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0화 (30/502)

00030  2012  =========================================================================

[우아하게]

......

내가 꼼짝 못하게

날 우아하게 만들어봐

솔직 담백 진심 없는 내숭

Bye Bye Hah

우아하게

내가 더 이상 아무말 못하게

날 우아하게 만들어봐

말 뿐인 가식 말고

진심이 느껴지게 Hah

우아하게

데뷔가 코앞이라고 하더니, 추진력이 장난 아니다. 벌써부터 데뷔곡을 정해놓고 안무연습을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눈 뒤 삼촌은 나를 이곳으로 안내했다. 한참동안 안무연습을 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녀들이 있는 연습실로 말이다.

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냄새까지 맡아야 된다는 게 슬프다. 창문 좀 열고하지.

그런 내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삼촌이 등장하자마자 Trendy 멤버들이 일렬로 기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정, 지수 그리고 재연이 앞으로 나와 볼래?”

어느 정도 멤버들의 숨이 고르게 되자마자 삼촌이 몇 명을 호명했다. 딱 보아하니 나름 보컬라인 인 것 같은데, 9명 중에 보컬라인이 3명밖에 안된다고?

“각자 자신있어하는 걸로 한 곡 불러볼래? 1절만 불러도 되니까 말이야.”

Trendy 멤버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삼촌으로 인해 한 눈에도 긴장한 듯 했다. 그런 와중에 따로 호명된 세 명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고 말이다.

아무래도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삼촌에게 많이 데였나보다. 나에겐 삼촌이라 할지라도 저들에게는 사장님이자 자신들의 데뷔를 책임지고 있는 피디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다짜고짜 앞으로 나온 세 명의 노래가 끝나자 삼촌이 흘끗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 또한 삼촌의 그 눈빛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일단 지수 목소리랑은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지혁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 곡은 애초에 지수처럼 목소리가 굵은 타입에게는 그다지 어울리는 곡이 아니었다. 곡을 만들 때부터 곱고 미성에 가까운 목소리를 염두에 둔 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삼촌의 시선 또한 지수가 아닌 나정과 재연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면 어쩌라는 말인지. 나 지수한테 미움 받기 싫어하는 남잔데 말이야.

“왜, 저 셋만 부르는 건데?”

지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할 겸, 선택지가 9개나 있는데 어째서 셋의 노래만 듣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 겸 다른 질문으로 맞받아치자 삼촌이 너무나도 쉽게 그 이유를 풀어놓았다.

“지수는 메인보컬이랑 나정이는 리드보컬 그리고 재연이는 서브보컬이니까.”

“나머지는?”

“다희랑 채영이는 랩 파트고 민아, 수나, 미미 그리고 체이는 외국에서 온 애들이라 아직 한국어 발음이 어색해. 그러니 재연이, 나정이, 지수뿐이지.”

어째서 3명만이 나와서 테스트를 봤는지가 명확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멤버들은 노래를 소화해낼 능력이 안됐던 것이었다. 뭐 저 외국인 4인방은 아예 그런 것과 상관없이 배제시킨 것 같지만 말이다.

이렇게 재성 삼촌이 골라 준대로 재연이나 나정이 중 하나로 꼽는 것도 괜찮아보였다. 물론 뽑는다면 난 무조건 나정이를 뽑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런 선택을 하기 전에 하나 집고 넘어가야할게 있었다. 애초에 내가 살짝이나마 염두에 두었던 이가 존재했으니까.

“민아라는 분도 발음이 안 좋아?”

갑작스런 내 선택지에 삼촌도 조금은 당황한 듯하다. 대충 지금 상황이 어째서 일어났는지 파악한 그녀들도 그렇고 말이다.

“말은 많이 안 나눠 봤는데, 저번에 보니까 목소리가 정말 곱던데.”

“민아? 흠...”

자신의 이름이 불러지자, 의외로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그래도 가수인지라 욕심이 나나보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와 재연이의 옆에 서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일단 재연, 나정, 민아 셋 중에 하고 싶은 사람, 안하고 싶은 사람 뽑아야 되는 거 아냐? 하기 싫다면,”

“신인이 그런 선택권이 어디 있어. 3년 차 때까지는 해주는 대로 해야지, 무조건.”

아이돌 세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다. 가수가 노래를 선택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말이다. 조금 꺼림칙한 삼촌의 발언이었지만, 나로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삼촌이라면 이유 없이 저러지는 않을 테니까.

“나정 그리고 민아씨, 재연씨를 포함해서 Trendy 멤버 분들 전체적으로 한번 들어 봐주세요. 삼촌 말도 일리가 있고 또 그 말에 따르셔야 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다라고 의견제시정도는 가능하잖아요? 그렇죠, 삼촌?”

