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3화 (33/502)

00033  2012  =========================================================================

“이 노래에 담긴 사연은 같은 멤버인 예원 양에게 들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예.”

자신이 작사, 작곡한 곡이 아닌 이상 상대적으로 곡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곡에 대한 몰입도부터 차이가 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노래에 발랄함이 담겨져 있는 거죠? 유나 양, 은지 양.”

아이돌 그룹 특성상, 나처럼 자작곡을 수록하고 스스로 무대를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Amiga는 다른 이들보다 한발 앞서서 준비할 수 있는 토대를 지니고 있었다. 멤버 중 한명인 예원이가 곡에 담긴 얘기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비슷한 과거가 있었음을 고백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여친이들의 노래 이해력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제법 빠른 비트와 멜로디에 휩쓸려 노래 자체가 지닌 감정을 집어내지 못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련함, 그리움, 후회 이런 감정들이 담겨야합니다. 안무에 다소 발랄한 감이 담겨있다고는 해도 그것이 노래에 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유나와 은지의 모습에 나 또한 마음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악역을 이미 자처한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달 말까지 노래에 대해서 완벽히 숙지가 끝나야지 만이 녹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녹음이 끝나야 각 파트에 맡는 안무연습을 제대로 할 것이고요. 안무는 뭐, 별 걱정 안하겠습니다. 호언장담한대로 자신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그렇죠? 시나 양?”

“예.”

내 스스로가 놀랄 정도다. 내가 시나였어도 기분이 나빴을, 그렇다고 대놓고 디스하는 것이 아닌 묘한 거슬림이 느껴지는 화법이었으니까. 물론 이런 말을 내뱉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가가 너무 컸다. 당장 시나만 하더라도 온 힘을 다해 안무에 열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니 말이다.

“다음 시간에도 이런 상태이면 대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적어도 가사에 담겨야할 감정 정도는 혼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다른 말없이 연습실을 나왔다. 디렉팅이 끝난 만큼, 애들을 조금은 보듬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애써 다잡은 마음이 무뎌질 것만 같았으니까.

[이거, 제가 나이도 많고 사회경험도 많은데 저번에는 생각이 조금 짧았던 것 같군요. 다시 한 번 사과하겠습니다. 지혁 씨.]

[Amiga만을 생각하는 저와는 달리, 대표님은 Amiga와 회사 전체를 책임지셔야한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저번에는 너무 과격하게 말씀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지혁 씨의 확신에 찬 눈빛과 말 뿐만 아니라 저 또한 느꼈습니다. 저희 애들은 시간을 달려서를 통해 비상할 것을요. 눈앞에 놓인 문제들 때문에 제가 잠시 눈이 멀었나봅니다. 그나저나, 애들하고는...]

[괜찮습니다. 언젠가는 이해해줄거라 생각합니다.]

처음 충돌 뒤 다음날, 소경진 대표님이 다시금 나를 찾아왔다. 포이보스로 직접 말이다.

이러한 행동이 다시금 내 결정을 번복시키려는 의도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얼굴을 찌뿌릴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이어진 대표님의 말에 모든 것이 내 오해임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지혁아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네가 우리 애들한테 신경 많이 써주는데, 내가 뭐라도 사주고 싶네.”

그때 이후 소경진 대표님과 나의 관계는 전과 같이, 아니 전보다 조금은 더 깊어진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어찌됐든 대표님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애들이 보니까 아직 부족한 점이 있긴 해도, 다들 잘 따라와 주고 있으니까 대표님도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그럼 밥은 언제 먹을까요? 다음주?”

“다음 주는 네가 안 되지 않, 아! 아니 그, 그래 내가 다음 주에 바쁜 일이 있어서 깜빡했네. 하하하... 내 정신머리 좀 봐라. 이, 일단 시간 알아보고 말해줄게. 오늘 수고했다. 푹 쉬어라.”

여느 때처럼 디렉팅이 끝난 뒤 대표님께 보고를 드린 뒤, 택시에 올라탔다. 말이 디렉팅이지 나에게도 이 작업은 꽤나 고 됬기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언제 잠에 빠진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

[패션잡지 VAGUE 11월 호에 강지혁이? Stylish & 강지혁 아웃도어 화보에 네티진들의 관심 급증! 우월한 기럭지로 유명한 강지혁과 Stylish의 폭풍 케미! 선주문 예약만 10% 급증!]

-하...이젠 욕도 안 나온다. 미친 연지랑 찍은 거 뭐임? 와..

-저 상태에서 안 꼴렸음 고자 ㅇㅈ?

