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2 2012 =========================================================================
[오빠! 그럼 3일 뒤에 보는 거죠?]
[응! 3일 뒤부터 본격적인 디렉팅 들어가니까 그때까지 예원이한테 이 노래가 어떤 사연이 담긴 곡인지 잘 듣고 가슴에 새겨놔야 된다? 알았지, 지하야?]
[네, 오빠! 그럼 저 이만 끊을게요!]
[응 그래! 저녁 맛있게 먹고!]
[네, 오빠두요!]
사실 저번에 유진의 생일 축하가 끝난 뒤 자리를 벗어날 때 지하가 공용 폰을 가지고 살짝 다가와 내 번호를 요구했다. 뭐 다음앨범 디렉팅을 내가 맡게 됐으니 수시로 연락할 일이 생길 것 같다나 뭐라나, 그때는 뭐 지하의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아 흔쾌히 번호를 건네주었다. 대표님 또한 이쯤 되면 공용 폰 번호를 주고받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 선택은 훌륭했다.
공용 폰으로 연습 쉬는 시간 때나 자기 직전에 종종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그녀의 행동은 내 삶의 나름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뭐, 어째서 지하만 내게 연락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지하가 막내이기 때문에 라고 추측하고 있다. 귀찮은 것은 원래 짬 낮으면 하게 되는 거니까.
가만, 그렇게 되면 나한테 연락하는 게 귀찮은 일이 되는 건가? 아닌데 그러면 왠지 내가 슬퍼지는데.
어쨌든 하는 행동부터 말투, 목소리까지 어찌나 귀여운지, 전화가 끊겼지만 내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았다. 문제는 방금 전 통화와 미소를 지켜본 이가 있다는 것이다.
“뭐야, 예원? 지하?”
“응? 아! 너도 Amiga 알지? 그 멤버들이야. 지하랑 예원이.”
“아주, 아주 입 꼬리가 귀까지 걸려서 안내려오던데? 그렇게 좋아? 지금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동생이 눈앞에 있는데?”
내가 입 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나보다. 지수가 대놓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나도 변명할 거리는 많다. 행동과 목소리가 귀여움으로 일치될 정도로 지하는 딱 내가 가지고 싶은 여동생 유형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뭐, 지수 너도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요즘 들어 조금 낯설다. 분발하도록 해.
“예쁘고 귀여운 동생이 맞지. 평소에는 연락도 안하다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을 때 갑자기 쳐들어오는 예쁜 내 동생 지수. 게다가 친구까지 데려, 아! 체이 씨한테 한 소리는 아니에요.”
“Amiga랑은 벌써 말도 튼 거야?”
흐름을 타다 괜히 말실수할 뻔 한 것을 겨우 수습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지수의 행동에 문득 내 입가에 미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보니 우리 귀염둥이 지수 설마 질투?”
“뭐, 뭐?”
“오빠가 또 지수 놔두고 다른 동생들만 귀여워 해줄까봐, 지금 질투하는 거 같은데?”
“뭐, 뭐래.”
이게 바로 사이좋은 남매에게서만 드러난다는 오빠 나만 귀여워해줘야되 인 듯 싶어, 살짝 찔러보니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나보다. 데뷔 준비 때문에 바빠 나와 연락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본 내가 지하랑 꽤나 친해보였을테니 말이다.
“체이씨 생각은 어때요?”
걱정마라, 지수야. 오빠는 지수를 버리지 않아. 우쭈쭈. 하지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좀 더 지수를 놀려볼 생각에 나는 가만히 옆에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던 체이씨에게 화두를 던졌다. 뭐, 노잼, 노센스가 아닌 이상 이정도 토스는 받아먹겠지.
자! 지수한테 한방 갈겨주라고요!
“나도 오빠할겁니다. 내 첫 팬! 나도 오빠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렇죠? 지수가 질투, 예, 예?”
“오빠! 체이 족발 먹고 싶어요.”
뭐야, 이거. 토스 받아서 지수 쪽에 넘기랬더니 내 쪽으로 강스파이크를?
*
“어? 언니!”
“다, 다희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갑작스레 오빠라 부르며 족발을 먹고 싶다며 말을 놔버린 체이 씨 때문에 나도 모르게 보쌈과 족발 둘 다 시켜버렸다. 그것도 특대짜리로다가. 하, 이런 거 보면 나 확실히 즉흥적이다. 체이 족발 먹어, 보쌈도 먹어. 다 먹어.
“지수 언니! 체이만 데리고 나가더니 둘이서만 족발 먹으러 간 거였어? 와 개 실망!”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이쁜 동생 하나 더 생긴 크리스 치자며 애써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던 찰나, 내 눈에는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선 안 될 상황이 벌어졌다.
“그, 그러는 넌!”