뭐, 그래도 의견제시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라는 의견 말이다. 삼촌 또한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수용하고 말고는 삼촌의 재량일 테니까.

[좋은 사람]

......

네가 웃으니 나도 웃을게.

네 옆에서 웃고 있는 그를 보면

저절로 초라해지지만

네게 잘하라는 말 밖에

널 울렸던 그를

대신할 수 없는 나

네가 웃으니 나도 웃을게.

넌 아니었겠지만,

널 보며 웃었던 날, 널 보며 슬펐던 날

내겐 언제나 행복이었어.

나는 어찌돼도 상관없어.

너를 지켜볼 수만 있다면 난

항상 널 기다리는 널 그리워하는

그게 내 운명인걸.

애초에 남자가 불러도 무리 없는 감정과 가사를 지닌 노래이기에 나 또한 어렵지 않게 선율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내 수록곡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자분의 사연으로 만들어진 곡이지만, 내 목소리는 물론이고 승현이, 크리스와도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던 게, 회식자리에서 얼핏 들었던 민아 양의 목소리였다. 비록 남자가 아닌 여자이지만 그녀의 목소리라면 진심이 담긴 위로를 그 남성분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삼촌, 근데... 뭘 하더라도 창문 좀 열고하면 안 돼? 땀 냄새가...”

참고 그냥 버티려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말 한건데, 왜 다들 나를 째려보는 건지 모르겠다. 본인들은 땀 흘리고 있으니 모른다지만 나는 아닌데 말이다.

*

“그럼 예정에는 없었지만, 이번 미니앨범에서 민아는 솔로 곡까지 준비하게 됐어. 정말 좋은 기회니까, 민아는 최선을 다해야한다. 알았지? 한국어 발음 연습도 많이 하고?”

“네!”

결국 민아 양이 내 곡을 불러줄 멤버로 확정되었다. 다행인 것은 내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고 삼촌이 말해줬다는 거다. 아무래도 내 행동과 말에서 민아를 점찍어두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나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리도 척척 일이 진행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의외인 것은 재연이었다. 나정이와 함께 끝까지 이 곡을 하고 싶다고 의견을 어필했으니까.

“일단, 프로듀싱은 제가 아닌 박재성 PD님이 해주실거에요. 그래도 제가 직접 이곡에 담긴 사연을 알려주고 싶은데, 삼촌 잠깐 민아 씨랑 식사라도 같이해도 돼?”

가사와 선율을 이해라고 공감하며 몰입했을 때 비로소 그 노래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내 경험상 민아 양에게 관련된 속 얘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다행히 마침 저녁시간인지라, 삼촌도 내 부탁을 허락해줬다. 문제는,

“치.”

이 모습을 잘 삐지는 귀여운 여동생이 봐버렸다는 것이지만.

“애들아 오늘은 오랜만에 먹고 싶은 걸로 저녁 먹고 들어가서 좀 쉬어라. 그렇다고 너무 많이는 먹지 말고!”

그렇게 삼촌이 추가된 곡으로 인해 변경된 앨범작업을 조율하러 자리를 벗어나자, 나는 민아 양에게 다가갔다.

“혹시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아! 일본에서 오셨다고 했으니까, 우리 초밥 먹으러 갈까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악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기에 나답지 않게 먼저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 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낯을 가리는 데 말이다.

“네!”

다행인건 민아 양이 곱디고운 목소리와 외모처럼 마음씨도 고와보였다는 것이다.

“치......”

옆에서 자꾸만 치치 거리는 꼬맹이 한명만 아니었으면 바로 연습실을 벗어났을 것이다. 옆에 있던 민아 양도 말은 안 해도 내심 신경 쓰이나 보다. 꼬맹이 뿐 만 아니라, 멤버들 전체를 힐끗힐끗 쳐다보니 말이다.

어휴... 어쩔 수 없지.

“나머지 멤버 분들도 같이 가요.”

그래도 귀엽디 귀여운 지수가 속해있는 그룹인데, 밥 한번 사주는 것도 좋겠지.

“따로 편하게 드실 수 있게 해드릴 테니까 불편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내 존재가 꺼림칙하게 느껴질 이들도 있을 것이게 보험을 걸어놓은 채 연습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야 잘 먹었다는 소문이 돌지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아, 물론 그 전에,

“그리고 밥 먹으러 가기 전에 샤워라도 좀 하고 가면 안 될......”

“오빠!”

“야!”

“서, 선배님!”

좀 씻어라. 밥 먹기 전에 토하겠다. 그런데 방금 누가 ‘야’라고...?

*

“어? 선배님 재연 언니 와사비 잘 못 먹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예, 예?”

“재연 언니 와사비 잘 못 먹는 거 어떻,”

“예?”