-연지랑 찍은 사진만 프리퀄로 보여주네. 나머지 사진 보려면 잡지 사야되는거임? 하... 지른다. ㅅㅂ  강지혁 뒤질 준비해라.

[TBN 동네형님 다빈치 편 최고 시청률 3.5%기록! 김형철 공약대로 하차하나? 다빈치 김민경의 선택을 받은 강지혁의 달콤한 노래! 그러나 그는 위병소 앞?]

-ㅋㅋㅋㅋㅋ아....ㅋㅋㅋㅋ아이돌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위병소 앞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갑자기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하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졸라 웃기네 ㅋㅋㅋㅋㅋ

-ㅅㅂ ㅋㅋㅋ위병소 앞에서 누가 노래불러 미칰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강지혁 ㅅㅂ 공지연에 Stylish 거기다가 다빈치까지 ㅅㅂ 뭘 얼마나 흘리길래 이지랄?

-ㅂㅅ 관종임? 솔까 강지혁이 아깝지 ㅂㅅ 게다가 강지혁은 뭔 죄임?

저번에 찍었던 잡지화보가 드디어 발간되나보다. 인터넷 기사에 관련 기사가 뜨는 것을 보니 말이다. 뭐, 그때 못 찍었던 야외 촬영은 끝내 마무리 짓지 못했다. 나는 딱히 스케줄에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한창 중국활동으로 바쁜 Stylish 입장에서는 따로 시간을 빼는 게 힘들었나보다.

그나저나, 동네형님 저건 왜 이슈가 됐는지 모르겠다. 그 후로 희현 선배나 다빈치 김민경 씨한테서 전화는커녕 문자도 안 왔는데 말이다.

하, 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지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약간 신경 쓰였던 게, 점점 대수롭지 않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수야, 팔 좀...”

“응? 왜?”

초등학생 때부터 봐왔던 지수이지만 막상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자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마냥 지수가 어린 애가 아니구나를 깨닫게 됐으니 말이다.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물컹함을 애써 무시해보려 했지만, 도리어 그럴수록 느껴지는 감촉은 선명해졌다. 평소 헐렁헐렁한 상의만 입고 다녀서 몰랐다. 녀석의 볼륨이 꽤나... 대단하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이정도로 느껴질 정도인데 녀석이 모를 수가 있나? 하, 그런 내 속내와는 달리 지수는 여전히 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는지라 자괴감이 들었다.

진짜 쓰레기구나. 너. 어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수인데 뭐 하는 짓이냐.

뭔가 내 팔에 의해 녀석의 가슴이 짓눌러져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바짝 붙어있는 녀석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그런 내 행동이 갑작스러워서 인지 녀석이 그 큰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말이다.

“히히.”

아무리 겨울이어서 옷을 많이 껴입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요즘 여자들은 겨울에 속옷을 안 입는 것일까?

뭔가 죄를 짓는 것만 같아, 녀석의 가슴골에 박혀있는 손을 빼 보려했지만 상황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녀석이 주변 분위기 때문에 불안해서인지 내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안되겠다. 손을 빼려는 순간 느껴지는 아찔한 부드러움이 나를 더욱더 죄책감에 빠뜨렸으니까. 하, 차라리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게 마음에 들어?”

“으, 응? 그렇긴 한데... 오빠 이거 너무 비싼 것 같은데...”

10년 넘게 친 남매처럼 지내왔기에 녀석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성인이 된 순간 데뷔를 하게 된 기념으로 말이다. 뭐, 나로서는 이런 쪽으로는 아무것도 몰랐는지라 대충 백화점 매장 중 큰 곳으로 왔는데 분위기가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어떻게 오기는 잘 왔나보다.

크로스백에 달린 가격표를 보며 표정이 어두워진 녀석을 뒤로 한 채 곁에 있던 매장 직원에게 건넸다. 그런 내 행동에 녀석이 당황한 듯 내 팔을 더 붙잡아왔는지라 나로서는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르신 가방은 저희 입생로란 이번 시즌 신상품입니다. 고객님. 어느 복장에도 어울릴 수 있는 블랙 앤 화이트 계열 색상으로서 20대 젊은 여성분들을 타켓으로 나온 상품 인만큼 동생 분한테 정말 잘 어울리세요. 심플한 디자인에 크로스백 인만큼 활동성이 있는 분들도 부담 없이 사용하실 수가 있으니까요.”

“그렇죠? 지수야 이거 마음에 들지?”

“마음에 들긴 한데...”

