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2012 =========================================================================
#
시상식이 끝나고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강지혁 전 차트 줄 세우기! 신촌거리, 너의 색깔, 거리의 노래, 기억 속에서 음원 폭주!]
[강지혁에게서만 5~10억? 강지혁 대박으로 인한 반사이익 포이보스 로또당첨! 포이보스 曰 “회사의 외형 확장보다는, 소속 뮤지션들이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사용할 것.”]
[올 한해 음원&음반 수익 공개! 음반 매출 92억 4천 만원, 음원 수익 17억으로 강지혁 압도적인 1위. 작년 대한민국 전체 음원&음반 매출의 31%를 차지하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의 위엄! 순수익 대략 70억에서 100억 사이?]
-와... 미쳤네. 혼자서 최소 70억? 혼자 다 해먹네. 사스가 솔로 클라스 지리구연... ㅎㄷㄷ
-솔로가 대박이긴 하네. 요즘 아이돌이면 못해도 5명이서 갈라 먹어야 될텐데.
-ㄴㄴ 솔로면 그만큼 앨범을 못 팔지. 요즘에 특 S급 아이돌 아니면 몇 십 만장 파는 것도 힘든데, 솔로가 어케 그렇게 팜? 애초에 강지혁이 사기라서 그럼.
-ㅇㅈ 씹ㅇㅈ. 애초에 강지혁이 사기라서 그런거임.
매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공개하는 음원&음반 순위에서의 내 수익과 새로 공개된 음원에 관한 내용부터 해서,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받은 강지혁의 우상은 삼촌 박재성? 강지혁 曰 “이제는 삼촌을 뛰어넘고 싶다!”]
-이야.. 솔직히 어제 수상소감 듣고 울컥했음. 아티스트 상 받았을 때 삼촌한테 부모, 형, 친구가 돼줘서 고맙다고 한 것부터 우상이었다고 가수된 게 삼촌을 닮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 거 보고 진심 내가 박재성 된 줄..
-ㅇㅈㅇㅈ내가 박재성이면 약간 뿌듯할 듯. 솔까 거의 자식 아님? 엄청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키웠다는데?
-거의 자식이 아니라, 자식이지. 박재성 결혼 안하는 것도 강지혁 때문일 듯. 어쨌든 박재성은 좋겠네. 자식 같은 조카가 자기 우상이라고 자기 뛰어넘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난 그 수상소감 들으면서 박재성의 재평가가 떠올랐음. 그 전에는 마냥 떡고, 섹고만 떠올랐는데 어린 조카 방치 안하고 저렇게 키워낸 거 보면 박재성이 어떤 사람이겠음? 한 마디로 진국일듯.
[시상식에 기내용 슬리퍼를? 2012KMA 7관왕의 영광과 함께 흑역사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슬리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 역시 강지혁은 감동만? 아니져, 똘끼와 예능도 함께합니다!
-슬리퍼 ㅋㅋㅋㅋㅋㅋ대박이다. 말 그대로 졸라 빡빡했나보네. 공항에서 바로 튀어온 듯 zzzzzzz
[강지혁이 데뷔하려했던 JS의 그룹은? 강지혁이 했던 실수란?]
-딱봐도 갓식스 아님? 갓식스 데뷔할라다가 강지혁 방출되고 군대간 듯. 갓식스는 그럼 데뷔 거의 2년 늦어졌네 ㅎㄷㄷ 대박이네.
-어쩐지 갓식스 댄스는 최정상급인데 보컬이 약간 부족하다 느꼈는데, 강지혁 ㅎㄷㄷ......
-강지혁이 갓식스로 데뷔했다 생각해보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갓식스 완전 넘사벽이었겠네..ㅋㅋㅋㅋㅋㅋㅋ아....쩝 아쉽긴 하네...