“재연 언니랑 전부터 알고 계셨어요? 아! 재연 언니도 연습생활을 오래 했,”

“네?”

“예?”

이거 갑자기 무슨 전대미문의 팀 킬이지? 나 지금 내 돈으로 밥 사주러 왔다가 저격당하는 건가?

마침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인지 뒤늦게 방에 들어오려던 다희 양의 갑작스런 발언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메뉴판을 손에서 놓쳐버렸다. 덕분에 주문을 받으러 오신 분이 다급히 메뉴판을 받아내셨고 말이다.

덕분에 다희 양의 발언을 들은 Trendy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이미 충분히 당황했지만 여기서 실수했다간 괜히 상황만 복잡해질 뿐이다. 그렇게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의아한 듯 다희 양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세요?”

“아! 초밥 세트 주문할 때 1개는 와사비 조금만 넣어달라고 하셔서요. 재연 언니 초밥은 좋아하는데 와사비 많이 들어가면 잘 못 먹거든요. 원래 매운 거 잘 못 먹으니까요, 그거 알고 그러신 거 아니에요?”

째끄만 게 저렇게 초롱초롱 한 눈으로 사람을 죽이려들다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나보다. 그저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나온 말이었는데 그걸 잡아내니 말이다.

“아, 재연양도 매운 거를 못 드시나 봐요? 사실 제가 와사비를 잘 못 먹어서요. 그래서 따로 주문한 건데. 다희 양 아니었으면 실 수 할 뻔했네요. 재연 양 것도 와사비 적게 넣어달라고 해야겠어요.”

나름 자연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유연하게 대처한 뒤 옆에서 기다리던 종업원에게 서둘러 주문을 했다.

“스시 삿뽀로 세트 10개 주시는 데 2개는 와사비 적게 넣어주세요.”

그나저나, 나 자극적인 입맛이라 와사비 없으면 스시는 커녕 회도 비려서 안 먹는데. 하...

내심 한탄을 하며 자리에 돌아와 앉자, 어느새 Trendy 멤버들의 시선은 내게 쏠려있었다. 뭐야, 나 나름 자연스럽게 대처했는데 무슨 눈빛들이 이래?

“오빠 돈 많아?”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눈빛은 그저 나에 대한 호기심이었나 보다. 물론 내가 당황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허접한 연기로 보였겠지만.

“나? 갑자기 그건 왜?”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지수의 질문에 찔린 마음을 감추며 표정관리에 애썼다. 다 소용없는 짓이지만 말이다.

“여기 비싸잖아.”

“민아 씨가 초밥 드시고 싶다 해서.”

비록 내가 곡을 주는 입장이지만, 사연이 깊은 노래인 만큼 부디 잘 불러줬으면 한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다만 불청객이 너무 늘어서 문제지만 말이다.

어째 됐건 민아 씨가 일본인 인데다가 나도 스시를 좋아하기에 이곳에 온 것인데 왜 불청객이 불만을 표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당황한 나를 구원하기위해 질문을 던져준 배려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말이다.

“여기 말고 싼데도 많잖아! 이 바보가!”

“얼만데?”

“얼마인지도 모르고 지금 주문한 거야?”

지수 너는 지금 내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걸 물어보니? 내가 그 상황에서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주문을 완료한 것 자체가 대단한거다.

“으구! 지금 지수가 오빠 걱정해주는 거야? 대견하네, 우리 지수? 오빠 1집 몇 장이나 팔린 줄 알아?”

그래도 지수가 뭐라 하니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제야 드디어 내 여동생 지수가 보이는구나. 예전처럼 귀여운 모습은 좀 줄어들었다만.

“그치만!”

“몇 달 전에 최종 집계 낸 거 보니까, 86만 몇 천 장 팔렸더라. 거기다 오빠 음원도 잘나간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먹어. 귀여운 동생 맛있는 거 사줄 돈은 있으니까. 그리고 민아 씨도 맛있게 드세요. 일본 음식 많이 드시고 싶었을 텐데.”

“치... 말은 잘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뭐, 나오면 얼마나 나왔겠는가. 평소에도 김밥헤븐만 가는데 이번 기회 아니면 이런 음식 먹을 기회도 없다.

그렇게 각자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들어왔다. 일본 음식점이 맞는 지  모를 정도로 큰 나무판이 연달아서 들어오는 바람에 나 또한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뭘 시켰는데, 저 큰 나무판에 스시가 가득인건지. 멤버들 또한 자신들 앞에 놓여 진 큰 나무판과 그 위에 놓여있는 스시를 보더니 놀란 듯하다.