“나? 나야 숙소에서 외롭게 있다가 재연 언니랑 나정 언니가 나가서 뭐라도 먹고 오재서 여기 온 건데?”
여기가 Trendy 숙소와 가까운 곳이었던가. 아니다 분명히 포이보스와 가까운 족발집이다. 헌데, 숙소에 있다가 여기까지 올 정도면 경우의 수는 딱 세 가지다. 숙소가 이곳과 가깝거나 아니면 여기가 정말 어마무시하게 맛있는 맛 집이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우와! 족발에다가 보쌈까지? 지수 언니가 쏘는 거야? 어? 여기 이분은 누구...?”
뒤쪽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닥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다희 양의 관심은 내가 누구인지로 옮겨갔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모른 척 할 수는 없는지라, 나는 고개를 돌려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다희 씨.”
“어, 어?”
문고리를 잡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다희 양에게,
“재연씨, 나정이도 같이 오셨네요.”
그런 다희 양 뒤에서 궁금하다는 듯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내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얼굴이 굳어버린 재연, 나정 두 명에게 말이다.
“우와! 강지혀,”
[읍윽]
“하하... 그렇게 큰 소리내시면 조금 곤란해서요. 족발드실거면 같이 드실래요? 저희 쪽이 조금 많이 남을 것 같아서요.”
편하게 오빠소리 들으며 배를 채우려던 내 계획은 초장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오빠, 막국수가 뭐에요?”
“예?”
“어?”
“응?”
너무나도 다행스럽게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괜히 한 팀이 되어 데뷔를 하려는 게 아닌 듯, 각자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얘기를 나눴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말없이 젓가락질만 열심히 할 뿐이었지만.
그러던 중 갑작스런 체이의 질문에 나는 입속에 집어넣으려던 배추쌈을 다시금 접시에 내려놓았다.
뭐야,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됐나? 어떻게 된 게 막국수를 몰라?
“족발은 알면서 막국수는 몰라?”
“네, 오빠!”
너무나도 당차게 족발은 알면서 막국수는 모른다며 말하는 체이의 행동이 웃기면서도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다희 양과 나정은 그보다 다른 것에 놀랐나보다.
“뭐야, 체이 너 강지혁 선배님한테 왜 오빠라고 불러?”
“이 인간이 체이한테!”
임나정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네 말마따나 그런 식으로 반응해버리면 왠지 내가 체이한테 오빠라 부르라고 강요한 것 같잖아.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내 첫 팬! 나보다 나이 많아! 그래서 오빠라고 부르고 싶어서 허락받았어.”
“헐, 대박...”
“너 체이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체이는 안돼!”
도대체 나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길래 이런 식의 반응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체이 같이 이쁜 애가 오빠라고 불러주는 게 싫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체이가 원해서 허락해준 것뿐이다.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고.
“오빠, 오빠는 컴백 언제 해? 그때 정규앨범으로 컴백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였다. 지수가 혜성같이 등장해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구해준 것은. 역시나 내 사랑스러운 동생 지수야 사랑한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틈새를 공략한 지수의 질문에 모두의 관심사는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듯 했다.
“이번해 말이나 다음해 초쯤에 앨범 낼까 싶어. 정규로다가. 이미 녹음은 다했는데, 음반 재고도 있고 디렉팅 문제도 있어서 조금 미뤘어.”
“디렉팅?”
“아! Amiga 다음 앨범 타이틀 곡 녹음이랑 안무 디렉팅하게 돼서 아! 시나 솔로곡도 하나 있구나. 뭐 어쨌든 그게 초반부가 조금 중요해서 그거 조정 좀 하고, 나 컴백하려고.”
화제를 바꿔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구해진 지수에게 보답도 할겸, 나름 성심성의껏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었다. 지수가 아닌 일간지 기자에게 답변했다면 연예지 메인 뉴스들 중 하나로 다뤄질만한 사항을 곁들여서 말이다.
“Amiga? 또 Amiga? 치! 우리한테는 곡도 안주더니!
“오빠 Amiga 덕후야?”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나보다.
내가 만날 때마다 Amiga 얘기를 해서 그런가? 하긴, 안면이 있는 아이돌이라고 해봤자 손에 꼽는데다가 말까지 놓은 아이돌은 Amiga가 유일하니,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만도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체이야, 너 그렇게 예쁜 얼굴로 덕후니 뭐니 하는 거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니? 나 원 참.
그렇게 덕후니 뭐니 하며 Amiga 얘기 그만하라는 지수를 달래기 위해 필살기를 썼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제법 탁월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동생 지수 최고라고 말해주니 녀석도 잠잠하니 다시금 젓가락을 집어 들었던 것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사태가 일단락되나보다 싶었던 그때였다.