[차트 1위를 노린다! Amiga도 강지혁 이펙트? 스타뮤직 曰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와 고안한 안무를 바탕으로 강지혁 군이 직접 디렉팅 전두지휘...... 기대하셔도 좋을 듯.”]
-강지혁이 삼촌 뛰어넘겠다고 그랬으니까, 기대해봐도 좋을 듯. 뭐, 처음이긴 하지만...
-웬만큼 자신감 있지 않고는 그런 말 안하겠지, 뭐, 확신은 아니고 그냥 지켜볼 만한 것 같긴 함.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여기서도 대박나면 강지혁 재능 레전드 아님? 그렇게 되면 박재성이랑 강지혁은 확실히 유전임. 와... 이것도 또 기대되네.
시상식장에서 일어났던 일과 관련된 기사들,
[아름다운 누나 티져 영상 조회 수 1천만 돌파! 전회 광고 완판! 12월 초 편성 확정!]
[스위스 취리히 공항 30번대 게이트를 무대로 만들어버린 강지혁의 위엄! 관련 유튜브 동영상 총 조회수 1천 3백만 돌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누나와 관련된 기사들까지, 매시간 매분마다 수십 개의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아예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보지 않게 됐다. 그저 아름다운 누나 관련 기사만 몇 번 보았을 뿐.
그나저나 영식 삼촌 안 되겠네. 고새 예고편을 만들어서 내보내? 떠나기 전날 밤에 찍은 영상이 어째서 몇 시간 뒤에 예고편으로 나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양반 스위스에서 편집한 거야 뭐야.
“14500원입니다.”
사색하는 동안 택시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상도 받았겠다, 삼촌에게 선물이라도 할까 싶어 백화점에 들렀다. 뭐, 상을 받았으니 도리어 내가 선물 받아야 되는 거 아냐? 라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대충 삼촌 회사 앞에 샐럽 백화점이 있길 래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고급스러웠다.
“40대 남자한테 맞는 지갑 추천해주세요.”
그 중에서 제일 커 보이는 매장으로 들어가니 점원이 바로 마중을 나왔다. 평소라면 이런 점원의 행동이 부담스러웠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마웠다. 나 패션에 관심이 없어서 완전 대충대충 입는 타입이니까.
“지금 보시는 제품이 이번 겨울 신상품입니다. 고객님. 블랙 계통으로 고급스러움과 심플함을 강조했고요, 한정판매제품이라 선물 받으실 분의 마음에도 꼭 드실 겁니다. 고객님.”
“아! 그럼 그걸로 주세요. 선물 할 거니까 포장 예쁘게 해주시고요.”
“포장비는 별도로 청구되는데 괜찮으십니까, 고객님?”
“괜찮아요. 받는 사람이 최대한 기분 좋게 포장에도 신경써주세요.”
가격이 얼마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계산해 달라고 했다. 그래도 돈 벌고 처음으로 삼촌에게 선물하는 건데 가격에 벌벌 떨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뭐, 물론 가게 모습을 보아하니, 영수증보고 벌벌 떨 것 같긴 하지만.
“아! 그리고 고객님! 저희 샐럽 백화점 분기별로 일정금액이상 구매 고객님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고객님께서도 참가 가능하신데, 참가 표 드릴까요?”
아직 만나기로 한 시간이 제법 남았지만 괜찮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매장을 나설 때였다. 점원의 입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번 주에는 마이무 팬 사인회가 기획되어,”
“주세요.”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잠시나마 그냥 가려고 했던 내 어리석음을 탓했다.
“여기 참가표랑 브로마이드입니다. 고객님. 30분 후에 본관 5층 홀에서 행사가 시작되니, 늦지 말고 와주세요.”
마이, 마이, 마이 무~ 역시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되나보다. 큰마음 먹고 삼촌에게 선물하기위해 눈에 보이는 헤르메스? 헐메스? 여튼 제법 고급 져 보이는 매장에 들어가 지갑을 구매한 내게 신이 선물을 주셨다.
