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5화 (35/502)

00035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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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궁금한 게 뭔지 알아요? 방치해도 나만 바라보고 있어줄 여자가 이상형이어서 재연 언니랑 사겼는데, 왜 차이셨어요? 방치를 너무, 너무, 너무 하셨어요? 아니면 아! 혹시 바람...? 아닌데 노래 가사로 봐서 바람은 아닌 듯한데.]

나도 모르게 잠에 빠졌나보다.

[꿀꺽 꿀꺽]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목구멍으로 거칠게 물을 넘겼다. 그러곤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어째서 깨어나자마자 다희 양이 떠오른 건지, 그리고 하필 떠오른 게 이건지 모르겠다.

“하...”

지금까지는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도피하고 싶었다.

폐인생활을 힘겹게 끝내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군에 입대했을 때처럼.

*

“혹시 유민재씨가 출연했던 아름다운 청춘이라는 프로그램 아세요?”

다음날 오전, 나는 수많은 카메라와 낯선 이들에 의해 둘러싸이게 되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해봤지만, 새벽에 다시금 깨버리고 말았다.

[...... 왜 차이셨어요? ...... ]

여전히 다희 양이 했던 목소리가 기억에 남았고 말이다.

다시 잠들어볼까라는 생각이 훅 달아날 정도로 정신이 또렷했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그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으니까.

마침 오전에 민재 삼촌과 앨범과 관련한 미팅약속이 떠올랐기에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네다섯 시간이나 남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청춘이요? 그, 민재 삼촌이 페루? 거기 간 거 말씀하신 건가요?”

그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약속 장소에 나온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번에 저희가 아름다운 청춘의 다음시리즈로 아름다운 누나를 기획하고 있어서요.”

민재 삼촌이 페루에 간 사실은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안면은 없지만 꼭 한번 뵙고 싶은 윤성 선배님과 이정 선배님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낯선 상황을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혹시, 민재 삼촌을 보러 온 건가?

“저 그런데 무슨 일로...? 민재 삼촌과 볼일이 있으시면 한 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될 텐데요...?

도대체 삼촌이 아름다운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페루에 간 것과 후속 시리즈라는 아름다운 누나 프로그램이 기획 중이라는 것이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나는 나를 둘러싼 카메라들과 촬영 진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어제일로 심사가 지쳐있는 상황에서 방송활동 경험이 없는 내게 집중된 이런 시선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내 심사가 표정에 드러나서일까. 나영식 PD님이 웃는 얼굴로 내게 일련의 문서들을 건넸다.

“민재 형에게 아니, 유민재씨께 예능 프로그램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들었어요.”

무의식적으로 받아든, 그리 두껍지 않은 문서 더미를 살펴보려던 찰나, 내 무릎위로 녹색 물체가 떨어졌다. 뭐야, 여권? 어?

“아름다운 시리즈를 아시는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이번에 지혁 씨가 저희 아름다운 누나 짐꾼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방금 드린 것은 비행기 티켓과 여권이고요.”

문서 더미에서 여권이 떨어졌다는 것도 잠시, 펼쳐진 여권 페이지에 떡 하니 붙어있는 내 사진을 보던 나는 말을 잊은 채 나영식 PD를 바라보았다.

“네, 네?”

“아름다운 누나들은 출국당일 공항에서 만나게 될 거에요. 비행기 표에 적힌 시간에 늦지 않게 인천국제공항으로 가시면 됩니다.”

내 여권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 수많은 인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물론 의문이 풀렸다고 해서 당혹스러운 내 심정이 안정되는 건 아니었지만.

“많이 당황하신 것 같은데, 일단 표부터 확인하시는 게...?”

나영식 PD님의 말에 나는 서둘러 비행기 표를 확인했다.

“서, 설마...”

포이보스 휴게실 소파에서 TV를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게 일과의 전부였던 적이 많았던 만큼 아름다운 시리즈의 악명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아름다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장면은 대게 한 개의 에피소드와 함께 시작한다는 것도 말이다.