“너 이제 곧 데뷔도 할 거고 또 늦었지만 20살도 됐으니까 기념으로 사주는 거야. 그러니까, 잘하고 다녀야 된다?”

“웅...”

“그걸로 주세요. 포장도 해주시고요.”

“원래, 별도 선물포장비가 있는데요. 제가 강지혁 씨 팬이라서요. 사인 한 장만 해주시면 그냥 해드릴게요.”

미리 준비한 것인지, A4용지와 펜을 건네는 매장 직원에게 사인을 해준 뒤 서둘러 매장을 빠져나왔다. 하... 뭔가 녀석이 잘 컸다는 점에서 뿌듯하긴 했지만 계속 그곳에 있기에는 왼쪽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너무 생생했으니까.

그렇게 지수와 저녁까지 먹고 난 뒤 아쉬워하는 녀석을 소속사에 데려다 주었다. 데뷔를 눈앞에 둔만큼 오늘 시간을 낸 것도 삼촌에게 따로 부탁해서 얻어낸 것이니 말이다.

“글쎄 요즘 시나 장난 아니라니까요? 오빠? 밥 먹구 춤 만 춰요!”

“그래?”

“저도 시나 옆에서 열심히 안무 연습했어요. 잘했죠, 오빠?”

“잘했네, 우리 지하?”

“히히히. 그렇죠?”

시간도 꽤 됐고 따로 스케줄이 없었는지라, 회사에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새길 그때였다.

순간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연습생 시절 내게 활력소가 돼줬던 지수처럼 내게 전화를 건 이는 귀여움으로 무장한 채 여동생 포스를 풀풀 풍겼으니 말이다.

디렉팅 첫날. 애들 앞에서 성진 삼촌과 충돌을 일으키고 시나를 도발한 날.

그날 저녁 내게 걸려온 전화는 꽤나 의외의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엄격하게 대한만큼 적어도 컴백 전까지 지하의 전화나 문자를 받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뭐 지금 와서는 그 전화를 무시하지 않고 받은 그 선택을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

“유진 언니랑 은지 언니도 엄청 열심히 노래 연습하고 있어요. 히히히. 예원 언니랑 소정 언니도 마찬가지구요. 뭐, 그래도 제가 제일 열심히 했으니까 지하만 칭찬해주세요. 오빠!”

귀여운 여동생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Amiga 멤버들의 전체적인 일상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빠! 다음 주에는 왜 디렉팅 안하는 거에요? 따로 스케쥴 있으세요?”

그렇게 30여분 가량을 지하와의 통화에 쏟아 부었을 때였다. 문득 들려오는 지하의 의문에 나 또한 의아함을 느꼈다. 지금 지하의 말은 처음 듣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하물며 디렉팅 일정은 전적으로 내가 정하는 것이었으니 오죽할까.

“응? 내가? 나 스케쥴 없는데? 그것보다 디렉팅을 안한다고? 누가 그래?”

“이상하네, 대표님이 다음 주에는 디렉팅 없을 거지만 연습 게을리 하지 말라하셨거든요. 뭐지...”

디렉팅 일정을 정할 때 고려할 사항은 두 가지였다. Amiga 멤버들의 행사일정 그리고 나의 스케쥴 이렇게 딱 두 개 말이다. 그렇기에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 나이기에 다음 주 디렉팅 일정에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은 Amiga 멤버들의 행사일정 뿐 일 테니까.

“대표님이 아직 별 말씀을 안 하셔서 오빠도 잘 모르겠네? 오빠가 알아보고 우리 지하한테 꼭 알려줄게. 알겠지? 자, 밤도 늦었는데 지하 얼른 씻고 자야지.”

“하... 목소리 섹시해... 갖고 싶,”

“뭐라고 지하야? 갑자기 지지직 거리네?”

“으, 응? 아, 아냐! 오빠! 오빠도 잘자요! 지하 내일도 열심히 할게요!”

지하와의 달콤한 통화가 끝난 뒤, 나는 침대에 힘든 몸을 뉘였다. 디렉팅 일정과 관련된 지하의 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이내 관련된 생각을 머리에서 날려버렸다.

어차피 확실한 사항이면 알아서 대표님이 내게 알려줄 테니까.

그나저나, 민재 삼촌도 할 말 있다고 내일 일찍 회사로 오라했는데, 뭐지?

요즘 들어 민재 삼촌 얼굴 보기가 힘들어서 일까. 나름 반가운 마음을 가진 채 배 위에 있던 이불을 끌어올렸다. 굳이 복잡한 생각할 필요 없이,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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