“Amiga 선배님들은 키도 크고 몸매도 좋으시니까 그런 거겠죠? 애교도 많으신 것 같고 귀여우시니까요.”
“예?”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태가 끝난 마당에 갑작스럽게 다희 양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다. 뭐지, 갑자기 왜 오한이 드는 거지?
“그때 재연언니가 인터넷에서 봤다고 한 지혁 선배님 이상형이요. 키 크고 다리 날씬하고 몸매 좀 되는 여자, 나한테만 애교 부려주는 여자. 뭐 이런 거요. 기억 안 나세요? 우리 초밥 먹을 때요.”
[키 크고 다리 날씬하고 몸매 좀 되는 여자. 겉은 세 보이는데 속으로는 여려서 지켜주고 싶게 만드는 여자. 다른 남자한테는 철벽인데 나한테는 애교도 부리고 바, 밤에는 요염하기도 한 여자. 방치해도 나만 바라보고 있어줄 여자.]
기억이 안날 리가 있나. 그때의 그 눈빛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좀처럼 잊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그런데요 선배님. 제가 선배님 열혈 팬이라서, 선배님 이상형에 대해서 좀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런데요. 어디서 이상형 관련된 인터뷰했는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안 나오는데 재연언니는 자꾸 대답을 피해서요.”
도대체 그 때 얘기가 왜 또 나오냐는 것이다.
“하...”
내 돈 쓰면서 저격당하는 느낌. 너무 익숙하다. 스나이퍼가 다희 양이라는 것 자체도.
“그래서 체이한테도 오빠라 불러도 된다, 허락하신거에요? 치! 너무하세요. 저도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데.”
다희 양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래요? 네?
*
[아! 재연 씨가 본 건 아마도 인터넷 루머 같아요. 제가 데뷔 후부터 별다른 방송 활동을 안하다보니까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루머가 많거든요.]
요즘 들어 저격당하는 일이 많아서일까. 쓸데없이 임기응변만 늘었더니 거짓말도 제법 잘하게 된 것 같다. 나도 놀랄 정도로 다희 양의 저격을 회피했었으니까.
[거짓말.]
하지만 아무리 그런 나일지라도, 그녀의 한 마디 시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작디작은 목소리로 한 말이라 나를 제외한 누구도 듣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들었지만 모른 척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 한 것은 그녀의 말에는 뼈가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이거 정말! 안무랑 음악이 잘 어울립니다. 완벽해요! 완벽!”
의도치 않게 자꾸만 그녀와 마주치는 상황을 겪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서 더욱 그때가 기억나고,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되 내이는 것 같다.
“후... 그런데 안무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희 애들이 잘 할 수나 있을 런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또 그때를 떠올렸나보다. 서둘러 고개를 흔들어 그때의 기억을 애써 날려본다. 개인시간도 아니고 작업 중 이러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5분 내로 애들이 올 겁니다. 그때 한 번 더 봐봐야겠습니다.”
JS 안무 팀과 맞춰보았던 시간을 달려서 안무 영상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소경진 대표님의 입에서 약간의 걱정이 담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게 삼촌과 JS안무 담당 트레이너도 소경진 대표님과 같은 걱정을 했으니 말이다. 물론 삼촌은 Trendy 애들이라면 충분히 해낼 거라며 곡을 자신에게 넘기라했지만.
그렇게 소경진 대표님 말마따나 Amiga 멤버들이 몇 분 뒤 연습실에 도착하였다.
“우와! 노래 너무 좋아요!”
“대박!”
“이곡이 저희 컴백 곡 맞죠? 정말이죠?”
“히히히히히힣힠힠히”
그리고 멤버들의 반응 또한 소경진 대표님과 그닥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하면 더했다. 좋다며 또 방방 뛰기 시작했으니까.
“그럼 첫 시간인 만큼 Amiga 분들의 다음컴백까지의 준비과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친분여하에 관계없이 디렉팅 시간에는 존대할 예정이니 같이 따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경진 대표님과 직접 노래와 안무를 담당하게 될 멤버들의 반응이 좋으니 더 이상 디렉팅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컴백 준비를 하기에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네......”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내 태도에 신나게 방방 뛰던 멤버들이눈치를 보며 내 앞에 일자로 섰다.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내가 디렉팅을 맡는다는 사실에 약간의 편안함을 기대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없었다. 설렁설렁해서는 가요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고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으니까.
반면, 대표님은 오히려 이런 내 태도가 마음에 드셨나보다. 아무래도 사업적인 시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대표님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이런 태도가 합당하다 여겨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살짝 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보니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신가보다. 표정은 밝았지만 말이다.
“시간이 달려서는 4가지의 주된 안무 포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르기 쉽게 저는 일명 짝사랑 춤, 타임머신 춤, 발레, 도미노 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기 지혁 씨 잠시만요.”