“10월 29일 목요일 15시 30분...?”

코리아 뮤직 어워드를 9일 남겨둔 오늘, 10월 29일 오후 12시 10분. 무거운 자리가 아닌 만큼 편하게 입고 오라는 민재 삼촌의 말에 청바지와 져지 차림으로 포이보스 휴게실 소파에 누워있던 나는 그렇게 출국을 3시간 20분 남긴 이가 되고 말았다.

“아! 그리고 첫 여행지인 체코 숙박 아직 안 정해져있으니까, 어서 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하... 얄미워.

*

[특급이슈! 아름다운 누나 편의 짐꾼은 강지혁? 인천공항을 들썩이게 만든 네 여배우와 강지혁의 등장!]

[이걸 나PD가? 가요계의 가장 핫한 스타이지만 방송활동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강지혁을 섭외한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꿀 케미 보장 최정예 예능인력 총출동!]

[TBN 측 曰 “철저한 사전 정보 통제를 통해 가수 강지혁 군은 출국 3시간 전에 프로그램 참가여부를 통보받아...”]

[포이보스 측 曰 “강지혁 군은 코리아 뮤직 어워드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도착 시간이 당일 시상식 6시간 전인 만큼 충분한 여유시간 존재...”]

[OFFICIAL 포이보스 : 소속 뮤지션 강지혁의 정규 2집 음원 선 공개될 예정입니다. 이틀 뒤인 10월 31일부터 1주일 간격으로 2곡씩 음원을 공개할 예정이며, 총 7주간 14곡의 음원이 공개될 것입니다. 모든 곡의 음원이 공개된 직 후 앨범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며 이번 정규 2집 앨범은 선주문유료예약방식 또한 도입됨에 따라 팬 여러분들의 보다 빠른 앨범 수령이 가능해졌습니다.]

출국과 동시에 일반 시민들의 SNS를 통해 퍼져나간 아름다운 누나 시리즈 소식과 이에 발맞춰 공식 자료를 배포한 TVN측과 포이보스 측 그리고 그 밖의 각종 매체들이 쏟아낸 관련기사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또다시 들썩이게 됐다.

정작 당사자는 가이드 책과 예산으로 받은 돈을 둘러보며 잠도 이루지 못한 채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

처음의 당혹스러움, 걱정과 달리 여정은 지혁의 리드 하에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들의 짐꾼이 지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름다운 누나들의 환호성에 보답하듯 말이다.

[누나라고 불러! 알겠지?]

[그, 그렇지만...]

[어허!]

[네, 누나.]

아름다운 누나들과의 어색함, 체코와 스위스의 화폐가 유로화가 아니라는 점, 숙소 문제를 미리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각박한 시간, 일행의 이동과 관광 문제 등으로 분량을 뽑으려던 제작진은 도리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군대 갔다와서 한달 조금 넘게 유럽 배낭여행 다녀왔는데요? 그때 체코랑 스위스도 갔고요. 한, 보름 정도씩 있었나? 그래서 나름 빠삭,]

마치 미리 준비한 듯이 척척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지혁의 행동이 당초 그들의 예상과는 확연히 달랐으니 말이다.

[이거 분량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뭔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러게, 어떡하죠, 피디님?]

하지만,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제작진은 이내 깨닫게 되었다.

[거리의 노래]

나도 모르게

장발이 돼버린 머리를 애써 정리하고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하고

간만에 거리를 걸어본다.

아직도 나는 네 생각에

눈물이 흘러.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가

온통 내 얘기인 것 만 같아

눈물이 흘러.

언제부터 거리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슬픈 사랑이야기 뿐이었는지

떠오르는 추억에

눈물이 흘러

......

[기억 속에서]

너와 함께 있던 그 순간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기억 속에서 나는 아직도 웃어.

