“예.”

그들도 지혁이 틀어준 영상을 보고 느낀 게 많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죽을 만큼 노력해도, 정말 실력이 좋아도 운이 안 좋으면 실패하는 게 가요계야. 하지만, 정상을 밟아보고 오래도록 팬들의 사랑을 붙잡는 최정상급 가수들의 대다수는 모두 죽을 만큼 노력하고 그것을 양분 삼아서 대단한 실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야. 다음 앨범 때 너희들에게 기대해볼게. 그래도 되지?”

“네!”

“예! PD님!”

오르지 못할 나무를 보는 눈빛이 아닌, 언젠가는 뛰어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에 박재성이 만족스럽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향상심.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만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나아가겠다는 그 마음가짐이 그가 원했던 답이었으니까.

“일단 지혁이 저 녀석부터......”

뭐, 물론 이것이 100% 그가 원하는 해결책은 아니었다. 노래는 몰라도 춤까지 저 정도 수준일 줄은 몰랐던 박재성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춤출 때 개운함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신나서 밤을 샐 정도로 미쳐버린다는 조카의 말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이 그랬고, 지금껏 그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과는 달리 댄스보다는 단순 노래에만 제법 재능이 있는 줄 알았던 조카가, 어느 순간부터 작곡과 작사에 천재성을 보이더니 이제는 춤에서도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안고 집무실로 돌아가는 박재성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 작품 후기 ============================

달달이지님 10 장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암천회류님 10 장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하, 졸업논문 어렵네요.

도서관에서 열심히 자료 찾다가 글 올리려고 조아라 사이트 들어왔는데 선작이랑 추천, 코멘트를 많이 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투데이 베스트에도 등수가 올라가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작 버프가 끝나면 곧 내려가겠지만 그래도 정말 꿈같아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성실히 연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꿈 꾸시고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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