그리고 나의 이러한 눈썰미는 이에 상응하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예?”
“그게, 안무를 조금만 수정하면 안 되겠습니까?”
갑작스런 소경진 대표님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소경진 대표님이 안무의 난이도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Amiga보다 한발 앞서 안무 영상을 확인했을 때 그러한 우려를 내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이미 계약을 한 상태인 만큼 디렉팅은 전적으로 내 책임하의 것이었고 따라서 소경진 대표님의 이러한 태도는 내 디렉팅에 대한 무시와 계약사항 위반으로 비춰질 수 있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자신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확신합니다. 이 안무로 시간을 달려서를 부를 수 있다면 내년 상반기는 Amiga의 해가 될 거라고요. 좀 전까지 대표님도 마음에 드신다고 그러셨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여자그룹이 하기에는 동선도 너무 복잡하고 안무 자체 난이도도 상당합니다. 우리 애들이 잘 따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회사 사정상 내년 1월 중순에는 무조건 컴백을 해야 되니까요.”
소경진 대표님이 안무에 특별히 관심을 쏟는 이유를 모르지 않다. Amiga의 첫 데뷔곡 안무가 표절과 관련된 논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는 지나친 처사였다. 더군다나 소경진 대표님은 단 둘만의 공간에서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에 더 이상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예원 양, Amiga 멤버들 중에 메인댄스는 누구 담당입니까?”
조금은 민감해진 분위기에 괜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친이들 가운데 갑작스레 내게 호명된 예원이가 당황한 가운데 입을 열었다.
“으,응? 아! 예! 메인댄서는 시나입니다!”
그래, 시나라 이 말이지.
“좋습니다. 대표님. 제가 한발 양보하겠습니다.”
소경진 대표님은 설마하니 내가 이렇게 강경하게 반대 의견을 낼 줄 몰랐을 것이다. 그동안 나의 이런 모습을 전혀 보지 못 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발 양보한다는 나의 말에 소경진 대표님의 얼굴이 일시적으로나마 밝아졌다. 내가 끝까지 양보를 안했다면, 상당한 고민을 동반하여 추가적인 결정 즉, 위약금을 내고 계약을 해지하든지 아니면 나를 믿어볼지를 결정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대표님의 얼굴에서 시나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모든 결정은 이 소녀가 내릴 테니까.
“시나 양이 자신 없다고 하면 안무를 최대한 쉽게 수정하겠습니다. 뭐, 컴백까지 몇 달이나 남았는데, 팀에서 댄스를 맡고 있는 멤버가 자신 없을 정도면 제가 아무리 강요한다고 해도 안 되지 않겠습니까?”
소녀 또한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결정의 추가 된 것을 그리고,
“Amiga의 역량이 겨우 그뿐인 것을.”
소경진 대표님의 말에 화가 나야 될 사람은 정작 내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내 앞에 거울이 있었다면 참으로 볼만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내 표정은 저들 입장에선 얄밉고 또 충격적일 테니까.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녀들과의 친분이 어긋날지라도 나는 이 길이 맞다 생각하니까. 나에게도, 그녀들에게도.
“할게요. 할 수 있어요.”
“시, 시나야!”
“어, 언니!”
“시나야!”
그런 내 말투와 표정에 담긴 진심을 몰라도 된다. 단순히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발끈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어찌됐건 갑작스런 자신의 대답에 당혹스러워하는 대표님과 멤버들을 뒤로한 채 나를 바라보는 시나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으니까.
오늘은 더 이상 디렉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분위기도 그렇고 나 또한 할 마음이 사그라들었으니까.
“답은 나온 것 같습니다. 대표님께서 처음 저를 믿어 계약을 해주신 만큼 끝까지 저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입니다. 분위기가 이러니 본격적인 댄스 디렉팅은 다음 시간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때까지 노래에 익숙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마음을 애써 숨긴 채 연습실을 나왔다.
“자, 잠깐만 지혁 씨! 다시 한 번 생각을,”
그런 나를 뒤 쫒아 소경진 대표님이 달려 나왔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길지 않았다.
“시나양의 말처럼 Amiga는 확실히 안무를 마스터해낼 겁니다. 저는 애들을 믿으니까요. 헌데, 정작 대표님께서는 Amiga 멤버들을 믿지 못하시나보군요.”
아이돌인 이상, 돈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돈이 되는가, 돈이 되지 않는가. 슬프지만 이 문제자체가 아이돌의 존재자체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소경진 대표님의 태도가 이해가 된다. Amiga에 모든 것을 베팅한 스타뮤직의 사정상 앨범 한 번의 실패가 회사의 실패로 귀결될 테니까. 하지만 싫다. 이런 게 이해되는 내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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