기억 속에서 네 곁에 있는 모습이 그리워

우리의 흔적이

가장 선명하게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너와의 기억.

나는 아직도 기억 속에서 살아.

......

[이거 이번에 제 정규앨범 2집으로 나올 곡인데요. ‘거리의 노래’와 ‘기억 속에서’ 라는 곡이에요.]

[어머, 어머, 그럼 우리가 지혁이 노래 제일 먼저 듣는 거네?]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니? 이것도 전부 자작곡이야?]

[네, 14곡 전부 자작곡이에요. 한국에는 아직 음원 공개가 안 됐을 거에요. 앨범트랙 뒤쪽에 있는 곡들이라.]

체력적으로 꽤나 고될 수밖에 없는 일정 속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지혁의 노래와 이를 감미롭다는 듯 감상하는 누나들의 케미가 상상이상으로 좋았는 데다가,

[사실 이별하고 나서는 너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가슴이 아픈 게 무뎌지게 끔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왜 차였는지, 왜 이별하게 됐는지 그 이유조차 잘 모르고 있는 거에요. 지금까지도.]

지혁이 가지고 있는, 그 나이 또래라면 누구라도 가질만한 고민과

[미애씨, 행복하세요. 항상 행복하길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어요. 정말 꼭 행복하세요.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지나가는 이름 모를 한국인 관광객으로부터 들은 위로에 펑펑 눈물을 흘리던 여장부 이미애,

[하...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마음이 복잡해지네.]

성당과 교회를 둘러본 뒤 한참동안 예배당에서 나오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던, 악화된 자신의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합류를 결정한 김자욱, 그리고 그런 모두를 위로하는 김희연의 모습까지.

하나, 둘 드러나는 출연진의 속 얘기와 서로를 위로해주는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상의 케미를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고칠게 라는 곡과 나쁜 남자 라는 곡이에요. 이번에 누나들이 제 고민 같은 걸 많이 들어주셨잖아요?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요. 그래서 여행 틈틈이 만들어봤어요. 아마, 정규 3집에 실리게 될 것 같아요. 언제 발매 될지 모르겠지만요.]

[우와! 그새 곡을 2개나 만든 거야?]

[우리 지혁이 대단하네? 저번엔 누나들 위로한다고 노래 불러주더니?]

[그래, 대견하다. 대견해.]

[뭘요. 그럼 한번 불러볼게요!]

게다가 자신의 고민을 단숨에 노래 화 하여 여행 짜투리 시간 틈틈이 위로의 노래를 들려주는 지혁의 천재적인 면모까지 더해지니 촬영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분량에 대한 걱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누나의 일정은 끝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

아무래도 여배우들의 여행이다 보니, 아름다운 누나 시리즈는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촬영에 보다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실내 촬영이 문제가 됐는데 남자들끼리의 여행에서 카메라를 10대 설치했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2~3대를 설치하는 것도 예민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점이 지금의 지혁에게는 천운으로 작용했다.

[짜랑 짜랑]

비록 짐꾼으로 유럽에 오게 된 것이지만, 마냥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다지 활동적인 편이 아닌 누나들 덕에 지혁 또한 저녁을 먹은 뒤 한 두 시간 정도는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매일, 매일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그는 카메라조차 대동하지 않은 채 스위스 거리를 관광할 수 있었다.

다만, 관광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지혁아! 씻고 있니?”

슬슬 언제나처럼 와인 한 잔을 하려는 듯 자신을 부르는 김희연의 목소리에, 침대에 쏟아낸 물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지혁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아직요, 누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서둘러 물체들을 다시금 가방 안으로 집어넣는 지혁의 손길은 빠르고 또 잽쌌다.

*

고생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출국 3시간 전 끌려왔던 지혁으로서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여행이었다.

“지혁씨, 누나들과 지난 6일간 같이 여행했는데 어땠어요?”

