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8 2012 =========================================================================
“강지혁씨 팬 여러분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유민재는 그저 죄송하다와 감사합니다를 말한 뒤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코리아 측에서 오늘을 위해 심혈을 들여 준비한 무대 음향 장치에서 선율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간주에 대리수상을 끝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유민재와 진행을 맡던 유병제, 김소연 또한 당황한 듯 했다. 그 자리에서 아무런 말을 잇지 못한 채 멈춰버렸으니 말이다.
[기억 속에서]
하지만 이내 그들의 굳어있던 표정은 밝아졌다. 흘러나오는 선율의 익숙함을 눈치 챈 유민재, 제작진에게서 이어폰으로 현재 상황을 설명 받은 김소연, 유병제였으니 말이다.
“코리아 뮤직 어워드에서 최초 공개되는 강지혁 씨의 정규 2집 앨범 3번 수록곡 기억 속에서와 4번 수록곡 너의 색깔 입니다. 뮤직 커넥트!”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SNS 게시 글과 기사들로 인해 강지혁을 태운 비행기가 자정에 이륙했다는 것과 한 시간쯤 전인 오후 6시 반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강지혁은 여전히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벌써 신인상과 네티즌 인기상을 직접 받지 못했다. 안 그래도 퇴근 시간이 겹쳐 불안한데, 시상식 1부는 벌써 그 끝을 보이고 있으니 팬들의 안절부절 함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대와 멀리 떨어진, 올림픽 체조경기장 게이트에서 네 다섯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간주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내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간주가 묻혀버릴 정도로 말이다.
빠른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강지혁은 혼자가 아니었다. 왼쪽에서는 지혁에게 연신 헤어스프레이를 뿌려대며 어떻게든 헤어 스타일링을 해보려는 이가 있었으며 오른 쪽에는 그의 귀에 인이어를 끼워주려는 촬영 스태프가 그리고 앞에서는 지혁의 옷에 묻은 보풀을 뜯어내는 의상 스타일리스트가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지혁의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넘어지지 않은 채 자기 일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애초에 스타일링을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차에서부터 준비하긴 했지만, 구겨진 옷들을 펴고 머리를 다듬는 것만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취리히 면세점에서 의상 스타일링을 마치지 않았다면 불가능 한 일이었다.
어느새 무대 코앞에 있는 동료 가수들이 앉아있는 좌석을 지나쳐가는 그의 한 쪽 손에는 여전히 매지 못한 넥타이와 마이가 잡혀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간주가 끝이 나고 선율은 이제 그의 목소리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기억 속에서]
너와 함께 있던 그 순간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기억 속에서 나는 아직도 웃어.
기억 속에서 네 곁에 있는 모습이 그리워
우리의 흔적이
가장 선명하게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너와의 기억.
나는 아직도 기억 속에서 살아.
......
어떻게 시간이 흐른 것일까.
눈 깜짝 할 새에 기억 속에서가 끝이 나고 너의 색깔의 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지혁이 서둘러 마이를 입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지금껏 와이셔츠만 입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뒤이어 넥타이까지 매보려 하지만, 어느새 간주는 또다시 그의 목소리를 원하고 있었다.
매다 만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친 지혁이 서둘러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댔다.
[너의 색깔]
너를 처음 보는 전
내 마음은 하얀 도화지와도 같았지.
네가 좋아하는 음식
네가 좋아하는 옷
너의 색깔로 나는 점점 물들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나의 색을 버리고
너의 색깔로 나는 점점 물들어가.
......
마이를 입고 다시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긴장이 풀려서일까. 서서히 추위가 느껴지고 동시에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었던 좀 전과 달리, 지혁이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그제서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의 시선이 문득 한쪽을 가득 메운 이들을 포착했다. 그들 앞에 달린 거대한 현수막도.
THE ONLY ONE. 신성의 귀환 이라는 문구가 적힌 곳을 향해 지혁은 손을 흔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와 함께.
때마침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를 덮쳤지만, 그 순간 그가 느낀 것은 세상 어느 것보다 따스한 햇살이었다.
*
무대를 끝마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민재 형이 다가와 트로피를 전달해주었다. 마침 내 수상 이었나보다.
“자식,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직접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나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 하얗게 불태웠어 삼촌... 그러니까 누가 나 몰래 스케줄 짜래? 아 진짜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하네, 삼촌.”
