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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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연락할게!”
“오늘 감사했어요! 다음부터는 저한테 그냥 민아라고 불러주세요, 오빠!”
오늘 좋은 무대를 보여준 민아도 함께 점심을 먹었다. 뭐, 지수도 그렇게 싫은 기색이 없었는지라 덕분에 제법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직 점심인데도 삼겹살을 먹어서 속이 더부룩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택시를 태워 녀석들을 회사로 보낸 뒤 나 또한 택시좌석에 올라탔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논현동 동남빌딩으로 가주세요.”
삼촌 때문에 오후로 미뤘던 스케쥴 시간이 다가왔으니까.
“네, 손님!”
아름다운 누나 촬영, 시상식과 같이 굵직한 일들이 많아 거의 10일 동안 여친이들 디렉팅을 하지 못했기에 스타뮤직으로 향하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계약서까지 작성한 마당에, 내 스케쥴 때문에 녀석들에게 괜한 피해를 준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애써 착찹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디렉팅을 오래 쉰만큼 확실하게 굴려야겠다고.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만나야할 녀석들 중 한명을 연습실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목격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조금 애매한 상황에서.
*
“아 짜증나! 우리한테는 완전 날카롭게 하더니!”
점심을 먹고 저마다 연습실 바닥에 누워 테블릿을 둘러보고 있던 소정의 말에 멤버들 또한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별희의 애장품을 얻기 위해 웃는 네 얼굴을 열창한 어느 성공한 무무의 열정!]
-앞에 남자 뭐임?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자랑? ㅋㅋㅋㅋㅋㅋㅋ 개 웃김 ZZZZ
-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친 졸라 웃기네. 강지혁 앞에서 강지혁 노래 불러놓고 우쭐 ㅋㅋㅋㅋ
-그래도 굴욕 남 덕에 정체 밝혀짐 ㅋㅋㅋㅋ 그거 아니었음 안 들켰을 텐데 ㅋㅋㅋㅋ
-마지막에 정체 들키니까, 목걸이가지고 도망치듯 나간 게 더 웃김 ㅋㅋㅋㅋㅋ 하... 강지혁 레전드 찍었다 오늘..ㅋㅋㅋㅋㅋㅋ
“안되겠다.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은 특별히 아이스크림 먹자!”
“맞아, 맞아! 이대로 넘어가면 안 돼!”
평소 멤버들 식단관리에 있어서 엄격한 리더 소정의 말에 연습실 안은 동조의 분위기로 넘쳤다. 심지어, 한 달에 딱 한번만 밀가루를 먹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유나조차 고개를 끄덕였으니 그 분위기가 오죽할까.
소정의 강력한 리더십에 멤버들이 그녀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그녀들이 취한 행동은 뻔했다.
“가위, 바위, 보!”
“꺅! 이겼다!”
“나이스!”
“역시 여자는 가위지!”
아이스크림을 배달할 이를 뽑기 위해 언제나처럼 가위, 바위, 보를 택한 그녀들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가위, 바위, 보는 5명의 승자와 1명의 패자를 가려냈다.
“아! 왜 나야! 짰지? 이거 짠 거지?”
세 네 판을 한 것도 아니고, 단 한 판 만에 패자가 돼버린 시나의 좌절 섞인 외침이 연습실 곳곳에 울려 퍼졌지만 더 이상 그녀는 멤버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멤버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난 데지 바!”
“난 팔팔콘!”
“난 랜덤!”
“나도 랜덤 할래!”
“음... 그럼 나는 윈즐?”
자신들이 먹을 아이스크림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멤버들의 반응에 시나가 말없이 겉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미 상황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마트가 연습실에서 가깝다는 생각에 혼자 나섰던 그녀와 멤버들의 생각이 말이다.
*
“뭐가, 문제야? 나한테 고백하고서 갑자기 연락 끊은 건 너잖아?”
“난 더 이상 할 말 없어.”
“난 네 고백 받아주려고 했었어! 설마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한거야? 그때 그렇게 진심이라 해놓고선?”