타의 반, 자의 반에 의해 누나들이라 부르고 있지만, 그녀들 모두 엄밀히 말해 지혁의 엄마뻘인 셈인데, 그런 그녀들과의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고민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답답했던 마음의 여유마저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제가 부모님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요.”

“아...”

“엄마가 저랑 같이 소풍가던 그때 기억도 나고 또 가끔은 누나가 있었다면 이랬을까? 라는 기분도 느꼈던 것 같아요. 한 마리도 정말 굿!”

지혁이 삼촌인 박재성의 손에 자랐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얘기를 입에 담는 게 쉽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질문을 건넨 나영식 또한 움찔하며 지혁의 눈치를 살폈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지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사실 저희가 드린 용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숙소 잡은 거며, 먹는 거며 전부 제작진 예상보다 고 퀄리티였단 말이죠? 어떻게 이게 가능한거죠?”

“사실... 흠...”

마지막 인터뷰라서 그런지, 질문의 퀄리티가 꽤나 높았다. 그동안의 여행 일정동안의 의문들을 해소할 차례여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다.

그 중에서 방금 나영식 PD가 던진 질문은 지혁으로서도 결코 들키고 싶지 않았던, 뭔가 찔리는 게 존재하는 사안이었는지라 지혁은 답변을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라는 건 그렇게 자신의 뜻대로만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런 지혁의 머뭇거리는 태도에 뭔가 있음을 직시한 나영식 PD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뭐, 이제 마지막 밤인데 뭐 있겠나요? 사실 PAYPIL이라고 ...... 숙소 값은 제 돈으로 따로 결제한거죠. 거기서 아낀 돈으로 좀 더 고급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거고요.”

답은 하나였다. 자포자기. 배 째.

“제작진분들이 먼저 저 속이셨잖아요. 출국 3시간 전에 제 지갑 뺐고 다짜고짜 표주면서 짐꾼 해야 된다고 끌고 가셔놓고선 말이죠. 그래서 저도 대책을 강구한거죠.”

“어, 어떻게 첫 여행인데 그, 그런...”

“뭐, 아름다운 할배 시리즈 보면 이시진 선배님도...”

PAYPIL이라는 말에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던 나영식 PD와 촬영 팀은 지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시진이라는 단어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하......”

“그 인간이 또...”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다니...”

여러모로 아름다운 시리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지혁의 입을 매개로하여 다시금 존재를 드러냈으니 말이다. 게다가,

“거기다가 사실 제가 저녁 먹고 한 두 시간 쯤 자유시간이 있었잖아요? 그때 버스킹 했어요. 전에 여행 왔을 때도 그렇게 해서 용돈 벌이 좀 했거든요.”

“예, 예? 그, 그럼.”

“때마침 한국 관광객 분들도 있고 해서, 수입이 제법 짭짤했죠.”

“그, 그래서 도, 동전으로 그렇게 계산을...”

“어쩐지 지폐는 안 쓰고 동전만 쓰더니...”

마지막 쐐기를 박는 듯한 지혁의 멘트에 제작진 모두가 멘탈을 수습하지 못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다.

본인이 지닌 재능으로 막대한 양의 동전을 확보하고 또한 PAYPIL의 존재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농락한 지혁의 포커페이스에 혀를 내두르는 제작진 그리고 자신들이 편하게 여행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지혁의 사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름다운 누나들이 지혁에게 얼마나 더 썼냐며 성화를 부리는 것 까지, 꽤나 알짜배기 에피소드를 남기며 말이다.

“자, 자! 혼란은 조금 접어두고! 마지막 밤인데 간단하게 파티라도 합시다! 스태프 숙소에 음식이랑 마련해뒀으니까 선생님들이랑 희연씨, 미애씨도 어서 가죠. 우리 꾀돌이 지혁이도 얼른 가자.”

그러나 혼란도 잠시,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모든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하나, 둘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자욱, 윤연정 선생님, 미애씨, 희연씨 그리고 버스킹과 PAYPIL로 제작진을 하룻강아지로 만들어버린 우리 막내 지혁이까지! 정말 시청률 대박 날 것 같습니다! 자! 건배제의 합니다! 아름다운 누나 파이팅!”

