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9 2012 =========================================================================
“잘 먹겠습니다!”
콘서트와 앨범작업으로 인해 간만에 바쁜 생활을 보내서일까. 간만에 찾은 한우 집에 내 마음이 푸근해졌다. 단지, 내 예상보다 동행이 많아졌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우와! 잘 먹겠습니다!”
그동안 내 자신이 꽤나 바쁘기도 했고 삼촌도 회사일이다 뭐다 해서 바빴기에 서로 얼굴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애들아! 많이 먹어라. 계약도 다 마무리됐고 이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컴백준비 할 테니까!”
그래서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물론 나는 이제 시간이 흘러넘쳤지만.) 마련한 식사자리이건만, 안면이 있다고는 하나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들이 합류해버렸다. 얘기하는 김에 춤에 관한 것도 더 물어보려했는데 말이다.
“네!”
이거 보아하니 이 자리에서 삼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포기해야 될 성 싶다. 나는 제일 왼쪽 테이블에, 삼촌은 제일 오른쪽 테이블에 앉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왜 대답을 안 해주는 거야. 그렇게 춤이 이상했나?
“지수야, 얼른 먹어! 왜 이렇게 말랐니? 전에 보니까 딱 좋더니만”
“아! 뭐래!”
다행인 것은 내가 앉은 테이블에 지수가 있었다는 거다. 물론 체이 양과 민아 양이라는 낯선 이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체이 양의 저 시선도 약간 부담스럽다. 나 치한 아니라니까 그러네.
말은 저렇게 해도 내가 구워 건네주는 고기를 꼭꼭 씹는 것은 보니,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그 큰 눈에 오빠오빠 거리며 내 뒤를 따라다니던 그 때가 말이다.
그런 내 시선을 느껴서일까. 지수가 드디어 내 얼굴을 마주봤다.
“안 먹고 뭐해. 체할 것 같으니까 그만 쳐다봐.”
근데, 저번에 화 다 풀린 거 아니었나?
“뭐야, 지수 아직도 삐졌어?”
“삐, 삐지긴!”
발끈하는 것 보니 아직도 삐져있나보다. 어휴.
“지수, 오빠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었는데 통 볼 수가 없었네?”
뭐, 금방 풀릴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거짓말.”
지수야 진짜 오빠가 연락을 하고 싶었다니까? 다만 오빠가 그동안 나답지 않게 워낙 바빴고 지수 너도 가수로서 계약을 앞둔 상태였기에 지레짐작으로 연락을 안 한 거지만 말이야.
더군다나, 연락할 방법이 딱히 없지 않은가.
핸드폰도 없는 애한테 뭐 회사전화로 내선 돌려서 통화할 것도 아니면,
“전화하면 되잖아?”
뭐? 전화?
“너 핸드폰 없지 않아? 데뷔 초에는 핸드폰 없는 거 아니었어?”
“뭐래? 누가 그러는데?”
“Amiga 멤버들은 핸드폰 없다는데? 예원이가,”
처음 봄 향기로 만났을 때 번호를 얻지 못했던 후로 예원이와 콘서트 준비를 했을 때 다시금 번호를 물어봤던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지금쯤이면 핸드폰을 마련했을 거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노 였다.
그래서 Trendy도 Amiga와 똑같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원래 다 그런 줄로 말이다.
“예원이가?”
“응, 예원이가 그러는데 자기들은 핸드폰 없데. 단체 폰으로 2G핸드폰 한 개만 있다는데?”
“뭐야, 꽤 친해졌나봐? 그 Amiga의 예원이랑?”
“에이, 아무리그래도 예원이 뭐니? 그래도 너희 선배인데.”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내가 구워서 건네준 고기는 잘도 먹으면서 왜 저러는 건지. 그 때문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체이 양과 민아 양이 도리어 눈치를 보는 듯하다.
어휴, 예전부터 뭐 하나에 삐지면 오래가던데 아직까지 그러나? 근데 저번에 삐진 건 그때 토크 콘서트로 풀렸어야지, 지수야. 아직까지 꿍해있는 건 좀 너무하다 진짜.
다른 테이블과는 달리 우리테이블에는 냠냠쩝쩝 먹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뭐 이거 이러면 내가 완전 분위기 브레이커가 된 기분이잖아? 이거.
말을 안 하고 고기만 먹으니, 어느새 배가 부른 지 우리테이블에서 젓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 뿐 이었다.
이거, 이거 안 되겠다. 안 그래도 이제 데뷔 준비로 바쁠 텐데, 오늘 완전히 예전 지수로 만들어야겠다.
하다못해 기타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앞서 말했다시피 젓가락 한 쌍 뿐이었다.
[다다다다다]
젓가락으로 박자를 잡기 시작하자, 우리테이블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테이블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들었다 놓았다.]
......
자꾸만 내 맘을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놓았다 해.
내 맘을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놓았다 hey!
......
“아주 이게 오빠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해? 자꾸 그러면 오빠 지수한테 연락 안한다?”