맞다. 정말로 내 모든 것을 다해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를 좋아했었다. 아니, 사랑했었다. 첫사랑이자 짝사랑으로 시작해 악몽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생이 되었지만, 너무나도 힘들었다. 매일 같이 식단관리에 춤, 노래, 춤, 노래.
춤과 노래가 좋았고 이를 무대에서 보여주기 위해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싫어졌다. 아니, 싫증이 났다. 무대를 꿈꿨지만, 그때의 나로서는 그 꿈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으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연습생 생활로 인해 공부는커녕 학교에 친한 친구조차 가지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서러웠다. 그래서, 포기하려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내 꿈이 너무 과했음을 어느새 인정하고 있는 내 자신을 깨달았으니까.
그러던 그때 그가 다가왔다. 그는 너무나도 길고 어두운 그때 당시의 내 마음속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존재였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가까이 다가와 위로해주고 결국에는 어둠속에서 빛이 돼주었으니 말이다.
[그냥, 심심한데 딱해 보이더라고. 뭐, 쫌만 잘해주니까 나한테 완전 기대던데?]
[진짜? 개 연습벌레라고 완전 유명하잖아, 독종 중에 독종이라고. 이야! 대박이네?]
[뭐, 그 정도면 와꾸도 괜찮고 몸매도 잘 빠졌지.]
[그래서, 잤냐? 한 달이면 충분하잖아? 너 정도면.]
[자지는 못했고 할 건 다했지. 네 말대로 독종이라서 그런지. 연애도 처음인 것 같더라고. 키스하면서 손 좀 썼더니, 화들짝 놀라는 꼴이라니. 뭐, 신선하긴 하더라.]
[진짜? 일주일이면 게임 끝인 네가?]
[애가 쫌 징징거리더라고. 그래도 이제 다 넘어와서 하루, 이틀이면 게임 끝! 이제 내가 뭘 하자고 해도 무조건 한다고 할 걸?]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게 싫었다. 그래서 부릴 줄도 모르고 부리기도 싫었던 애교를 부리며 담배를 끊으라고 졸랐다. 효과는 그닥 없는 듯 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가 가까워 나보다 항상 먼저 와있던 오빠를 좀 더 일찍 보기위해, 혹시라도 그가 연습실 뒤편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면 말리기위해서.
그때 알게 되었다. 내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마음을 비춰주었던 빛이 사실은 그다지 환한 빛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후로 나는 다시 그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갔다. 길을 잃고 방황하려던 그때로 말이다.
그때 기존 회사에서 방출된 나를 다시금 연습생으로 받아준 지금의 대표님과 날 보듬어주었던 멤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스타 뮤직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망가져버렸을 테니까.
그렇게 멤버들과 대표님의 도움으로 나는 데뷔를 했고 꿈에도 그리던 무대에 섰다.
그런데, 보름 전. 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와 마주쳤다. 아니, 그가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가 연습하는 연습실 주변에서 말이다.
반가운 표정으로 마치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널 너무 그리워했다는 듯 내게 다가오는 그를 피했다. 한때 너무나도 환한 빛처럼 여겨졌던 그의 얼굴과 행동, 말투가 역겨웠으니까, 토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 내 반응에 조금은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마침 주변에 있던 매니저 오빠와 멤버들 때문인 건지. 그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모습을 감췄다. 더 이상 그의 접근이 없을 것이라 방심할 때까지.
“설마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한거야? 널 찾는 데 2년이나 걸렸어. 그거 알아?”
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눈빛과 행동에 얼어 피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 멤버들 모두 연습실에 있고 매니저 오빠도 없는 상황에서 내게 다가왔으니까.
“난 더 이상 오빠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어. 그러니까 돌아가. 이것 좀 놓고.”
애써 침착한척, 끓어오르는 역겨움을 간신히 참으며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얼굴이 팔릴까 싶어 건물 뒤편으로 온 것이 독이었다.
“네가 고백하고 나서 바로 대답 안한 건 미안해. 하지만 그건 네가 싫어서가 아냐. 네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을 까봐, 머뭇거렸던 거지. 결코 네가 싫다는 게 아니었어!”