“화이팅!”

6일이라는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정과 추억을 쌓았던 만큼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이 모두에게 사뭇 크게 다가왔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았던 거네. 하... PAYPIL?"

“이시진. 그 이름을 여기에서 들을 줄이야.”

물론 그때까지도, 영식 삼촌과 다른 연출진 대부분은 PAYPIL을 되 내이며 허탈함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서로 그동안 묵혀놨던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웃고 떠들기를 한 두 시간, 그동안 고생했다며 아름다운 누나들이 먼저 방으로 들어가자 연출진들 또한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혁과 영식 그리고 막내작가 대준만을 남겨둔 채 말이다.

“지혁이 너 지금 음원 공개한 거 대박이던데? 한국에서 1위라더라.”

“음반예약도 13만장인가? 어제 보니까 벌써 그만큼이나 예약했다던데? 이야! 역시! 1주일도 안돼서 벌써 13만장?”

아무래도 촬영 내내 붙어 다녀서일까. 단 세 명만이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자, 여행 마지막 날 밤이라는 게 더욱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지난 토요일 공개된 ‘신촌거리’ 와 ‘거리의 노래’ 음원이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이동하면서 마주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축하인사와 1위 뉴스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한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벌써 예약주문이 13만장? 그건 나도 몰랐는데.

"넌 신촌도 못가고 그냥 거리도 못 다니면 도대체 어딜 가냐? 크크크크"

"에이, 그런 델 왜가요? 포이보스 휴게실 소파가 최고죠! 최고!"

"그나저나, 앨범 언제 나와? 이거 나도 예약해야 되나? 아니다 마누라가 네 팬인데 이미 예약했을라나?"

“에이, 얼른 사모님한테 전화해서 예약 안 해도 된다고 하세요. 제가 삼촌한테 말해서 음반 나오면 아름다운 누나 촬영 팀한테 전부 한 장씩 돌릴게요. 사인이랑 해서요.”

“우와! 진짜?”

모두가 지난 6일 동안 동거동락 해서일까. 알게 모르게 정이 쌓였는지라, 민재 삼촌에게 얘기해 앨범을 꼭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지혁아 근데 너는 연애 안하냐?”

그렇게 술잔이 하나, 둘 비워지자 남자들의 단골 술안주 여자 얘기가 대주 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저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하고는 싶지. 다만,

“뭐, 잘 모르겠어요.”

“뭘 몰라? 인기도 많으면서?”

“에이, 뭐야. 뜬금없이 왜 그래요?”

“아니, 궁금하잖아. 너 다빈치 김민경 씨도 그렇고 요즘 너한테 관심 표하는 연예인분들 많잖아.”

“포이보스 연애 금지 조항 같은 거 없지 않아? 그런데 뭘 몰라?”

두려울 뿐.

뭐 어쨌든 그런 내 심정과는 달리, 대준 형이 꺼낸 화제에 영식 삼촌도 관심이 동한 듯 하다. 안 그래도 뜨거웠던 술자리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르기 시작했으니까.

그나저나, 아직도 저 얘기가 나온 걸 보니 그때 전화를 받은 게 너무 후회된다. 뭔, 건덕지가 있어야 나도 억울하지 않지. 뭐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연관되는 게 나로서는 짜증일 수밖에.

“연락은커녕 번호도 모르는 데 무슨 인기가 많아요.”

“뭐? 진짜?”

“다빈치 분들 연락처는커녕 문자나 통화한번 안 해봤고요. 여배우분들은 누가 저를 언급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한 번도 연락 온 적 없어요. 그래서, 저로서는 별로 실감도 안 나고요.”

