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0 2012 =========================================================================
“사장님 어떻게 됐어요?”
“유진이가 해도 된데요?”
스타뮤직의 사장 소경진이 모습을 보이자마자, 한창 연습 중이던 Amiga 멤버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들은 결국 데뷔를 했고 예상보다 꽤나 준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비록 정식 1위는 하지 못했지만 각종차트에서 상위권을 기록했으며 최고가요에서는 9위에 랭크되는 등. 마이너 소속사의 걸 그룹치고는 엄청나게 선방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곧바로 2번째 미니앨범을 준비하던 Amiga는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바로 자신들 그룹의 메인보컬인 유진이 SBS의 기대작으로 꼽는 드라마의 OST를 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Amiga의 첫 번째 활동이 꽤나 준수한 성적을 거두자, 지금이 기회라는 듯 소경진 사장이 온갖 힘을 발휘해 기회를 만든 것인지라 멤버들의 관심은 드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로서는 답을 들고 온 소경진 사장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됐다! 됐다, 유진아! 너가 OST 부르게 됐어!”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말없이 바라보던 소경진 사장이 얼굴을 밝히며 외쳤다.
“저, 정말요?”
소경진 사장의 외침이 가져온 효과는 대단했다.
당사자인 유진은 물론이거니와, 나머지 멤버들 또한 기쁨에 취해 서로 얼싸안았으니 말이다.
“우와! 대박!”
“얏호!”
이번 기회를 잡기 위해 소경진 사장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모르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유진이 OST를 부르게 됐다는 것에 이다지도 큰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혹시, 노래 들어보셨어요?”
소경진 사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기회를 잡은 유진이 긴장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밥상을 차려놓은 만큼 반찬이 몇 개인지 밥은 많이 담겨져 있는지와 함께 그것을 잘 먹고 잘 소화시킬 수 있느냐는 이제 전적으로 유진 그녀에게 달려있었으니까.
그런 유진의 반응에 소경진 사장은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 당당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뿐.
*
“후우...”
“하아...”
여느 날처럼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 몇 개가 든 봉투를 한 손에는 돼지 바를 먹으며 회사 안으로 들어간 나는 곳곳에서 들리는 한숨 소리에 절로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민재 삼촌도 재영 삼촌도 회사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 들리는 한숨 소리의 주인공이 상상가질 않았다. 이정도로 무거운 한숨은 연륜이 가미된, 응?
회사 로비 겸 휴게실에서 각자 연필을 들고 노트를 보는 두 명이 한숨의 주인공들이었다.
무려 나보다도 어린 파릇파릇한 급식이들이 말이다.
[툭]
“에?”
“아! 뭐야?”
각자 자신들의 머리와 몸통을 가격한 물체에 고개를 든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소파에 덜렁 드러누웠다.
“땅 꺼지겠다. 한숨 그만 쉬고 아이스크림 한 입들 해.”
자신들에게 날라 온 물체가 아이스크림인 것과 이를 던진 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인지,
녀석들이 힘없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래, 뭐 땜에 그러는데? 누가 보면 니들 내일 죽는 줄 알겠다.”
10년간의 연습생활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많은 것을 잃었다. 평범한 학교생활과 관련된 추억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좋지 않게 마무리 된 내 연습생 시절로 인해, 난 그나마 얻었던 것도 간수하지 못했으니까.
같이 데뷔를 꿈꾸던 이들에게는 미안함 때문에, 다른 연습생 누나, 형, 동생들에게는 그녀를 위해서.
그렇게 나는 지난 10년 간 쌓아왔던 인맥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포이보스 뮤직 소속 뮤지션이 된 뒤 곧 이어 한솥밥을 먹게 된 수아, 크리스와 꽤나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닌데도 말이다.
“오빠 곡이 잘 안 써져요. 뭔가 벽에 막힌 것 같은?”
“저도...”
괜히 오선지에 연필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닌 듯, 녀석들의 고민은 예상대로였다.
알고 있다고 해도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는 그런 고민 말이다.
드라마 OST로 쓰겠다는 곡 녹음 같은 경우 민재삼촌이 맡아주기로 했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개사 작업도 재성삼촌이 전적으로 맡는다한 만큼 지금의 나는 잉여 그 자체였다.