주변에 자신을 제지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눈치를 볼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생각보다 대담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야. 그만 놔줘.”
“이젠 내가 다가갈게. 너한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해.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내 마음은 변한 적 없어. 너만 그리워했으니까.”
그의 말 하나, 하나에는 절실함이 묻어나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겨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2년 가까이 지난 일을 다시금 꺼내며 다가온 그의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으니까.
“나, 남자친구 있어. 그러니까 그만해줬으면 좋겠어. 더 이상 오빠한테 아무런 감정 없으니까.”
“거짓말. 내가 너 거짓말 하는 것도 모를 줄 알아?”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순간 거칠어졌다. 실수다. 주변을 신경 쓰느라, 외진 곳으로 온 것이.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온 것은.
“시나야?”
*
어떤 남자와 단둘이 건물 뒤편으로 사라지는 시나의 모습에 나도 몰래 그 뒤를 밟았다. 남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꺼렸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시나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시나와 남자를 따라갔지만,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 지 알 수는 없었다. 거리도 거리이거니와, 나 또한 몰래 훔쳐듣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는 것은 느껴졌기에 이대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혹시나, 시나가 잘 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탁월했다.
거리가 좀 있어서 정확한 대화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방금 전 남자의 행동과 시나의 반응으로 깨달았다. 시나는 지금 상황을 원치 않다는 것을.
“시나야?”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시나는 물론이고 마주보고 있던 남자 또한 놀란 듯 했다. 나 또한 가까이서 바라본 시나의 얼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울기직전인 시나의 얼굴에서 간절함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시나가 갑작스럽게 내 팔짱을 끼며 건너편 남자를 보는 것이.
“내 남자친구야.”
“거, 거짓말.”
“시, 시나야?”
그런 시나의 말과 행동에 남자는 물론이고 나 또한 당황한 나머지 움찔해버렸다. 상황파악이 정확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시나의 행동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으니까.
“나 정말 지금 남자친구인 오빠를 좋아해. 아니, 사랑해. 오빠도 날 사랑할거고. 맞지, 오빠?”
“거, 거짓말. 아이돌이 무슨 연애야! 도대체 왜 그래 시나야! 어? 널 늦게 찾은 게 속상하고 서운한거면 다르게 말하면 되잖아. 네가 갑자기 연락도 끊고 회사도 옮기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팔을 빼려는 내 손을 더욱 강하게 붙잡으며 나를 쳐다보는 시나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두 눈은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제가 시나 남자친구입니다. 누구시죠?”
“거, 거짓말.”
간절한 시나의 눈동자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지만, 맞은편의 남자에게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거짓말이라는 단어만 내뱉은 채 아무런 대꾸도 못했으니 말이다.
시나가 붙잡은 손과 팔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나와 시나의 행동에도 남자는 당혹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충격을 받은 것인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까지.
무슨 이유인지를 물어보기 힘들었다. 무슨 상황인지도 묻기 애매했다. 지하로 들어서자마자, 쓰러지듯 주저앉아 흐느끼는 시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시나가 내가 알고 있던 시나가 맞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털털하고 항상 웃고 승부욕도 강한 시나라기에는 너무나도 가녀리고 약한 모습이었으니까.
“괜찮아?”
그저 주저앉아있는 시나를 안아 들어 복도의 의자에 앉혔다. 땅바닥에 널려있는 아이스크림을 봉지에 주워 담으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보았지만 시나는 묵묵부답이었다.
진정이 된 듯 울음은 그쳤지만,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고 있을 뿐.
[차가움 속의 사랑 - 오성]
차가움만 느끼고 살았을 너.
그 누구도 너를 녹이질 못해
홀로 그 외로움을 차갑게 얼려 버렸을 너
모두가 외면했던 네게 다가가려 해.
차갑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꿈, 사랑
그럴 수만 있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줄 거야.
고요하기 그지없는 지하 복도에 목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다리 사이에 묻고 묵묵부답인 시나의 옆에 앉았다.