평소 눈 여겨 봤던 마이무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엄청 가까이서.
30분 뒤 행사가 진행된다는 직원의 말에 참가 표와 지갑이 담긴 백을 챙긴 나는 빠르게 지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방금 알았다고는 해도, 내 자신이 가수인 입장에서 사인 받을 CD도 없이 사인회에 가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근데, 삼촌한테 곧 간다고 했는데 이거 괜찮으려나? 잠깐 다른 생각이 들어 움찔했지만, 이내 이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어차피 마이무 사인을 받기 위해 가는 건데, 무슨 상관있을까 싶었으니까. 삼촌한테 조금 늦는다고 문자 보내면 되겠지.
그렇게 앨범을 사고 5층으로 올라가자, 어느새 행사가 시작할 시간이 됐는지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뭐, 그래도 생각 외로 사람들이 적었는지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듯해 나 또한 줄의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섰다.
역시나 예상대로 줄은 금세 줄어들고 있었다. 채 10 분이 지났을까. 벌써 내 앞에 샤인 씨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아까 점원 말마따나, 참가에 제한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며 샤인 씨 앞 의자에 착석했다.
“안녕하세요!”
팀 내에서 최고령자임에도 불구하고 샤인 씨는 꽤나 상큼한 미소와 함께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 또한 마음 같아서는 거추장스러운 모자와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름 가수로서 괜히 마이무 팬 사인회에서 사고를 일으킬 순 없으니 말이다.
“어? 저희 앨범이네요?”
“아, 네.”
“사인해드릴게요. 주세요.”
“아, 아니요. 그냥 여기 브로마이드에만 해주세요. 이니셜로 KJH에게 라고도 써주세요.”
방금 산 앨범에는 별희 씨의 사인을 받을 예정이라, 죄송스럽게도 앨범을 달라는 샤인 씨의 제안을 살짝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앨범에 샤인 씨 사인을 받으면 별희 씨가 사인할 공간이 없을 테니까. 방금 보니까 사인도 엄청 크게 하시던데.
“예?”
“네?”
“예?”
“네?”
그런 내 행동에 약간 당황하신 듯한 샤인 씨에게 사인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샤인 씨의 뒤를 이어 화샤 씨와 휘니 씨에게도 브로마이드에 사인을 받자, 드디어 내 눈 앞에 별희 씨가 나타났다. 역시나 괜히 문보수가 아닌 듯 혼자서만 심플한 스키니 진을 입고 계신 별희 씨의 모습에 설레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 무무?”
“네, 네! 안녕하세요.”
안녕 무무를 여기서 들을 줄이야.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준 별희 씨에게 고이 간직해둔 앨범과 브로마이드를 건넸다. 얼른 사인회가 끝나야 편히 쉬실 테니 말이다.
“성함이?”
“아! 이니셜로 KJH라고 써주세요. 정말 팬이에요.”
내 앞에 4백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줬을 텐데도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는 것을 보며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사진도 찍을까요?”
“저, 정말요?”
“Come on 무무!”
게다가 팬 서비스도 혜자스럽게, 같이 사진 찍자는 말을 먼저해주는 인성까지.
순간 기뻐서 다가가려다가 마스크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지금 내 상태를 자각하곤 애써 거절하긴 했지만, 사인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렇게 사인을 다 받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사인회장을 나가려던 찰나였다.
“자! 그럼 팬 사인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경품 추첨해볼까요?”
“네!”
“갤러리아 백화점 주최 하에 진행된 이번 행사에 참가해주신 분들은 각자 참가 표를 가지고 계실 텐데요. 우측 상단에 있는 번호가 본인의 추첨코드입니다! 총 4분께 저희 마이무의 애장품을 선물로 드리니까요? 많은 기대해주세요!”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 저는 목걸이를 들고 나왔습니다! 제가 평소에 목걸이를 좋아해서요. 자주차고 다니는데 이 목걸이는 제가 오디션 합격했을 때 멨던 목걸이 인만큼, 많이 아쉽네요!”