아주 너 달랠 때마다 신곡 꺼내느라 힘들다 지수야.
*
“오빠 그런데, 아까 그 노래랑 춤 오빠가 생각한거야?”
“응? 시간을 달려서 말하는 거야? 뭐, 그렇다고 봐야지. 왜? 많이 이상했어?”
젓가락을 내려놓아서 다 먹은 줄 알았더니, 뒤에 나올 냉면이랑 육회비빔밥을 기다린 것이었다. 안 그러고서야 저렇게 게걸스럽, 아니 맛있게 먹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벌써 다 먹어치운 것인지 지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지수의 삐짐은 해결 된지 오래였다.
“아니, 그냥 오빠 예전에는 솔직히 춤이나 뭐 작사, 작곡 이쪽 완전 꽝 아니었어? 순전 노래 빨로...”
지수야, 너 삐진 거 아직도 안 풀렸냐? 이거 완전 웃으면서 극딜이네? 도대체 안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러니까 물어본 거잖아. 춤에 자신이 없으니까 말이야. 뭐 작사 작곡은 나도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됐고 말이야.
“아닙니다. 아까 그 노래, 춤 엄청 좋았습니다.”
“마자요. 조았어요.”
사람한테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가만히 있던 민아 양과 체이 양이 착한 마음씨를 드러내보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민아 양이라고 했나? 말 하는 걸 본 적 없어서 몰랐는데 목소리가 엄청 곱구나.
“정말요? 아까 타임머신 춤이랑 짝사랑 춤 괜찮았죠? 그렇죠?”
손으로 살짝 짝사랑 춤을 선보이자, 웃음보가 터진 두 미녀들을 뒤로한 채 나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자 핸드폰 번호 찍어. 그 대신 너 데뷔 준비해야 되니까 되도록 정말 힘들거나 할 때 연락하는 거다? 지금은 중요할 테니까. 물론 활동 끝나고 휴식기간 되면 언제든 연락해도 되고!”
*
재성 삼촌이 계산하러 간 사이, 바깥에 나와 보니 어느새 Trendy 멤버들이 하나 둘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아직 차에 올라타지 않은 꼬맹이 한명과 내 눈이 마주쳤다.
“재...연이는 그렇다 쳐도 너도 나한테 말 안하네? 한술 더 떠서 쳐다보지도 않고.”
꽤나 여러 번 접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시선을 피하던 그녀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으구, 하여튼 생긴 거랑 다르게 속은 깊어서는...”
예나 지금이나 정도 많고 또 생긴 거랑 다르게 속이 깊었던 그녀를 모르지 않기에 그 행동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제법 예뻐졌네? 오빠가 마음이 뿌듯하다야. 뭐, 빈약한 건 여전,”
“누, 누가 오빠야! 그, 그리고 뭐, 뭐가 빈약하다는 거야!”
나이는 같지만 종종 오빠 행세를 했던 나였기에 지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진 않았다. 다만, 예전부터 머리 쓰다듬는 것을 싫어했던 녀석은 여전히 질색하며 나를 째려봤지만 말이다.
“지수한테도 당분간은 가끔씩만, 진짜 힘들 때만 연락하라고 했으니까, 걱정 하지마. 괜히 나 때문에 팀 분위기 흐리는 거, 나도 싫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걱정하지 말고 재...연이 잘 보살펴주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자리를 벗어났다. 녀석이 아직도 차에 올라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 거참 삼촌이랑 밥 한번 단둘이 먹기 참 힘드네.
*
“지혁아 KMA에 나간다고?”
“네.”
“진짜?”
보름 앞으로 다가온 코리아뮤직어워드 통칭 KMA의 초청장을 본 내 말에 삼촌이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의 나였다면 출연은커녕 관심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왜?”
“그냥, 저번에 토크 콘서트할 때 느꼈는데 제가 너무 팬들한테 무심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뭐 어차피 시상식 인만큼 운 좋아야 무대 한번 서는 거 아닌가요?”
“운 상관없이 무조건 무대에 설 것 같은데...”
삼촌이 뒤에 사족을 붙인 듯 했지만, 일단 내 말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뭐 그래도 일단 삼촌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어쨌든 이제부터는 방송에도 좀 나가보려고요. 예능은 조금 무섭지만 음악방송이나 뭐 라디오 같은 거는 괜찮을 듯해요.”
“진짜? 무리하는 거 아니냐, 지혁아?”
“에이 뭘요. 삼촌이 어련히 잘 골라주시겠어요. 전 삼촌을 믿는데요.”
그런 나의 말에 삼촌이 걱정된다는 듯 나를 바라봤지만, 내 의지는 제법 확고했다. 토크 콘서트를 하면서 나 또한 느낀 점이 많았고 또 나를 사랑해주시는 팬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멍청하게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팬 미팅도 하고 싶어요. 크리스마스 때 공연 아! 이건 지금부터 준비하기엔 조금 벅찰 테니까, 뭐 공연 같은 거는 그럼 정규2집 내고나서 도전해보는 걸로 하고요.”