전에 사귀던 사람인걸까, 아니면 슬픈 사연이 있는 짝사랑? 무슨 사연이 담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가녀려 보이는 시나의 모습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어떻게든 위로를 해주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노래 가사 한마디, 한 마리 말고는 말이다.
너를 안아줄 수 있다면,
내 몸이 얼어도, 상처 입어도
상관없어.
차갑고 차가운 너지만
너 또한 뜨거운 숨결을 가진 사람일 테니까.
도시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눈송이.
그 눈송이마저 포근히 안아줄 수 있는데
세상 모든 것이 그대를 피할지라도
내가 그대의 곁에 있을지니
시끄러운 이 도시에 혼자
버려졌어, 남겨 졌어.
그 어떤 것들이 날 방해해도
내가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니까.
차갑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꿈, 사랑
그럴 수만 있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줄 거야.
아무래도 오늘 디렉팅은 물 건너 간 것 같다. 이런 상태로는 죽 쒀서 개밥도 못 줄 테니까.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는 시나의 옆에서 나 또한 복도 천장만 주구장창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태로 어딘가에 옮기기에도, 그렇다고 혼자 두고 어디를 갈 수도 없었으니까.
*
엄청 울고 나면 잠이 온다. 의외로 운다는 행위는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니 말이다. 근데 정작 운 건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자고 있는 녀석인데, 나란 녀석은 뭘 했다고 잔건지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뒤통수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잠에 빠져버렸는지라, 고개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 게다가 내 왼쪽 어깨를 베개 삼아 자고 있는 녀석 때문에 어깨도 아파 죽겠다.
하, 어쩌지? 이거 깨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있기에는 어깨가 저려왔다.
그렇지만, 어깨가 축축한 게 얼씨구, 침까지 흘리고 자는 걸 보니 도리어 내가 알던 시나인 것 같다. 부디 깨어났을 때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나저나, 이 아이스크림 다시 먹긴 힘들겠지? 흐물, 흐물거리는 아이스크림들이 담겨져 있는 봉투를 둥글게 말았다. 그런 내 눈에 4~5m 떨어진 곳에 있는 쓰레기통이 보였다.
왼손은 거들 뿐. 나의 왼손은 완벽하다.
[콰과광!]
오른손이 문제였을 뿐.
아주, 아주 간발의 차로 빗나가버린 봉지로 인해 쓰레기통은 보기 좋게 쓰러졌다. 비어있던 쓰레기통이라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꼼짝없이 복도청소도 할 뻔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썽을 피운 오른손을 탓하고 있을 때였다. 어깨에서 묵직하게 존재감을 뽐내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뭐, 뭘 봐!”
간만에 느껴본 개운함에 어깨를 돌리며 녀석을 보자, 녀석이 대뜸 성질이다.
이거 누구 때문에 지금 온몸이 아파죽겠는데 깨자마자 반말인지, 나 참.
네가 기댄 어깨 흥건한 것은 안보이나 보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자, 녀석이 상황을 파악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네가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지.
[딱!]
그런 녀석의 이마에 딱 밤을 한 대 날렸다.
“아얏!”
“오늘 디렉팅은 다음으로 미룰 테니까. 애들한테는 네가 말해라. 오늘은 온 몸이 뻐근해서 안 되겠다. 알겠어?”
“어, 어?”
오늘은 뭘 해도 안 될 날이다. 펑펑 울던 녀석을 데리고 연습을 시킬 의향도 없을뿐더러, 몸이 뻐근한 게 고생 좀 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아, 더럽게 침을 흘리고 자냐.”
“아, 알았어!”
맨투맨에 누렇게 얼룩진 부분을 보며 인상을 찌뿌리자, 녀석이 잽싸게 연습실로 달려갔다. 너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구나. 어디 다 큰 처자가 어휴...
그래도 다행이다. 아까같이 최악의 상황은 비교적 무사히 넘어간 것 같으니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나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말이다. 그나저나, 배고픈데 삼촌한테 밥이나 사달라고 할까. 뭐, 어제도 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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