하, 연습생 전부터 가지고 있던 목걸이? 게다가 오디션 합격 때 멨던?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별희 씨의 애장품에 걸릴 확률도 없겠지만 벌써부터 내가 당첨된 양 설레 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어느새 좌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그때의 선택을 찬양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 내게 은총을 내려주신 신께서 또 한 번의 기적을 내려주셨으니까.
“248번, 76번, 375번, 412번입니다. 축하드려요!”
내 손에 있는 참가표의 상단에 적힌 412라는 숫자에 하마터면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던질 뻔했을 정도로 환호에 젖었다.
게다가 별희 씨의 애장품은 완전, 완전 소장가치 1000%였는지라, 나는 서둘러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늦게 갔다가, 다른 추첨번호를 부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께서 내게 너무 많은 기적과 은총을 내려주셔서 일까? 신나서 별희 씨의 애장품을 선택하려던 내 앞에 장애물이 등장했다. 짜증나게도 말이다.
“뽑힌 네 분 중에 두 분이 별희 씨 애장품을 선택했는데요. 이거 어쩌죠?”
다른 두 명이 각각 화샤 씨의 모자 그리고 샤인 씨의 안경을 각각 선택한 것과 달리, 별희 씨의 목걸이는 나를 포함한 또 한명의 남자가 선택한 것이다.
“아, 자존심 상해.”
“휘니꺼 완전 비싼 가방인데, 혹시 바꾸실 분 계신가요?”
자존심 상하다며 장난스럽게 삐진 척 하는 휘니 씨를 생각해 나름 중재해보려는 화샤 씨의 멘트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상황은 종결되지 않았다. 하, 저 사람도 이상하네. 딱 봐도 휘니 씨 가방이 더 좋아 보이는데 뭔 심보야 도대체.
“역시 문스타!”
“걸 크러쉬를 넘어서! 이제 남성 팬까지! 이야!”
“이야~ 문스타 아주 물 만나셨어~”
“와! 저분 아까! 별희 언니한테만 앨범에 사인 받더니! 대박이네!”
“뭐야? 나한테만 안 받는 거 아니었어? 헐, 대박!”
부럽다며 말하는 멤버들에 의해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던 별희의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였다. 하, 이래서 별희, 별희 하나보다.
“자! 그럼 여기서 즉석 어필 한번 들어가 볼까요? 자기가 꼭 별희 씨의 애장품을 가져가야겠다는 마음을 표현해주세요!”
그사이 재치를 발휘해 갑작스럽게 예정에도 없는 어필 시간을 선언한 화샤 씨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팬들과 다른 멤버들은 환호하며 손을 흔들어댔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화샤 씨랑 휘니 씨도 그렇고 샤인 씨까지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참.
속으로 적잖이 당황한 나와는 달리, 그 사이 경쟁자인 남자가 꽤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화샤 씨께 다가갔다.
“제가 노래로 별희 씨께 어필해보겠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듯, 관계자 분에게 자신이 부를 노래의 MR을 부탁하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의자로 밀려났다.
[웃는 네 얼굴]
“아 이게 뭔가요!”
하지만, 어이없고 당혹스러운 상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신 있게 먼저 하겠다고 나선 남자가 고른 것은 어이없게도 내 곡이었다.
“이거, 이거! 별희 씨가 완전 팬이라고 말했던 강지혁 씨 노래로 승부보나요?”
“강지혁 씨 열혈팬에게 이 노래를!”
정규 1집에 실린 예뻐서의 간주가 흘러나오자, 팬 사인회 현장은 가수며 팬이며 상관없이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이 부르는 내 노래를 처음으로 듣게 된 곳이 마이무 팬 사인회라는 점과 별희 씨가 나의 열혈 팬이라는 점에서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단숨에 들켰을 정도로 말이다.