예전 같았으면 바깥을 둘러보며 추억을 되새김질 하거나 했을 텐데, 지금은 불가능하니 어쩔 수가 있나.
그렇게 돼지 바 나무막대를 쪽쪽 빨며 수아와 크리스를 바라보던 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내 녀석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외쳤다.
“야! 나가자!”
잊고 있었다. 나 꽤나 즉흥적인 녀석이라는 걸.
*
“시원하네.”
간만에 찾은 신촌은 여전했다. 밤이지만 이곳을 찾은 수많은 이들과 네온사인까지. 애들을 격려하기위해 온 것이지만, 정작 나 또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애들이 아니었으면 오지 않았을 테지만.
슬쩍 옆을 보니, 각각 부산, 시애틀 출신이라 신촌이 처음인 녀석들의 표정도 밝아져있었다.
“여기가 신촌?”
“오호!”
촌티내고 있는 녀석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토박이로서 서울부심 부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절대.
비록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를 대신하듯 수많은 건물들이 만든 야경이 내 두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근 몇 년 만에 다시 오게 된 이곳에서 나는 좀처럼 찾기 힘든 외진, 인적이 그나마 드문 벤치에 앉아 뒤따라오는 녀석들을 기다렸다.
“오빠 근데 여기는 왜 온 거야?”
“형, 설마 오늘 술 한 잔?”
“헐! 진짜? 진짜?”
뭐라는 거니, 너네 들. 아직 급식이들 주제에 감히 술을 논하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급식주제에 무슨 술이야.”
급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인 것일까.
“뭐, 뭐야!”
“형! 그, 급식이라뇨!”
녀석들 답지 않게, 뭐 수아는 그렇다 쳐도 크리스 녀석까지 격렬하게 반응하자 나는 왜 그러냐는 듯 한 표정으로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속으로는 빙고를 외쳤지만.
“임마! 니들하고 술 먹을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어! 이것들아!”
애초에 신촌은 웬만하면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온 것은,
[신촌 거리]
신촌 거리를 너와 걸었어.
이곳이 신촌이든 골목길이든 내게 중요하지 않았어.
다만 네가 곁에 있어서 좋았을 뿐.
이제는 그 거리를 가지 못하겠어.
모든 기억들이
너의 향기
너의 모습
너의 발자취를 떠올리게 해.
이제는 그 거리가 너무 그리워.
언제쯤 그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그립다.
그때의 내가.
“이곳을 떠올리면서 만든 노래야. 직접 겪었기 때문에 부를 때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 저기 저 포장마차 잔치국수가 끝내줘. 술 안 먹어도 들어가서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지.”
나 나름대로 녀석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노래 한곡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하지만 그 노래가 남긴 여운에 나는 노래를 끝마친 뒤 한참 동안 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눈을 뜨고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지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녀석들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작곡과 작사를 할 때 이렇게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래자체를 만들기 위해 애쓴 적은 없다. 며칠 전 OST곡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단지, 추억들을 되새기고 그때의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았기에 무의식적으로 선율과 가사를 적어나갔고 내 얘기와 감정을 풀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들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고 그들 또한 뭔가를 내게서 느껴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 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말로는 이러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으니까.
“이곡 너희들이 처음 듣는 거야. 다음 정규앨범에 넣을 곡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갑작스레 신촌에 데려오더니, 자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의 행동에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를 만들겠다는 것에 너무 신경을 쏟지 마. 그냥 일상생활이나, 과거에 있었던 것들 그런 것들을 되새기면서 너희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봐. 작곡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뭐, 너희들보고 1주일 내로 곡 만들어와! 이런 사람 아무도 없잖아? 우리 소속사에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말을 잇지 않은 채 고민에 빠진 듯 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나 또한 내 조언 아닌 조언이 도움이 되길 바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사색은 오래가질 못했다.
미처 녀석들이 아니 내가 고려하지 않은 변수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방금 노래 들었어? 노래 대박인데?”
“우와! 저거 강지혁 아니야?”
“저기 권수아랑 크리스 김도 있는 것 같은데?”
“뭐야, 뭐야! 오늘 포이보스 뭐 하나?”
즉흥적인 행동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아무리 외지고 인적이 드물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일 뿐 여기는 신촌이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바글바글한 신촌 말이다.