그래서인지 예전처럼 방송활동을 꺼리고 싶지 않아졌다. 나 또한 팬 분들에게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주 알려드리고 싶었으니 말이다.
*
[안녕하세요. 강지혁입니다. 그동안 팬 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는데 이렇다 할 방송활동을 하지 않아 많이 상심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해요. 앞으로는 되도록 잦은 활동으로 여러분께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11월 초에 있는 KMA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PS.텀블러, 티셔츠 그리고 손수건까지.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나자마자 내가 한 일은 팬 카페에 가입하는 일이었다. 민재 삼촌 얘기도 있고 이번 콘서트를 통해 느낀 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카페 가입을 위해 인터넷을 켠 순간 나는 내가 지독히도 무심한 놈이구나를 다시 한 번 깨달았었다.
THE ONLY ONE. 수많은 팬 카페 가운데, 내 공식 팬클럽이름을 그 순간에서야 알게 됐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팬 카페에 들렀다. 워낙 방송활동을 안해서인지, 썰렁할 법도 하건만, 카페는 의외로 활성화 돼 있는 듯하다. 매번 들어갈 때마다 동시접속자 수가 꽤나 많았으니 말이다.
“슬슬 준비해볼까?”
인증 샷과 함께 게시 글을 올린 뒤, 제법 뿌듯한 마음을 한 채 재성 삼촌을 만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번에 못다 한 얘기도 있거니와 새롭게 할 얘기도 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올린 게시 글이 팬 카페에 전달할 파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 시각, 강지혁의 공식 팬클럽 카페 THE ONLY ONE.
여느 때처럼 강지혁의 얼마 없는 방송 영상을 가지고 재편집한 짤 들과 지난 토크 콘서트에 관련된 후기들을 살펴보던 이들의 눈에 어그로 성이 짙은 게시 글이 들어왔다.
[이거 진짜임? 인증 샷 어디서 퍼온 거 아님?]
[퍼온 것 같지는 않은데... 이거 누구 소식 아는 사람?]
처음엔 팬들도 이런 지혁의 게시 글을 쉽사리 믿지 않았다. 카페 초창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류의 낚시 성 게시 글이 꽤나 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달린 하나의 댓글로 인해,
[야! 오피셜 떴다! 오피셜 떴어! 포이보스 홈피랑 KMA 홈피에 지혁님 출연 오피셜 떴다고!]
강지혁의 공식 팬클럽 카페 THE ONLY ONE은 말 그대로 화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진짜 ㄹㅇ?]
[헐 대박! 운영자는 뭐하냐! 지혁님 등업 좀 시켜드려라! 일 안하네 운영자 ㅉㅉ]
[와! 지혁님이 팬카페 가입하시다니! 방송 활동도 ㅎㄷㄷ]
[화력지원! 화력지원이 필요하다! 모두 KMA 홈피로 ㄱㄱ 인터넷 투표 ㄱㄱ]
*
“Amiga 있는 스타뮤직이나 가지, 여긴 웬일이냐?”
시간이 달려서라는 곡을 삼촌에게 들킨 이후 일 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삼촌은 나에게 삐진 상태였다. 하, 글쎄 그 곡은 애당초 Amiga에게 주고 싶었던 곡이라니까 그러네.
게다가 용기내서 댄스도 보여줬더니, 평가는 왜 안 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평가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말이다.
“삼촌 진짜 이럴 거야?”
일이 바쁜 건지, 아니면 나 완전 삐졌다는 것을 티내려고 그러는 건지. 삼촌은 정신없이 서류들을 넘기며 사인을 하고 있었다. 하, 저래보여도 제법 글자가 빼곡해 보이는데 저렇게 막 넘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곡 하나를 썼는데, 여자 솔로 곡으로... 쩝.”
내게 눈물을 보인 후로 삼촌의 변화는 너무 극적인지라, 솔직히 감당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누가 뭐래도 내 삼촌인 것을.
[좋은 사람]
......
네가 웃으니 나도 웃을게.
네 옆에서 웃고 있는 그를 보면
저절로 초라해지지만
네게 잘하라는 말 밖에
널 울렸던 그를
대신할 수 없는 나
네가 웃으니 나도 웃을게.
넌 아니었겠지만,
널 보며 웃었던 날, 널 보며 슬펐던 날
내겐 언제나 행복이었어.
나는 어찌돼도 상관없어.
너를 지켜볼 수만 있다면 난
항상 널 기다리는 널 그리워하는
그게 내 운명인걸.
준비해간 곡을 부르고 난 뒤 두 눈을 감은 채 감정의 여운을 가라앉혔다. 잠시 뒤, 두 눈을 뜬 내 앞에 어느새 삼촌이 다가와 있었다.
“누군데?”
“아! 삼촌 바쁜 거 아니었어? 5분 만에 서류 100장은 넘긴 것 같은데.”
뭐 일단 일차 목적은 달성한듯하다. 이제야 삼촌이랑 말이라도 좀 제대로 해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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