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3화 (23/502)

00023  2012  =========================================================================

[지이익]

그릴에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그 고소한 냄새가 정원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지만, 장내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삼촌 그 삼겹살 차라리 내가 구우면 안 될까?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다. 정작 날 이곳에 앉힌 삼촌은 멀찍이 떨어져서 삼겹살이나 굽고 있는데 말이다.

“후우.”

곳곳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신기함, 동경이 담겨 있는 시선도 있는가하면 원망도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모르겠는 건 그녀의 시선이었지만.

슬쩍, 슬쩍 둘러보니 연습생 10년 내공은 녹슬지 않았는지, 나를 제외한 이들 중 얼굴 낯이 익은 애들이 꽤 있었다. 물론 이중에서 친분이 있던 이들은 단 3명 뿐 이지만.

“지, 지수 안녕?”

안되겠다. 정면승부다. 이대로 있다가는 숨 막혀 죽겠으니까.

그런 내 승부 상대는 회사 내에서 연습생 10년 듀오라 불릴 정도로 친했던 지수였다. 비록 방출된 후로 따로 보거나 연락 한 번 한 적 없지만.

뭐, 그래도 연습생 사이에서 마음씨 착하기로 유명했고 나를 잘 따랐던 지수라면 이 분위기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어본다.

“죽을래?”

지, 지수야?

“진짜 죽을래?”

잠깐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게 지수 목소리 맞나?

“대답 안 해?”

적어도 내가 아는 지수는 오빠, 오빠거리면서 나랑 종종 떡볶이랑 김밥도 같이 먹고 그 큰 눈으로 날 쳐다볼 때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은 그런 애였는데?

기억 속의 지수와 내 눈 앞의 지수간의 괴리감이 주는 충격은 상상이상이었다.

“뭐야, 애들한테 좋은 얘기 좀 하라고 앉혀놨더니 분위기가 왜 그래?”

때마침 접시 가득 고기를 가져온 삼촌의 물음에 제때 답변을 못할 정도로.

*

“일단 1시간 쯤 뒤에 직원분이 데리러 오신다니까, 마음 편히 먹다 가라고 하시네요. 삼촌 아니, 박재성 PD님이요.”

고기를 왕창 굽더니,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모든 것을 내게 맡긴 채 떠난 재성 삼촌이 원망스럽다.

생각 외로 아무렇지 않아 보여 안심을 한 것일까. 겉으로 내색은 안했다 뿐이지, 내가 속으로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지 진짜 몰라서 그런 걸까?

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좀 전처럼 분위기 자체가 적막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3명이 아닌, 다른 이들이 나를 살려줬으니까.

“안녕하세요! 선배님!”

“선배님! 팬이에요! 사인해주시면 안될까요?”

“나 기억났다! 나 팬! 나 팬!”

삼겹살을 몇 점 먹지도 않았는데 체할 것만 같던 분위기가 그녀들로 인해 그나마 해소되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때 날 파렴치한으로 몰 던 애가 너였구나.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와! 지수언니랑 아는 사이였어? 대박! 강지혁이랑 아니, 강지혁 선배님이랑 아는 사이였다니!”

“아는 사이였다니!”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정작 내 첫 승부대상은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말없이 삼겹살을 먹고 있는 반면 다희 양을 필두로 한 몇몇은 신이 난 듯 떠들기 시작했다.

“으... 씨디, 씨디 안 가져왔다. 힝, 사인 받아야하는데.”

문득 들려오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안 구석에 CD 몇 장이 있는 걸로 기억하니까.

“우와! 친필 사인을!”

잠시 뒤 내가 매직과 함께 CD 한 묶음을 들고 오자,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기다리던 몇몇이 환호성을 질렀다.

“헐 대박! 사인 받았다!”

그래도 소속사 직속 후배가 될 뻔 한 이들이기에 매직으로 하나하나 사인을 곁들여 주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 것뿐이었으니까.

보고 싶었던 내 귀여운 동생, 10년 연습생 박지수! 멋진 가수가 되길!

물론 지수에게 줄 것은 특별히 하고 싶은 말까지 썼고 말이다.

“선배님 너무 낭만적이에요. 특히 여기 THANKS TO 부분에 아프고 또 아팠지만, 그보다 더욱 소중한 추억할 수 있는 기억들을 남겨준 그녀에게 라고 써진 부분이요! 크으!”