게다가 대중들에게 얼굴이 팔린 세 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거기다 내가 노래까지 불렀으니 오죽할까.
순식간에 웅성거림은 커져만 갔다.
“혀, 형! 이거 어떡해요?”
“오빠?”
당황한 듯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의 눈빛에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잔뜩 나있는 주제에 말이다.
“그, 글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
“어휴...”
민재 삼촌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자,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수아와 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포이보스 뮤직 신촌 출격, 신촌 거리를 1시간여 동안 마비시킨 강지혁과 권수아 그리고 크리스 김, 포이보스 뮤직 막강 삼남매 깜짝 신촌 버스킹.”
이어서 흘러나온 삼촌의 말은 꽤나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안 그래도 좀 전까지 녀석들과 희희낙락거리며 확인한 인터넷 기사 타이틀들이었으니 말이다.
“음반깡패 강지혁, 케이팝 싱어 권수아, 크리스 김의 폭풍 라이브. 포이보스 뮤직 머리끄댕이 잡고 캐리하는 삼남매의 위력. 자유로운 음악 감성, 포이보스 뮤직만의 비아이돌 감성폭발. 강지혁 신곡발표! 새로운 음반 발매 예정?”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사 제목들의 향연에 나 또한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기사들이 많이 뜬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으니까.
“삼촌 아니 PD님 제 실수에요. 제가 애들 데리고 신촌을 데려가는 바람에 사태가 커졌어요. 버스킹도 예상에 없던 거긴 한데, 순간 흥이 돋아서...”
사실상 녀석들에게 도움을 준답시고 신촌에 데려간 것은 나였기에 그냥 자진해서 잘못했다고 말했다. 매도 먼저 맞아야 낫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막말로 녀석들이 뭔 죄냐. 내가 가자해서 간 것을.
그래도 그닥 후회는 없었다. 처음엔 조금 우물쭈물하긴 했지만, 중간부터는 서로 심취해서 노래 부르며 사람들과 놀았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신통해. 사람들은 어디서 그 마이크들을 공수해 준거지? 나 참.
“애들아, 내가 버스킹 한다고 뭐라 하는 거 아니다? 버스킹? 그거 할 수 있지. 가수라면 그래 그런 경험도 해보고 해야지. 근데, 적어도 회사에는 미리 말해줘야지. 너희들 만약에 거기서 혹시나 다쳤으면 어쩔 뻔했니?”
“죄송해요.”
하지만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포인트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삼촌의 표정이 굳은 이유는 버스킹을 했다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에휴, 그래. 앞으로 버스킹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해라. 가수가 버스킹한다고 뭐라 할 생각 없으니까 말이야. 우리가 아이돌 회사도 아니고 뮤지션이 돼서 버스킹을 꺼리면 말도 안 되는 거지 그건. 그래도 그 대신 꼭 회사에 먼저 보고하도록 해. 알겠지? 어제는 다행히 아무 사고 없었지만 말이다.”
“네!”
“예!”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지자, 수아가 민재 삼촌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고 이로 인해 휴게실은 때 아닌 웃음으로 가득 찼다. 물론 그 때문에 수아가 투덜투덜 거렸지만.
“그나저나 그날 새로운 노래 부르던데, 신촌거리였나? 제목이?”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뭐, 다음 정규앨범 내려고 준비해둔 곡 중 하난데 어제 불러야 될 일이 있어서요. 뭐, 그것 때문에 버스킹이 돼버린 거지만요.”
“그야, 니들 나오는 영상 종류별로 다 봤으니까 알지! 내가 그거 스무 번은 넘게, ......”
사실은 우리들이 버스킹하는 영상들을 수십 번이나 돌려봤다는 민재 삼촌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 삼촌을 바라보았다. 이는 수아와 크리스 또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크아! 포이보스 뮤직 머리끄댕이 잡고 캐리하는 삼남매! 개인적으로 이 제목 마음에 들지 않냐? 애들아?”
방금 전까지 굳은 얼굴로 우릴 바라보던 삼촌은 어딜 갔는지. 나 참.
그렇게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는 삼촌의 말과 함께 그날의 버스킹 사건은 종결되었다. 나 또는 녀석들 또는 우리들의 버스킹은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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