“삿뽀로 세트에는 훗카이도 윗 지방에서 손낚시를 통해 잡히는 참치 스시를 메인으로 하고 있으며 그 밖에 오징어, 전복, 방어, 광어, 장어, 도미, 청어 알 스시가 각각 3PS씩 담겨져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모든 서빙이 끝난 것인지, 종업원이 밖으로 나가자 방안은 어색함으로 가득 찼다.

이거 한 사람이 한 세트를 다 먹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딱 보니, 2~3인이 1세트씩 먹는 것 같은데 말이다. 뭐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시켰으니 맛있게 먹어야지. 정 안되면 싸가는 것도 있으니 일단 얼어있는 Trendy 멤버들 좀 녹여야겠다.

“오늘 삼촌이 먹고 싶은 거 먹어도 된다했으니까, 다들 맛있게 드세요! 남으면 포장해달라고 하면 되니까, 남기기 싫어서 꾸역꾸역 드시다 체하지 마시고요!”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いただきます”

그나저나, 하... 참치가 메인인데 와사비를 못 먹는다고 했으니, 한숨만 나온다. 이제 와서 간장에 와사비를 조금 더 넣거나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자리도 어떻게 된 게 딱 중간이라, 밑장 빼는 것도 불가한 만큼 애써 착착한 마음을 다스려본다.

먹어도 먹는 게 아니다. 햄버거를 먹는 데 탄산을 안 먹는 기분, 후추 안 들어간 까르보나라, 케첩 없는 감자튀김. 주변에서는 맛있다면서 사진 찍고 먹고 난리인데, 나만 죽을상이다. 물론 겉 표정은 그대로지만.

그런데 그때였다. 나는 보았다. 내 앞에 놓여 진 나무판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젓가락이 오가는 것을.

뭐냐는 듯 말없이 바라보자, 녀석이 모른 척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또 슬쩍 자기 스시를 내 것과 바꾸고 말이다.

하여튼 이해심 많고 속 깊은 것은 알아줘야한다. 겉모습도 전과같이 여전히 토끼인데, 성격도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녀석이 하나, 하나씩 바꿔준 스시를 한입 베어 물자 그제서야 내 입가에도 만족의 미소가 자리 잡았다.

손님의 요구를 너무 잘 반영해주신 요리사분 덕에, 내 스시에는 와사비라고는 좁쌀만큼 들어있었으니 말이다. 간장도 생간장이니 솔직히 아무리 맛있는 스시라고 하더라도 비린 맛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녀석의 배려로 나 또한 즐거운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귀여운 녀석 나중에 머리나 제대로 쓰다듬어 줘야겠다.

어느 정도 스시를 입에 집어넣고 나자, 나는 이곳에 오게 된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건너편의 민아 양도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듯 했으니 말이다.

“몇 주 전에 토크 콘서트를 했어요. 그때 첫 번째 공연 때 남자분이 들려주신 얘기가 이 곡의 모티브가 됐어요. 사실 남자가 부를 수도 있고 또 남자가 부르는 게 그분을 위로하기에 더 좋겠지만, 아쉽게도 제 주위에 이 노래와 맞는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렵사리 삼촌한테 부탁해서 민아 씨에게 컨택 한 거에요. 민아 씨가 부르는 이 노래라면 그 분에게 큰 위로가 되겠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좋아했어요. 5년 동안요. 그냥 지켜만 보는데도 좋았을 정도로요. 사실 제가 저번 주에 생일이었어요. 전역 한 후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었는데, 개가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더욱 특별했어요.]

[그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칼질도 하고 와인도 먹었어요. 저도 남자라서 그런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용기내서 고백해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그때 친구 곁으로 누군가가 오더라고요. 그리고 소개받았죠. 남자친구라고... 제가 가장 친한 친구여서 남자친구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네요. 제 생일 날에요.]

[기다렸던 그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요. 주변 친구들은 바보 같다고 했지만.]

“최선을 다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저녁식사는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뇌물이에요.”

원래부터 감성이 풍부한 것인지 아니면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깔깔거릴 때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얘기를 들은 Trendy 멤버들의 눈시울이 조금이나마 붉어져 있었다.

“수나는 너무 슬퍼. 너무 자닌해...”

“앞으로 그 사람은 생일이 될 때마다 그 기억이 떠오를 거 아냐? 여자가 너무해...”

“민아가 열씨미 열씨미해서 꼭 그 남자 분 위로해주겠어요!”

뭐, 이런 분위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대로 저녁식사를 계속할 경우 체할 것만 같아 애써 분위기를 다잡아본다. 그게 실수였지만.

“선배님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그 1집 여자 분이랑 헤어지고 나서 혹시 다시 재회하신 적은 있으세요? 그 후에 새로 여자를 사귀신 적은 있으세요?”

다운된 분위기를 살려보고자, 무엇이든 물어봐요 를 시전 한 내게 또 다른 시련이 다가왔다.

하, 다희 씨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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