겨우 일주일가량 떨어져있던 것뿐이지만, 오랜만에 민재 삼촌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그렇게 그 반가움을 가벼운 포옹으로 갈무리 한 채 내려오려던 내 시선에 코디 누나가 들어왔다.
뭔가 발을 동동 굴리며 내게 손짓하는 코디 누나의 모습에 나는 걷는 것도 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지? 뭘 저렇게 들고 있는 거야? 응? 구두?
그때였다. 옆에 있던 민재 삼촌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은 말이다.
“하하하하하하하! 지혁아, 너 뭘 신고 온 거냐?”
지금 내 눈앞에서 구두를 흔들고 있는 코디 누나, 그리고 그 구두의 낯익은 자태, 옆에서 웃고 있는 민재 삼촌.
그 모든 정황이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뭐야, 누나들이 사준 내 구두가 저기 있으면 나 지금 뭘 신고 있는 거지?
불안한 마음에 발밑을 내려다본 나는 그 상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기내 슬리퍼를 신고 오면 어쩌냐, 지혁아. 크크킄흑...”
웃음을 터뜨리다 못해 울 지경인 민재 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 어쩐지 삼촌이랑 눈높이가 조금 어색하더라니. 너무나도 급하게 준비를 하고 오느라, 정작 구두를 신지 못했나보다. 그럼 공항에서 그 기자들 뚫고 나올 때도 나 슬리퍼 신고 있었다는 건가? 하... 간신히 흑역사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젠장.
나는 옆에서 웃고 있는 민재 삼촌을 뒤로한 채 창피함에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무대에서 내려가려했다. 더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내 손에는 아직까지 마이크가 있었다. 스탠드에 두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거기에 민재 삼촌은 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이크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덕분에 내 곁에 있던 민재 삼촌의 말이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사회를 보고 있던 유병제의 멘트가 감칠맛을 더했다.
“지금까지, 기다려준 팬 분들께 큰 웃음 주는 강지혁씨의 기내용 슬리퍼였습니다.”
이 모든 요인들로 인해 장내는 웃음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발밑을 보고 있던 내가 고개를 못 들 정도로 말이다. 하... 인생은 썩었어. 젠장.
서둘러 마이크를 던지듯 민재 삼촌에게 넘긴 채 무대를 빠져나왔다. 발을 동동 굴리며 나를 보고 있던 코디 누나에게서 잽싸게 구두를 받아들어 신었지만, 아직도 관중석에서는 웃음소리와 환호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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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것은 내가 받은 네티즌 인기상이 1부의 마지막 식순이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나는 주먹구구식으로 받았던 스타일링을 다시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래봤자, 수정하는 게 다일 테지만 말이다.
“피부가 좋으니까, 베이스는 안 해도 되겠다. 머리는 스프레이로 완벽하게 고정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비행기가 제때 떴다면 미리 이곳에 와서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안면도 익혔을 테지만, 지금은 10분 남짓한 이 짧은 중간 휴식 시간마저도 부족할 정도여서 당초 계획대로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뭐, 그렇게 살가운 타입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안면은 익히고 싶어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 아쉽긴 했다. 많은 가수들 중에는 예쁜 가수들도 많았으니까.
어느 정도 스타일링을 수정하고 내게 배정된 자리에 앉아보니, 앞 쪽 테이블에 트로피들이 세워져 있었다. 신인상, 네티즌 인기상 트로피가 말이다.
수상 소감을 말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을 받은 게 어딘가.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주변을 두리번 거려보았다.
진짜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가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가수들은 저마다 친분이 있는 듯 자신들의 자리와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이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거보면 나 확실히 외톨이인 것 같다.
친분 있는 또래 가수라고 해봤자, Amiga, Stylish가 전부니 말이다.
그나마 Amiga애들과 Stylish도 나랑 떨어져있는 곳에 앉아있으니 나는 그저 민재 삼촌과 얘기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옆에 제이핑크 분들과 여성시대 분들이 있었지만, 뭔가 포스가 장난 아니었으니까. 뭐, 아까 인사를 살짝 드렸을 때는 반갑게 받아줬지만.
“삼촌, 이거 언제까지 해요?”
“왜? 피곤하냐?”
뭔가 순식간에 급박한 일이 지나고 어느 정도 긴장감이 풀리자, 내 눈 두덩이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하긴 많은 일이 있었지.
민재 삼촌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수로 목을 축였다.