이게 뭐 그리 놀랄 일이라고 저러는지. 실제로 내 핸드폰에 여자 번호라고는 이번 아름다운 시리즈 누나들 번호와 Amiga 애들 공용 폰 그리고 지수 전화번호, Stylish 연지누나와 정아, 수아 2명이 전부였다.

고작 여자번호 10명 있는, 게다가 거기에서 Stylish 멤버들을 제외한 8명은 이성적인 관계가 아닌 만큼... 하, 나도 참 슬픈 인생이구나. 이러다 사리 나오겠다. 사리 나오겠어.

어쨌든 연애를 할래야 할 수도 없는 상태이기에 저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한숨만 나올 뿐이다. 내 연애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음.. 그것도 그렇고 일단 뭔가 버림받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요.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는 거가 아직 두렵고요.”

“연애를 하는 게 두렵다고?”

“뭐가 두려운데?”

“10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는데, 첫사랑이랑 헤어지고 석 달 동안 완전 폐인처럼 지냈어요. 몸무게는 거의 20KG이상 찌고 머리는 장발에 수염도 안 깎고 뭐 그렇게 석 달 동안 지내서 많이 실망시켜드렸어요. 삼촌한테도 그렇고 같이 데뷔를 꿈꾸던 사람들한테 도요.”

“아...”

“흠...”

“뭔가,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첫사랑한테 차이고 나서 사랑도 잃고 삶은 엉망이 됐고 꿈도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뭔가 버림받는 것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요. 마찬가지로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는 거가 아직 두렵고요.”

술도 몇 잔 들어갔겠다, 분위기도 물이 올랐겠다, 그다지 대답 못할 질문도 아니었기에 내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인 지금까지 같은 막내끼리 뭉쳐보자며 친해진 대주 형, 이제는 삼촌처럼 친근해진 영석 삼촌과 함께한 술자리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시 옆에 두었던 기타가 눈에 들어온 것은 말이다.

나도 모르게 기타로 손이 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멜로디와 가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날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줄 알았데.

내가 사랑한다 말할 땐 자신도 그런 줄 알았데.

사랑인 줄 몰랐데.

널 떠나보내야 하는데 웃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왜 눈물을 흘리는 걸까.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넌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널 붙잡고 싶은데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아.

잘 가라고 말이라도 해야 되는 걸까.

사랑이 짙어서 이별이 된 거야.

조금만 덜 사랑했었다면

날 떠나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많고 사랑이 깊어서

혼자서 이별을 맞이하게 된 거죠.

너가 떠나고나서야 깨닫게 됐어.

나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

[나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애절함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가사와 선율이 끝을 맺었다. 제법 흥미로운 주제로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작스레 기타를 집어든 지혁의 행동에 나영식과 김대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선율과 가사에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가슴 속 깊이 박힌 이 문구가 그들로 하여금 강지혁 자신의 감정에 빠져들게끔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혁아?”

노래가 끝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몇 분가량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혁은 감았던 두 눈을 뜨지 않았다. 다만, 그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을 뿐.

“애 지금 자는 거에요?”

“자는 것 같은데?”

술을 마시다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지혁의 모습 그리고 이어진 기타연주와 노래.

이 모든 것이 마치 잠깐의 꿈인 것처럼 지혁은 그 모습 그대로 잠이 들었다. 감은 두 눈에서는 눈물을 흘린 채 말이다.

“어휴, 너도 물건이다, 물건.”

“이런 건 무슨 영화에서나 나올 상황 아니에요?”

“에라, 나도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자. 대준아.”

이미 그들이 각자 마신 술병이 다섯 손가락을 넘은 상태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방금 전 노래가 남자의 술잔을 채우게 만들었고 아직 테이블에는 술이 남아있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런 그들만의 술자리를 몰래 포착하기위해 설치한 몰래 카메라가 그 순간에도 그들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다음 날 숙취 때문에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그들 셋을 뒤로 한 채 그 카메라의 촬영 테이프가 무사히 USB를 거쳐 서울로 전송됐다는 것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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