그렇게 정성들여 적은 문구와 사인을 지수에게 직접 가져다주려던 찰나, 갑작스런 다희 양의 말에 나는 굳어버린 나머지 화석이 돼버렸다.

하... 삼촌.

*

여차저차해서 모두에게 사인이 담긴 앨범을 전달하고 나자 온몸에 진이 빠진 듯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대단하세요. 그 모든 곡이 전부 자작곡이라니.”

“맞아요!”

젊은 게 벼슬인건지, 나를 제외한 이들은 쌩쌩하다는 게 문제였다.

한 시간이 이리도 긴 시간이었던가.

체감 상으로는 반나절같이 느껴졌건만, 시계를 보니 겨우 30분 지났을 뿐이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마치 나의 열혈 팬이 된 것처럼 질문을 던지는 그녀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 지금 팬 미팅 하고 있는 걸까?

“혹시 그럼 아까 부르신 곡들은...?”

“아! 이제 슬슬 정규 2집 생각하고 있어서요. 쉬엄쉬엄 준비 해놓으려고 연습 중이었어요.”

“우와! 대박! 또 정규앨범으로 내시는 거에요?”

“13곡에서 15곡정도 수록하게 될 것 같아요.”

피곤하긴 해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들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비록 JS에서 데뷔를 하지는 못했지만 연습생 후배로서 그녀들은 마음으로나마 항상 응원할 용의가 있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선배님 노래 한곡 만 불러주시면 안될까요?”

나름 그녀들의 질문을 성심껏 답변해주던 내 귀로 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초등학생 이후로 쓴 적도 없는 존댓말을 쓴다. 마치 대놓고 거리감을 표현하듯 말이다.

“지수 네가 예전처럼 오빠라고 불러주면 노래 불러줄게. 아니, 직원 분 오실 때까지 콘서트 그래 토크 콘서트해줄게. 지수 신청곡이랑 신곡 몇 개해서 말이야.”

“헐 대박!”

“우와! 우리가 지혁 선배님 신곡 제일 먼저 듣는 거네! 대박!”

지수의 역습에 이은 거리감 표출에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10년 동안 여동생처럼 대해줬는데 너무 서운했다. 내가 1년 넘게 연락을 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사정을 모르지 않을 지수이니 말이다.

네가 여동생의 역습이면 나는 오빠의 귀환이다. 나 오빠다, 지수야.

“언니 대박! 괜히 연습생 10년이 아니었네! 언니 지혁 선배님이랑 오빠, 동생 할 정도로 친했던 거야? 헐 대박!”

“네 맞아요. 아시다시피 저도 JS에서 10년 넘게 연습생해서요. 지수랑 정말 친한데 최근에 제가 사정상 연락을 잘 못했거든요.”

“얼른 오빠라구 안 부르고 뭐해, 언니? 지혁 선배님이 노래 불러 주신다잖아? 게다가 토크 콘서트!”

다희 양을 선두로 여러 멤버들이 자신을 바라보자 당황한 것일까, 지수가 입술을 살짝 깨문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멤버들이 자꾸만 그녀를 보채고 오빠라 부르라며 성화였으니까.

“오, 오빠.”

작게나마 지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오빠라는 소리에 나는 한 쪽 구석에 내팽개쳐져있는 노트북으로 걸어갔다.

“이 곡은 이번 2집 앨범에 수록될 너의 색깔 이라는 곡이에요.”

[너의 색깔]

너를 처음 보는 전

내 마음은 하얀 도화지와도 같았지.

네가 좋아하는 음식

네가 좋아하는 옷

너의 색깔로 나는 점점 물들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나의 색을 버리고

너의 색깔로 나는 점점 물들어가.

......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짝짝짝]

마치 토크 콘서트 방청객이 된 듯한 그녀들의 행동에 나 또한 콘서트 가수가 된 듯했다.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는데도 말이에요. 조금씩, 조금씩 내 자신이 쉽게 눈치 채지 못하게 그 사람을 닮아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너무나도 상대방과 닮아있는 내 모습에 놀랐을 때! 바로 그때를 떠올리며 만든 곡이에요. 어때요 괜찮았나요?”

“정말 좋았어요!”

“대박이에요!”

“사스가 클라스...”