“비행기를 오래타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타기 전에 제가 공항에서 공연 비스무리 한걸,”
“알지.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너 그러고 온 거 모르는 사람 없을 걸? 게이트를 공연장으로 만들었던데? 너도 참.”
하지만 이어지는 민재 삼촌의 말에 나는 의아한 듯 삼촌을 바라보았다. 비행기 타기 직전의 일을 안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이제는 두려울 지경이다. 자꾸만 내 통제를 벗어난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의문을 이내 묵혀둘 수밖에 없었다.
“5번째 탑 텐은 강지혁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상 진행자로 나선 이유빈씨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으니까.
사실상 세 번째 상이지만, 내가 수상소감을 말하게 될 첫 번 째 상인지라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내가 삼촌이랑 유일하게 닮은 게 큰 키랑 넓은 어깨였는지라, 나름 괜찮은 수트 빨이라 자평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러지 못했다면 떨리는 마음에 실수라도 했을 것이라 예상할 정도로 노래가 아닌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매우 긴장감 있게 다가왔다.
무대에 올라서자, 이인경씨에게 트로피를 이유빈씨에게 꽃다발을 받을 때가 돼서야 긴장감에 미친 듯이 뛰던 내 심장이 진정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진짜 예쁘시네.
“일생에 단 한번 뿐인 신인상과 네티즌 인기상 그리고 사전 시상 부문인 뮤직 스타일상의 발라드 부문, SONG&WRITER 부문 수상에 이어 탑 텐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어 영광입니다. 일단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먼저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잦은 방송활동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을 말할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팬 여러분을 향한 감사의 말이었다. 애초에 방송활동을 결심하고 시상식 참석을 그 시작으로 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팬 분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 발언에 멀리서 나를 응원해주던 팬 분들의 환호소리가 더욱 커졌다. 덕분에 내 입가에 환한 미소가 자리 잡은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그리고 제 멘토이자, 음악을 하는 동반자로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재성 삼촌, 민재 삼촌 그리고 재영 삼촌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겠습니다. 또 우리 포이보스 급식이들 권수아, 크리스 김 그리고 학식이들 이수아, 정승현에게도 제가 항상 외롭지 않게 옆에서 손 내밀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이곳까지 오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아준 아름다운 누나 제작진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지금쯤 비행기를 탔을 텐데 조심히 오시고 한국에서 하기로 했던 뒤풀이는 상 받은 제가 쏩니다!”
수상소감이 너무 길어서 제지받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괜찮다는 듯 계속하라는 진행 스태프 분들의 모습에 안심할 수가 있었다. 언제 다시 수상소감을 말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게 되면 아쉬울 것 같았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제가 작사, 작곡한 봄 향기를 멋지게 불러준 유진과 토크 콘서트 게스트로 출연도 해주고 회식 때마다 같이 삼겹살과 소주를 마셔준 예원이 그리고 제가 만든 곡, 안무로 컴백 준비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Amiga의 모든 멤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번에 신인상을 받았다는 여친이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민재 삼촌 말마따나, 신인상 수상소감 때 내 얘기도 해줬다는 데 나도 보답은 해줘야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뭐, 내용은 아직 잘 모르지만.
그렇게 언제 떨며 긴장했냐는 듯 제법 능숙하게 수상소감을 마무리한 내가 제자리로 발걸음을 옮기자, 다시금 팬 분들이 환호성을 질러주셨다. 황송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내게 쏟아질 환호성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러 선배 가수들의 무대와 시상, 수상소감들을 보면서 연신 박수를 쳐대던 내가 또다시 호명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또다시 수상소감을 하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너무나도 영광스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이번에 받게 된 상은 코리아 뮤직 어워드의 최고 메인 상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올해의 아티스트 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빅밤 선배들이 올해의 베스트 송상에 이어 또다시 수상할 줄 알았던 나로서는 의아한 상태에서 무대로 나가게 되었다.
“정말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의 아티스트 상. 정말 뜻 깊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팬 분 들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앨범의 녹음을 맡아 주신 민재 삼촌 그리고 재영 삼촌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하고 싶습니다.”