웃는 네 얼굴
그 얼굴 때문에 얘기하지 못했어.
네가 나를 볼 때면
네가 나를 부를 때면
나는 홀로 상상하곤 해.
내게 속삭이는 너의 귓속말
너만을 사랑한다고.
지금도 웃는 네 얼굴.
그렇지만 오늘만은 말할래.
네가 제일 좋아.
일반인 치고는 꽤나 준수한 실력으로 노래를 마무리한 남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노래를 마친 자신에게 가수, 팬 가릴 것 없이 제법 큰 환호성을 보내줬으니 말이다.
이 정도로 일이 커지자, 나로서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사인만 받고 가면 됐을 것을 괜히 애장품이라는 말에 홀려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으니 말이다.
할까 아니면 그만둘까를 고민하고 있던 도중 나는 문득 나를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느꼈다.
“이거 제가 이긴 것 같은데요? 저 분 포기하신 것 같은데.”
참가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저 남자의 입장에서는 포기로 보였나보다. 남자의 시선에는 그만 포기하시지? 라는 듯한 일종의 우쭐함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알까? 도리어 자신의 그 멘트와 눈빛으로 인해 내가 참가를 결심했다는 것을.
뭐, 끝까지 모자 안 벗고 마스크 안 벗으면 되겠지. 왠지 모를 불안함이 가슴 한 켠에 생겨났지만 일단은 저 거만한 눈빛부터 어떻게 좀 해야겠다. 벌써부터 제 것인 냥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게 마음에 무척 안 드니까.
결심하기가 힘든 거지, 결심하고 난 뒤의 행동은 일사천리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 진짜 즉흥적인 놈이니까.
관계자 분에게 가서 MR을 부탁했다. MR이 흘러나오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금 전과 똑같은 MR을 틀면 됐으니까.
간주가 흘러나오자, 장내는 또다시 뜨거워졌다.
“우와! 정면 승부네요! 똑같은 곡이라! 너한테 뺐길 수 없다. 별희는 내꺼다. 별희 내 여자라는 건가요?”
정면 승부라는 것을 딱 봐도 알 수 있는 선곡이었으니 말이다.
뭐, 정작 나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별희 씨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슬슬 전주가 끝나가자, 마스크를 살짝 내리며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댔다. 이거 잘 부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꽤나 오랜만에 불러본 노래니 말이다.
[웃는 네 얼굴]
웃는 네 얼굴
그 얼굴 때문에 얘기하지 못했어.
네가 나를 볼 때면
네가 나를 부를 때면
나는 홀로 상상하곤 해.
내게 속삭이는 너의 귓속말
너만을 사랑한다고.
지금도 웃는 네 얼굴.
그렇지만 오늘만은 말할래.
네가 제일 좋아.
오랜만에 부른 노래여서인지, 그 여운이 꽤나 깊게 느껴졌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정규 1집에 속한 곡들은 특히나 이런 점이 심했다. 과도한 몰입과 여운의 후유증이 말이다.
그래도 자작곡들 중에서 밝은 느낌으로는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노래여서인지, 감정을 비교적 빠르게 추스릴 수 있었다. 물론 눈을 마주치고 있었던 별희 씨가 너무 귀여워서 그런 것도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마이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 순간까지 장내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앞선 남자의 노래 끝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말이다.
뭐야, 내가 실수 한 게 있나? 팬들 뿐만 아니라, 별희 씨와 다른 마이무 분들 또한 아무런 말없이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왠지 모르게 목이 말라, 옆에 있던 생수를 들이켠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 마스크도 안 내렸는데, 물을 마시고 있네?
“강지혁...?”
때마침 옆에 있던 화샤 씨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사인회장에 퍼졌다.
하... 세상은 썩었어.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제 작품을 보기 위해 1일 노블권을 구매하셨다는 분을 위한 1연참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