버스킹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겨우 9명을 데리고 하는 소규모 콘서트이지만 말이다.

처음엔 나를 향한 지수의 서운함을 풀어주기 위해 즉흥적으로 입에 담았던 토크 콘서트이지만, 한 곡을 부른 지금, 오히려 내가 그들보다 이 상황에 빠질 것만 같다. 모든 수록곡이 자작곡인 나에게 곡에 담긴 추억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은 꽤나 큰 매력으로 다가왔으니까.

게다가 내 노래의 모든 소제가 돼주었던 그녀가 관객들 중 한명으로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거리의 노래]

나도 모르게

장발이 돼버린 머리를 애써 정리하고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하고

간만에 거리를 걸어본다.

아직도 나는 네 생각에

눈물이 흘러.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가

온통 내 얘기인 것 만 같아

눈물이 흘러.

언제부터 거리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슬픈 사랑이야기 뿐이었는지

떠오르는 추억에

눈물이 흘러

......

“이별을 하게 되면 그 순간 세상 모든 노래가 자신얘기 같아져요. 신기하죠? 심지어 신나는 곡도 슬프게 느껴진다니까요?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어요. 음악이 들릴 때면 모든 노래가 제 얘기 같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마지막 곡으로 지수의 신청곡을 불러볼까요?”

그렇게 신곡 세 네 곡을 부르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내 첫 번째 토크 콘서트를 마무리 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느새 그녀들의 뒤편에서 같이 청음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살짝 눈인사를 하며 한 곡만 더 부르겠다는 뜻을 전하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지수가 더 서운해질 뻔 했으니까.

“한번쯤은 너를 불러주세요.”

“응? 뭐라고?”

“한번쯤은 너를요.”

“응?”

“한번쯤은 너를 불러줘, 오빠...”

나를 째려보는 지수의 눈초리가 제법 매서웠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이크를 다시금 들었다.

[한번쯤은 너를]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눈물이 흘러.

네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니까.

알아 나도

다 끝난 일이라는 걸.

한번쯤은 너와 마주치고 싶어

어느 공간이든 어떤 때이든

마주치면 네게 말해주고 싶어.

무엇을 하든지

누구의 곁에 있든지 간에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

......

“솔직히 이별을 통보받고 너무 힘들었어요. 석 달 동안 집안에서 술만 마셨죠. 그 결과 JS에서 방출됐으니, 꿈도 사랑도 전부 잃어버린 거에요. 한 순간에요.”

그녀와 재회한 순간부터 제대로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지금쯤이면 아물었을 거라 생각하곤 했지만,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가수로서 무대의 힘을 빌어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그녀의 눈동자를.

“하지만 지금 제 마음에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은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아요. 지금에 와서는 그저 그녀가 나를 떠난 만큼 꿈도 이루고 저보다 좋...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녀와의 이별이 너무나도 슬프고 고통스러웠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대도 저는 똑같이 그녀와의 사랑을 시작할 것 같으니까요.”

개운함이 느껴졌다.

실상,

“제 토크 콘서트,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이 얘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가 너였기에.

들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유재연.

*

“진짜 대박인 것 같아! 키도 크고 훈남에다가 노래도 잘하고!”

“이거 화보도 엄청 잘 나오지 않았어요? 진짜 최고야! 언니, 언니. 지연언니한테 뭐 들은 거 없어요? 지연 언니랑 강지혁 엄청 잘 어울린다. 대박!”

방금 전 노래의 여운에서 아직도 벗어나오지 못한 Trendy 멤버들의 재잘거림은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요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강지혁을 실제로 봤다는 것, 그의 노래를 눈앞에서 지켜봤다는 것은 단순히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 언니! 언니 울어요?”

그런 와중에 앨범에 수록된, 발매가 되고 강지혁이라는 가수가 화제가 됨에 따라 덩달아 이슈가 된 화보집을 유심히 살펴보던 다희가 옆에 있던 재연에게 물었다.

그 화보집의 주인공 중 한명인 공지연은 재연과는 사소한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질문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 유또울! 또 울어!”

“민아도 너무 슬퍼써...”

“유또울 또 운데요! 또 운데요!”

평소 세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눈물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유재연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뭔가, 의심쩍은 면이 없지 않았지만 곁에 있던 지수와 나정으로 인해 타이밍을 놓친 다희로서는 그저 말없이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