또 상을 받을지 몰랐는지라 탑 텐 수상 소감 때 너무 많은 것들을 얘기해 버린 것 같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문득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집에 있든 어디에 있든 내 모습을 보고 있을 이가 떠오른 것이.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가수가 됐냐고 제게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요 라는 추상적인 대답으로 답변을 얼버무렸는데요. 사실, 제게는 세상 누구보다 멋진 삼촌이 있습니다. 정말 춤과 노래에 미치고 즐길 줄 아는 그런 멋진 삼촌인데요. 처음 고백컨대, 그런 삼촌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며 가수의 꿈을 끼워나갔습니다. 삼촌처럼 멋진 가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비록 사고뭉치에 실망만 안겨드려 죄송했지만, 정말 삼촌을 존경하고 삼촌과 같은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동안 막연했던 감정이 수상 소감을 말함과 동시에 정리된 것만 같았다. 나로서도 삼촌에 대한 마음이 이정도였구나를 다시금 깨달았으니 말이다.
“때로는 부모님이, 때로는 형이, 때로는 친구가 돼준 삼촌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받은 제게 있어 영원한 우상인 삼촌! 이제는 삼촌이 강지혁의 삼촌으로 불릴 수 있도록, 삼촌을 뛰어넘기 위해서 노력할게요. 내년 Amiga의 신곡은 바로 그 첫걸음이니까, 부디 긴장해주세요. 사랑해요.”
그렇게 카메라를 보며 손 하트를 그린 것을 끝으로 나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어느 샌가 몸을 가득채운 개운함을 느끼면서.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하고 있었다. 아니, 그동안 현실 인지를 제대로 못하고 있었나 보다. 할 만큼하고 있었다고 자평했는데 말이다.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는 강지혁 씨입니다!]
[강지혁씨의 정규앨범 1집 기억하고 싶은 아픔은 공식집계판매량 86만 9421장을 기록하며 단일 앨범으로는 가장 많은...... 또한 타이틀 곡 없는 앨범이란 모토로 수록곡 전부가 각종 음원차트 및 방송사 차트를 휩쓸며......]
다른 건 둘째치고서 3개 존재하는 메인 상중 2개를 내가 수상하게 됐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놀라고 말았다. 솔직히 아이돌도 아닌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릴 줄이야.
너무나도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준 민재 삼촌이 없었더라면 나는 한참을 멍하니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수상소감 다 말했는데 또 뭘 말해? 메인 상인만큼 수상소감을 대충할 수도 없는데. 하, 나도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음... 예상치 못하게 많은 상을 주셔서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단 다시 한 번 팬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방송활동도 안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주셨으니까요.”
수많은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마이크를 잡은 나는 말하기를 잠시 머뭇거렸다. 머릿속에 갑작스레 떠오른 수상소감을 지금 말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대충 마무리하고 내려가야 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나는 결심했다. 말이야 방금 떠올랐다고는 하지만,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인데, 자꾸만 망설이고 머뭇거렸습니다만 올해의 앨범 상이라는 큰 상을 또다시 주신만큼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음...... 제가 사실 정말로 미안하고 또 미안한 분들이 있어요.”
아까 탑 텐 수상소감 때부터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고민했던 말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멋있고 큰 무대에서 같이 공연하기를 꿈꾸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인생에 한번 뿐인 신인상 우리가 꼭 타보자, 음악방송 1위를 우리가 꼭 해보자며 힘든 연습생 생활을 같이 버텨갔죠. 지난 10년간의 연습생 생활동안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제 실수로 가장 존경하던 삼촌에게 실망을 안겨드렸고 또한 그 분들에게도 피해를 안겨드린 것 같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였다. 아니 사실 실수는 아니었다. 그냥 무책임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차마 찾아가지도 연락을 하지도 못했었기에 수상소감을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온 몸이 떨려왔다.
데뷔를 코 앞둔 아이돌 그룹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었던 이가 개인 사생활을 감당 못해 방출 당했다는 사실이 주는 영향력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데뷔를 앞두고 취소되고 다시 데뷔를 준비하고가 반복되는 아이돌 그룹의 특성상 나의 행동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팀원 전체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물며, 재연이와의 연애를 극구 말렸던 멤버들 앞에 지금 와서 무슨 낮 짝으로 얼굴을 들이밀까.
“아직은 얼굴을 마주하고 볼 자신이 없지만, 언젠가는 한때 같은 꿈을 꿨던 동생, 형으로서 그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힘들고 고됐지만, 같은 꿈을 꾸며 손잡고 나아갈 수 있었던 그때가 정말 좋았고 그립다고 말입니다. 이 상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선 수상소감 때와는 달리, 적어도 무대를 내려오는 내 귀에만큼은 어떠한 환호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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